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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애 Dec 01. 2021

알아들었다 vs 받아들이겠다.

이해와 수용의 차이.

누군가의 말을 이해한다는 건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여러 종류의 이야기가 오고 갑니다. 단순한 잡담일 수도 있고 특정 주제를 가지고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대화가 오고 갈 수도 있죠. 그리고 어떤 형태의 대화에서든 각자의 입장이 있기 마련입니다. "00이 이번에 결혼을 한다더라"라는 이야기가 나왔다고 가정해보죠. 어떤 사람은 결혼상대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할지도 모릅니다. 다른 사람은 결혼식에 입고 갈 옷을 고민하는 말을 꺼낼 수 있을 테죠. 또 한 사람은 결혼에 관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낼지도 모릅니다. 이처럼 '대화'라는 이야기가 이루어질 땐 자신만의 입장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대화가 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할 겁니다. 그래야 상대방의 말을 이해하고,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적절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런데 잘 듣는다는 게 참 어렵습니다. 자연스럽게 이해하는 일도 쉽지 않죠. 이 점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이해'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중요한 건 '듣기'인데 말이죠. 물론 잘 듣는다고 해서 모든 말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잘 들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적절한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스무고개를 하듯 천천히 이해를 하면 되니까요. '이해'라는 건 어떤 말이나 글에 담겨있는 논리나 원리, 핵심 주장과 근거 등 구조를 파악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번 듣고 찾아내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천천히 채워나가면서 구조를 완성하면 됩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다 '주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열띤 토론의 장이 펼쳐졌습니다. 저를 제외한 두 친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사고팔고를 반복하는 '단타파'와 한번 산 주식은 오래 보관하며 오르기를 기다리는 '장투파'로 나뉘어 대립했죠. 서로의 주장을 저에게 들이밀면서 어느 쪽이 더 좋은지 판단해보라고 했습니다. 저는 주식에 관심을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 제대로 시작하진 않았기 때문에 공정하게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나 봅니다. 두 친구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은 저는 양쪽의 주장이 모두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서로 상반되는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느끼기도 했죠. 실컷 이야기를 하고 나서 친구들은 제게 물었습니다. "내 말 이해했어?" 저는 이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단타파의 입장도, 장투파의 입장도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이해했어. 둘 다 그럴싸하네." 친구들은 저를 닦달하며 "그래서 어느 쪽이 맞아?"라고 묻더군요. 저는 아직 주식을 좀 더 공부해보고 알아본 후 시작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고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양쪽의 의견 중 어느 것도 받아들일 수는 없었죠. "둘 다 장단점이 있어 보이는데, 나는 아직 주식 안 할 거야"라는 대답이 저의 최선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두 친구 모두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야, 전혀 이해를 못 했잖아! 이해했기는 무슨!"




이해와 받아들임


  저는 아주 당황스러웠습니다. 분명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정면으로 부정당해버렸기 때문이죠. 친구들은 "정말 이해했으면 둘 중 뭐가 좋은 지도 알아야지"라고 강하게 밀어붙였습니다. 이 말이 제게는 '이해와 받아들이는 건 같다'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정말 그런가요? 이해한다는 게 곧 받아들이는 것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이해와 받아들임은 다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해했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고, 이해하지 않더라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상황 각각 살펴보도록 하죠.


