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매왕

파시는 건가요?

by 모도 헤도헨




해 아래 새것이 없다는 사실은 구은혜에게 진리였다. 모든 것은 단 한순간 새것일 뿐 이후로 영원히 헌 것이다. 그 단 한순간의 새것의 상태에 집착하는 것은 어리석다. 구은혜는 어리석지 않았으므로, 새것을 사지 않았다.


시작은 임부복이었다. 임신을 하고 살이 찌고 배가 불러오자 그때까지 입었던 옷들은 무용지물이었다. 임부복이란 걸 사려고 보니, 기본 티셔츠만 해도 품이 좀 더 클 뿐인데 질 좋은 블라우스 값이었고, 바지 역시 만듦새에 좀 더 손이 간다 해도 평소 사 입던 것보다 두 배 이상 비쌌다. 브라, 팬티 같은 날마다 입어서 몇 벌이나 필요한 속옷이나, 간절기나 겨울철에 날마다 걸칠 외투는 브랜드 제품처럼 값이 나갔고, 필요한 날이 한두 번뿐이라도 안 살 수가 없는 예복 역시 턱없이 비쌌다. (물론 어떤 물건이나 아주 싼 것은 있기 마련이지만 불편해도 너무 불편했고 조악했으므로 그런 것으로만 사 입을 수는 없었다.)


한 번도 부유한 적이 없었던 구은혜는 처음엔 임산부의 특권이라도 되는 양, 얼마 입지도 않을 옷이지만 임부복을 파는 전문 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비했다가, 곧 이것이 얼마나 불합리한 소비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온라인 동네카페에서 우연히, 그러나 운명처럼 ‘임부복 일괄 판매’란 글을 보게 되었다.




임부복 일괄 판매합니다.

사용감 있는 것도 있고 거의 새 옷도 있습니다.


레깅스 3,

청바지 2,

기본티 5,

원피스 2,

후드티 1


총 13벌 3만원에 팝니다.

(원하시면 속옷도 드려요.)




한 벌 값으로 저렇게나 많이! 구은혜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였다. 동네카페는 가끔 맛집 검색하러 들어갈 뿐, 이곳에서 이런 거래가 이루어지는 줄은 몰랐다. 당장 사야겠다고 판단이 든 순간, 이미 달린 다섯 개의 댓글이 보였다.




ㅡ제가 살게요!

ㅡ불발되면 저요!!

ㅡ줄 서요~

ㅡ줄 서요!

ㅡ저도 줄이요ㅠ




구은혜는 마지막 남은 특가상품을 놓친 것처럼 아쉬웠다.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이 동네에 임신했던 사람이 이 사람 한 명은 아닐 테니까, 하고 생각했다. 이후로 구은혜는 카페에 날마다 들락날락하다가, ‘판매 게시판’이란 게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판매 글을 쭈욱 훑어본 결과 임부복을 파는 글이 자주는 아니지만 간간이 그리고 꾸준히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리고 물건이나 가격이 괜찮아 살 만하다 생각되는 글에는 글이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첫 댓글이 달린다는 것도. 어떻게 이렇게 빨리? 구은혜는 검색을 통해 카페에 키워드를 설정해놓으면 알림이 뜬다는 걸 알았고, 카페 앱을 깔고 알림 설정을 해놓았다. 키워드는 ‘임부복’.


알림이 뜨면 바로 들어가 글을 보던 어느 날 구은혜는 첫 거래에 성공했다. 2만 원에 임부복 상의 네 벌이었다.




ㅡ제가 사고 싶습니다.




댓글을 달고, 글쓴이에게 챗을 걸었다.




ㅡ안녕하세요. 방금 임부복 사겠다고 댓글 단 사람이에요.

ㅡ안녕하세요~ 여기 처음마을 101동 202호에요. 언제 오시겠어요?

ㅡ괜찮으시면 내일 점심쯤 찾아가겠습니다.

ㅡ내일은 제가 집에 없어서...

ㅡ아, 그럼 토요일 오전 11시쯤은 어떠세요?

ㅡ네, 괜찮아요. 그럼 그날 뵐게요^^




기다리던 토요일 오전 11시, 구은혜는 글쓴이의 주소로 찾아갔다. 공동현관 앞에서 벨을 눌렀다. 디리리링. 구은혜는 잠시 난처한 기분이 들었다. 뭐라고 해야 할까. '옷 사러 왔어요'?


