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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Aug 05. 2021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게 의미 있을까?

  여러분은 희망적인 사람인가요?


  내일은 오늘보다 좀 더 나을 거라고, 1년 후, 10년 후는 훨씬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갔을 거라고 믿으시나요? 저는 솔직히 '그랬으면 좋겠다'라고 바라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서는 그러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차라리 가까운 미래라면 낙관적으로 보기 쉽습니다. 그래도 오늘보다는 좀 더 웃을 수 있을 거라고, 좀 더 의미 있는 하루가 될 수도 있지 않겠냐고 기대합니다. 오늘이 별로 대단하지 않기 때문이겠죠. 그러나 연 단위로 확장하면 자신이 없습니다. 점차 나아질 거라고는 생각하면서도, 그 속도가 매우 느릴 거라고 예상되기 때문이죠.


  특히 저를 포함하여 많은 젊은이에게 있어 희망은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물론 100세 시대에 접어들게 되면서 50~60대 분들도 희망을 가질 필요가 있게 되었고, 건강하다면 80대도 10년 후를 기대해볼 수 있게 되었죠. 그래도 상대적으로 20~30대의 남은 앞날이 더 깁니다. 따라서 희망을 가지고서 살아가야 할 날도 더욱 깁니다. 20대에 벌써 희망을 잃어버린다면 남은 반세기 이상의 시간은 그저 괴로움의 반복이 될지도 모릅니다.


  "누가 희망을 가지기 싫어서 안 가지나요? 앞날이 캄캄하니까 그렇지." 이렇게 생각하는 분이 계실까요? 저는 희망을 가지라고 조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이런 생각이 떠오릅니다. 정작 노력하지 않고 발전하지 않는 건 나 자신인데 나한테 화를 내면 더 비참해지니 조언해주는 사람들에게 화풀이를 합니다. 정작 저는 성공한 사람들만큼 힘들어보지도 않았고, 발버둥 쳐보지도 않았는데 말이죠. 몇 억 단위의 빚도 없고, 부끄럽지만 어머니께서 용돈도 부족하지 않게 챙겨주십니다. 그런 제가 지독한 가난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낸 사람들의 조언에 한숨을 쉬는 건,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예의가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에 와닿지 않는 걸 어떡하겠어요? 희망을 가지는 건 언제나 어려운 일입니다.


  여러 심리학 연구들에서도 특히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해 희망적으로,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젊은이는 지금 당장에는 뚜렷한 성취를 얻기 힘듭니다. 하지만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되죠. 지금 노력을 꾸준히 해서 10년 후의 큰 보상을 얻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분명 10년 뒤에 보상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필요하죠. 믿음이 없다면 노력을 멈출 겁니다. 20~30대까진 전반적으로 업무 능숙도가 낮습니다. 따라서 만족스러운 성취를 이루기가 힘듭니다. 이 시기를 이겨내기 위해 심리학에선 '희망', '회복탄력성', '그릿' 등을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회복탄력성과 그릿은 희망에 비하면 그래도 구체적입니다. 회복탄력성과 그릿도 손에 잡히는 개념은 아닐 수 있지만, 충분한 설명을 들으면 이해할 수 있고 스스로 자신의 능력치를 평가해볼 수도 있습니다. 관련 책들로 연구결과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궁금하신 분은 엔젤라 더크워스의《그릿》과 게일 가젤의《하버드 회복탄력성 수업》을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희망에 관한 연구도 꾸준히 쌓이고 있습니다. 관련 책도 많이 있죠. 그러나 희망은 다른 개념들 중에서도 특히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다가옵니다. 하나님을 믿어야만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합니다. 쉽사리 마음에 와닿지 않습니다. 제가 읽은 책 중에서는 빅터 프랭클의《죽음의 수용소에서》가 가장 희망을 와닿게 설명하는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희망을 가질 수 있게 해주진 못했네요.


  희망을 가지기 어려운 이유가 뭘까요?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저는 스트레스 또는 일상 속의 자잘한 걱정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먼 미래를 바라보기엔 지금 당장의 스트레스를 처리하기 급급합니다. 인간은 멀티태스킹이 불가능한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눈앞의 걱정을 보면서 동시에 미래를 보는 건 어렵습니다. 연구결과로도 스트레스가 미래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스트레스에 대한 회복력도 지속적으로 떨어뜨린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면 지금의 저처럼 미래가 불확실하게만 느껴지고 불안을 느끼게 된다고 하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는 데 어떤 게 도움이 될까요? 우선 자신감이 있어야 되겠죠. 내가 충분히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을 수 있을 때, 희망도 자연스레 자라날 겁니다.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이를 자기 효능감이라고 부릅니다. 전체적인 자아상에 대한 자신감을 자존감이라고 본다면, 자기 효능감은 '수행능력'이라는 부분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자기 효능감과 자존감은 거의 형제나 다름없다고도 볼 수 있지만, 제 생각에는 자존감보다는 자기 효능감이 키우는 데 좀 더 시간과 노력이 덜 필요합니다. 아무래도 자존감보다는 좁은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일 테죠.


  자기 효능감은 쉽게 말해 '작은 성공을 쌓음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까지 제가 이루었던 성취가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려 합니다. 초등학생 때 한 번, 중학생 때 한 번, 시를 써서 상을 받은 적이 있었네요.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쓴 건 아니지만, 초등학생 때 일기도 부지런히 적었네요. 고등학생 때는 아침 일찍 등교하는 아이였습니다. 지금은 오전이 없는 삶을 살긴 하지만요. 군대에서는 기관총 사수였습니다. 제가 노력해서 해낸 건 아니지만, 저에겐 기관총을 들고 다닌 게 나름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군생활은 잘하지 못했지만요. 이외에도 자잘한 뿌듯함이 떠오릅니다. 어머니의 심부름을 해낸 일, 아버지에게 말싸움으로 이겼던 날, 형은 알아채지 못하게 골탕 먹인 순간 등 추억이 떠오르네요. 정말 작은 성공들 뿐이어서 자기 효능감이 마구 샘솟지는 않지만, 글을 쓰기 전보다 기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습니다. 내일까지만 유효하던 희망이 2~3일은 더 길어진 듯한 기분도 드네요.


  희망에는 인간관계도 중요합니다. 대인관계의 질이 낮은 사람은 희망을 가지기 어렵습니다. 내가 조금 부족해도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다면 한 번 더 힘을 내볼 수 있습니다. 오랜만에 자주 연락하지 않던 사람들에게 카톡을 하나씩 남겨 보려 합니다. 지금은 시간이 늦었으니 내일 해야겠네요. 내일의 나야, 잊지 말렴. 저는 종종 얼굴은 보지 못해도 무심하게 카톡을 남기곤 합니다. 아무 목적 없이, 그냥 생각나서 연락해본다면서요. 정말 말 그대로 갑자기 생각이 나서 그럽니다. 나에게 어떤 인간관계가 있는지 떠올리려다 보니, 그들이 생각이 나서요. 반갑게 잘 지내냐고 물어봐주는 그들이 저는 늘 고맙습니다. 이렇게 이상한 성격의 소유자와 손절하지 않고 인사해줘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는 재능은 타고난 게 없어도, 인복은 타고났다고 믿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생일을 챙겨주는 걸 저는 아주 좋아합니다. 친사회적 행동이 미래에 대한 희망과 긍정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합니다. 제가 석사학위논문으로 썼던 주제도 친사회적 행동이었는데, 우리의 종합적인 삶의 질과 아주 강하게 긍정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하루 날을 잡고서 주변 사람들에게 '그냥 생각나서'라는 말과 함께 연락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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