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뿐이야, 규칙은.
어린이집 셔틀버스에서 내린 첫째는 놀이터로 달려갔다. 어린이집에서 놀고 온 거 아닌가, 휴. 유모차에 잠들어 있던 둘째가 이십 분쯤 지나니 깨버렸다.
“재훈아, 이제 들어가자! 재인이 깨서 울잖아.”
듣는 척도 안 한다. 어쩔 수 없이 윗도리를 들추고 젖을 물린다. 에라, 모르겠다. 젖 주는 건 신성한 거니까. 뭐 볼 것도 없으니까. 정말 아줌마가 되었나 보다. 그런데 정말 누가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언제 왔는지 정자 저쪽에 앉아있던 지아 엄마였다.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언니.”
“어, 응, 지아 엄마. 지아 어린이집 이제 적응했어?”
“아뇨, 휴, 오늘도 울고불고 난리였대요. 다른 어린이집을 알아봐야 할까 봐요.”
“으응, 우리 재훈이도 적응하는 데 한 달은 걸렸어. 내가 네 살까지 데리고 있었잖아. 그래서 나랑만 있는 게 너무 익숙했는지.”
“언니, 그런데 재인이 아직 젖 줘요? 돌 지나지 않았어요?”
“아, 응. 국제모유수유협회에서 권장하는 수유기간이 2년이야. 지켜줘야지. 재훈이는 재인이 임신하기 전까지 줬으니까 거의 2년 반 줬네. 내가 워낙 모유수유를 어렵게 성공해서 말야. 내 젖꼭지가 함몰유두거든. 젖양도 부족했고. 또 재훈이가 이른둥이여서 젖을 잘 못 물었고… 아주 악조건은 다 갖췄는데, 내가 모유수유 좋다는 얘기를 인이 박이게 들어 그런지, 꼭 내 젖을 주고 싶은 거야. 정말 생쇼를 했지. 배고프다고 바락바락 울고, 나는 그 모습 딱해서 울고, 도와주는 산후조리원 원장도 울고. 진짜 꼭 이러지 않아도 된다고, 요즘 분유 좋다고 나중엔 원장도 그랬는데, 나는 한번 시작하면 끝장을 보거든. 애 키우는 거라고 뭐 다르겠어? 끝까지 해보자는 심정으로 했지. 아, 그러니까 조리원 가고 사흘 째 되던 날, 내 젖을 딱 무는 거야. 그리고 찔끔찔끔 나오는 젖을 한 시간 동안 물었지. 난 또 그게 좋아가지고 원래 10분씩 번갈아 먹이는 건데 그냥 그대로 냅뒀지. 그래서 젖꼭지 다 헐고 고생하고…. 그렇게 고생을 해서…”
나도 모르게 말이 많아졌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 말이 길었네. 내가 고생한 게 생각나서.”
지아 엄마를 보니 살짝 웃고 있다. 손바닥만 한 얼굴에 커다란 외꺼풀 눈, 오똑한 코, 새빨간 립스틱을 바른 앙증맞은 입술. 볼수록 예쁘다. 아직도 20대 같다. 정말 20대일지도 모르지.
“아녜요, 언니. 저는 모유수유를 못해서 언니가 부럽네요. 그런데 언니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나 봐.”
얼굴이 다시 한번 화끈거렸다.
“스트레스 받지. 애 키우면서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어? 자기는 안 그런 거야?”
“아뇨, 언니. 저도 스트레스 받죠. 그래서 말인데… 언니, 금요일 밤에 뭐해요?”
“금요일 밤? 뭐하긴. 애 재우고 혼자 술 마시든지, 미드 보든지, 쇼핑하든지. 뭐 그러지.”
“그럼 우리 클럽에 한번 올래요?”
“클럽?”
“금요일 밤 11시에 모이거든요. 저기 사거리 다방에서.”
“다-방? 자기가 그런 델 가?”
“헤헤. 다방이 어때서요. 재미있어요. 내일 밤 10시 40분에 여기 놀이터에서 만나요. 그때면 재훈이 재인이 다 자죠?”
“자기야 하지. 그래도 뭐하는 클럽인지는 알고 가야지…”
“와 보면 알아요.”
“이름이라도…”
“아무말대잔치 클럽?”
솔깃하긴 했지만, 내가 지아 엄마 노는 곳에 따라갈 생각은 없었다. 아마 지아 엄마처럼 젊고 예쁘거나 여유가 있거나 그런 사람들 모이는 곳이겠지. 내가 그런 데 가서 괜히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 있나.
그런데 그날 저녁 설거지하다가 남편이 속을 긁었다.