다행히 문은 바로 열렸다. ‘아기가 자고 있으니 노크해주세요’가 붙은 현관문 앞에서 구은혜는 다시 한번 민망한 기분이 들었고, 마른손을 비비며 노크했다. 똑똑. 문이 열렸고 아이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한 여자가 쇼핑백을 내밀었다. 구은혜는 2만 원을 내밀고 쇼핑백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순식간에 거래가 끝났다.


집에 와서 입어보니 새 옷 같지는 않아도 깔끔하니 입을 만했다. 윗도리는 더 사지 않아도 되겠다, 싶었다. 구은혜는 흡족했다.


더 자주 동네카페에 드나들었다. 판매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던 구은혜는 키워드를 추가했다. ‘임부 레깅스’, ‘임부 원피스’, ‘임부 속옷’.


이후 네 번의 거래를 더 하면서, 임부용 스타킹과 브라와 내의와 레깅스와 원피스와 외투를 구입했고, 대체로 만족했다.


더 자주 동네카페에 드나들다가 어떤 글에서 ‘같은 글을 중고세상에도 올렸습니다.’란 문구를 보았고, ‘중고세상’이란 카페를 발견했다. 동네카페가 5일장이라면 중고세상은 연중무휴 대형 아울렛이었다. 훨씬 더 자주, 훨씬 더 많은 물건들이 판매되었을 뿐 아니라, 동네가 아니라 전국 모든 곳의 사람들과 거래할 수 있었다. 택배비가 추가되긴 했지만 직접 가는 것보다 훨씬 수월하게 거래할 수 있었다.


구은혜는 중고세상에서 ‘임신/출산 게시판’을 뻔질나게 드나들었고, 이미 임부복은 출산 전까지 입을 만큼 있었지만 더 예쁘면서 더 쓸 만한 임부복을 세 번 더 샀다. 자신처럼 얼마 전까지 임산부였던 한 여자가 입었던 옷을 직접 포장해서 부친 택배를 받고 구은혜는 왠지 신나기도 하고 재미나기도 했다.


더 자주 중고세상의 임신/출산 게시판에 드나들다가 어떤 글에서 ‘이 옷은 수유복으로도 입을 수 있습니다.’란 문구를 보았고, 조만간 수유복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구은혜는 키워드를 추가했다. ‘수유복’.


알림은 자주 떴다. 자고 일어나면 열 개가 넘게 와 있을 때도 있었다.




수유복 팔아요~

모유수유 실패해서 완전 새 옷이에요.ㅠㅜ


수유 브라 3,

수유 나시 2,

수유티 5.


총 10벌입니다.

택비 포함 일괄 3.5에 팝니다.




구은혜는 글에 나와 있는 안심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제가 구매하겠습니다.” 잠시 후 답문이 왔다. “방금 거래 완료요.” 구은혜는 몇 번의 거래 시도 끝에 중고세상에서는 글도 자주 올라왔지만 거래도 훨씬 빨리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키워드를 추가했다. ‘수유티’, ‘수유 나시’, ‘수유 브라’, ‘수유 원피스’.


구은혜는 자다가도 알림이 뜨면 카페에 접속했고, 누군가에게 또 뒤질세라 즉각 문자를 보냈다. 수유복이 얼마나 필요할지, 어떤 수유복이 자신에게 적당할지도 몰랐지만, 안 맞으면 되팔면 그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물품과 가격이 웬만하면 거래를 시도했다.


이제 자신처럼 얼마 전까지 임산부였고, 출산 후 아기에게 젖을 주었던 한 여자가 입었던 옷을 직접 포장해서 부친 택배를 받았고, 구은혜는 자못 설레기도 하고 벅차기도 했다.


구은혜는 출산했고, 어렵게 모유수유에 성공했고, 자신이 상상조차 못했던 아기에게 매인 삶을 맞이했다. 그러나 구은혜에게는 휴대폰이 있었고, 중고세상이 있었다. 그리고 아기를 키우면서 필요한 것은 언제나, 새롭게 넘쳐났다. 키워드를 추가했다. ‘수유패드’, ‘유축기’.


