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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Aug 31. 2022

미련의 양면

<자이가르닉 효과>

베이직북스에서 출판된 《심리학의 즐거움》에는 프랑스의 심리학자 자이가르니크가 진행한 실험이 나옵니다. 실험은 두 개의 집단을 대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각 집단에게 총 20가지의 일을 끝내도록 지시했습니다. 한 집단에서는 일을 끝마치지 못하도록 끊임없이 간섭하고 방해를 했습니다. 다른 한 집단은 아무런 방해 없이 순탄하게 할 일을 끝내갔습니다.


처음 과제를 시작하는 순간에는 두 집단 간 스트레스 및 긴장도의 차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점차 실험이 진행되는 과정 동안 방해를 받지 않았던 집단은 일을 마무리하면서 긴장을 해소해나갔습니다. 계속 방해를 받은 집단은 일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하니 실험이 끝날 때까지 높은 긴장도를 유치하게 되었죠. 이 실험을 통해 자이가르니크는 사람들이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선 일을 끝마칠 수 있어야만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신의 일에 열심히 집중하다 보면 퇴근 후에도 일에 대한 고민을 끌어안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잠에 들기 위해 침대에 누워서도 "내일 회의에서 잘 해야 할 텐데"라며 걱정하다 보니 잠이 오지 않습니다. 결국 스트레스와 피로감으로 인해 다음날 회의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해 주눅이 들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가능하면 회사에서의 일을 집으로까지 가져오지 않도록 퇴근하는 순간 일이 끝났음을 직접 선언하는 의식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마음과 뇌는 복잡하면서도 때론 단순합니다. 간단한 의식만으로도 쉽게 착각에 빠지게 만들 수 있죠. 퇴근하기 전 '내일 할 일' 목록에 미처 끝내지 못한 업무를 적어놓는 것만으로도 '이건 내일 할 일이고, 오늘 해야 할 일은 지금 이 순간 모두 끝났어'라는 메시지를 마음에 담을 수 있습니다. 퇴근하고 회사를 나오는 순간 '이제 나는 직장인이 아니야!'라고 선언함으로써 직장에서의 일을 더 이상 고민하지 않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어쩔 수 없이 집에 와서까지 계속 업무를 진행해야만 할 때는 어쩔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이러한 간단한 의식을 진행함으로써 다음날 다시 출근할 때까지 업무 스트레스를 줄여두는 게 정신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심리학자 자이가르니크의 이름을 딴 자이가르닉 효과, 달리 말해 '미완성 효과'에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우선 기억에 도움이 된다고 밝혀져 있는데요. 위에서 언급한 실험에서도 이러한 효과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계속 과제를 방해받은 집단에 속한 참가자들은 실험이 끝난 후 더 오래, 더 선명하게 어떤 과제를 수행했었는지를 기억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방해를 받지 않은 참가자들은 자신들이 한 과제가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하지 못했다고 하죠. 자이가르닉 효과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활용되는 예시는 바로 '첫사랑'입니다. 사랑을 완결 짓지 못한 대표적인 경험인 만큼 오래도록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첫사랑에는 또한 '초두 효과'라는 현상도 달라붙습니다. 가장 앞선 일을 잘 기억한다는 의미죠. 여러모로 첫사랑은 참 잊기 힘든 기억입니다.


자이가르닉 효과를 잘 응용하면 시험공부를 할 때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를 완벽히 끝내려고 노력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암기가 중요한 과목일수록 더 강하게 집착합니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외우려 하죠. 물론 실제로는 완벽히 모두 외운다는 건 불가능하지만, 어느 순간 몇몇 학생들은 "이 정도면 다 외웠다!"라고 느끼며 공부를 종료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완결했다는 느낌이 든 일은 빠르게 우리 기억에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오히려 80% 정도 외운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공부를 중단하는 게 좀 더 생생하게 기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끝내지 못한 암기를 우리 뇌는 계속 곱씹을 테니까요.


자꾸만 생각이 나서 괴로운 기억, 이제 그만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일이 아직도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고 여기고 있지 않은지 말이죠. 끔찍한 사고를 당했거나, 그러한 사고로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나의 시간은 그때 멈춰버렸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분들에게 지난 일은 영원히 끝맺어지지 않은 일로 남아 있는 것이죠. 슬프고 안타깝지만 시곗바늘을 다시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미 끝난 일이라는 걸 인정해야만 합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쿨하지 못합니다. 예전 UV가 노래했던 것처럼 '쿨하지 못해 미안한'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반드시 쿨해져야만 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스스로 쿨해질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자신의 과거에게 선언해 볼 수 있길 바랍니다. "이미 다 끝난 일이야"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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