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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Oct 05. 2021

꿈의 역할

자우림, [꿈]

오늘 꾼 꿈과 매일 꾸는 꿈


  저는 평소에 꿈을 자주 꾸는 편은 아닙니다. 정확하게는 꿈을 꿔도 기억하는 날이 별로 없다고 할 수 있겠네요. 실제로는 모든 인간이 매일 꿈을 꾼다고 알려져 있죠. 심리학 안에서도 무의식을 강조하는 관점에서는 꿈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꿈은 무의식을 반영한다고 보고, 반영된 무의식을 알기 위해 꿈을 해석하려는 접근을 하기도 해요. 뇌과학적으로는 하루 동안의 기억을 자는 동안 정리하는 과정에서 꿈을 꾼다고도 합니다. 악몽이 아닌 이상 왠지 꿈은 기억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저는 눈을 떴을 때 꿈을 꿨다는 걸 알아차리면 황급히 핸드폰을 열어 메모하곤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꿈을 적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호랑이를 만났고, 호랑이의 털은 굉장히 밝은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죠. 덩치는 아주 어릴 때 동물원에서 봤던 녀석보다 두 배 이상 컸습니다. 어떤 좁은 골목에 한 남자가 호랑이와 마주 보고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죠. 저는 근처에 떨어진 돌을 주워 호랑이에게 던졌고, 호랑이가 저에게 눈길을 돌린 사이에 그 남자는 무사히 도망칠 수 있었어요. 대신 제가 호랑이에게 쫓기다가 호랑이가 달려드는 순간 잠에서 깨어났죠. 이 꿈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저의 어떤 무의식을 반영하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저 참 신비로운 동시에 무서웠다는 양면적인 감정만 알 뿐이죠.


  다소 잡담이 되어버린 느낌이지만, 꿈이란 게 서로 다르거나 완전 대척점에 있는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는 말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바로 이 말부터 시작하면 될 걸 참 질질 끌며 딴소리를 한 것 같기도 하네요. 어쨌든, 우리는 가끔 한 번씩 꿈을 꾸기도 하지만 매일 꾸는 꿈도 있습니다. 잠들었을 때 꾸는 꿈이 아닌, 깨어있을 때 꾸는 꿈이죠. 이루고 싶은 것,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꿈입니다. 이러한 꿈도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 줍니다. 설렘과 두려움, 기대와 부담, 기쁨과 좌절을 모두 느끼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꿈을 가지고 있다는 건 삶의 목표가 있다는 의미라고도 생각해요. 이루고 싶은 게 있다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그러나 이루어지기 전까지의 과정은 많이 힘듭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이 있죠. 하지만 꿈이 있기에 포기하지 못하고 묶여있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전보다 훨씬 많은 선택지와 자유를 얻었음에도 우리는 '꿈을 선택할지, 포기할지'의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니, 더 많은 자유를 얻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꿈의 역할


  저의 뮤즈인 자우림의 [꿈]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이런 고민을 담담하게, 점점 격정적으로, 슬프게 노래합니다.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 둘 수 없는 굴레 
너의 꿈은 때로 비길 데 없는 위안 
외로워도 다시 걷게 해 주는 
때로 다 버리고 다 털어버리고 
다 지우고 다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여러분은 어떤 꿈을 어깨에 짊어지고 있나요? 저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 즉 교육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아주 오래 업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고, 그렇다고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도 아니었던 탓에 다른 사람을 가르칠 만한 능력이 없습니다. 이젠 더 나아지는 것보다 그나마 아는 것이라도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게 최선인 상태가 되었죠. 그런데도 여전히 꿈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가는 데도 놓지 못합니다. 이 꿈을 가지기 전으로 돌아가서 다 잊고 새로운 꿈을 가지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마 다시 돌아가더라도 저는 같은 꿈을 가질 테고, 설령 다른 꿈을 짊어진들 덜 힘들 거란 보장도 없겠죠. 그래도 꿈이 있기에 오늘 제가 무엇을 할지, 이번 주, 이번 달에 무엇을 하며 보낼지를 정할 수 있습니다. 프리랜서로 아이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할 때, 다른 사람들과 스터디를 할 때, 후배들의 질문과 도움 요청에 답해줄 때 저는 큰 기쁨을 느낍니다. 왠지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 같은 위안을 얻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과 어차피 인생은 혼자라는 외로움을 덜어주는 건 분명 제가 가진 이 꿈입니다.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서운 거울이라 
초라한 널 건조하게 비추지 
너의 꿈은 때로 마지막 기대어 울 곳 
가진 것 없는 너를 안아주는 
간절히 원하는 건 이뤄진다고 
이룬 이들은 웃으며 말하지 
마치 너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꿈이 선명하면 선명할수록 지금 현재의 내 모습과 뚜렷하게 비교되어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꿈속의 나는 저렇게나 빛나는 데, 지금 내 모습은 전혀 닮지 않았다며 좌절하곤 하죠. 그래서 꿈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꿈을 잊고 시간을 죽이며 노는 데 집중하면 좌절감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어요. 마치 고3 때는 공부 빼고 모든 일이 재밌듯이, 꿈을 잊을 수 있는 일에만 몰두하던 시기가 몇 번이고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도 아니라고 부정할 수만은 없겠네요. 하지만 오래 가진 못합니다. 아무리 신나게 놀아도, 흐려진 정신으로 살아도, 잠에 드는 순간에는 어김없이 꿈이 떠올라 버립니다. 결국 다 잃어버려도 마지막으로 남는 건 꿈뿐이죠. 모든 걸 다 뺏겨도 내면에 있는 꿈만은 그 누구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꿈을 포기하게 되는 건 다른 사람이나 세상이 방해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마지막으로 그 꿈을 꺾는 손은 바로 자신의 손이니까요.


  모든 사람들이 꿈을 이루고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물론 나쁜 꿈은 없다는 전제에서 말입니다. 갑자기 지구가 반으로 쪼개지는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기엔 저로서는 무리가 있네요. 많은 사람들이 꿈을 포기하고 살아갑니다. 자우림의 노래 가사처럼, 꿈을 이룬 사람들은 백번이고 이백 번이고 도전하는 게 중요하고,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쉽게 말합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에게 "네가 간절하지 않아서 그래"라며 모욕을 주기도 합니다. 마치 남들의 노력은 노력도 아니라는 듯이 말이죠.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건지, 꿈을 이루어야만 가치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 단지 저는 꿈을 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살고 있습니다. 꿈을 이루지 못해도, 점점 더 멀어지기만 해도 꿈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삶에서 얻어지는 게 있습니다. 때론 전혀 만날 인연이 아니었을 사람도 만나고,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을 경험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꿈의 형태가 바뀌기도 합니다. 꿈이 나를 죽일 수도 있지만, 꿈이 없어도 말라죽는 건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1년 후의 저는 여전히 같은 꿈을 꾸고 있을까요? 오늘 밤에는 어떤 꿈을 꾸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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