구은혜는 체형이 바뀌었고, 완전모유수유를 했기 때문에 이제 임신 전이나 임신 때 입었던 옷 모두 무용지물이었다. 입을 수 있는 옷은 수유복뿐이었다. 수유복을 더 사들였다. 그리고 수유복과 함께 파는 아기 옷을 보고, 아기는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는 사실과 선물 받은 옷이 곧 맞지 않게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는 키워드를 추가했다. ‘아기 내복’, ‘우주복’, ‘여아 옷 일괄’.


키워드를 잘못 설정하면 (이를테면 ‘아기 옷’, ‘백일’, ‘80’) 한 시간 사이에 수십 개의 알람이 올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띄어쓰기에 따라서 (이를테면 ‘아기내복’과 ‘아기 내복’은 다르다) 알림을 받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에 알람 설정을 세심하게 해야 했다. 구은혜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자신에게 알맞게 키워드를 설정해 놓았고, 지루하지 않고 정신없지 않을 만큼 알람이 떴다. 그리고 자신처럼 얼마 전까지 임산부였고 출산 후 아기에게 젖을 주었던 한 여자가 입었던 옷이나, 자신처럼 얼마 전에 여자 아기를 낳고 키우는 한 여자가 아기에게 입혔던 옷을 직접 포장해서 부친 택배를 받고 구은혜는 제법 뿌듯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했다.


그렇게 산 옷들 가운데는 얼룩이 있거나 보풀이 많아서 받자마자 버려야 할 것도 있고 자신의 미적 취향에 맞지 않아서 입을까(입힐까) 싶은 것도 있었지만, 대체로 거의 새 옷에 가까운 한 철 입은 옷들이었다. 구은혜는 자연스럽게 키워드를 추가했다. ‘손싸개’, ‘아기 양말’, ‘보행기’, ‘애벌레 인형’, ‘사운드북’, ‘러닝홈’, ‘이유식 마스터기’, ‘돌잡이 수학’…


구은혜는 아기를 위해 중고세상에서 월령마다 다르게 필요한 옷과 신발, 장난감, 아기용품, 전집을 샀다. 어떤 필요한 것도 중고세상에서 검색하면 당연하다는 듯이 있었고, 그것을 두고 새로 산다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됐다. 키워드 설정을 잘 해놓고 부지런히 카페를 이용하면 가성비 좋은 물품들을 제때 구할 수 있었다. 구은혜는 자신의 검소한 마음씨와 합리적인 소비에 스스로 감탄했다.


둘째를 임신하고 아들을 출산하는 동안 모든 과정은 반복됐고, 첫째가 크는 만큼 새로 필요한 것들은 그에 따라 구비되었으며, 자신의 것뿐 아니라 남편의 옷이나 신발, 가방도 구입했고, 나아가 그릇, 옷걸이, 책장이나 서랍 등 생활용품과 가구 등도 동네카페나 중고세상에서 해결했다.


구은혜는 필요 없어진 물건은 팔기도 했다. 사진을 찍고 가격을 매기고 물품의 내력과 상태를 간단히 쓰거나 혹은 스토리로 엮어서 동네카페나 중고세상의 판매 게시판에 올렸다. 처분을 쉽게 하기 위해서는 헐값에 올려야 했다. 택배 포장과 발송에 드는 품을 아끼기 위해서는 일괄로 묶어 판매하는 게 좋았다.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사진을 예쁘게 찍고, 적당한 가격을 고민하고, 사람들이 사고 싶게 글을 쓰고, 거래 요청이나 문의에 일일이 대응하고, 포장을 하고, 택배 거래일 경우 택배를 부치고, 직거래일 경우 만날 시간을 맞추고… 따라서 필요 없어질 때 바로 팔지 못하기도 했고, 안 팔리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물건은 잘 없어지지 않았고, 돈도 그다지 가계에 보탬이 된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쨌든 이제 키워드 알림이 뜨지 않아도, 구은혜는 수시로 중고세상에 접속했다. 근처에 마땅히 쇼핑할 만한 데도 없고, 아이 데리고 맘대로 쇼핑을 못한다는 핑계가 있었지만, 무엇보다 중고거래가 주는 매력이 있었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살 가능성이 많은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그것이 ‘거래’라는 점이 그랬다. 구은혜는 끊임없이 올라오는 글 중에 가성비가 좋은 물건, 쓸 만한 물건을 골라내고, 수많은 사람들과 가격을 흥정하기도 했으며, 직거래, 택배 거래 등 거래방법을 결정하고, 거래일을 맞췄다. 제때 입금하고 대응을 얼마나 빨리, 어떤 식으로 하느냐에 따라 평판을 얻기도 했고, 신뢰를 쌓기도 했다. 이 모든 과정이, 임신하면서부터 집에 있었고, 출산 후 친구조차 만나지 못하고, 사회적 자아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구은혜에게 사회적 자아로서의 인정욕구를 단편적으로나마 충족시켰다. 중고세상은 구은혜의 일상이자 삶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남편 진중길은 이해하지 못했다.


