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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Jan 06. 2024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 : ‘능청’의 베일

발견하고 말았다. 김보통도 나처럼 심각하다는 걸.

나는 인생이란 거대한 건빵 봉지와 같다고 생각해왔다. 그 봉지 안엔 먹자니 퍽퍽해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는 건빵처럼 뜻대로 잘 되지 않는 일들이 가득 들어 있는데, 사이사이 뜻밖의 일들이 별사탕처럼 섞여 있어 꾸역꾸역 먹게 된다. 그리고 나는 방금 별사탕을 발견한 터였다.

/63쪽



0.

김보통의 책을 틈틈이, 착실히 읽고 있다.

그렇다고 이 리뷰 브런치북에 그의 책을 또 쓰진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를 읽고, 내가 김보통에 대해 좀 착각한 게 아니었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전 글에 몇 줄 덧붙일까 하다가, 새로 쓰기로 한다.



1.

그러니까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은 별사탕이 많은 책이었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는 별사탕이 적다. 그나마도 바닥에 가라앉아 있어서, 다 먹을 즈음에 급작스러운 환희처럼 맛볼 수 있다. 덕분에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땐 온몸을 달달하게 휘감는 여운을 느꼈다. 짜르르.

역시 난 김보통이 좋았고, 더 좋아졌다.



2.

가볍고 편하게 읽으려고 (그 내용의 진지함이나 깊이와는 별개로) 책장을 펼쳤는데, 만약 그것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만한 글이 이어졌다. 한참. 술술 읽히지도 않았다. 나는 때때로 골몰했다. 김보통이 서술하는 이야기와 그에 겹쳐진 나의 이야기 그 어느 곳에서 헤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아니, 헤매지 않았다. 나는 그가 말하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 그로 인한 몸과 마음의 힘겨움, 자신을 돌보지 않은 채 질주하고 뒹군 자들의, 행색만큼이나 너절하고 너덜너덜한 말, 그걸 듣고 같이 너절하고 너덜너덜해지는 마음,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웅크렸다가 차근차근 헤집고 나오는 과정에 대해 알 것 같았다.

그것이 그의 것인지, 나의 것인지, 아니면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것인지 헷갈렸을 뿐이다.


그의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 4년간의 (우리나라 최고 대기업이라 할) 회사생활, 퇴사하는 과정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선을 긋는 생각, 백수가 되어 길을 찾기 위해 애썼으나 갈수록 쪼그라드는 마음과 생활, 그리고 그것들의 맥락과 바탕이 되어주는 가족, 유년기, 학창시절의 이야기는 구체적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타인의 내밀한, 진솔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했던가?

나는 기대와 달라 당황하면서도 왜 꾸역꾸역 읽고 있지?



3.

몇 편의 소설을 쓰고, 몇 편의 드라마 대본을 썼다. (습작)

이야기를 지어낼 때마다, 어떤 소재를 택해 어떤 톤앤매너로 어떤 사건을 짜고 어떻게 구성하여 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주제)를 드러낼지 구상할 때마다, 어려운 일은 따로 있었다. 그 과정과 선택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모든 것을 뼈대, 껍데기, 핵심, 스타일로 삼아 어떻게 '재미있는 이야기'로 보이게, 혹은 남게 하느냐다.


재미있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다, 재미있지 않으면 뽑히지 않는다, 재미있지 않으면 책으로/드라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나 역시 재미없는 것은 읽어지지 않고 읽기 꺼려지기 때문에, 그 무지막지한 말은 언제나 진실처럼 다가왔다.


그럼 재미있게 만드는 방법이 뭘까?


눈길을 끄는 제목, 한번 읽기 시작하면 걸리게 만드는 훅, 계속 읽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호기심, 성(性)이나 공포 같은 자극, 이야기를 강렬하게 만드는 반전, 언어유희나 티기타카 혹은 입에 착 붙는 말맛.

하지만 이런 것들은 너무 표면적인 차원의 것이어서, (만약 이런 걸로만 승부하는 이야기라면) 다 읽기도 전에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다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속기 싫었다. '휘발되는 재미'가 필요한 때도 있다는 걸 알지만(나도 그러하고), 내가 쓰고 싶은, 내가 잘하는, 나의 것은 아니었다.


그런가 하면, 인간이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플롯이나 등장인물에 감정이입이 되는, 혹은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는 본질적인 '재미'에 가까운 것 같다. (물론 그 재미를 어떻게 만드느냐,라는 질문이 또 이어져서 점점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묻게 되는데... 여기까지 온 마당에 또 답을 구해본다.)

전자는 파악하고 훈련하면 될 것 같기도 하고, 실제로 그렇게들 공부한다. 그런데 타고난 이야기꾼은 그에 대한 '감각'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타고난 이야기꾼이 본능적으로 해놓은 이야기들을 분석한 걸 가지고 어떤 사람들은 노력하여 그 경지에 이르려하는 걸지도.

후자는 나를, '내가 속한 세계를 완전히 잊게 만드는 이야기'일 수도 있겠고, 반대로 '바로 나의 이야기 같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그것은 인간과 삶과 세상에 대한 통찰과 철학이 기본적으로 밑바탕이 되어야 하고... (갈수록 미궁에 빠지는 느낌이지만, 계속 나아가보자), 구체적인 등장인물, 그의 삶, 그가 속한 세계가 그려져야 한다.


자, 여기서, 바로 여기서 나는 걸리곤 했다.

