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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Jul 18. 2021

내가 벤치를 좋아하는 이유

우리는 언제 멈추어야 할까

벤치에 누워 낮잠 자기


  한창 산책을 많이 다니던 때에는 벤치가 있는 곳을 꼭 산책 코스에 포함시켰다. 나는 벤치에 눕는 걸 좋아한다. 벤치에 누워 세상을 평소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며 잠이 드는 걸 좋아한다. 요즘은 산책을 마음껏 즐기진 못한다. 우선 체력이 많이 약해졌고, 그러다 보니 정말 각 잡고 산책 시간을 정해둬야 겨우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래서 한동안 벤치에서의 달콤한 휴식을 잊고 지냈다.


  우리가 옆으로 누워 세상을 바라보는 순간은 대부분 침대 위에 있을 때 찾아온다. 그래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도 딱 침대가 있는 그 공간뿐이다. 그리고 이 풍경은 살면서 너무나도 많이 보게 된다. 금방 새롭지 않게 된다. 하지만 밖을 거닐다 벤치를 발견하고서 누워 보면, 살면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이 펼쳐질 가능성이 높다. 늘 지나다니던 길이었을지라도 전혀 다른 눈높이로, 전혀 다른 방향 감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위아래로 지나다닌다. 나무는 오른쪽 또는 왼쪽에서 자라난다. 똑바로 하늘을 보고 누우면 온통 하늘만 보인다. 집중하고 보다 보면 마치 내가 하늘에 떠있는 것만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신비로운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걷다가도 벤치를 보면 멈춰 선다. 그리고 한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홀로 멈춰있다 보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눈에 띈다. 걸음걸이가 어떤지, 얼마나 빨리 걷는지, 누구와 함께 걷는지가 보인다. 어떤 사람들은 손바닥 위에 있는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걷는다. 어떤 사람들은 반려동물과 함께 사뿐사뿐 뛴다. 어떤 사람들은 가족들과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걷는다. 어떤 사람들은 걷지 않고 전동 킥보드를 타고 지나간다.




멈춤이 필요한 순간


  아무리 잘 달리는 자동차여도, 튼튼하고 건강한 사람이어도, 반드시 멈추게 되는 시점이 있다. 휴식이 필요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뭔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껴서이기도 하다. 멈추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멈춘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다. 지금 나는 꽤 오래 멈춰 있다. 앞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지 망설여진다. 내게는 벤치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멈추는 것도 좋지 않다. 순풍이 불 때 앞으로 나아가지 않은 배는, 다음 순풍이 불어올 때까지 움직이지 못할 수도 있다. 멈춰 서면 안 되는 곳에 주정차를 하는 자동차가 있다면 시끄러운 경적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올 것이다. 고민에 대한 답이 선뜻 나오지 않을 땐 일단 걸어보는 게 필요하다. 지금 나는 그 기로에 서있다. 벤치에 누워 잠이 들지, 아니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우선 걸어볼 건지.


  나는 행동보다 생각이 앞서는 사람이다. 그래서 걷기 위해선 어디로 걸을지, 어떤 속도로 걸을지 생각하는 게 먼저다. 늘 이렇다 보니 늘 굼뜨고 결정이 늦다. 행동이 미뤄진다. 그래도 나름 이 방법으로 여태껏 무사히 지냈다. 지금도 나는 어디로 걸어갈지 고민 중이다. 열린 마음으로 살펴보고 있지만, 사실은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앞에 두고 두려워하는 중이다. 나는 잘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렇게 멈춰서 고민하는 지금 이 순간이 있기에 나는 후회를 덜 할 거라고 확신한다. 만약 무작정 달려들었다면 분명 크게 후회할 거라고 믿는다. 나에겐 지금 이 순간이 꼭 필요하다. 멈춤이 필요한 순간에 서 있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에겐, 각자 나름의 멈춤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누구나 반드시 멈춰야 하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 자신은 언제 멈추어야 하는가? 이 질문을 스스로 던져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왕이면 어디서 멈추고 싶은지도 생각해보면 좋겠다. 그리고 그 장소는 자신이 좋아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 가족의 품이어도 좋고, 영혼을 위로해주었던 여행지여도 좋다. 멈춤이 필요하다고 느껴진다면 한 번쯤 좋아하는 장소에서 낮잠을 자보자. 잠에서 깨어 눈을 떴을 땐, 전혀 다른 세상이 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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