“이거 어디서 난 거야?”


“어디서 나긴, 샀지.”


“어디서?”


“… 좋은 거야. 좋은 건데 싸게 샀어.”


“새거 아니지? 또 중고 산 거지?”


“중고라고 해도 그거 실사용 2회래. 그런데 얼마에 산 줄 알아? 다른 색깔 티랑 같이 해서 만 5천 원에 샀어!”


진중길은 몸서리쳤다.


“제발! 새 옷 입자.”


“거의 새 옷이라니까? 진짜 새 옷은 오히려 약품 그대로 있고 안 좋아. 아이 옷도 그래서 일부러 중고로 사는 것도 있어.”


“옷장을 봐. 옷은 넘쳐나는데 쓸 만한 옷은 없잖아. 신발장을 보라구. 좋은 거 하나 사서 아끼면서 오래오래 신는 게 난 더 좋아. 이렇게 싸게 낡은 거 구하면 물건 귀한 줄도 모른다고. 그냥 나도 막 입고, 막 신고, 막 사용하게 된다고. 아이들도 물건에 대한 소중함을 배우지 못하잖아.”


“아이 운동화 한 켤레에 얼만 줄 알아? 못해도 5만 원이야. 그 돈이면 중고로 몇 켤레를 산다고. 내 가방 하나 제대로 사려면 얼마인 줄 알아? 우리 형편에 살 생각도 못해. 애들 전집은 중고로 나온 게 새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외식 한 번 하는 값에 살 수 있어. 자전거나 킥보드는 밖에서 몇 번 타면 어차피 중고랑 똑같아져. 또…”


진중길은 허름한 옷을 입은 채로 낡고 바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구은혜는 생각했다. 남편을 팔면 얼마일까?




남자 사람 팝니다.

나이 41세, 당분간 수입 있음, 가사 못함, 사용감 많음, 직거래만 가능, 가격 흥정 가능, 반품 불가.




구은혜는 헤어 나오지 못했다.




이제 가격이 싸고 물건이 괜찮기만 하면, 당장 필요가 없어도 일단 사두었다. 그렇게 중고세상에서 옷을 사는 데 쓰는 돈이 새 옷을 입을 만큼 사는 데 쓰는 돈과 비슷해지고, 그렇게 중고세상에서 책을 사는 데 쓰는 돈이 새 책을 읽을 만큼 사는 데 쓰는 돈과 비슷해지고, 그렇게 중고세상에서 가재도구를 사는 데 쓰는 돈이 새 가재도구를 필요한 만큼 사는 데 쓰는 돈과 비슷해지고… 그래도 구은혜는 생각했다. 언젠가 필요할 것이다. 이건 정말 괜찮은 물건을 싸게 잘 산 것이다. 그래서 구은혜는 만족했다. 이렇게 많이 샀는데 돈은 이만큼밖에 들지 않았어. 이제 필요한 게 집에 다 있어. 든든해. 구은혜가 중고세상에서 유명한 큰손이 되어가는 동안 구은혜의 집은 중고거래로 산 물건들로 착착 채워졌다.


어느 날, 구은혜는 평소처럼 중고세상에 접속했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여자 속옷세트 일괄 판매


실사용 1회 미만 혹은 시착만 한 택채 새 상품입니다.

모두 유명 브랜드 제품이고요.

브라 사이즈 80B, 팬티 사이즈 90.


총 5세트, 운포 1만 원에 팝니다.




자신의 사이즈였다. 구은혜의 손가락이 반사적으로 움직였다.