“아니, 음식물쓰레기가 왜 이렇게 많아?”
“뭐가 많아? 요리할 때 나온 찌끄레기, 그리고 상한 음식 버린 것뿐인데?”
“그러니까, 내 말이. 버섯 기둥이랑 양파 껍질 같은 거, 다 그냥 버리잖아, 당신은. 그거 다 요리에도 넣고 말려서 쓰고 그러는 거야. 우리 엄마는 다 그랬…”
독기를 품은 도끼눈을 보고 남편이 주절대던 입을 다물었다. 나는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돌아섰다.
“그리고 음식 상한 것도… 양을 좀 적당히 하든지, 재깍재깍 잘 챙겨 먹든지, 이렇게 날마다 버리냐, 아깝게. 이거 다 죄 짓는 거야. 우리 엄마는 한 번도…”
“으이 씨! 정 그러면 당신, 당신 엄마랑 살아! 엄마한테 밥해달라고 하라고! 왜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아, 증말. 내가 틀린 말 했냐.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야지, 무조건 화부터 내고, 진짜. 우리 엄마는 아빠가 얘기하시면…”
쾅! 그냥 나와 버렸다. 가지고 나온 건 휴대폰뿐이었다. 8시 40분. 후줄근한 차림새로 이 시간에 어딜 가나. 놀이터 정자에 잠시 앉았다. 휴대폰 케이스에 다행히 카드와 현금 2만 원이 있다.
“아니, 재훈 엄마 아냐? 거기서 뭐해?”
“아, 아, 안녕하세요.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나왔다가… 잠시…”
“아~ 그렇구나. 그래요. 먼저 들어갈게요.”
아무래도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다 싶었다. 나는 일단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왔다. 터덜터덜 걷다 보니 맥도날드가 보였다. 그래, 저기 가면 되겠구나.
키오스크에서 후렌치후라이와 초코콘을 주문했다. 음식을 들고 2층 창가에 앉았다. 나 혼자 먹으니 이게 이렇게 맛있네. 천천히 먹다가 창밖을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봤다. 9시 30분. 아이들은 잠들었을까… 문자를 보내려다 관둔다. 잠들었겠지. 안 잠들었으면 뭐. 혼자 고생 좀 해보라지. 마음은 편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들어가고 싶진 않았다. 시간을 죽이려고 휴대폰 게임을 했다. 눈이 아파 그만둔다. 밖은 불빛들로 환하다. 모두들 금요일 밤이라고 붕 뜬 거 같다. 그래, 금요일 밤. 금요일 밤을 금요일 밤처럼 보낸 게 언제였던가. 아무말대잔치 클럽이라고? 한번 가봐?
맥도날드에서 좀 더 뭉개다 천천히 아파트 놀이터로 온 것이 10시 35분. 지아 엄마가 나타날 때까지 정자에 숨어 있었다. 저쪽에서 지아 엄마가 레깅스에 박스티 차림으로 걸어오는 게 보인다. 다행이다. 제대로 차려입고 나왔으면 아무래도 같이 가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니,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어쨌든 예뻤다.
“언니! 정말 나왔네요!”
“오라며…”
“그래도 진짜 나오실 줄은 몰랐어요. 헤헤.”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나를 놀리는 건가.
“언니, 그리고 옷도 잘 입으셨어요. 그렇게 입고 오세요, 다들.”
“뭘 하기에… 이러고…”
“가요, 아무튼.”
사거리 한쪽 외진 곳에 오래된 다방이 하나 있다. 이름은 달다방. 낮에 보면 불이 켜진 것 같기도 하고 꺼진 것 같기도 해서, 도무지 영업을 하는지 안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 궁금하면 들어가 볼 수도 있겠지만, 근처에 스타벅스를 놔두고 거기 들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다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지금까지 문을 닫지 않았으니.
밤에 이 앞을 지나는 건 처음인 것 같다. 금요일 밤인데도 이 앞으론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왠지 으스스했다. 가까이 가보니 문을 둘러 작은 달 모양 전구에 불이 켜져 있었다.
“진짜 여기서 모여?”
“응, 언니. 들어가요.”
꽤 넓은 공간이었다. 왼쪽에 중년 남자 세 명이서 담배를 피우며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오른쪽으로는 노년 커플이 두 팀 있었다. 한 팀은 마주 앉아서 남자가 여자의 손금을 보고 있는 것 같았고, 한 팀은 의자 한쪽에 나란히 앉아 진한 스킨십을 하는 중이었다. 지아 엄마에게로 눈을 돌렸다.
“클럽 사람들은 어디에…?”
“이쪽으로 와요, 언니.”
