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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Aug 27. 2021

이젠 놓아줄 것. 그리고 여전히 붙잡고 갈 것.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간직할 것인가.

나는 저장강박증이다


  저에겐 '저장강박증'이 있습니다. 무엇 하나 쉽게 버리지 못하죠. 먹지도 않는 영양제, 전혀 쓰지 않는 필기구, 나뒹구는 빈 상자들과 포장지, 도대체 왜 있는지도 모를 물건들이 제 방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1년 이 상 안 쓴 건 다 버려!"라고 저희 이모께서 말씀하셨었는데, 제 방엔 5년 이상 안 쓴 물건도 꽤 많습니다. '언젠가 필요할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제게 딱 달라붙어 있어 오늘도 저는 음료수를 마시고 남은 빈 캔과 페트병을 어디에 쓸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버린다'는 선택지보다 '어떻게 쓸까?'가 먼저 떠오르네요.


  저는 곧 이사를 앞두고 있습니다. 버릴 건 버리고, 새롭게 거듭날 절호의 찬스가 왔습니다. 저는 이번 이사를 계기로 지금까지의 맥시멀리스트로서의 삶을 바꿔보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저의 저장강박증은 '자기 가치의 결여'에서 비롯된 것이고, 저는 이제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고자 노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가치와 저장 강박


  자기 자신을 가치 있는 존재로 여기는 '자기 가치'와 물건을 못 버리는 게 어떤 관련이 있냐고 궁금하실 테죠? 궁금하지 않으셔도 말은 할 테지만요. 저는 어릴 적부터 제 물건을 별로 가지질 못했습니다. 형이 쓰던 걸 물려받기도 하고, 학교에선 다른 아이들에게 빼앗기기 일쑤였죠. 그래서인지 세상 물정도 모르는 아이 주제에 물욕이 엄청 강해졌습니다. 소중한 물건은 작은 상자에 넣어 저만 아는 비밀 장소에 땅을 파고 묻어두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른 아이들의 물건을 훔치기도 했습니다. 어떡해서든 '내 것'을 갖고, 지키려 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 이면에는 '나는 가치 없는 존재'라는 믿음이 자리 잡고 있었어요.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은 제 물건을 가져가는 데 미안함을 느끼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를 존중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내 것'을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능력을 키우려고 노력했죠. 아쉽게도 원하는 능력은 쉽사리 키우지 못했습니다. '내 것'도 자질구레한 물건들을 제외하면 자랑할 만한 건 없습니다. 그래도 이젠 쉽게 무시당하진 않습니다. 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알게 되었고, 무언가를 가지지 않더라도 '나 자체'로 가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러고 나니 없던 능력도 생기더군요. 인간관계에서 주체성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과 적절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겨났습니다. 분별력도 생기더군요. 나에게 필요한 물건과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 구분되었습니다. 자연스레 물욕도 많이 줄어들더군요.


  스스로 가치를 느낄 수 있게 됨으로써 제 마음은 많이 안정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의 저장 강박은 여전히 남아 있었죠. 잡동사니를 버리려고 살펴보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솟아올랐습니다. 하지만 이걸 버린다고 해서 제게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라는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가짜 감정에 속고 있었던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젠 놓아주려 합니다. 입지도 못하는 옷들, 필요 없는 물건들, 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을 쓸데없는 물건들로 채우려는 미련한 행동의 산물들을 깨끗하게 정리하려 합니다. 좀 더 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요.




나를 위해 놓아야 할 것


  정리하는 김에 버려야 할 몇 가지를 더 생각해봅시다. 우선 '게으름'을 놓아주고 싶습니다. 저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이기도 합니다. 100점을 받을 자신이 없는 과목은 아예 공부하지 않는 타입이죠. 그래서 수학과 영어는 초등학생 때 일찍 포기했습니다. 해보지 않은 일은 제가 어느 정도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안 해 본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저만의 규칙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가 곧 게으름으로 이어졌죠. 새로운 일도 안 하고, 자신 없는 일도 안 합니다. 그런데 해본 일이 손에 꼽을 정도인 동시에 그중에서도 자신 있는 일은 더 적습니다. 따라서 할 일이 없는 셈이죠. 이젠 게으름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그렇다고 갑작스레 부지런해질 수는 없겠죠. 다만 새로운 일에 가끔씩이라도 도전해보려 합니다. 완벽하진 않더라도 일단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려 합니다.


  다음으로는 '열등감'을 놓아주고 싶습니다. 정확하게는 '나를 헤치는 열등감'을 놓아주려 합니다. 열등감은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 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열등감을 통해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동력을 얻기도 하죠. 심리학자 아들러는 열등감의 이러한 긍정적인 면에 집중했던 사람입니다. 그 자신도 어린 시절부터 열등감에 괴로워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는 열등감을 발판 삼아 훌륭한 학자가 되었고,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기도 하면서요. 하지만 저의 열등감은 자동차를 움직이는 연료가 아닌, 엔진에 잔뜩 낀 떼와 같습니다. 저를 고장 나게 하고, 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하게 만들죠. 그러니 '나를 헤치는 열등감'은 놓아주려 합니다. 그리고 빈자리를 '나를 키우는 열등감'으로 채워보려 합니다.




나를 위해 붙잡아야 할 것


  반대로 계속 붙잡고 가야 하는 건 무엇이 있을까요? 먼저 '감정'을 붙잡고 싶습니다. 저는 감정을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늘 감정을 억압하고 무시하려고만 했죠. 왜냐하면 제겐 괴로운 감정이 늘 마음속을 거닐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괴로운 감정에만 몰두하며 고통받기를 지속하는 건 좋지 않습니다. 그러나 외면하는 건 더욱 좋지 않습니다. 무시받은 감정은 언젠가 우리에게 복수합니다. 저는 이제 제 감정을 안아주려 합니다. 그래서 '감정일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다음 달 중으로 감정일기에 대한 글도 적어보면 좋겠네요.


  또 한 가지 붙잡고 싶은 건 '낭만'입니다. 저는 낭만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에 비해, 일상의 낭만을 많이 지키진 못하고 있습니다. 좀 더 많은 낭만을 만나며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좀 더 감동적인 노래와 그림, 하늘과 달과 별을 만나고 싶습니다. 태양은 아쉽게도 눈이 부셔 감상하기 어렵네요. 다양한 사람들과 낭만을 공유하고, 좀 더 진지하게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아직 미숙한 어린아이인지라 사랑에 깊이 머물지 못하는 때가 많습니다. 서서히 사랑에 빠져들 수 있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위해 어떤 것을 놓아주고, 어떤 것을 붙잡고 싶나요? 여러분에게 소중하고 가치 있는 건 무엇일까요? 개인적인 바람으로, 여러분 자신에게서 각각 하나씩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결국 삶을 살아내는 건 우리 자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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