<저요>


문자를 보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정도면 일빠겠지? 바로 이어 문자를 보냈다.


<제가 살게요. 계좌번호 주세요.>


답장이 왔다.


<아이코. 깜짝 놀랐어요. 빠르시네요.^^>


구은혜는 알려준 계좌번호로 바로 입금했고, 자신의 주소를 문자로 보냈다. 이틀 후 택배를 받은 구은혜는 가슴이 찌릿했다. 정말 말 그대로 새것이었다. 다시 한번 자신의 알뜰하고 지혜로운 소비에 뿌듯했다. 역시!


구은혜는 중고세상에 접속해 판매자의 글을 다시 찾았다. 그리고 이전 판매 내역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뻔했다. 이번 판매와 마찬가지로 정말 좋은 물건들을 모두 헐값에 팔았다. 판매자 ‘심플뷰티’를 알림 설정해놓았다. 이제 그녀가 글을 올리는 대로 알림이 올 것이다.


알림은 대중없이 떴다. 아침에 뜨기도 했고 저녁에 뜨기도 했으며, 한밤 중 연달아 뜨기도 했고, 며칠 동안 조용하기도 했다. 구은혜는 알림이 뜰 때마다 쏜살같이 중고세상에 접속해 내용을 확인하자마자 문자를 보냈다.


<저요>


그런데 이렇게 하는데도,


<죄송해요. 먼저 문자 주신 분이 계셔서요.>


라는 답을 받을 때가 많았다. 어떤 경우엔 답문조차 없었다. 심플뷰티의 글을 알림 설정해 놓은 사람들이 자신 말고도 많을 것임을 구은혜는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제부터는 알림이 뜨면 중고세상에 접속하지도 않고 무엇을 파는지도 모른 채 저장해놓은 휴대폰 번호로 당장 문자를 보냈다.


<저요>


거래가 성사되는 비율이 반 정도였다. 몸이 달았다. 구은혜는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다른 모든 거래, 아니 다른 모든 일을 제쳐놓고 ‘심플뷰티’의 글에 올라온 물건을 사는 데 온 에너지를 쏟았다. 곧 심플뷰티가 파는 물건 중 열에 아홉은 구은혜에게 돌아갔다.


구은혜가 심플뷰티에게 산 물건은 그야말로 모든 종류였다. 속옷, 겉옷, 신발, 가방, 화장품은 물론, 수건, 수저, 그릇 등의 가재도구, 스탠드, 스피커 등의 전자기기, 의자, 스툴 등 가구, 그리고 각종 먹거리까지 총망라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물건들은 하나같이 새것과 같은 상태였고, 헐값이라 할 만한 가격이었다. 이제 구은혜의 집은 심플뷰티의 물건으로 착착 채워졌다. 그 어느 때보다도 만족도가 높았다. 구은혜는 당장 쓸모가 없어도, 집안에 놓을 데가 없어도 개의치 않았다. 경쟁자들을 제치고 심플뷰티의 물건을 살 수 있었다는 데에, 그리고 가성비 높은 물건들을 갖게 되었다는 데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감을 얻었다.


며칠 동안 잠잠한 심플뷰티의 글을 목 빠지게 기다리던 어느 날, 구은혜는 아이디 ‘simplebeauty’로 그녀의 블로그를 찾아냈다. 그리고… 그녀가 올리는 ‘simple life’에 충격을 받았다.


