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다 누군가

네가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by 모도 헤도헨

거미줄에 걸린 마른 나뭇잎처럼 별들이 하늘에 걸쳐지면 나는 눈을 떴다. 다시 잠을 청하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ㅡ딸깍. 문이 열린다. 급한 발걸음.



한참을 뒤척였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리고, 나는 멍하니 그 노래를 들었다. 눈앞의 모든 것이 스왁 소리를 내며 내 몸 안으로 순식간에 흡입되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밖은 깜깜하네
내 마음도 어둡기만 하네
하지만 별이 있지
내 곁에는 당신이 있지
고요하네 잠잠하네



감은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나는 새벽까지 그대로 몸을 웅크린 채 노래를 듣곤 했다.



저기 저 손가락질을 하며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여자는 뭐가 그렇게 화가 나는 걸까. 나는 얼른 차 문을 열고 나와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초보여서… 주차를 잘 못하겠어요. 실례지만… 대신 해주시겠어요?”

그 여자는 내가 초보라는 말에 그런 건지, 아니면 나의 불뚝하니 나온 배를 보고 그런 건지, 이내 화를 누그러뜨리고 내게로 와 차키를 받아들었다. 내 차 운전석에 앉아 능숙하게 평행주차를 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인도 한구석에서 내가 초라하다고 느꼈다. 내게 차키를 건네주고는 곧 자기 차로 가서 갈 길로 갔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내가 주차하는 걸 도와주러 나와서 나보다 더 초라하게 서 있는 엄마에게 멋쩍게 웃었다.

“곧 잘하게 되겠지, 너도.”

격려가 위로가 되었다는 듯, 나는 활짝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팔짱을 끼고 슈퍼마켓에 들어가 필요한 것들을 골랐다. 나는 엄마에게 오징어를 넣은 부침개와 명란젓을 넣은 달걀찜, 그리고 새우와 버섯을 잔뜩 넣은 스파게티를 해달라고 했다.

“스파게티는 내가 너에게 해준 적이 없는데. 인터넷 보면 나와 있겠지?”

“응, 그럼요. 엄마는 대충 보면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벌써부터 군침이 돌았다.

엄마는 차근차근 그러나 뚝딱뚝딱 요리를 해내어 식탁에 올려놓았다. 나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가끔 헤헤거리면서 오징어김치부침개와 명란달걀찜, 새우버섯스파게티를 해치웠다.

“홀몸도 아닌데 먹어야지, 뭐라도. 몸이 그렇게 비쩍 마르도록… 에휴.”

“…”

“그래서 김 서방은 좋아해?”

“…”

나는 갑자기 말을 해야 해서 마냥 행복한 기분에서 빠져나오고 말았다.

“좋아해요, 당연히….”

“으이그, 쯧쯧.”

나는 목이 멨지만 다시 입을 볼록하게 하고 먹었다. 엄마는 내 집을 둘러봤다.

“너무 더럽지 않니?”

나는 엄마를 따라 집안을 둘러보면서 다 씹지도 않은 것을 그대로 삼켰다. 엄마는 일어나 걸레를 들어 집안 여기저기를 닦았다. 나는 엄마를 바라보다가 그릇을 다 비우고 침대로 들어가 누웠다.

“엄마, 가지 마.”

“가야지. 어떻게 안 가니. 다시 올게.”

나는 엄마를 붙들려고 손을 뻗었지만 엄마는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울었다. 울다가 일어나 주방으로 갔다. 오징어와 달걀과 명란젓과 새우와 버섯과 스파게티 소스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거실을 지나는데 가늘어진 다리가 휘청거렸다. 걸레를 가지고 와서 무릎을 꿇고 천천히 바닥을 닦았다.

쓰러질 듯 침대에 누워 머릿속에서 노래를 꺼냈다.



한 아이가 있어
눈물을 먹고 자라는 아이가 있어
살은 물처럼 하늘하늘하고
울음소리는 입에서 물줄기가 흘러나오는 것 같지
한 아이가 있어
흐를수록 맑아지는 아이가 있어



밤마다 들려오는 노래는 같기도 했고 다르기도 했다. 다시 잠이 들 때까지 몇 번이고 반복되고 이어지는 노래는 나에게 스며들었다.

