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와 얼굴 매력도]
마스크 없이는 아무데도 갈 수 없게된 지 벌써 2년이 넘게 지났습니다. 그동안 마스크를 쓴 사람들을 만나며 참 다양한 일이 있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길을 걷다 우연히 아는 사람을 만났는데, 제가 알아보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서 상대방이 매우 서운해했었던 일도 있었고, 마스크를 썼다는 걸 깜빡한 채 마스크 위로 음식을 밀어넣는다거나 반대로 마스크를 쓰지 않았는데 손을 얼굴로 올려 마스크를 집으려 한다거나 했죠.
이젠 마스크를 쓰지 않은 상태가 어색하기도 합니다. 물론 집돌이인 저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마스크를 쓴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겠지만요. 저도 이런데,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마스크 없는 상태가 어색할까 싶기도 하네요. 특히 태어난지 얼마 되지 않은 아이들, 코로나의 시작과 동시에 인생이 시작된 아이들은 마스크 없는 삶을 전혀 모를 겁니다. 마스크를 벗는 게 그 아이들에겐 정말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네요.
마스크를 쓰는 동안 '마기꾼'이라는 용어가 생겨났습니다. 마스크와 사기꾼이 결합된 말로, 마스크를 쓰니 원래 얼굴보다 잘생겨보이게 된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마스크 위로는 헤어스타일과 눈 정도만 보이죠. 왠지 잘생겨보이는 그 사람의 번호를 용기내어 따냈는데, 막상 만나서 마스크를 벗으니 충격적입니다. '내가 이런 사람의 번호를 따다니, 자존심 상해!'라는 생각이 들겠죠. 실제로 제 친구가 이야기해준 경험담입니다.
반대로 '역마기꾼'이라는 말도 함께 사용되더군요. 이는 마기꾼의 반대, 즉 잘생긴 사람이 마스크를 써서 덜 잘생겨진 걸 뜻합니다. 아깝게 잘생김을 마스크가 일정 부분 봉인해버리는 거죠. 눈만 봐도 잘생기긴 했지만, 이왕이면 잘생긴 코와 입도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요? 마기꾼이든 역마기꾼이든 마스크가 참 여럿 서운하게 만들었네요. 저도 마스크의 덕을 많이 봤을까요? 확실한 건 저는 제 하관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고, 제 눈으로 봤을 때는 마스크를 쓴 모습이 조금이나마 더 봐줄만 했다는 겁니다. 물론 그로 인해 뭔가 이점을 경험하지는 못했지만요.
마스크를 쓰면 좀 더 잘생겨보이는 원리에 대해, 심리학은 인간이 가진 완결성을 추구하는 성질이 영향을 미친다고 이야기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한 상태를 싫어하고, 그래서 부족한 부분이 보이면 상상으로 그 부분을 채워넣으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불완전한 걸 싫어할까요? 그건 뇌가 세상을 패턴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패턴이 끊기는 게 불편한 거죠. 패턴으로 바라보게 된 이유는 안정적인 생활을 지속하기 위함이라고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정말 간단하게만 설명해서 다소 왜곡이 있을 수 있는 점은 감안해주시길 바랍니다.
마스크를 쓴 얼굴을 보면 보이지 않는 코와 입, 그리고 하관의 전체적인 윤곽을 우리는 상상합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경우에 못생긴 편으로 상상하지 않는 경향이 강하죠. 대체로 평균적인, 또는 잘생긴 타입으로 떠올려보곤 합니다. 한 마디로 새로운 얼굴을 가공하여 인식한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실제로 미국에서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로 이 현상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맨얼굴과 마스크를 쓴 얼굴의 매력도를 사람들에게 평가해달라고 요청하여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팬데믹 브레인>이라는 책에서 이 연구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구결과는 마스크를 쓴 얼굴을 맨얼굴보다 더 매력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는 걸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재밌는 현상이 숨어 있습니다. 맨얼굴의 매력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마스크를 썼을 때 매력도가 더 많이 증가한다는 겁니다. 맨얼굴이 잘생긴 사람의 경우, 마스크를 썼을 때 매력도가 증가하는 추세가 아주 약하다고 합니다.
매력도가 낮은 사람일수록 마스크 쓴 얼굴은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매력도가 낮은 맨얼굴 소유자가 마스크를 쓰면 약 40% 높은 평가를 받은 반면,
맨얼굴의 매력도가 높은 사람들은 점수가 6% 정도밖에 오르지 않았다.
-<팬데믹 브레인>, 114p
이건 저의 추측이지만, 맨얼굴의 매력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마스크를 썼을 때의 매력도 상승폭이 작아질 것 같습니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서 오히려 매력도가 깎이기도 하겠죠. 그래서 생겨난 게 '역마기꾼'이라는 용어이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쓴 정수근 교수님께선 마지막에 "나는 되도록 오래오래 마스크를 쓰는 게 유리하겠다 싶었다"라고 왠지 씁쓸함이 듬뿍 묻어나는 문장을 실으셨습니다. 이걸 보고 저는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나도 마스크를 오래오래 써야겠다!"라고 굳건한 다짐만 했을 뿐입니다. 미세먼지 핑계를 대며 꼭 챙겨서 쓰고 다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