통로로 쭉 들어가니 주방 옆에 문이 하나 있었다. 지아 엄마가 노크했다.
똑똑똑, 똑똑똑, 똑, 똑.
그러자 딸깍, 하고 문이 열렸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온몸을 장신구로 치장한 여자가 나왔다. 50대쯤 되어 보였다.
“어, 양귀비. 어서 와. 아, 이 사람이 그…?
지아 엄마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귀비? 지아 엄마가 양귀비?
들어가 보니 바닥에 담요 같은 걸 깔고 두 사람이 앉아있었다. 마주 보이는 사람은 지아 엄마 또래에 꽤 미인이었는데, 깡마르고 얼굴이 창백해서 예쁘다는 생각보다 안쓰러운 느낌이 들었다. 등지고 있던 사람이 뒤돌았다. 내 또래 같았다. 남자인가, 싶을 정도로 덩치가 크고 근육질이었다. 한 올도 빠짐없이 머리카락을 뒤로 빗어 하나로 묶었다. 눈매가 매서워 눈을 마주치자마자 피했다.
“자, 우리 새로운 회원이 생겼으니 인사합시다. 나부터 하지. 나는 졸부야. 반가워.”
장신구로 치장했던 여자가 말했다.
“아, 네… 저는…”
“아, 이름은 천천히 정하지. 그리고 여기선 모두 말을 놓으니, 편하게 해.”
어찌할까 싶어 지아 엄마를 보았다.
“아, 나도 소개할게. 여기선 양귀비로 불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양귀비의 눈을 따라갔다.
“나는 시한부야. 반가워.”
안쓰러운 여자가 말했다. 자연스럽게 마지막으로 매서운 눈매가 말했다.
“안녕. 나는 사이코.”
“앉지.”
졸부의 안내를 따라 나는 사이코와 졸부 사이에 앉았다. 졸부 오른쪽 옆에 시한부, 그 옆에 양귀비, 그리고 다시 사이코. 이렇게 빙 둘러앉았다. 담요 한가운데에 뭔가 놓여 있었다. 화투였다.
“고스톱?”
“응, 우리 고스톱 쳐.”
조금 실망스러웠다. 모르는 사람들이랑 고스톱 치자고 금요일 밤에 나오다니.
“점당 천 원이야. 그리고 광은 하나에 2천 원.”
그래, 스트레스 푸는 데 고스톱, 괜찮지. 나는 오늘 2만 원어치만 놀기로 했다. 다 잃으면 집에 가지, 뭐.
“그리고, 적당히 믿을 것.”
싸한 목소리로 사이코가 말했다.
“네? 뭘…요?”
“우리가 하는 이야기. 그리고 비밀을 지킬 것.”
“두 가지뿐이야, 규칙은.”
무슨 이야기를 하기에 이렇게 비장한가 싶었다. 하긴 어떤 이야기가 나와도 내가 누구한테 여기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겠는가. 피식 웃음이 났다.
“어렵지 않네…요.”
“자, 그럼 시작.”
졸부가 패를 나누기 시작했다.
“양귀비. 그래서 그 치과의사랑은 어떻게 됐어?”
“응, 그 치과의사 나한테 딴 맘 있는 거 맞았어. 갈 때마다 별거 아닌 일로 다음 예약 잡는다 했잖아? 지난주에는 내가 파란 원피스에 하얀색 자켓을 입고 갔는데, 진료 끝나고 일어서니까 옷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거야. 헤헤. 그래서 내가 감사하다고 했지. 그리고 나가는데 따라 나오더라? 그리고는.”
졸부가 바닥에서 솔을 뒤집었다. 그녀가 선(先)이었다. 내 패에 솔광, 똥광, 비광이 있었다. 할 만했는데, 양귀비만 죽고 시한부와 사이코가 하기로 해서 광을 팔게 됐다. 그래도 첫 판부터 만이천 원 땄으니.
“오늘 자기 퇴근하고 차 한잔하자는 거야.”
“오호!!”
“그래서 30분쯤 기다렸다 만났지. 만나자마자 대뜸, 자기가 그동안 나를 보고 마음이 너무 흔들렸다면서, 아내랑 거의 별거 상태인데, 자꾸 내 생각이 난다고, 자기한테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그러더라. 그래서 내가 무슨 기회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내 마음에 들 자신이 있대. 나는 남편하고 사이가 좋다, 그동안은 피임했는데 요즘엔 아이가 갖고 싶어서 남편이랑 섹스도 열정적으로 한다 그랬지. 그랬더니, 자기도 섹스 잘할 수 있다는 거야.”
“우후!!”
“그래서, 그날, 뭐, 했지. 잘하더라고. 정말로.”