1. 이해했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


  저와 친구들 간에 있었던 일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저는 친구들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으나 어느 쪽의 주장도 받아들이진 않았습니다. 친구들의 말을 듣고 단타 기법과 장기투자 방법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고, 둘 다 성공 사례와 실패 사례가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현재도 단타의 신이라고 불리는 사람과 장기투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충분히 이해를 했지만 제가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먼저 어느 쪽이 제게 잘 맞는 방법인지는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알아봐야 할 부분이고, 둘째로 상황과 제게 주어진 자원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략도 세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좀 더 간단히 말하자면 어느 쪽의 방법도 지금 당장은 쓸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장갑을 팔고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 사람은 장갑의 필요성과 자신이 파는 장갑의 특출 난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행인은 충분히 그 상인의 말을 이해했습니다. 장갑이 왜 필요한지 이해했고, 그 장갑만의 차별점도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행인에겐 지금 당장 그 장갑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어떤 장갑보다 좋은 장갑이라는 걸 이해했음에도 행인은 장갑을 끼는 걸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잘 이해하더라도 받아들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2. 이해하지 못했지만 받아들이는 경우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에도 무작정 받아들이게 되는 일은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어디선가 듣도 보도 못한 건강식품이나 용품을 사 오시는 할머니, 민간요법을 듣고 와서는 일단 시도해보는 아버지, 친구들이 너도 나도 할 것 없이 사니까 따라 사는 옷 등 자주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예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해하지 못하고서 받아들일 때는 주로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흔히 '줏대가 없다'는 표현을 씁니다. 자기주장이 약하거나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을 보며 하는 말이죠. 제대로 이해했다면 절대 하지 않을 행동이나 결정을 간단히 해버리고 마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이 약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중심을 상징하는 '줏대'가 없는 건 아니냐고 말하는 거죠. 그나마 귀 기울여 듣고 이해해보려고 노력하는 과정을 거친다면 다행이지만, 이해하려는 시도도 없이 무작정 받아들일 때도 많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점점 더 자신의 중심은 흔들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조언을 쉽게 따르고, 주변 사람들의 평가에 의존하며 자신의 행동을 점검하게 됩니다. 요즘 흔하게 일컬어지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의 모습 중 하나이죠.


  자존감과는 관련 없이, 나에게 있어 소중한 상대방의 마음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 또는 논쟁을 피하고 싶어서 "그래. 그렇구나" 하고 넘길 때도 있습니다. 말이 제대로 이해되진 않았지만 존중의 의미를 담아 수용한다고 볼 수 있죠. 다른 분들의 의견을 구했을 때, 종교나 감정적인 주제에 대하여 조건 없이 받아들여주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해주었습니다.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서로 다른 감정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죠. 한편으로는 이 또한 '받아들임'보다는 '이해'의 영역에 가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해하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이처럼 정확히 구분하긴 어려운 문제인 듯합니다.




중요한 건 올바른 이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먼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제대로 이해를 하고 나서 하는 선택이라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진 않게 됩니다. 충분히 합리적인 말인지, 올바른 근거가 있는지, 내게 필요한 게 맞는지를 점검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선 처음 말했듯이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대화에만 국한된 게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도 같습니다. 우선 자신의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 좀 더 편하고 불편한지, 지금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인지, 나는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 등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목소리를 냅니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들어주었을 때 우리 자신에 대해서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다음엔 마찬가지로 무엇을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게 됩니다. 타인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모두 똑같습니다. 잘 보고, 잘 들어야 합니다.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맞는지 아닌지 점검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저도 확신이 있는 어투로 글을 적고 있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제가 하는 말이 정말 타당한지 의심해야 합니다. 잘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제게 질문하거나 관련된 자료를 찾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물론 이 글에 대해 그렇게까지 하시라는 건 아니란 거 알죠? >_<).


  잘 듣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리고 늘 올바르게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또한 귀찮게 피곤한 일입니다. 항상 그럴 수는 없겠지만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은 그러려고 노력해보면 좋겠습니다. 저도 계속 노력을 이어나가야겠죠. 저도 아직 잘 듣지 못합니다. 저와 친구들의 경우에서도, 친구들의 저의 말을 좀 더 잘 들어주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면 '이해했는데 왜 받아들이지 않냐'라는 말은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을 하며, 이번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며칠 전 경청하는 자세에 대해 생각해보며 시를 써보기도 했습니다. 경청하기 위해선 '받아쓰기'를 할 때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항상 다 받아 적겠다는 듯이 집중해서 대화를 나눌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할 수 있는 한 상대방의 말을 한 글자도 놓치지 않고 들어주겠다는 의지를 가지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래는 이에 관한 시를 게시한 저의 인스타그램 주소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p/CWyCgPsvy59/?utm_source=ig_web_copy_link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어떤 대화를 나누든, 경청하고 경청받는 하루 보내시길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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