그러니까 이야기를 만드는 방식이 안에서 밖으로든, 밖에서 안으로든, 넓은 것에서 좁아지든, 좁은 것에서 넓어지든, 구체적인 인물과 그의 삶을 독자가 빠져들게 만들도록 그리는 데에 실패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너무 일반적인 관심사에서 먼 이야기, 왜 일반 독자가 그의 이야기를 궁금해해야 하는지 모를 소수의 이야기로 취급받곤 했다. (물론 그게 내 글의 모든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글을 쓸 때마다 나는 끊임없이 검열했다.


이 이야기는 특별할까? 사람들이 궁금해할까? 일반적으로 재미있을까?


그런 검열을 하는 것도 피곤했지만, 아마도 그러리라 생각되는, 내 것이 아닌 이야기를 쓰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찾아서, 취재해서, 상상해서 쓴다는 고됨뿐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내 이야기인 걸... 스스로에게 거절당한 나의 이야기 앞에서 나는 시무룩했고 작아졌다.



4.

지난 글에서 내가 놓쳤던 것은, 그러니까 <아만자>, <디피>,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까지 읽고 눈치채지 못했던 것은, 김보통이 자기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다. 그 이야기를 하는 그의 감각과 유머, 본바탕과 정서에 나는 반했다.

그런데 이번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의 이야기,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이야기 자체에, 그 이야기를 그토록 깊게, 끝까지, 맥이 흐려지지 않게 해내는 능력과 배포에 탄복했다.


어두컴컴하고 음습한, 게다가 모두 알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는, 도저히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문제나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다. 자극적인 무언가로 꾀어내지 않고 대놓고 했다. 나는 한편으로 건빵을 먹듯 꾸역꾸역 읽어야 했다. 이것은 실패의 이야기 방법 아닌가, 의아해하면서.


그런데 에세이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전개가 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있다고 느꼈다. '나 이렇게 힘들었고, 이렇게 살아왔다'고 구구절절 적는 게 다는 아니라는, 그러니까 어쨌든 나는 '과자'를 먹고 있고 별사탕도 있을 거라는 확신.

그리고 정말, 마지막 몇 장에서는 이야기의 절정에서 경험하는 감흥을 누렸다.



5.

나는 김보통에게서 (MBTI의) 'P'의 위엄을 느낀다. 내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그런 점에서 여전히 그는 나와는 참 다른 사람이다.


하지만, 발견하고 말았다. 나처럼 심각하다는 걸, 나처럼 진지하고 비장하다는 걸. 나는 그게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또, 어쩔 수 없이 어긋날 수밖에 없는 심성을. 그가 너무 곧거나 단단해서, 아니면 삐딱하거나 반항아의 기질이 충만해서가 아니다. 어떠한 예민함 때문에 자신의 본성이 상처 나고 뒤틀릴 때 괴롭다. 적당히 순응하거나 타협하거나 무심하거나 기만하며 살 수가 없는 사람들이 세상엔 늘, 어느 정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사람을 발견한, 안 그래도 좋아했는데 그도 그랬단 말인가 하는, 그런 기쁨이 있었다.



6.

나는 그에게도, 나름대로 갈고닦은 '전략'이 있다고 짐작한다.

그런 심각함과 진지함을 가지고, 예민하면서 길들지 못한 채로는 그렇게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도, 읽히는 글을 쓰는 것도 불가능하니까.


찌질하고 처참하고 침울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래서 정말 진지한 마음으로 읽고 있는데도, 어딘가 입술이 비틀린다. 웃을 준비를 하고 있달까?


'능청'이 모든 이야기를 덮고 있다. 그 베일을 벗겨내면, 정색한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우리(화자와 독자/그와 나)는 민망하고 낯부끄러워할지 모른다. 그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니었는데... 하면서 서둘러 헤어지고 싶을지도.



7.

그의 책들을 읽다 보니 그의 전기를 읽은 것만 같다. 그의 어린 시절을 알 것 같고, 그의 가정환경을 알 것 같다. 학창시절과 직장생활에 대해서도, 여행하면서 겪은 일과 백수로 어떻게 지냈는지도 그려진다. 취미와 가치관에 대해서도 짐작하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순전히 '내가 받아들인 김보통'이지만)


어떤 이야기는 다른 식으로 책마다 언급된다. 다른 이야기와 엮여서, 혹은 다른 맥락에서, 아니면 다른 톤으로.

그런데도, 나는 그의 이야기가 여전히 궁금하다. 또 나온다 해도, 그러니까 그의 아버지와의 대화라든지 어떤 친구와의 만남, 어떤 여행에서의 일화에 대해 또 읽게 돼도, "에이, 또?"라고 생각할 것 같지 않다.


양파나 두부 같은 식재료여서, 어디든 넣는다고 식상할 게 없다. 멋진 요리로, 정성 들여 만들어주었다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그가 요리마다 뿌리는 만능양념장 '능청'은 내 입맛에 잘 맞다.



8.

내가 가진 이야기를 손에 들고 작아지고 싶지 않다.

'일반'에게 '특별'하게 보이는 이야기라는 신기루를 쫓는 대신, 단 한 사람이라도 꾸역꾸역 곱씹을 만한 글을, 나에게서 캐내어 보겠다.


그러기 위해, 내 비법소스를 만들어내고 싶다.

요리는 못하고 소스만 잘 만드는 장인은 없겠지. 요리를 일단 꾸준히 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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