“와우!!”
나는 기가 막혔다. 지아를 놔두고 아이가 없다고?
“지아 엄…”
“양귀비. 여기선 그렇게 불러줘. 그리고 적당히 믿는다는 규칙, 기억하지?”
새빨간 입술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전에 없이 요염해 보였다. 나는 얼떨결에,
“좋았겠다.”
라고 말하고는 괜히 얼굴을 붉혔다. 졸부가 독박으로 사이코에게 이만 원을 잃었다. 다음은 사이코, 나, 졸부가 치고, 시한부와 양귀비가 광을 팔았다.
“시한부, 자기 얘기 해봐. 남편, 아직도 그래?”
“아, 응… 어제도 그랬어. 술을 잔뜩 먹고 들어와서 오자마자 내 옷을 다 벗기고는 나가라는 거야… 어떻게 나가… 벌거벗고… 그래서 무릎 꿇고 빌고… 안 나가겠다고 버티니까 발로 차고 따귀를 때리고… 그걸로도 성이 안 찼는지 손에 잡히는 대로 나한테 던지더라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시한부를 보느라 내 차례가 온 줄도 몰랐다. 자세히 보니 얼굴에 멍 자국 같은 게 보였고, 그것을 가리려고 화장을 진하게 한 것 같았다. 사이코가 내 팔을 툭 쳤다. 아무거나 보이는 대로 냈다. 은근히 팔이 아팠다.
“그리고는 또 섹스하고?”
“응… 집안은 엉망이고 깨진 병도 있고 한데… 그 위에서… 사정하고 나니까 바로 방에 들어가 자더라.”
“목 조르고 하는 건 여전하고?”
“응… 내가 숨이 막혀 헐떡이는 게 좋은가 봐, 그이는.”
나는 계절에 맞지 않게 목이 올라온 티셔츠를 입은 시한부를 보면서 어디까지 진짜인지 가늠해보았다. 양귀비처럼 다 진짜는 아니겠지.
“혼자서 난장판 된 거 치우는데, 얼굴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등도 아프고 밑도 아프고… 정말로 죽고 싶더라. 그런데 난 그럴 용기도 없지… 그이가 죽일 때까지 이렇게 살아 있을 거 같아…”
이런 이야기가 처음이 아니어서 그런지, 아니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해서인지 모두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세상에. 이번에도 졸부가 독박을 쓰고 사이코가 이겼다.
“아, 자꾸 독박 쓰네. 이번 판엔 죽고 내 얘기나 해야겠다.”
나도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죽기로 했다. 사이코, 시한부, 양귀비가 같이 쳤다.
“내가 로또 1등 또 당첨된 거 지난번에 얘기했나?”
설마. 그게 확률이 얼만데, 두 번 당첨됐다는 거야. 뻥이 너무 심해서 나는 코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양귀비가 싹쓸이를 했다.
“그리고 내가 두 달 전에 산 오케이바이오, 그게 대박이 나서 또 5억인가 들어왔어. 황사마스크도 지금 없어서 못 팔지. 돈 쓰는 재미가 좋은지는 알았는데 돈 버는 재미가 이렇게 끝내주는지 몰랐네.”
“어유, 좋겠어. 그 돈 다 어디다 써?”
사이코가 피박을 겨우 면하면서 한마디 했다.
“그러게. 일단 여기서 많이 잃고 가려고 좀 들고 왔는데, 잘 좀 해봐, 들.”
가방에서 돈다발을 꺼내서 흔든다. 진짜 돈인가?
“아, 내가 났네!”
양귀비가 10점이 났고 사이코는 광박이다. 사이코가 쉬고 양귀비, 나, 졸부가 쳤다.
“사이코, 지난주엔 얼마나 죽였어?”
시한부가 물었다.
“사람은 셋. 그리고 고양이 하나.”
“아, 또 불쌍한 생명들이 사라졌구나~”
졸부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나는 식겁해서 또 아무 패나 내고 말았다.
“그런데 고양이는 왜?”
“아파트에서 누가 계속 먹을 걸 줘서, 고양이가 그 앞에 살았나 봐. 고양이 싫어하는 옆 집 사람이 야옹거리는 소리 듣기 싫다고 연락해서… 내가 고양이 잡아 죽인 다음에, 밥 주던 집 베란다에 거꾸로 매달아놨지. 킬킬.”
끔찍하다. 저건 거짓말이라 해도 너무 끔찍하다. 나는 가슴이 벌렁거려서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또 아무 패나 냈다.
“사람을, 정말, 셋이나 죽였다고…요?”
나도 모르게 질문을 했다.