그이가 왔다. 흰머리가 자연스럽게 섞인 직모는 부드럽게 하늘로 솟았고, 양 볼에는 보조개 같은 주름이 길게 패어있다. 나는 그가 웃을 때마다 그려지는 긴 보조개를 보며 따라 웃을 수 있었다.

“오꼬노미야끼를 사왔어요. 낮엔 뭐 좀 먹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엄마가 다녀가셨어요. 엄마가 해주시는 건 다 맛있으니까.”

그는 주방 한쪽의 쓰레기통에 담긴 오징어 등을 보고 들릴 듯 말 듯 한숨을 내쉬었다.

식탁에 오꼬노미야끼와 수저를 챙겨놓고,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조금 입에 넣었다. 하지만 더 이상 먹지 못하고 웃어 보였다.

“괜찮아요. 그거라도 먹어서 다행이에요. 그리고… 집이 너무 깨끗해요. 청소는 내가 할 테니까 하지 말아요.”

“엄마가 지저분하다고…. 엄마가 좀 깔끔하세요.”

그가 마른세수를 했다.



그이는 요가원에서 만났다. 그의 자세는 너무 완벽했고 몸은 아름다웠다. 나는 그의 자세를 보느라 내 자세를 놓치곤 했다. 나도 모르게 그의 몸을 흘끔거리다 그와 눈을 마주치는 일이 많았다. 그러면 그는 보일 듯 말 듯 살짝 웃었는데 그때마다 볼에 긴 주름이 생겼고, 그것 또한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그 주름을 보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자꾸 그를 쳐다보게 되었다. 그가 오는 날을 나도 모르게 기다렸고, 그가 오지 않는 날엔 힘이 빠졌다. 어느 날 요가가 끝나고 요가원 문을 나서는데 그가 기다리고 있었다.

“배고프지 않아요? 뭐 좀 먹으러 갈 참인데.”

그리고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그를 따라갔다.

“처음이니까 밥집으로 갈까요. 다음에 다른 것도 먹고요.”

단정하고 맛깔스러운 집이었다. 그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먹어서,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김윤호예요. 중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쳐요. 요가는 3년 전부터 했는데, 할수록 좋아요.”

그렇게 말하고는 또 밥을 먹으려다가,

“요즘엔… 더 좋고요.”

얼굴을 살짝 붉히며 덧붙였다. 나는 나에 대해서도 말해야 할까, 싶어서 속으로 말을 골랐다.

“서혜원 씨죠. 아, 지난번에 원장님과 말씀하실 때 들어서 알아요.”

“저는 번역을 해요. 주로 그림책.”

나는 그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것에 놀란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바로 이어 말했다.

“아.”

그가 생긋 웃었다. 나도 모르게 덩달아 미소 지었다. 그의 보조개 같은 주름을 보는데 가슴이 뛰었다.

다음 번 그가 요가원에 온 날, 요가가 끝나고 문을 나서니 또 기다리고 있었다. 손에 책 한 권을 들고 있었다. 내가 번역한 책이었다.

“그림책이 이렇게 재미있는 건지 몰랐어요. 사인 받고 싶어서 가져왔어요.”

우리는 또 같이 밥을 먹었고, 그는 조곤조곤 책에 대한 감상을 말했다. 사인을 하면서, 뭐라고 쓸까 하다가, ‘윤호 씨에게. 책을 찾아내느라 수고하셨어요.’라고 썼다.

그는 책을 받아들고 씨익 웃더니,

“많던데요. 한 권씩 가져올 테니 사인해주세요. 그러면 저는 밥을 살게요.”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혔다.

그렇게 우리는 거의 날마다 만나서 밥을 먹었다.



ㅡ딸깍. 문이 열린다. 급한 발걸음. 나는 온몸에 땀이 흘렀고 사시나무같이 떨고 있다.



눈을 떴다. 창밖으로 별들이 흔들렸다. 떨리는 손으로 땀을 닦았다. 노랫소리가 들렸다.



한 순간 너는 다른 존재가 되었어
그것은 너일 수 없어
하지만 똑같이 슬프고 똑같이 무서웠지
너를 데려올 수 있다면
너를 지켜줄 수 있다면
지금 내 곁의 너를 바라보고 있어
잃어버릴 것처럼 놓칠 것처럼



다시 잠들지 못하고 아침이 되었다.

