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련도 하고, 세련도 하다.
0.
빠뜨리지 않고 챙겨 보는/듣는 콘텐츠가 몇 개 있다. 그중 하나가 '뉴스공장'의 한 코너 <더 살롱>이다.
1.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20분기(만 5년) 연속 라디오 청취율 1위, 라디오 청취율 조사 이래 최고 청취율 등 독보적이고 전설적인 성취에도 불구하고, 오세훈이 서울시장이 된 뒤(그리고 서울시의회까지 국민의힘이 다수당이 되면서) TBS에서 잘렸다. (마지막 방송에서 '3년 6개월 후' 돌아오겠다고 공언하고) 이후 유튜브로 같은 시간에, 같은 형식으로 거의 똑같은 방송을 시작했다.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미 유튜브로 스트리밍 해서 봤거나, 다시 보기를 한 경우에는 아쉬울 게 없다. 차이는 미묘하게 있다. '법과 제도의 틀 안에서'는 여전하지만, 더 자유로워진 건 분명하다.
지난 대선 이후 한참 뉴스를 외면하고 살다, 다시 뉴스를 보기 시작했을 때 나는 당연히 뉴스공장을 들었는데, 거기서 <더 살롱>을 발견하고는 눈과 귀가 번쩍 뜨였다. '인문의 시선으로 정치를 논한다'는 컨셉으로 정치학자 전우용, 심리학자 김태형, 시인 류근, 문화평론가 강유정 이렇게 네 명이 모여, 두 가지 정치적 주제를 놓고 설을 푼다.
‘멤바’ 넷 중 셋을 알고 있었는데, 그들의 이야기는 재미있고 유익해서 늘 들을 만했다. 그런데 그들이 모였다? 그것도 사람들이 어디 가서 하지 않을 말을 하도록 이끌어내는 데 천재인 김어준과 함께?
실제로 정말 너무 재미있었다. 후련했다. 머릿속, 가슴속에 꽉 막혔던 것을 뚫어주고, 간질거리던 것을 긁어주는 것 같았다. 금요일 고정 프로그램이라기에, 이전 것을 전부 찾아서 정주행했다. 이후로도 다른 건 건너뛰어도 <더 살롱>은 놓치지 않는다.
2.
공적이든 사적이든, 어떤 사안에 대해 마음속에 훌쩍 드는 생각이 있다. 그렇게 쉽게, 순간적으로 드는 생각을 편하게, 아무렇게나 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어려운 일도, 힘든 일도 아니다. 하지만 '어른'의 일은 아니다.
그러한 말하기는, 사안의 당사자는 물론이고,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결이 조금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불쾌한, 심하면 폭력적인 일이 되곤 한다. 그래서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곧 권력의 증표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른'은 때로 말을 삼가고, 우회적으로, 비유적으로, 논리를 갖추어, 세련되게 말하거나 풍자와 해학을 빌기도 한다.
하지만, 평가의 대상이 눈앞에 없을 때, 그가 내 말을 들을 가능성이 없을 뿐 아니라 내 존재도 모른다면 더더욱, 스스로를 '어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수고로운 말하기 방식을 버린다. 실제로 권력도 없으면서, 못된 권력자처럼 정치인이나 연예인을 향해 정치평론이나 가십의 탈을 쓰고 마구 발화한다.
그것이 누군가와 사뿐히 공유되면, 조심스러웠던 마음은 더욱 사라져, 스스로가 뭐라도 된 듯한 기분에 취하기도 한다.
한참 그런 식으로 떠들고 나면, 그 순간에만 후련하다. 달라진 것도 없고,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나의 말에, 내 입만 고약해지고 나서는, 스스로 초라해지곤 했다.
3.
나는 왜 이렇게 <더 살롱>이 재미있을까? 왜 인기 코너가 됐을까?
어느 날엔, 류근 멤바가 '아침부터 이렇게 고급하게 뒷담화 한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생각할수록 맞는 말이었다. 100만 명 이상이 듣는 방송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이야기들이 '뒷담화'인가 싶기도 하지만, 당사자가 없는 데서 하는 말이니까 뒷담화는 뒷담화다.
그런데 쿵짝이 맞는 사람끼리 술 냄새 풍기며, 혹은 누군가 한쪽에선 입 꼭 다물고 속으로는 한숨 쉬는지도 모르고 침 튀기며 나오는 대로 열변을 토하는 게 아니라, 각자 전공의 영역에서, 인문학적으로, 근거와 논리를 대어 비평하고 비판한다.
때로는 김어준이 "삐-“ 소리를 내며 방송 부적합 용어라는 식으로 지적할 만한 강한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감정에 치우친 무논리의 공격이 아니다.
나로서는, 후련도 하고 세련도 하다.
4.
어떤 체제에 대해, 이런 식의 균열이, 이런 식의 공격 혹은 방어가 나는 너무 반갑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어준은 농담처럼 '우리나라에서 제일 위험한 방송, 변호사가 먼저 연락하는 방송'이라고 말하는데, 이 아슬아슬한 줄을 타며, 오래오래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아, 너무 오래는 말고.
* <더 살롱> 몰아보기. 2023년 4월 7일부터 매주 금요일.
+)
지난 12월 8일부터 매주 금,토 같은 채널에서 새 프로그램 '탁현민의 오바타임'이 방송된다. 금요일엔 뉴스공장이 끝나고 바로 이어진다. 의리로 보려고 했는데, 아직은 뭔가 어수선하고 어색하다.
그런데 그중 <책방 순례>라는 코너는 좋았다. 독립서점 주인장이 나와서 꽤나 깊게 소개하는데, (이렇게 제대로 소개하는 방송이 전에도 있었나 모르겠다) 책방에 자꾸 관심이 가는 나는, 앞으로 이 코너만은 꾸준히 챙겨 보기로 했다. (12/8 금요일 1회, 12/15 금요일 3회에 방송됐는데, 12/22 금요일 5회에는 없었다. 금요일마다 하는 건데 어제만 건너뛴 건지, 불규칙하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
* <책방 순례> '소리소문' 정도선. 2023년 12월 8일.
* <책방 순례> '소심한 책방' 현미라. 2023년 12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