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과 외적 모습.
좋은 관계를 맺는 데 있어 '첫인상'이 아주 중요하다는 건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동시에 첫인상이 그 사람에 대한 모든 걸 알려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고 계실 겁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외적인 모습보다는 내면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외면을 무시하지 못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첫인상의 영향력은 아주 강하기 때문에, 첫인상이 별로인 사람과는 내면을 알아갈 정도로 충분히 길고 친밀하게 만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가진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고 그 에너지를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쓰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저도 첫인상을 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첫인상이 별로면 제 마음에 드는 행동을 해도 딱히 정이 가지 않곤 해요. 반대로 첫인상이 좋은 사람이었다면, 넘어선 안 되는 선을 넘지 않는 이상 미워하게 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계속 만나다 보면 첫인상이 내면의 모습과도 그리 다르지 않다는 걸 많이 느끼면서 저의 첫인상을 선호하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졌죠.
첫인상을 너무 신뢰하지 말고 내면을 보라고 말하는 이유는 첫인상이 꾸며진 것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기간 동안 만날 때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올바른 모습'을 꾸밉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인상이 곧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는 뜻이죠. 하지만 과연 그럴지는 좀 더 신중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모든 사람들이 첫인상을 꾸미며 사는 건 아니고, 설령 꾸민다고 할지라도 그 모습 또한 그 사람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지는 않은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 중 가족을 제외하곤 모두 겉모습만을 유일한 정보로 맺은 관계입니다. 처음부터 내면의 본질을 보고서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했던 경우는 없을 테죠. 누구든 겉모습을 통해 관계를 맺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겉모습은 때론 본질과 맞닿아 있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내면의 본질과 겉모습으로 드러나는 태도, 행동 등은 어떻게 이어져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우리 사회에선 굳이 비교하자면 내향적인 사람보다는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첫인상을 꾸며낸다면 외향적인 모습을 꾸며내는 경우가 좀 더 많을 거라고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10명의 사람들에게 외향적인 사람을 연기하라고 한다면, 과연 똑 닮은 성격이 나타날까요? 분명 아닐 겁니다. 외향적인 사람을 설명하는 특성으로는 아주 다양한 행동 또는 태도가 있기 때문이죠. 그중에서 무엇을 택하여 첫인상을 만들지는 서로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호탕하게 웃으며 대화를 주도하는 행동을 중점으로, 또 어떤 사람은 공통 관심사를 빠르게 찾아내고 함께할 다은 약속을 잡는 등 친근감을 중심으로 인상을 만들 겁니다. 또는 각종 개인기와 유머러스한 농담으로 웃음을 주는 데 집중할 수도 있겠죠. 10명의 사람들이 모두 실제로는 내향적인 사람이더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충분히 외향적인 사람인 척 연기할 수 있을 겁니다. 배우 중에서도 신하균 님, 엄태구 님처럼 내향적인 분들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외향적인 모습 중에서도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을 나타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꾸며내려는 행동일지라도, 결국 자신의 본질과 연관된 행동을 고를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실험을 해본 건 아니기에 함부로 확신할 수는 없겠지만, 유머를 중시한 사람은 내면에 유머러스함을 가지고 있을 테고, 친근감을 중시한 사람은 실제로도 친근감 있는 성격과 관련된 내면의 특성을 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꾸며내는 행동일지라도 어떤 모습을 꾸며내는지는 그 사람의 본질과 연결되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첫인상이라는 것도 그 사람의 본질 중 일부가 아닐까요?
첫인상뿐만 아니라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태도, 그 사람의 조건에 대해서도 넓혀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를 좋아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을 좋아하느냐, 또는 그 사람의 조건을 좋아하느냐를 따지곤 합니다. 조건을 좋아하는 건 사랑으로 인정해주지 않죠. 그러나 조건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얼마든지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자'라는 조건 그 자체로만 한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한다면, 만나게 되는 건 여러 부자들 중 한 사람이지 '그 사람'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부자인 그 사람'을 본다면 전혀 달라집니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사람이 어떻게 부자가 되었는지를 볼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부자가 되도록 도운 그 사람의 능력, 환경, 인간관계, 그리고 가진 자원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등 여러 가지 특성들이 그 사람의 본질과 이어져 있습니다. 단지 부자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게 옳지 않다고 해서, 부자를 좋아하는 걸 금기시 여길 이유는 없습니다. 외모가 뛰어난 사람을 만나면 '얼굴 보고 만나네', 돈이 많은 사람을 만나면 '돈 보고 만나네'라고 쉽게 비난해선 안 됩니다. 정말 조건만 보고 있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또한, 스스로도 자신이 혹시 상대방의 조건에 혹한 건 아닐지 의심하며 자책할 이유도 없습니다.
"이런 조건을 가진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서, 별로 좋지 않은 데도 관계를 끊지 못해요." 이런 생각에도 오류가 있습니다. 우선 오직 조건만이 중요한 것이라면 같거나 비슷한 조건을 가진 사람은 분명 더 있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되나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당신을 계속 좋아할 거란 보장도 마찬가지로 없습니다. 지금 만나는 사람과 헤어지고 같은 조건을 가진 또 다른 사람을 만나 보니 훨씬 더 사랑받을지도 모르죠. 부딪혀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결과론적인 것입니다. 만남과 헤어짐에 있어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본질입니다. 이때 외적인 조건이 본질로 다가가도록 이끌어주는 단서입니다. 어떤 분께서 한 사람이 보이는 행동이나 갖고 있는 외적인 조건은 본질로 들어가기 위한 통로라고 하더군요. 우선 호감을 갖고 가까워져야 본질을 볼 기회도 생긴다고 합니다. 외면만을 강조하는 건 건강한 인간관계를 만들지 못하겠지만, 외면을 철저히 경시하는 것 또한 건강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외적인 모습에 끌려도 자책하지 않도록 해요. 대신 내면을 봐주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