“오늘은 꼭 뭐라도 먹어요. 먹고 싶은 게 생각나면 언제든 연락하고요. 나도 뭘 사오면 좋을지 창의적으로 생각해볼게요.”

그가 웃으며 신발을 신었다. 그의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좋은 하루 보내요.”

그를 보내고 청소를 시작했다. 엄마가 오시면 더럽다고 할 것 같았다.

이 정도면 깨끗하다고 생각할 때쯤 엄마가 왔다. 오늘은 대봉감을 가져오셨다. 엄마가 마른행주로 대봉감을 하나하나 닦는 모습을 보다가 무슨 말인가 하고 싶어졌다.

“맛있겠어요. 엄마.”

“그럼, 그럼.”

엄마는 잘 닦은 대봉감을 쟁반에 담아 빛이 들지 않는 베란다에 두었다.

“엄마.”

“응.”

“엄마는 다 알고 있었어요?”

“…”

엄마는 내게 등을 보인 채로 있었다. 엄마가 당황하는 것 같아서 괜히 말을 꺼냈나 후회했다. 그래도 답을 듣고 싶었는데, 엄마는 끝까지 답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오늘도 청소를 하고 가셨다. 여전히 더러웠던 것이다.



“대봉감을 사왔네요?”

그가 물었다.

“엄마가…”

나는 말을 하다 멈추었다. 그는 못 들은 것처럼 가만히 있다가,

“홍시가 되면 맛있겠네. 보기에도 좋고요. 집에서 가을이 익어가는 걸 볼 수 있으니까!”

그가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그는 나를 부드럽게 만지다 잠이 들었다. 그는 내가 먼저 잠들기를 바라지만, 대부분 먼저 잠드는 것은 그였다. 처음 결혼하고 나서 내가 침대에서 두려워 떠는 것을 알아채고 그는 내 얼굴을, 가끔은 어깨와 등을 어루만지다 잠들었다. 열흘째 되던 날, 나를 만지는 그의 볼에 생긴 긴 주름을 보고 용기가 생겼다. 천천히 옷을 벗고 그의 가슴에 파고들었고 그가 부드럽게 나에게 들어왔다. 나는 가만히 울었다.

“윤호 씨.”

그를 불러보았다.

“나는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리고 아기를…. 나는 아기가 생기지 않을 줄 알았어요. 나는 아기를 품을 자격이 없는데.”

그를 더 만지다 잠이 들었다.



ㅡ딸깍. 문이 열린다. 급한 발걸음. 나는 온몸에 땀이 흘렀고 사시나무같이 떨고 있다.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꼭 붙든 이불을 홱 낚아챈다. 확 술 냄새가 풍긴다.



눈을 떴다. 이불을 꼭 붙든 손이 떨리고 있었다. 창밖의 별들을 찾았다. 노랫소리가 들렸다.



가지가 나뭇잎을 매달고
한껏 바람을 타듯이
가지에 달린 나뭇잎들이
바람결에 춤을 추듯이
당신과 나는 함께
어떤 바람이 와도



머릿속에 차랑차랑 소리 내며 흔들리는 나뭇잎을 떠올리다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는 내게 입을 맞추고 나갈 참이었는데, 내가 눈을 뜨자 깜짝 놀랐다.

“아차. 미안해요. 깨워버렸네.”

“괜찮아요.”

나는 그를 마중하려고 일어났다.

“아니에요. 누워 있어요. 나는 당신이 아니라 바람과 함께 사라집니다. 오늘도 꼭 뭐라도 먹고, 일은 많이 하지 말아요.”

나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어머, 얘, 왜 이렇게 이쁘니. 이거 다 사고 싶어 어쩐다니.”

엄마는 호들갑스럽게 아기 신발과 모자와 옷들을 만지며 연신 들었다 놨다 했다.

“그런 것들은 아직이에요, 엄마. 지금은 배냇저고리랑 수건 정도만 사두면 된대요.”

“미리 사놓는다고 누가 뭐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뭘.”

“그럼요. 사두고 나중에 안 맞으면 사이즈 바꾸러 나오세요.”

매장 직원이 얼른 엄마의 말을 받았다.

나는 엄마가 배냇저고리와 수건과 내복과 우주복과 신발과 침받이와 모자와 수면조끼를 사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듯이 말했다.

“유모차랑 아기띠도 사줘요, 엄마.”

