'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연구를 이어왔습니다. 여전히 그 해답은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고, 수많은 가설과 이론으로 잠재적인 결론만이 남겨지고 있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당신은 누구입니까? 무엇이 당신이며, 당신이 아닐까요?
우선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는 상황을 떠올려 봅시다. 자기소개란 말 그대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타인에게 설명하고 소개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나를 알리기 위해서는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을 필요가 있죠. 실제로 행해지는 자기소개는 상당히 꾸며진 내용으로 채워질 때가 많지만,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되는 솔직한 자기소개를 한다고 생각해 보아요. 이때 여러분은 어떤 내용으로 자기소개를 해볼 수 있을까요?
우선 사실 정보를 이야기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름, 나이, 사는 지역, 가족관계, 출신 학교 등 인적 사항에 대해 나열하듯이 알릴 겁니다. 그럼 이 정보들은 정말 '나'인가요? 물론 나를 이루고 있는 정보는 맞지만, '나'라는 정체성을 이루는 것인지는 좀 더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정보들은 가장 기본적인 것일수록 우리 스스로 선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면서 이름을 부여받습니다. 나이도 사회적인 규칙에 따라 정해지죠. 태어난 곳, 태어난 가정도 우리가 정한 게 아닙니다. 이처럼 우리가 직접 선택하지 못한 조건들이 정말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일까요?
제 생각을 말해보자면, 이 또한 '나'입니다. 즉, '나'라는 존재는 꽤 많은 부분이 이러한 정보로 이루어져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게 전부는 아닐 겁니다. 그 밖에도 '나'를 이루는 요소들이 있습니다. 나를 이루는 건 몸에 내장되어 있는 정보인 DNA일까요? 아니면 우리의 뇌일까요? 몸에 좀 더 '나'의 부분이 많을까요? 정신에 '나'의 부분이 많을까요? 어떤 질문도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나'라는 존재에 대하여 '기억'을 할 수 있어야 계속해서 '나'로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각종 드라마나 영화, 창작물을 보면 자주 사용되는 소재 중 '기억상실증'이 있습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이 이전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하기도 하며, 완전히 달라진 인격으로 새로운 삶을 살며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흐르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원래 기억이 차츰 돌아오기 시작하고, 기억을 잃은 동안의 경험과 원래의 경험이 충돌하며 자신의 진정한 자아에 대해 혼란스러움을 겪게 되죠. 대체로 해피 엔딩으로 끝맺음을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때 우리는 '나'라는 존재에 관해 고민해 볼 주제를 찾을 수 있습니다.
기억을 잃은 순간, 더 이상 이전의 '나'는 없는 걸까요? 그래도 몸은 그대로이니 여전히 '나'인 걸까요? 기억의 상당 부분을 잃고 심지어 자신의 이름과 나이, 출신이나 직업 등 '나'와 관련된 모든 정보를 기억하지 못한다면 여전히 같은 사람이라고 봐도 괜찮은지 의문이 듭니다. 꼭 창작물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기보다는 실제로도 기억을 상당히 많이 잃은 사람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곤 합니다. 흔히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라는 말도 있듯이, 인격 자체가 변하는 건 어렵습니다.
어떤 경험을 했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에 따라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지를 결정합니다. 타고난 신체적 조건이나 기질이 있다 할지라도 다양한 경험과 환경에 상호작용하며 성격을 형성하고, 기억의 틀과 기본적인 신념이 만들어집니다. 이후에는 신념에 따라 그리고 성격에 따라 우리의 행동이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을 잃으면 잃을수록 인격 자체가 변할 가능성도 높아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억이 없으니 신념과 성격도 다시 백지로 돌아가기 때문이죠. 그럼 더 이상 '나'는 없는 걸까요?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겁니다. 앞서 말했듯이 태어나는 동시에 주어지는 신체적 조건 및 DNA, 기질 등의 요소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이 또한 모두 '나'의 일부이기에, '나'라는 존재가 모두 사라졌다고 보긴 어려울 겁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책을 내고 싶어 합니다. 물론 저도 그렇고요. 각자 이유는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고 싶어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책을 내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이유들 중에서, 저는 '자신을 기억하기 위해' 책을 내려는 사람도 꽤 많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이미 우리는 어릴 적의 기억을 상당히 잃었고, 예전 일이 흐릿해지는 걸 겪었습니다.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많은 기억을 잃을 테고, 그래서 우리는 일기를 쓰거나 사진을 찍는 등 기록하는 행위를 성실히 하기도 합니다.
기억하는 건 곧 나를 아는 것 그리고 나를 남기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설령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나'는 변하더라도 기록을 남기고 기억을 남기는 건 의미 있는 일이라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나'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죠.
우리는 자신을 알고 싶어 합니다. 나에 대해서, 타인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합니다. MBTI라는 성격 유형 테스트가 유행하는 이유도 이와 같을 겁니다. 조금이라도 더 알고 이해하고 싶기 때문에 비교적 쉬운 길을 찾아가는 걸 테죠. 심리학에선 한 개인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검사에만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기억을 되짚어 보는 방법을 좀 더 신뢰합니다. 다만 인간의 기억이란 게 워낙 부정확할 때가 많고, 심지어 왜곡되기도 하니 심리검사라는 도구로 그 기억의 타당성을 확보하고자 합니다. 검사 결과와 개인의 기억을 대조해 보며 좀 더 정확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죠. 그래서 심리학에서, 특히 상담 심리 영역에서는 면담이 가장 주요한 자기이해 방법으로 활용됩니다. '내러티브 분석'이라고도 이야기하죠.
여러분은 무엇이 '나'라고 여기고 계시나요? 여러분을 누군가에게 소개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건가요? 여러분이 전하는 그 이야기가 여러분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기억의 파편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