“이번엔 조금 죽였네, 뭐. 한가했겠어.”
졸부가 똥을 싸면서 말했다. 이번에도 졸부가 잃을 것 같다. 고스톱을 못 치는 건지, 정말 잃어줄 생각인 건지.
“궁금해?”
사이코가 나를 보며 히죽 웃었다.
“한 사람은 형한테 돈을 많이 빌렸대. 한 푼도 안 갚으면서 할 거 다 하고 살 거 다 사고 산대. 형제가 원수지간이지. 형수가 연락했어. 없애 달라고. 술 먹고 전봇대 들이박은 걸로 해결. 또 한 사람은, 어떤 아줌마가 자기 딸 괴롭힌 같은 반 친구를 부탁했지. 아주 못되게도 괴롭혔더구만. 빵, 담배 셔틀 시키고, 돈 뺏고, 이유 갖다 붙여 때리고… 아, 그것보다 카톡 단톡방에 불러다가 없는 사람 취급하면서 뒷다마 까는 게 괴로웠다네. 나가면 또 부르고 나가면 또 부르고. 아무튼 그 여자애, 어떤 놈팽이 시켜서 채팅으로 불러 재미 좀 보게 하고 돌아가는 길에 내가 손 좀 봤지. 그 놈팽이가 잡혀 들어가겠지. 근데 사실 그 놈팽이는 몇 년 전에 구멍가게 아줌마 강간하고 돈 가져간 새끼거든. 그것까지 해서 감방에서 오래 썩을걸. 나머지 하나는 애새낀데.”
“아, 그만! 그만 들을게…요.”
토할 것 같았다. 킬킬대는 그녀의 얼굴이 장난스러웠다. 장난인가? 장난이든 아니든 소름이 돋았다.
이번엔 시한부가 이겼다. 졸부는 광박에, 피박이었다. 시한부, 양귀비, 사이코가 치고 나랑 졸부가 광을 팔았다. 졸부는 아무것도 없었고, 나는 똥쌍피와 비쌍피가 있었다.
“화장실이 어디…?”
정신을 좀 차리고 싶었다.
“왜, 오줌 마려워? 여기다 싸.”
졸부가 요강을 내밀었다.
“참을게…요.”
적당히 어두컴컴한 방안이 아늑했는데, 이제는 오싹하게 느껴졌다. 당장 나가고 싶었다. 남편 핑계 대고 나가야지 싶어, 휴대폰을 열어보니 예상대로 남편한테 카톡이 스무 개쯤 와 있었다.
ㅡ어디야? 여자가 밤늦게 어딜 나간 거야? 우리 엄마는 한 번도…
휴대폰 전원을 껐다. 오늘은 끝까지 간다. 어차피 아무말대잔치야, 아무 말. 돈도 따고 있잖아?
졸부가 나가서 얼음을 넣은 커피 다섯 잔과 쿠키를 들고 왔다. 시원하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니 심장에서 피가 뻗어나가는 게 느껴졌다. 힘이 솟고 머리가 쨍하고 맑아졌다.
“내 차롄가 봐요. 아니, 내 차롄가 봐.”
나는 무슨 얘길 할까 하다가, 내 자랑을 하고 싶어졌다. 남편, 자식, 부모 얘기 말고 오직 내 얘기.
“내가 공부를 좀 했어. 우리 집이 가난했거든. 그러니 아무도 나한테 공부하라고도 안 했고, 공부를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한 거야. 초등학교 때는 시험 봤다 하면 올백이었고, 중학교는 1등으로 입학해서 1등으로 졸업했어. 과학고로 진학했는데, 거기서 처음엔 힘들더라. 좀 어려워야지. 다들 교과서에 나온 거는 다 두 번 세 번 보고 와가지고 선생들이 수업시간에 제대로 설명도 안 하는 거야. 그때 학원도 안 다니고 과외도 안 하는 애가 나밖에 없었어. 죽기 살기로 공부했지. 결국 전교 1등 했어. 그리고 서울대 수석으로 입학했고.”
거짓말이 술술 나와서 나도 놀랐다. 공부를 좀 했다고만 얘기하려고 했는데, 어쩌다 저런 얘기까지…
“오, 브레인이구나.”
“뭐, 왕년에 그랬다는 거지, 애 낳다가 머리 나빠지고, 키우다가 머리 굳어버리고 그랬지 뭐. 그리고 애 키우는데 머리 좋은 거 다 소용없더라. 그래도 요즘엔 부모 잘못 만나면 좋은 학교 못 간다는 얘기 들으면, 나는 그래도 했다, 그런 생각은 들지.”
“왕년, 왕년이라고 하지.”