심플뷰티는 그리 크지 않은 집에 혼자 살았다. 집은 한 마디로, 하얗고 환하고 말끔했다. 거실엔 커다란 창이 있고, 하얀색 무명천으로 된 커튼이 달렸다. 한쪽 벽에는 벽걸이 티비와 엘이디 시계, 맞은편 벽에는 소파베드가 놓였다. 모퉁이에는 원목으로 된 책상과 의자, 책상 위에는 책꽂이와 노트북, 계절에 따라 다른 꽃이 꽂힌 꽃병이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안방 역시 커다란 창에 하얀 무명천의 커튼이 달렸고, 하얀색 매트리스에는 하얀색 이불과 베개가 있었다. 침대 맞은편에 원목의 서랍장이 하나, 그리고 그 위에 원목의 큐브 시계가 놓였고, 벽에 동그란 거울이 달렸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작은방엔 벽장이 있었고, 그 안 선반에는 계절과 다른 옷 몇 벌과 가방, 모자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벽장 맞은편에 놓인 원목의 옷걸이에는 하얀색 상의가 서너 벌, 청바지와 면바지와 슬랙스, 외투 등이 한 벌씩 걸려 있었다. 다른 벽에는 연필로 그린 그림이 액자에 걸렸고, 구석에 라탄바구니가 놓였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주방에는 작은 식탁과 의자가 두 개 있었고, 식탁 쪽 벽에는 아주 작은 바구니 안에 이름 모를 식물이 자라고 있었다. 한쪽에 냉장고가 있었고, 인덕션 2구가 매립된 싱크대 위는 식탁처럼 비어 있었다. 위의 찬장을 열면 흰색의 그릇과 컵이 크기마다 두 벌씩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었고, 싱크대 바로 아래 서랍에는 커트러리가, 그 아래엔 스텐 뚜껑이 달린 양념통 몇 개가 가지런히 놓였다. 아래 찬장에는 냄비 하나, 프라이팬 하나, 밥솥이 하나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화장실 선반엔 칫솔과 치약, 그리고 올인원 워시가 스텐 뚜껑이 달린 통에 들어 있었다. 새하얀 수건과 화장지가 들어 있는 장이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용도실엔 세탁기, 그리고 그 위 선반에 세제와 구연산이 들어 있는 스텐 뚜껑이 달린 통 두 개가 있었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단순하고 간소한 살림살이가 자리잡히는 과정이 블로그에 그대로 남겨져 있었고, 있다가 없어진 물건들은 대부분 중고세상에 나와 있었다. 이후로도 가끔 구조가 바뀌기도 했고, 있던 물건이 없어지거나 새로운 물건으로 대체되기도 했지만, ‘자신의 취향에 맞는 질 좋은 물건을 오래도록 아끼며 쓴다’는 신조에 맞게 큰 변동은 없는 것 같았다. 자신이 쓰던 것 외에도 중고세상에 꾸준히 판매하는 물건들은 자신이 받은 선물 등 이래저래 들어온 물건을 파는 것이라고 했다.


구은혜는 며칠에 걸쳐 심플뷰티의 블로그에 올라온 수백 개의 글과 사진을 보고 또 보았다. 처음에는 재미있고 신기했고, 나중엔 아름다움에 전율했으며, 결국엔 가슴속에서 무언가 끓어오르는 듯했다. 저렇게 사는 건 어떤 걸까? 저렇게 살면 어떤 기분일까?


구은혜는 자신의 집을 둘러보았다. 물건들로, 그것도 누구에게 언제 쓸모가 있을지 모르는 물건들로 가득 차 있었다. 새것도 아니면서 이 집에 와서 단 한 번도 손이 닿지 않은 물건들이 대부분이었다. 흡사 ‘정다운가게’ 같았다. 어느 누가 들어와서 고르다 몇백 원 혹은 몇천 원 내고 가져간다 한들 이상할 게 없었다.


심플뷰티가 유명한 정리 컨설턴트의 말이라며 자주 인용했던,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의 물건 중에 버리지 않을 물건은 하나도 없었다. 단 하나의 물건도 설레지 않았다. 싸게 취해서 득템했다는 짧은 기쁨만 기억날 뿐이었다. 취향도 일관되지 않았다. 쓸 만한 물건이 적당한 값에 나오면 샀을 뿐, 심혈을 기울여 팔려고 내놓은 수많은 새 제품 중에 자신이 미적으로 끌려 고른 것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구은혜는 자신의 미적 취향이 어떠했는지 기억할 수 없었다. 심플뷰티의 집은 구은혜의 잠자고 있는 미감을 꿈틀거리게 했다.


구은혜는 다시 한번 자신의 집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그동안 나는 돈을 들여 쓰레기를 모은 것이 아닐까?


그때 알림이 떴다. 심플뷰티였다. 구은혜는 반사적으로 저장된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저요>


잠시 후 답문이 왔다.


<안녕하세요~ 구은혜 님이시군요. ^^>


구은혜는


<직거래 하고 싶습니다.>


라고 문자를 보냈다. 잠시 후 답문이 왔다.