오늘 산 물건을 거실에 쌓아두고 엄마는 깔깔대고 웃었다.

“아들이었기에 망정이지 딸이었으면 두 배는 더 샀을 뻔했다, 얘.”

나도 따라 웃었다.

“혜원아, 그건 그렇고 청소 좀 해야겠다. 곧 아기도 태어날 건데, 이렇게 더러워서 어떡하려고 그래.”

나는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깨끗이 할게요.”

“더럽잖니. 너무 더러워.”

엄마는 걸레를 들고 집안을 닦고 또 닦았다.

“이렇게 더러우니 김 서방이 뭐라 그러겠니. 으이그, 쯧쯧.”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 많은 걸 한꺼번에 샀어요?”

그는 거실에 쌓인 아기용품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필요할 거 같아서….”

“아니, 그게 아니라 같이 사지 그랬어요. 혼자서 고생했을 거 같아서 그래요.”

“엄마랑 같이 갔어요.”

그는 나를 바라보았다. 뭔가 말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환불… 할 수 있어요.”

“아니에요. 왜…. 잘했어요.”

그가 지그시 보조개 주름을 만들었다.



그와 가까워질수록 나는 나에 대해 말해야 하는 것이 두려웠다. 아니, 말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것이 슬프고 괴로웠다.

“왜 나에 대해 묻지 않아요?”

“뭘요?”

“다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잖아요.”

“사랑은 시간을 초월하니까.”

“뭐라고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를 바라봤다. 그도 따라 멈춰 섰다.

“언젠가 알게 될 테니까요. 그럼 된 거잖아요. 언제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니, 그 말, 사랑이라는 말.”

“아!”

그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간 떡볶이처럼 달아올랐다.

“아니, 이렇게 멋대가리 없이 고백하게 되다니. 아아.”

그가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삐죽삐죽한 직모가 그의 손아귀에서 빼꼼히 튀어나왔다. 나는 나도 모르게 쿡쿡 웃음이 나왔다.

“혜원 씨, 제가 혜원 씨를 사랑해요. 아아.”

그가 고개를 숙인 채로 말했다. 나는 그의 두 팔을 가만히 잡고 내렸다.

“나도요. 나도 윤호 씨를 사랑해요.”

우리는 키스했다.



ㅡ딸깍. 문이 열린다. 급한 발걸음. 나는 온몸에 땀이 흘렀고 사시나무같이 떨고 있다.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꼭 붙든 이불을 홱 낚아챈다. 확 술 냄새가 풍긴다. 찢듯이 아무렇게나 내 옷을 벗긴다. 순식간에 바지와 속옷을 벗고 사납게 내 위에 올라탄다.



가위에 눌린 것같이 갑갑했다. 눈을 떴다. 몸을 더듬어 옷을 입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가쁜 숨을 내쉬며 창밖을 보았다. 별들이 창백했다. 나는 눈을 감고 잠들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노랫소리가 들렸다.



잔잔한 호수
햇살이 부딪쳐 반짝
눈이 부시게 아름답죠
초록의 잔디
깎이며 나는 풀내음
코끝 찡하게 향긋하죠



눈을 감고 잠이 들 뻔했는데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는 요즘 점점 더 자주 찾아왔다.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나는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집안 청소를 했다. 먼지를 털고, 구석구석 걸레질을 하고, 설거지도 빨래도 모아두지 않고 하고, 쓰레기도 바로 가져다 버리는데도 깨끗한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불안해서 수시로 걸레를 들고 집안을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조용히 침대에서 빠져나왔다.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새하얀 걸레에 물을 묻혀서 현관부터 바닥이란 바닥은 모조리 닦았다. 책장과 선반들도, 소파와 탁자와, 싱크대와 식탁의자까지, 안방을 제외하고 보이는 모든 곳을 닦고 또 닦았다. 한번 쓴 걸레는 버리고 새 것을 꺼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그가 안방에서 나왔다. 그가 나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시끄러웠어요? 미안해요.”

나는 멋쩍어서 걸레를 들지 않은 손으로 흐르는 땀을 닦았다.

“너무 더러워서요.”

“그만해도 될 거 같아요.”

“아니요, 아직… 더러운데.”

“같이 좀 더 누웠으면 좋겠어요.”

