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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Dec 07. 2021

노래하고 춤추는 이유.

자우림, [PÉON PÉON]

용기 있게 나아가는 법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세계의 지배자요
열리지 않는 문이나
가지 못 할 곳은 없소이다


  길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 숨어 있는 고양이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저런 곳엔 왜 앉아 있나 싶은 곳에서 몸을 둥글게 말아 일명 '식빵 굽기 자세'를 하고 있기도 하고, 주차되어 있는 자동차 사이를 요리조리 오고 가기도 하죠. 고양이에겐 갈 수 없는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 듯이 참 잘도 탐험하고 다닙니다. 사람을 피해 달아나거나 구석진 곳에 숨어 있는 걸 볼 때면 용기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행동에서도 그들의 용기가 느껴집니다. 동화적인 용기가 아닌, 현실을 살아내는 처절한 용기입니다.


  세상은 그들에겐 온갖 위험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길을 건너다 무엇에 부딪힐지 모르고 식량을 언제쯤 구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세상과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도 언제 어떤 사고에 휘말릴지 모릅니다. 물리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말이죠. 일을 하지 않으면 실제 먹거리든 마음의 양식이든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도 결국 살아남기 위해 매일 고된 산책을 해야 하는 고양이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고양이와 우리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종이 다르다는 것 말고도요. 고양이들은 자기만의 시간을 즐긴다는 겁니다. 따사로운 햇볕이 들 때면 높은 곳에 올라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깁니다. 장난감을 발견하면 최선을 다해 놉니다. 가고 싶은 곳이 있다면 망설이지 않고 떠납니다.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삶에 최선을 다하며 지금 이 순간을 즐깁니다. 우리가 잘하지 못하는 일 중 하나이죠. 길고양이들에겐 이 자유로움이 다소 제한될 수도 있습니다. 당장 살아남는 일이 아무래도 집고양이들보다는 급할 테니까요. 그래도 집고양이든 길고양이든 관계없이 그들은 어디든 나아갑니다. 용기를 가지고.


  머무는 곳을 떠나 탐험을 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불안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우리는 늘 안정을 찾으려고만 노력합니다. 가능한 모든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 하며, 예측이 어려운 일에는 섣불리 다가가지 않죠. 안에 무엇이 있을지 모르는 문을 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러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왔던 '안이 보이지 않는 상자에 손 넣기'가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잘 나타내 줍니다. 아무렇지 않게 손을 쑥 넣어서 내용물을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정말 보기 드뭅니다. 물론 저도 해낼 자신이 없고요. 그렇지만 우리는 모험을 해야 합니다. 낯선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낯섦은 곧 새로움이고, 새로움은 곧 활력입니다. 우리 삶에 생동감과 활기를 불어넣어 주는 건 다름 아닌 낯섦입니다. 가보지 않은 길로 걸어 보고, 가본 적 없는 동네나 지역으로 가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낯선 사람을 만나보고, 낯선 활동을 해봐야 합니다. 그런 삶은 분명 고양이처럼 귀엽고 멋집니다.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날카로운 이 내 발톱
나를 막을 자는 없소
마마도 파파도 형아도 그 누구도
날렵하게 춤추는
용맹한 나 빼옹님


  쉬는 걸 견디지 못하고 죄책감까지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충분히 열심히 살고 있는 데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잠시라도 쉬면 남들보다 뒤처질까 두려워하죠.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뒤처진다는 건 곧 패배를 의미한다고 여깁니다. 도태되지 않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애를 쓰는데, 자칫 잘못하면 정말 죽음에 가까워지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깁니다.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것인데 말이죠. 제대로 쉬어주지 않고서는 결국 중요한 건강을 잃을지도 모릅니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사회의 기준을 받아들이면서 우리 본연의 모습을 감추기 바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음악이 들려오면 맘껏 춤을 출 수 없습니다. 겨우 손가락만 까딱이거나, 발만 동동 구르는 정도일 겁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망설임 없이 춤을 추기도 합니다. 내면에서 오르는 흥을 감출 필요가 없다고 믿기 때문일 겁니다. 저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조금 부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아니, 많이 부끄럽겠죠. 그래도 우리는 맘껏 춤을 춰도 괜찮습니다. 춤을 출 수 있는 기회가 평생에 몇 번이나 될까요? 춤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아니라면 별로 많지 않을 겁니다. 우리는 좀 더 춤추고 노래하고 웃어야 합니다. 마치 아무도 우리를 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요.


  이 또한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 될 겁니다. 버스킹을 하거나 공연을 하는 게 아닌 이상 사람들 앞에서 춤추고 노래할 일이 많지 않으니까요. 기껏해야 노래방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는 정도일 테죠. 그렇다고 당장 뛰쳐나가서 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춤을 추라는 건 아닙니다. 샤워할 때, 집에서 혼자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친구들을 만났을 때 가볍게 리듬에 따라 몸을 들썩여보자는 겁니다. 그 정도 여유는 우리에게 허락해줘도 괜찮으니까요.


  짧은 생입니다. 죽음은 결국 우리에게 도착할 겁니다. 별 수 없습니다. 주어진 운명이니까요. 어쩌면 머지않았을 수도 있고, 조금은 길게 남았을지도 모릅니다. 남은 수명이 얼마이든 결국 끝이 예정된 운명입니다. 이미 정해진 일은 옆으로 밀어 두고, 지금 당장을 바라봅시다. 우리가 노래하고 춤을 추는 이유는 지금 우리가 '그럴 수 있으니까'라면 충분합니다. 살아있으니까요.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짧은 명의 소유자요
누구보다도 먼저
무지개다리를 건널 것이오
콩팥이라는 물건이
없는 몸을 타고났다오
타고난 운명이니
원망할 것도 없소이다
마마도 파파도 형아도 그 누구도
살아있는 동안엔 춤을 추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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