<죄송하지만, 저는 택배 거래만 합니다.>


<알겠습니다. 계좌이체 하겠습니다.>


구은혜는 이틀 후 심플뷰티에게서 은색 플랫슈즈를 받았다. 택배 봉투를 가만히 쳐다보던 구은혜는 ‘보낸 사람’에 시선을 고정했다.




서울시 노재구 간소동 고품길로 7, 303동 1212호 신단아




다음날 아침 구은혜는 나갈 채비를 했다. 신단아에게서 산 브라와 팬티, 원피스를 입고, 신단아에게서 산 가방에 신단아에게서 산 지갑을 넣어 멨다. 신단아에게서 산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신단아에게서 산 고데기로 머리를 말았다. 신단아에게서 산 토스터기와 커피포트로 아침을 차려 먹고 신단아에게서 산 플랫슈즈를 신고 집을 나섰다.


연식이 오래된 낡은 중고차를 타고 30분쯤 갔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운 구은혜는 숨을 골랐다. 할 말을 연습했다. 안녕하세요.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블로그 보고 감동 받았습니다. 궁금한 게 많습니다.


잠시 후 입을 굳게 다문 구은혜는 차에서 나와 303동으로 발을 옮겼다. 만약 문전박대를 당한다 해도… 심플뷰티를 만난 것으로, 그녀를 본 것으로 만족해야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으로 올라갔다. 12층에 내린 구은혜는 12호를 찾았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구은혜는 심장이 두방망이질하는 소리를 들었다. 문 앞에서 벨을 누르려던 구은혜의 앞을 문 앞에 가득 쌓인 택배 상자가 가로막았다.


손을 뻗어 벨을 눌렀다. 딩동. 정적. 딩동. 정적. 딩동딩동. 정적.


차로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는데 문 안쪽에서 신경질 가득한 소리가 문을 뚫을 듯 튀어나왔다.


“문 앞에 두고 가시라고요!”


구은혜는 깜짝 놀랐다. 천천히 문을 두드렸다. 똑똑.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고, 중년의 여자가 나타났다. 여자는 단정한 숏커트에 자연스런 화장을 하고 있었는데, 미간에 주름이 생생하게 잡혀 있었다.


“당신 뭐야? 무슨 일이야?”


얼마나 화가 난 건지 여자의 콧구멍은 벌렁거리고 입술은 부르르 떨렸다.


“저, 저… 잘못 찾아온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얼빠진 듯 서 있는 구은혜의 눈앞에서 여자는 궁시렁거리며 문을 쾅 닫았다. 구은혜는 망연히 뒤돌았고 그때 택배 상자 위쪽에 붙은 송장에 쓰인 ‘받는 사람 신단아’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구은혜는 획 돌아서서 문을 두드렸다. 쾅쾅! 쾅쾅!


다시 한번 문이 벌컥 열렸고, 미간의 주름이 잡힌 여자가 뭐라고 내뱉으려는 순간 구은혜가 말했다.


“신단아 씨?”


여자는 잠시 입을 벌린 채로 있다가 짧게 대답했다.


“네, 그런데요.”


“심플뷰티 님?”


구은혜는 눈을 가늘게 떴고, 신단아는 눈 깜짝할 사이에 인상을 풀었다. 그리고 눈을 내리깔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맞아요. 어떻게 오셨죠?”


“저는… 구은혜예요.”


구은혜는 침을 꼴깍 삼켰다.


신단아는 구은혜, 구은혜를 중얼거리다 이내 알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아~ 구은혜 님! 들어오세요.”


“네? 들어가도 될까요?”


“네, 들어오세요.”


구은혜가 들어서며 신발을 벗을 때 신단아가 말했다.


“호호, 이틀 전에 보낸 신발이 돌아왔네요.”


“물건은… 돌고 도는 거니까요.”


구은혜는 문밖과 같이 현관에 잔뜩 쌓인 택배 상자들을 피해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쪽으로 오세요.”


집안은 블로그에서 본 것처럼 하얗고 환하고 말끔했는데, 어딘가 어색했다. 구은혜는 고개를 갸웃하며 신단아가 안내하는 대로 식탁으로 갔다.


“차를 드릴게요. 좋은 홍차가 있어요. 맛있는 마들렌이랑.”