무겁게 굳은 그의 얼굴이 조각나버릴 것만 같았다. 나는 일어나 손을 씻고 그와 함께 들어갔다. 누웠는데도 어지러웠다. 무리한 것 같았다. 며칠째, 아니 몇 달째 먹은 것이 별로 없었고, 잠도 계속 설쳤다. 몸무게는 자꾸 줄어, 임신 8개월인데도 비쩍 마른 몸에 배만 기이하게 불룩했다.

아기가 생긴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너무 놀라 한동안 머릿속이 새하얬다. 그는 처음으로 내게 흥분한 모습을 보일 만큼 좋아했는데, 나는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내 몸에 다시 아기가 찾아오다니…. 나는 아기가 내 몸에 있다는 걸 잊고 싶었다. 하지만 심한 입덧은 아기를 한순간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아기가 커갈수록 나는 자꾸 위축됐다. 그때 엄마가 나타났다. 어느 날엔 잠깐, 어느 날엔 종일 곁에 있다 갔다. 나는 그토록 보고 싶은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좋았는데, 자꾸 내가 무언가 잘못한 것 같아 부끄러워졌다. 그 부끄러움은 가슴속에서 웅크렸지만 몸뚱이는 갈수록 커져갔고, 억울함과 만나기도 했다.



“으이그, 쯧쯧.”

엄마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 왔어요?”

“왜 아프고 그래, 응?”

“아니에요. 괜찮은데….”

“괜찮긴 뭐가 괜찮아?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고. 자면서도 끙끙 앓던데.”

나는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엄마와 눈을 맞추었다. 이렇게 계속 아프면 엄마를 계속 볼 수 있을까?

“뭐 좀 먹을래?”

“단호박죽.”



“혜원 씨, 죽 좀 사왔어요.”

나는 이불 속에서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자꾸 아무것도 안 먹으면 큰일 나요.”

“먹었어요. 아까 엄마가 죽 끓여주셔서….”

나는 눈을 감은 채로 말했다. 그에게서 한숨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래도, 그래도 또 먹어요.”

“청소를 못했어요. 미안해요.”

“제발, 혜원 씨. 청소 따윈 신경 쓰지 말고 뭐 좀 먹어요. 네?”



눈이 오는 날이었다. 그는 내게 학교를 구경시켜준다고 했다. 그를 따라 빈 교실에 들어가니 한가운데 장미꽃이 놓인 자리가 있었다.

“앉아요. 혜원 씨 자리예요.”

“뭔가 이상한데요.”

나는 의자에 앉았다. 그가 어디선가 꺼낸 기타를 메고 칠판 앞에 섰다. 나는 왠지 가슴이 간질거렸다.

“들어줄래요? 한상경 님의 시를 조금 고쳐서 곡을 붙였어요. 제목은 ‘나의 꽃’이에요.”



당신이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더 아름다워서가 아니죠

당신이 나의 꽃인 것은

이 세상 다른 꽃보다 더 향기로워서가 아니죠

당신이 나의 꽃인 것은

나의 마음속에

이미 피어서 있기 때문에



내가 다른 꽃보다 아름답다고, 더 향기롭다고 하지 않아서 고마웠다. 나는 내가 아름다운지, 향기로운지 알 수 없었고, 그렇다고 말해준다 한들 믿을 수 없었다. 다만 내가 그의 마음속에 이미 피었다는 말은 믿을 수 있었고, 그곳에는 내가 있어도 될 것 같았다.

이상하게도 눈물 대신 웃음이 나왔다. 그는 귀까지 빨개져서 내게 걸어왔다.

“장미, 노래, 그리고 반지.”

그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더니 반지를 내밀었다.

“청혼하는 거예요?”

“네, 청혼하는 거예요.”

나는 반지를 받아서 손가락에 꼈다.

“승낙하는 거예요?”

“네, 승낙하는 거예요.”



ㅡ딸깍. 문이 열린다. 급한 발걸음. 나는 온몸에 땀이 흘렀고 사시나무같이 떨고 있다.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꼭 붙든 이불을 홱 낚아챈다. 확 술 냄새가 풍긴다. 찢듯이 아무렇게나 내 옷을 벗긴다. 순식간에 바지와 속옷을 벗고 사납게 내 위에 올라탄다. 격렬하게 몸을 흔든다. 나는 울면서 몸을 뒤틀고 가슴을 밀어내지만 소용이 없다.