히죽 웃으며 사이코가 말했다.
“그거 좋네. 왕년!”
나는 왕년이가 됐다.
우리는 밤새도록 고스톱을 쳤다. 토요일 동이 틀 때까지, 졸부는 자기가 돈을 번 이야기와 잃은 이야기, 앞으로 돈 벌 계획과 쓸 계획에 대해서 얘기했다. 나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척하면서 주식 몇 개와 부동산 몇 군데는 외워두었다. 사이코는 세상에 알려진 살인사건 중 자기가 저지른 일을 얘기했다. 나를 생각해서 자세히는 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결국 요강에 구토하고 말았다. 양귀비는 지금까지 사귄 남자 이야기와 바람피운 이야기를 끝도 없이 늘어놨다. 나는 언제 써먹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남자 꾀는 법을 물었다가 비웃음을 샀다. 왜냐하면 내가 (이왕 ‘왕년’이가 된 김에) 한때 하루에도 몇 번씩 대시를 받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는 이야기를 해놓고 깜빡했던 것이다. 아무튼 나는 내가 되고 싶었던, 지금도 바라는 내 모습을 생각하며 실컷 떠들었다. 후련하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했다.
우리들의 반응이 제일 격했던 것은 시한부의 이야기였다. 남편이 시한부를 괴롭힌 이야기는 어찌 보면 사이코의 살인 이야기보다 더 끔찍했다.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남편에게, 그것도 집에서, 날마다 불안에 떨며.
“아니, 왜 그러고 살아? 이혼하면 안 돼?”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다음날 술이 깨면 싹싹 비니까… 그럼 너무 불쌍하고… 진짜 앞으로는 안 그럴 거 같기도 하고… 그리고 보통 때는 괜찮은 사람이야. 다정하기도 하고…”
“그럼 폭력 휘두를 때 신고를 하든지! 아님 도망이라도 가든지!”
“그것도 안 돼… 그럼 나는 어떻게 살아… 그이는 폭력 남편 되고, 나는 매 맞는 아내로 알려질 텐데…”
아니, 실제로 매 맞는 아내인 것보다 매 맞는 아내로 알려지는 게 더 무섭단 말인가. 나는 어떻게든 그게 아니라고 설득해보려 했다. 하지만 이게 어디까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내가 진지해질수록 분위기는 이상해지기만 했다.
“보험 들어놨어?”
“보험?”
“응, 남편 생명보험.”
졸부가 물었다.
“잘 모르겠어…”
“확인한 담에 사이코가 해치워.”
“그럼 되겠네!”
양귀비가 손뼉을 쳤다. 나는 묘안이다 싶으면서도, 누구 남편을 죽이는 공모에 좋다고 끼기가 꺼려졌다.
사이코가 히죽 웃었다.
“그럴까?”
시한부는 한참 바닥만 보더니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후!!”
졸부와 양귀비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폈다. 사이코는 킬킬댔다.
“그리고,”
시한부가 머뭇거리며 말했다.
“여자가 있어. 그이한테.”
“뭐야, 바람까지 피운 거야?”
양귀비가 흥분하자, 옆에 있던 사이코가 등을 한 대 쳤다. 잘했다 싶었다.
“아무튼, 그년까지 처리하면 되는 거지?”
“응, 적당히…”
“킬킬, 그래, 적당히 하지.”
“비용은 보험금 타면…”
“아니, 그 비용은 내가 댈게.”
졸부가 끼어들었다.
“그거 좋네!”
우리의 모의는 거기서 끝났다. 다음 주 모임이 기대됐다. 모두 어떤 말을 들려줄까. 한 번쯤 더… 나올까.
담요 아래 꼬불쳐둔 돈을 추슬러 보니 20만 원쯤 되었다. 하룻밤 신나게 놀고 20만 원까지 벌다니, 오랜만에 밤을 새워서 머리는 띵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양귀비, 얼마나 땄어?”
달다방을 나와 집으로 걸어가면서 물었다.
“에이, 언니. 이제 지아 엄마로 불러. 나 5만 원쯤. 헤헤.”
“얼마 못 벌었네, 자긴.”
“잃어도 좋아. 이렇게 실컷 아무 말 다 해도 좋을 곳이 없잖아.”
“그렇긴 하지. 후련하네. 그래도 난, 20만 원 번 게 더 좋아. 이 돈으로 머리나 할까? 자기, 머리 어디서 해?”
“미용실? 헤헤. 괜찮은 데 알아. 가볼래?”
“응, 오늘은 좀 쉬고… 내일 가자.”
“좋아. 남편한테 애들 맡기고!”
“그런데, 여기 어떻게 알았어?”
