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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May 06. 2022

잠재력

[숨겨진 슈퍼파워]

나는 공감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감정에 별로 관심이 없고, 궁금해하지 않으며, 오직 나의 내면만 바라보는 사람이다. 친구들과 이야기를 할 때면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더 알차게 하려고 기회를 노린다. 실컷 이야기를 하고 나면 개운한 느낌이 들고 만족스럽다. 하지만 친구들은 분명 나와는 반대로 느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하는 친구와 길을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친구는 자신의 실수, 후회하는 일, 고민 등을 이야기했고 나는 여전히 언제 내 이야기를 할까 타이밍을 노리며 듣고 있었다. 그러다 잠시 친구가 숨을 고르는 틈을 타서 친구의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 내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내가 친구의 말을 정리한 내용을 듣고는 "너 되게 공감을 잘 하네"라고 말을 했다. 나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워서 호시탐탐 준비하고 있던 내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빨리 이야기를 마치려고 했던 정리 과정이 우연히도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심지어 그 상황에서의 감정까지 헤아리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당황스러웠던 건 어쩌면 내가 공감이란 걸 너무 숭고하고 위대한 작업으로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는 점이다.

실제로 심리 상담 영역에서의 공감은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함부로 공감한다고 표현해서도,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 공감은 상대방의 상황적 맥락과 디테일한 정보를 파악하고 충분히 이해한 후, 감정을 헤아리고 있는 그대로 수용하며, 나아가 공감해 주고 싶은 대상에게 어떤 도움을 제공해 줄 것인지까지 떠올리는 것이다. 하지만 일상에서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공감이란 표현의 의미는 이렇게 않다.

일상에서의 공감은 사실 "그랬구나", "나라면 그랬을 것 같아" 정도로 이루어져도 충분하다. 나는 이걸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고, 그래서 전문적인 공감만을 추구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전문적인 공감은 아무리 타고나길 공감적인 사람이어도 충분한 연습과 학습이 필요한 일이다. 그런데 그걸 하지 못한다고 해서 나 자신을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으로 여기고 있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꿰고 있지 못한다. 마치 인터넷 쇼핑을 한 후 남은 구매 목록처럼 우리에게 능력이 주어질 때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직접 세상에 부딪혀보면서 어떤 능력이 있는지 확인해 볼 수밖에 없다. 영화 <샤잠!>에서 갑작스럽게 슈퍼파워를 얻은 주인공은 자칭 히어로 전문가인 친구와 만나 자신에게 어떤 슈퍼파워가 있는지 확인해 본다. 날아보기도 하고, 불속에 들어가 보기도 한다. 그러다 자신이 번개를 발사할 수 있고, 하늘을 날 수 있고, 신체가 강철보다 단단하다는 걸 하나씩 발견한다.

우리에겐 저마다의 슈퍼파워가 있다. 비록 초능력이라고 부를 정도는 아닐 테지만 말이다. 스스로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를 알기 위해선 이제껏 해보지 않은 경험에 몸을 던져볼 수밖에 없다. 그전에는 절대 속단하지 않길 바란다. 자신에게 능력이 없다고, 자신은 아무런 재능이 없다고, 자책하고 슬퍼하지 않길 바란다. 어쩌면 세상을 바꿀 능력을 고이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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