싱크대 위에는 블로그 사진에 없던 명품브랜드의 티포트가 있었고, 신단아는 거기에 물을 끓였다.


“저 티포트는…”


“아, 선물 받은 건데 처분할 거예요. 이거, 오신 김에 가져가실래요?”


구은혜는 눈을 천천히 깜빡이다 말했다.


“파시는 건가요?”


“호호. 여기까지 오셨는데, 그냥 가져가세요. 어차피 처분하려던 거니까.”


생긋 웃는 그녀의 얼굴은 아까 문을 열었을 때의 짜증과 분노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아 참, 그리고 속옷도 몇 세트 더 있는데 그것도 가져가세요. 그건 새것은 아니고 제가 한두 번 입었던 거예요. 미니멀리스트들도 자신들이 포기하지 못하는 딱 한 가지는 넉넉하게 소유하는 거 알죠? 저는 그게… 속옷이어서. 호호.”


구은혜는 홍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어쩐 일로 오신 거예요?”


“한번… 뵙고 싶었어요. 어떤 분이신지.”


“아, 그래요? 난 또, 물건 좀 팔아달라고… 사정하러 오신 줄 알았어요. 호호.”


구은혜의 얼굴이 붉어졌다.


“어쨌든 실망하셨겠네?”


신단아가 준 홍차는 좋은 향과 달리 끝맛이 썼다. 잔을 내려놓았다. 냉장고 옆에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냄비세트와 그릇들이 보였다.


“인터뷰 가끔 하는데… 잘 숨겨놓거든. 그런데 오늘은 당했네. 급습을 하셔서. 호호.”


신단아가 홍차를 들이키며 구은혜를 보았다. 신단아의 아이라인이 파르르 떨렸다.


“없이 살려고 하는데, 물욕을 어쩔 수 없을 때 그동안 잘 참았다고 나한테 선물을 하지요. 그래도 바로바로 처분하니 결국엔 언제나, 미니멀 해요.”


신단아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입꼬리를 올리며 덧붙였다.


“이래저래 사람들이 저를 많이 좋아해요. 호호.”


구은혜는 말없이 마들렌을 씹었다. 과하게 달고 진득였다.


“모르는 척해줄 거죠?”


“네?”


“여기 왔다 간 거랑, 뭐, 이런저런 것들.”


신단아는 티포트와 냉장고 옆의 물건들과 거실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구은혜를 신단아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소파베드 옆과 책상 아래 물건들이 어지러이 놓인 것을 보았다.


구은혜는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고 신물이 올라왔다.


“속이… 좋지 않아요. 화, 화장실 좀…”


신단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화장실을 가리켰다. 황급히 화장실로 가는 구은혜의 눈에 작은방 문틈으로 옷가지들이 바닥에 널려 있는 것이 보였다. 화장실 선반에는 샴푸를 비롯한 갖가지 통이 늘어져 있었다. 구은혜는 변기에 토했다. 위액과 섞인 홍차와 짓이겨진 마들렌이 인분 같아서 다시 한번 구역질이 올라왔고 구은혜는 신음하며 물을 내렸다.


“저, 그만 가볼게요.”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구은혜는 현관으로 갔다. 신단아가 주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티포트랑 속옷 챙겨가요.”


“아니에요. 생각해 보니, 제 스타일이 아닌 것 같아요.”


구은혜는 택배 상자들을 헤치며 신단아의 집을 나왔다.




가정벼룩 합니다.


저희 집에서 벼룩시장을 열려고 합니다.

이번주 금, 토, 일 3일간 오전 11시부터 5시까지입니다.

편하게 오셔서 보세요.

옷 한 벌 천 원, 전집 한 질 만 원,

나머지는 그 사이 가격입니다.




며칠 후 구은혜는 동네카페에 글을 올렸고, 남편과 아이들이 따로 빼놓은 몇 가지 외에 물건들을 모두 내놓았다. 그동안 구은혜가 구매한 질 좋고 싼 물건들은 아주 잘 팔렸다. 이제 구은혜의 집은 신단아가 블로그에 올려놓은 집과 비슷했다. 다른 점은 그것들이 비싸지 않은 헌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물건들마저도 구은혜에게는 그다지 설레지 않았다. 구은혜는 생각했다. 물건들이 굳이 설레야 하나? 어차피 모든 것은 한순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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