“아~ 일요일에 만나서 얘기해줄게. 하하.”
무슨 정신으로 걸어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는 그대로 소파에 뻗었다.
남편과는 냉전이었다. 밤새도록 어디에 있었냐, 뭐 했냐, 카톡을 왜 씹느냐 그 어떤 질문에도 답하지 않았다. 더 귀찮게 굴면, 확 바람이나 피울까, 생각하면서.
주부의 일도 파업이었다. 재훈이와 재인이에게는 좀 미안했지만, 하루 이틀 대충 먹는다고, 엄마가 안 놀아준다고 큰일 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일요일 점심에 한 상 차려주었다. 사과하는 줄로 알고 남편이 방심한 틈을 타, 한 마디 남기고 집을 나왔다.
“저녁 먹고 들어올 거야.”
지아 엄마 차를 타고 10분쯤 갔다. 점점 번화가에서 멀어졌다. 이런 데 괜찮은 미용실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다 멈춘 곳, ‘그대 안의 보석’.
“여기?”
“응, 기분전환 될 거야.”
“너무 허름한데.”
“암튼 들어가 봐. 난 밖에서 기다릴게.”
같이 들어가지 그러냐고 하려다 관뒀다. 딸랑.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할머니가 염색을 하고 있었고, 아줌마 세 명이 소파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기다려야 하나, 하고 생각한 순간 미용사가 말했다.
“뭐 해드릴까?”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미용사를 보고 나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 어제 달다방에서 본 졸부가 서 있었던 것이다.
“어, 어, 제, 제가 바빠서 다음에 다시 올게요.”
나는 허둥대다 문 앞에 있는 화분을 쓰러뜨릴 뻔했다. 밖으로 나오니 지아 엄마가 모퉁이 한쪽에서 죽어라고 깔깔대고 웃고 있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졸부, 여기서 일해. 푸하하하.”
나는 잠시 멍했다가, 이내 지아 엄마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하. 그러니까, 졸부가?”
한참 동안 나도 배꼽이 빠지도록 웃었다.
“나, 우리 클럽에 데려간 똥손이라는 언니가 여기 알려줬어. 언니는 졸부가 데려갔었대.”
“그랬구나. 그런데 그 똥손은 어제 왜 안 나왔어?”
“사라졌어, 갑자기. 클럽에도 안 나오고 연락도 안 돼.”
머리는 관두고 지아 엄마랑 쇼핑하다 저녁 먹고 집에 들어갔다. 홀가분했다. 끔찍한 이야기들에서 놓여난 것 같았다.
월요일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치과에 갔다. 재훈이에게 충치가 생긴 것 같다.
“안녕하세요.”
데스크에 앉은 간호사가 밝게 인사한다.
“예약했어요.”
“아, 그런데 선생님 수술 들어가셨어요. 잠시만 앉아서 기다려주시겠어요?”
나는 재훈이와 재인이에게 책을 읽어주며 기다렸다. 너무 오래 기다린다 생각이 들 즈음, 누군가 안쪽에서 나왔다.
“김재훈 님, 이쪽으로 오세요.”
아이들을 데리고 가다 안쪽에서 나오던 사람과 마주쳤다.
“어머, 언니?”
지아 엄마였다. 예쁜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자기… 여기 치과 다녀?”
“응, 헤헤.”
나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쪽이요.”
간호사가 부른다.
“다음에 얘기해, 언니.”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 치료실로 갔다. 아이를 눕히고 치료하는 치과의사의 입술 끝에 빨간 립스틱이 묻어 있었다.
화요일 오후, 놀이터에서 지아 엄마를 만났다. 혼자였다.
“지아는?”
“응, 일주일 동안 친정에 보냈어. 남편 어제부터 출장이거든. 남편 없이 난 하루도 지아 못 봐.”
“으응… 자유부인 됐네.”
“응. 헤헤. 근데 언니, 같은 치과 다니는 줄 몰랐어. 그 치과의사 괜찮지?”
“글쎄…”
“얼굴 제대로 못 봤나? 미남이잖아. 그리고, 잘해. 진짜 잘해.”
“또 했어?”
“응, 어제. 집에 불렀어.”
“뭐? 집에?”
“응, 낮에 병원에서… 키스만으로 안 되겠는 거야. 키스가 너무…”
지아 엄마는 야릇한 표정이 되었다.
“재훈아! 거기에 올라가면 어떡해! 당장 내려와!”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재인이가 깼다. 유모차에서 빼서 젖을 물렸다.
“오늘도… 오기로 했다?”
“미쳤구나, 둘 다. 어쩌려고 그래?”
