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재애 Jul 31. 2021

사랑하는 새벽에게

새벽감성으로 적어보는 글

  오늘도 어김없이 새벽이 찾아왔다. 가족들도, 친구들도 모두 잠이 든 새벽이다. 뭐, 깨어있는 사람도 몇 있겠지만. 확실한 건 내 스마트폰은 이미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므로 이 새벽, 이 순간은 분명 나 홀로 보내는 중이다. 오직 새벽만이 진정으로 혼자가 될 수 있는 시간이다. 아무도 내게 말을 걸지 않는다. 바깥에서도 풀벌레소리만 들려온다. 고요하다. 하루 중 그 어느 때보다도 고요하다. 마치 세상이 침묵하고 있는듯이.


  나는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새벽이 무서웠다. 외로움을 잊을 수 없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시간을 즐긴다. 글을 쓰는 지금은 타자 소리가 머물지만, 글을 다 쓰고 나면 그마저도 사라진다. 하루가 침묵하는 것에 맞춰, 나도 침묵한다. 나에게 있어 침묵도 괴로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꽤 침묵과 친해졌다.


  외로움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친구관계에 매우 헌신해 본 경험이 한 번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도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중요한 일임에는 변함없지만, '가장'이라는 수식어는 빠졌다. 지금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를 보살피는 일이다. 어쩌면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철저한 지기비판이 나를 붙잡아 준다. 덕분에 건강한 나르시시즘을 느낄 수 있을 듯하다. 다시 외로움과 친구관계로 돌아와서, 나는 외롭지 않기 위해 친구들에게 잘 맞춰주었다. 친구들의 의견도 들어봐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선 나름 맞춰주려 애썼다. 비록 적절하지는 못했을지라도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었다.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려 노력했고, 나는 민폐끼치지 않으려 했다. 타고난 길치인 나로선 나를 찾으러 와주는 민폐를 끼칠 수밖에 없었던 적도 있지만, 그외에는 딱히 불편함을 주지 않았다(그러길 바란다). 내게 침묵이 괴로운 이유도 이와 관련된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있을 때는 유쾌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생각이 있었다. 침묵이 생긴다는 건 지루하다는 의미로 느껴졌다. 나와 함께하는 시간이 지루하다는 건, 나를 싫어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그래서 나는 침묵이 두려웠다. 친구들과 단절되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한 침묵을 가져다주는 새벽은 분명 나를 미워한다고 생각했다. 친구들을 만나지 못하게 방해하고, 내가 침묵에 빠져 허우적대게 만들었으니까. 그래서 방안을 환하게 하고 잠이 들기도 했다. 지금이 새벽이라는 걸 잊고 싶었기 때문이다. 낮잠을 자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이런 내가 새벽과 화해할 수 있었던 건 침묵에 대한 오해를 풀었기 때문이다. 침묵은 나를 미워하는 현상이 아니었다. 침묵이 실제로 지루하다는 신호일 때는 분명 많았다. 하지만 지루함이 나를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심리학을 배움으로써, 나 자신이 침묵할 때의 의미를 돌이켜보면서 침묵이라는 게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심지어 침묵에는 친절과 배려도 담겨 있었다. 섣불리 영혼 없는 위로를 건네지 않고, 충분히 심사숙고해주는 친절이, 내가 나를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기다려주는 배려가 있었다. 나 또한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로하고 싶을 땐 어김없이 침묵하게 된다는 걸 깨달았다.


  침묵에는 관심도 담겨 있었다. 침묵함으로써 청각에 쓰는 에너지를 다른 감각에 투여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는 오감이 모두 사용된다. 얕은 관계일수록 시각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그 다음이 청각이다. 관계가 깊어질수록 스킨십을 하게 되며 촉각도 적극적으로 사용된다. 물리적 거리가 가까워지는 만큼 후각도 작동한다. 미각은 사용되지 않는다고? 뭐, 노코멘트하겠다. 침묵함으로써 상대방을 더 자세히, 뚜렷하게 바라볼 수 있다. 미세한 표정, 손의 움직임, 자세와 제스처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침묵은 숨을 고르게 해주는 시간이었다. 따뜻한 순간이었다.


  내게 침묵을 가져다주는 새벽은 사실 나와 친해지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껏 밀쳐내기만 했던 나는 이제 새벽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이젠 내가 먼저 새벽에게 다가간다. 좀 더 새벽과 친해지고 싶다. 좀 더 많은 침묵을 서로서로 나누고 싶다. 좀 더 바라보고, 오감으로 느끼고 싶다. 새벽에게도 나를 느낄 기회를 주고 싶다. 우리는 이제 제법 친해졌다. 앞으로 더욱 친해질 예정이다.


  사랑하는 새벽에게, 그동안 미안했다는 말과 함께 먼저 손을 내밀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이제 새벽 없인 자유로움을 온전히 즐길 수 없다. 새벽이 건네는 침묵에 중독되었다. 그러니 앞으로도 나를 잘 보살펴주길 바란다. 나도 새벽, 그대의 절친이 되어 줄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시시한 느낌이 좋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