몸을 웅크리며 눈을 떴다. 구름에 가려 별이 보이지 않았다. 단단하게 뭉친 불룩한 배를 두 팔로 맥없이 감싸 안았다. 노랫소리가 들렸다.



물이 흐르네
구름이 흘러가네
고이지 않고 멈추지 않고
그냥 놓아두어도, 애쓰지 않아도 흘러가
당신이 선 곳은 새롭게 되네



“오늘은 육개장을 만들어줄게. 네가 어릴 때 그걸 좋아했다는 게 이제야 생각났지 뭐니.”

엄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토란대와 고사리를 불려놓고 숙주를 다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갑자기 생각난 것처럼 물었다.

“엄마,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아빠?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 좀 무뚝뚝하긴 해도.”

“괜찮은 사람?”

“성실하게 회사 다니고, 교회에서 봉사도 했잖니. 자상하고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그럼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나한테도 괜찮은 아빠였을까?”

엄마는 푹 끓인 소고기를 손으로 찢었다.



“아, 이건 무슨 재료일까…. 내가 만들 수 있으면 좋은데….”

그는 싱크대에 놓인 소고기, 대파, 숙주, 고사리, 토란대를 보며 혼잣말을 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검색해보더니,

“아, 알았다! 육개장! 혜원 씨, 육개장 먹고 싶어요?”

나는 멍하니 있다 대답했다.

“아니요, 이젠 안 먹고 싶어요.”

“아… 아쉽네. 나 육개장 좋아하는데.”

나는 슬며시 웃었다.

“그럼 끓여줘요. 또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니까.”

그는 휴대폰을 몇 번이나 보면서 싱크대와 렌지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추 비슷한 냄새가 났다.

“윤호 씨.”

“네. 거의 다 되어가요. 어때요, 우리 변덕쟁이 아가씨, 생각이 좀 바뀌었나요?”

“나는 낙태를 많이 했어요.”

그의 움직임이 멈췄다.

“여섯 번이나. 유산도 두 번. 아니, 세 번.”

갑자기 구역질이 치밀어 올라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웩, 웩.”

신물만 올라왔다. 어느새 그가 옆에 와서 등을 쓸어주고 있었다.

“육개장을 괜히 끓였나 봐요.”



ㅡ딸깍. 문이 열린다. 급한 발걸음. 나는 온몸에 땀이 흘렀고 사시나무같이 떨고 있다. 머리끝까지 끌어올려 꼭 붙든 이불을 홱 낚아챈다. 확 술 냄새가 풍긴다. 찢듯이 아무렇게나 내 옷을 벗긴다. 순식간에 바지와 속옷을 벗고 사납게 내 위에 올라탄다. 격렬하게 몸을 흔든다. 나는 울면서 몸을 뒤틀고 가슴을 밀어내지만 소용이 없다. 목까지 차올랐던 신음을 터뜨린다. 옷을 손에 들고 나가며 말한다. 네가 말해도 아무도 믿지 않을 거야.



눈을 떴다. 두 손으로 눈물인지 땀인지 모르는 것들을 훔쳐냈다. 창밖에 별빛이 번져 있었다. 나는 흐느끼며 일어나 앉았다. 일어서려는 나를 그가 붙잡았다.

“감기 들어요. 다 젖었어요.”

“너무 더럽죠. 나는 너무 더러워요. 나도 씻고, 여기도 다 씻어내야 해요.”

“아니요. 땀이 식으면서 한기 든다고요. 당신은 더럽지 않아요.”

“오줌을 싼 적도 있어요. 아빠가 들어올 때 너무 무서워서 오줌을 싸버렸어요. 아빠는 나를 마구 때렸어요.”

“혜원 씨, 여기 누워요. 알고 있어요. 말하지 않아도 돼요. 노래 불러줄게요.”

노랫소리가 들린다.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때로는 뒤에서
때로는 앞에서
때로는 손을 잡고
나는 당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아요
당신의 발걸음을 놓치지 않아요



날이 밝을 때까지 노랫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우리가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닿아 있다는 걸 잊지 말아요
아무리 멀리 있어도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는 걸 기억해요



나는 눈을 감은 채로 가만히 그의 노래를 듣다가, 어느샌가 잠이 들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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