“왜, 뭐 어때서. 각자 기분전환 하는 거지.”
나는 헛웃음이 나왔다.
수요일 오후, 놀이터에 지아 엄마가 나타났다. 얼굴이 피어나고 있었다.
“언니. 그 사람 잘해. 정말 잘해. 나 죽을 것같이 좋아.”
나는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나, 이혼할까?”
“뭐?”
“날마다 이렇게 지낸다면… 행복이 따로 있겠어?”
“결혼생활에 섹스가 다는 아니지. 아니, 그리고 지아 놔두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해?”
“그치? 헤헤. 뭐,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라는 거지.”
나는 남편이 미워졌다.
목요일 오후, 나는 놀이터에 앉아 지아 엄마를 기다렸다.
지아 엄마는 나오지 않았다.
금요일 오전 치과에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이 나오지 않으셨어요.”
재훈이 충치치료 예약을 미룬다고 하고 끊었다. 재인이를 재우자마자 지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언니, 집이야? 재훈이 어린이집 갔지? 나 좀 만나줘.”
“무슨 일인데? 재인이 방금 잠들었어. 집으로 와.”
지아 엄마는 헐레벌떡 뛰어왔는지, 전화를 끊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왔다. 커다란 모자를 눌러쓰고 또…
“초여름에 웬 스카프야?”
신발을 벗고 들어오면서 지아 엄마가 모자를 벗었다. 눈이 퉁퉁 부었고, 화장기 없는 얼굴 군데군데 멍 자국이 있었다. 목을 매만지던 지아 엄마가 갑자기 흐느끼기 시작했다.
“언니, 어떡하지? 응? 어떡하지…?”
나는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
지아 엄마는 한참 말을 꺼내지 못하다 겨우 입을 뗐다.
“죽었어. 그이가.”
“지아 아빠가 죽었다고?”
지아 엄마는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 눈이 동그래지더니, 이내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아니… 그 의사. 치과의사.”
“뭐? 치과의사가 죽었어?”
“응, 어제 1박 2일로 여행 갔었어. 어젯밤에 호텔에서 술 마시고… 처음엔 좋았는데, 이 사람이 조금씩 이상해지는 거야. 자꾸 따귀를 때리고… 처음엔 장난인 줄 알고 같이 때렸는데… 점점 심해지더니… 도망가려고 했어. 그런데 못 가게 하고 미친 듯이 섹스를 했어. 그리고 하다가… 목을 조르는 거야… 언니, 나 죽는 줄 알았어, 그때. 정말 숨이 넘어갈 뻔했어.”
지아 엄마가 스카프를 풀고 목을 매만졌다. 붉은 손자국이 선명했다. 나는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르려고 했다.
“그러다 사정하기 직전에… 갑자기 쓰러졌어. 내 배 위로… 나는 겨우 놓여난 줄 알고 빠져나왔는데… 옷을 다 입는 동안 움직이지 않는 거야. 언니… 흐흐흑. 그대로 나와서 밤새 집에서 덜덜 떨고만 있었어… 어떻게 해야 하지? 신고… 하면 나는 이제 끝장인데… 흐흐흑”
나는 망치로 얻어맞은 듯이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야, 시한부… 시한부 남편 직업이 뭐야?”
“응? 시한부 남편? 몰라, 직업 이야기는 못 들은 거 같아.”
“똑같잖아. 시한부가 이야기한 거랑.”
지아 엄마는 망연한 얼굴로 눈알을 굴렸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틀 사이에 10년은 늙어버린 몰골이다.
“그럼 혹시 사이코가…?”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게 아닐까? 시한부 남편은 죽이고 정부는 살인자로 모는… 계략…”
지아 엄마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 아니야…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언니, 나 어떻게 하지?”
“신고해. 가서 다 솔직히 말해. 살인 혐의는 벗잖아, 응?”
“안 돼! 그럼 남편을 어떻게 봐? 지아는… 지아는 어떡해?”
지아 엄마는 미치기 직전인 것 같았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사이코, 사이코를 찾아야 돼.”
지아 엄마는 허겁지겁 모자를 쓰더니 뛰쳐나갔다. 나는 소파에 앉아 가슴을 쓸어내렸다. 긴 한숨이 나왔다.
재인이가 찡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재인이를 데리고 나왔다. 달래지지 앉아, 윗도리를 들춰 젖을 물렸다. 아기는 눈을 감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나도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치과에 전화했다.
“경찰서에 신고했어요. 일단 환자들에게 예약취소 전화 돌려요.”
“네, 사모님.”
나는 버릇처럼 목에 손을 가져갔다. 폴라티가 오늘따라 유난히 갑갑하다고 느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