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를 쓰는 이유
내가 본격적으로 시 쓰기에 매진하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 훈련을 받으면 서다. 입대 전에도 틈틈이 쓰긴 했지만 정말 몰두해서, 규칙적으로 쓴 건 입대 후다. 괴로운 현실을 잊기 위해서 군대에서는 하지 않을 만한 일을 해야 했다. 적어도 내가 속한 부대 내에선 시를 쓰는 사람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나는 시를 쓸 때만큼은 군인이 아닌 것만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군 복무 기간이 638일이었던가? 제대할 때 내가 쓴 시는 400개를 약간 넘었다. 정말 성실히 썼다. 단 한 줄이라도 썼다. 야외훈련을 나가서는 수첩에 적어놓았다.
제대 후에는 성실히 시를 쓰지는 않았다. 한 달에 서너 개 쓸 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에게 시를 쓰는 취미가 있다는 게 매우 특별하게 느껴져서 완전히 놓지는 않았다. 이것마저 놓으면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 같았다. 열심히까진 아닐지라도 꾸준히 썼다. 문학을 전공하거나 조예가 깊은 사람이 보기엔 "이게 무슨 시야?"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래도 상관없다. 시는 모든 인간에게 허용된 자유로운 글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쓴 시가 재미없고 감동도 없을지라도, 나는 계속 쓴다.
2019년 7월 20일. 2년 전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내가 쓴 시를 하나씩 올려보고 있다. 그전까지는 내가 쓴 시를 쉽사리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첫째로 부끄러워 서였고, 둘째로 나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평가를 듣는 게 두려웠다. 그러다 여자 친구의 권유로 인스타그램을 만들어보았다. 내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응원해준 마음에 보답해보려고 용기를 냈다. 물론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시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이 잠시 들려 보고 간다. 하지만 마음은 편하다. 누군가 내 시를 봐준다는 게 기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시를 쓰다 보면 같은 말이라도 어떻게 달리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다. 이러나저러나 내 시를 보는 사람이 느끼기엔 차이가 없을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자기만족이다. 좋은 시인이라면 독자의 입장에서 공감할 수 있는 표현을 찾겠지만, 나는 그리 친절하지 못한 사람이다. 오직 내 마음에 드는 표현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그래서인지 내 시는 이기적인 느낌을 가득 담고 있다. 오래전 쓴 시를 보면 나조차도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다시금 내가 참 황당하게 시를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나만의 표현을 찾는 게 즐겁다. 별 것 아닌 사소한 차이에서 오는 감동이 기쁘다.
시적인 표현을 고민하는 습관이 들면 일상생활에서도 조금씩 묻어 나오기 시작한다. 친구들과 대화할 때 "노을이 이쁘네"가 아닌 "하루의 마지막 순간은 아름답네"라는 말이 나온다. 한밤중에 시내에서 노래를 부르고 덩실대는 청년들을 보면서 "밤중에 시끄럽게 뭐하는 짓이냐"가 아닌 "풍류를 아는 한민족답네"라는 말이 나온다. 때론 이상한 비유가 나올 때도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또 좋다. 나에게 부족한 유머러스함을 채워주니까. 내가 시를 써오면서 얻은 가장 큰 이득은 단연코 말의 품새가 정갈해지고 유연해졌다는 점이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더라도 나 스스로 느끼는 이 별 것 아닌 차이가 나에겐 아주 큰 기쁨이다.
시를 쓰면서 얻은 또 다른 좋은 점은 세상을 좀 더 넓고, 자세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시를 쓰기 위해 먼저 주제를 찾는다. 개미의 삶이라거나, 버스에서 바라보는 풍경, 내 마음 상태 등 특정 주제를 먼저 정하고 나서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한다. 제목을 먼저 정한 후 내용을 채운다고도 볼 수 있다. 주제가 정해지면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 대해 표현할지 정한다. 개미의 삶이라는 주제에 대해서 개미의 노력, 개미집단의 시스템, 개미의 일생, 개미굴의 특징, 개미의 전투 방식 등 여러 가지 구체적인 내용을 뽑아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개미를 자세히 보게 된다. 개미에 대해 검색해보고, 조사해보게 된다. 그러면서 쓸데없는 지식들이 생기기도 하고, 시를 쓰지 않았다면 해볼 수 없었을 색다른 관찰 경험을 얻는다. 사실 개미에 대해 자세히 알거나 모르거나 내 삶은 딱히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별 것 아닌 이 사소한 차이가 내게 일상적인 행복을 건네준다.
어느덧 열심히 시를 쓴 지 9년쯤 되었다. 그동안 자가출판으로 시집을 만들어보기도 했지만, 페이지 수를 넣지 않는 어이없는 실수도 섞여 별로 자랑할 만한 건 되지 못한다. 그래도 내 시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다. 겉치레로 하는 말일지라도 칭찬을 해주는 사람이 있어 기쁘다. 비록 좋은 시는 아닐지라도 '시를 쓰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나에게 아주 중요한 보물이 되었다. 요즘은 일주일에 한 편을 쓸까 말까 한 정도로 여유롭게 쓰고 있다. 그래도 올해가 끝날 때쯤이면 인스타그램에 약 200편의 시가 모일 거라고 예상한다. 천천히 시를 쓰며 또 한 번 자가출판을 해보려 한다. 그리고 내 시를 받아들여주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라면 받침으로 쓴다고 할지라도 화는 나지 않는다. 그저 내 시를 곁에 두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그들은 나를 잊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나의 꿈은 '누군가에게 기억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만화 [원피스]에 등장하는 닥터 히루루크는 사람이 죽는 순간은 "사람들에게 잊혔을 때"라고 말했다. 나는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수명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가능하다면 그 이상으로 살아남고 싶다. 욕심을 부린다면 영생하고 싶다. 그래서 나는 기억으로 남고 싶다. 그래서 나는 시를 쓴다. 내 흔적을 남겨 놓기 위해,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기억하기 쉽도록 단서를 남기려고 한다. 최대한 나를 자세히 기억할 수 있도록 많은 시를 남겨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