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서 나를 찾는 법

《공간의 심리학》독서감상문

by 재애

지금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내 방 안에 있다. 사람은 자신만의 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뉜다. 나는 운이 좋게도 내 방을 가지고 있다. 문을 닫으면 자취하는 것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고, 문을 열면 언제든지 가족의 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도, 가장 오랜 시간 지내는 장소도 내 방 안이다. 방은 내게 있어 아지트다. 그 누구도 함부로 들이지 않는다. 설령 가족일지라도 철저히 내 눈치를 살피며 출입하게끔 어릴 때부터 인식시켜 두었다. 내 방 안에는 나의 비밀이, 과거가, 나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여러분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집일 수도 있고, 잠시 집을 벗어나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여러분들이 있는 그곳은 여러분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그리고 여러분들은 어느 장소를 가장 좋아하는가? 우리가 머무는 장소는 그저 운 또는 운명에 맡겨져 정해진 것일 수 있다.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나의 경우에는 자신의 의지로 이곳에 살고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의 집일지라도 경제적인 여건상 살 수 있는 곳 중 정했거나, 어쩌면 선택의 여지없이 한 곳에 머무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선호하는 장소는 오직 나의 마음에 따라 정해진다. 여행지일 수도 있고, 나의 집일 수도 있고, 친구의 집일 수도 있다. 특정 공간이 아닌 넓은 지역일 수도 있고, 바다나 계곡 같은 대략적인 풍경에 해당할 수도 있다. 《공간의 심리학》에서는 "살아 있는 생명체는 각자 살고 싶어 하는 곳, 가장 선호하는 장소가 있다"라고 설명한다. 여러분들은 어디에서 살고 싶은가?




공간과 행동이 의미하는 '나'를 발견하기


진화심리학과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공간과 인간 생활 간의 연관성을 설명한《공간의 심리학》의 저자, 발터 슈미트는 "어떤 풍경에서 특히 더 매력을 느끼는지는 사람마다 다르다"라고 한다. 바꿔 말하면, 어떤 풍경을 매력적으로 보는지가 그 사람에 대해 설명해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눈이 피로하지 않은 풍경을 좋아한다. 아무것도 없는, 오직 바다와 하늘만이 눈에 가득 담기는 풍경, 또는 고개를 들어 하늘만 눈에 담는 것도 좋다. 전망대에 올라 도시를 바라보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높은 곳을 무서워하는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애초에 높이 올라가는 게 힘들다. 올라가더라도 내겐 별로 매력적인 풍경이 아니다. 사람이 별로 없는 한적한 벤치도 좋다. 공원이라면 나무들과 잘 꾸며진 공원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도서관 앞이나 산책로 벤치도 눈을 감고 바람을 마음 편히 쐴 수 있어서 좋다. 나는 고요하고 단순한 풍경이 좋다. 이러한 나의 선호는 내가 소란스러운 사람이라는 걸 나타내 주지 않을까. 나는 외적으로 산만한 편은 아니지만, 내적으로 늘 분주하고 난장판인 사람이다. 쉬고 싶은 마음이 계속 나를 차분한 풍경으로 이끌려고 하는 듯하다.

여러분들은 어떤 풍경을 좋아하는가? 그 풍경에 대한 선호가 자신의 어떤 특징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 같은지 생각해보자.

"아무 데나 가서 재밌고 놀고, 평소에는 그냥 신경 쓰지 말고 살면 되는 걸, 피곤하게 뭘 그런 것까지 생각하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한 번만 생각해보자. "자신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어떤 장소에서 마음이 편한지, 어떻게 하면 자신의 존재를 좀 더 안락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아는 것처럼 바람직한 것은 없다. 그런 걸 깨달아야 인생이라고 불리는 소용돌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이 책의 저자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자리를 선택하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통은 개인적 관점에서 자신에게 가장 큰 의미를 차지하는 것, 그리고 개인적 두려움이나 부끄러움 등의 감정, 이 두 가지 사이의 타협점에서 자리를 고르게 된다"라고 한다. 또한,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가장 빠르게 드러낼 수 있는 장소로 향하는 경향이 있고, 그곳에서 이익을 가져다준 행동은 다시 그의 동기를 강화시키는 역할을 한다"고도 말한다. 어떤 장소에 갔을 때, 우리는 낯선 곳에서 '내 자리'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서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앉는 걸 좋아한다. 남들보다 일찍 도착했다면 여유가 있지만, 사람들이 밀고 들어오는 상황이라면 망설일 틈은 없다. 우리는 재빨리 공간을 스캔하며 자리를 탐색한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강의실이나 교실에 들어서면서, 식당에서 등 우리는 자리를 찾아야 하는 순간과 자주 맞닥뜨린다. 여러분은 어떤 기준으로 자리를 정하는가?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준은 '시야를 확보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들어와 있는 공간을 가능한 많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구석 자리를 선호한다. 강의실을 예로 들면, '창가 쪽 제일 뒷자리'다. 내 뒤로는 아주 조금의 공간만 있고, 나머지 부분은 모두 내 시야에 닿는다. 창문 너머로 바깥까지 살필 수 있다. 최고의 자리다. 나는 왜 이 자리가 좋은 걸까? 일단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만약 엎드리기까지 하면 누군가 앉아있다는 사실도 헷갈릴 만큼 숨는 데 용이하다. 그리고 최대한 내 시야 안에 공간을 두려는 것도 눈에 띄지 않으려는 이유와 같다. 내가 겁쟁이이기 때문이다. 눈으로 보면서 계속 위협이 될 만한 무언가가 있는지 살피는 것이다. 그래야만 안심할 수 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진 않는지, 내 주변에 위험한 건 없는지 확실히 알아야 마음을 놓을 수 있다. 창가 맨 뒷자리는 내게 '벙커 속'과도 같다. '안전'은 내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삶의 요소다. 안전이 가져다주는 안심은 나에게 값진 이익임에 틀림없다.




정신의학자 만프레트 슈텔치히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경계가 없다면 너와 나의 만남도 있을 수 없을뿐더러 사랑도, 싸움도, 거래도 존재할 수 없다.” 어떤 공간에 들어와 있다는 건 나와 세상 사이에 경계를 긋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꼭 물리적인 공간이 아니더라도 한 집단에 속한다거나, 인간관계에서 서로 간의 지켜야 할 선을 정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공간은 우리가 좀 더 수월하게 생존할 수 있도록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물리적인 경계든, 심리적인 경계든, 경계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밖에서 투쟁하다가 지치면 다시 돌아와 쉴 수 있게 해 준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기 위해, 세상을 경험하기 위해, 험난한 시련을 이겨내고 성공하기 위해, 우리는 경계가 필요하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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