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틀

우리 말야, 진짜 사귈까? 응?

by 모도 헤도헨




탄정역 6번 출구로 나왔다. 초가을 아침 공기는 선선했다. 나는 ‘셔틀’이라고 쓰인 푯대 앞에 길게 늘어선 줄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줄지어 선 차들이 폐에 흔적을 남기는 공기를 내뿜었다. 나는 마스크를 벗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상쾌한 기분이었다.


7시 10분. 오늘은 지각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만큼은 뛰고 싶지 않았고 지각쟁이라고 타박받고 싶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들로 한숨도 못 잔 것 같지만, 마음은 가뿐했다. 지갑에서 승차권을 꺼내려던 나는 멈칫했다. 내 손에 들린 것은 휴대폰뿐이었다.


‘가방을 두고 오다니.’


지갑도 신문도 화장품도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는지 머리를 굴려 보았다. 당장 승차권만 해결되면 괜찮을 것 같았다. 앞사람과 뒷사람을 흘끗 보았다. 누가 더 무심할까. 뒷사람으로 정하고 말을 건네려는데, 6번 출구에서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 중 운형이 보였다.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가,


‘그래,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줄을 이탈해 운형에게 다가갔다.


“성 대리님!”


나를 발견한 운형은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헤벌렸다.


“오, 희진! 웬일로 이 시간에?”


“오늘은 일찍 나왔어요. 오늘까지 지각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승차권 두 장만 빌려주세요.”


나는 운형과 함께 줄 맨 뒤에 섰다. 운형은 어깨끈이 달린 황갈색 가죽가방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냈다. 볼수록 밉살스런 가방이었다.


“아니, 가방 없이 달랑 맨 몸으로 나왔다고? 얼마나 좋았으면 가방까지 놓고 온 거야?”


“그러게 말예요. 소풍 가는 마음이었나 봐요. 하핫.”


나의 콧잔등에 주름이 생겼다. 그것을 본 운형의 코가 벌름거렸다. 나를 만지고 싶을 때 그가 내는 버릇이었다. 반사적으로 치마 끝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흘깃, 내 치마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침대에 걸쳐둔 청바지를 떠올렸다.


“자, 신문도 빌려줄게.”


운형이 다시 가방을 열어 신문을 꺼냈다. 떨떠름하게 신문을 받았다.


“아무튼, 황희진 씨 대단해. 첫날엔 그렇게 멀미를 하더니, 이제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신문을 사설까지 다 읽고.”


다시 한번 콧잔등에 주름이 생기려는 순간, 나는 얼굴을 차도로 돌렸다. 파란불로 바뀌자마자 검은색 세단이 횡단보도 앞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춰 섰다.


첫날 퇴근길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전봇대로 달려가 ‘우웩! 우웩!’ 구역질했다. 그날 하루 맛보았던 긴장, 당황, 불길한 예감 같은 것들을 뱃속에서 다 쏟아내고 싶었지만, 신물만 올라왔다. 같은 버스에 탔던 사람들이 나를 무심하게 지나쳐 갈 때, 운형이 나를 발견하고 등을 두드려주었다.


“제가, 원래 좀, 우웩! 멀미가, 후후, 심해서, 우웩!”


“여기 휴지. 저기서 어묵국물이라도 먹을까?”


그날 포장마차에서 저녁까지 해결하고, 운형은 나에게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초면에 실례인 것 같아 완곡히 거절했는데, 나는 가끔 그때를 떠올리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셔틀버스가 푯대 앞에 멈췄다. 버스에 올라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차곡차곡 창가자리를 맡아 앉은 사람들은 이내 눈을 감았다. 이어폰을 귀에 꽂는가 안 꽂는가의 차이뿐이었다.


나란한 자리가 없기를 바랐던 나는 마지막 남은 나란히 빈 두 자리 앞에서 머뭇거렸다. 내 옆구리를 운형이 툭 쳤다. 마지못해 창가 쪽으로 들어갔다. 운형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편하게 신문 봐. 난 눈 좀 붙일 테니까.”


신문을 펼치며 신문에 집중하려고 했다. ‘중국과 미국, 무역전쟁 가나. 한국시간으로 7일 미국은 드디어…’


운형의 왼손이 내 허벅지로 올라왔다. 다리를 오므리며 힘을 주었지만 운형은 자신의 가방을 내 다리에 올리고는 치마 아래로 손을 넣었다. 이렇게 30분을, 가는 것이다. 나는 가방이 운형에게로 옮겨지지 않기만을 바랐지만, 그날도 운형은 시간을 알차게 썼다.




“이야. 지각쟁이가 웬일이야? 퇴사할 때 되니까 정신을 차린 거야, 뭐야?”


사무실 입구에서 봉순이 부장을 만났다.


“이따, 점심에 밥 같이 먹지?”


“아, 네!”


나는 명랑하게 대답했고, 운형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마지막 점심시간을 운형과의 산책 대신 봉 부장과의 식사로 채우다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일이었다. 자리에 앉아 뒤통수가 커다란 컴퓨터를 켰다. 잠시 후 ‘Windows XP’라는 글자가 화면에 떴다.


‘이거, 다시는 볼 수 없겠지.’


첫날, 컴퓨터 모니터와 ‘Windows XP’와 ‘한글97’에 경악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이 일의 단 하나뿐인 도구를 이런 걸로 쓰다니…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고 싶었지만,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꾸는 걸 사장도, 부장도 어려워할 뿐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되었다. 이곳이 얼마나 구시대적인, 아니 시대착오적인 세계인지 드러내는 표상이었다. 첫날 단박에 알아채고 뒤돌아보지 않고 나왔어야 했다. 하루 나오고 바로 연락 두절이 되는 똑똑한 사람들을 몇몇 보고서야 그런 방법도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자, 회의실로 갑시다.”


하필 마지막 날이 월례회의가 있는 월요일이었다. 전사원이 벽 쪽에 붙어 동그랗게 늘어섰다. 누군가 시작점이 되어 옆 사람에게 악수하고 그다음으로 넘어가면, 다른 쪽 옆 사람이 그 사람의 뒤를 기차놀이하듯 따라가며 악수한다. 첫 사람이 제자리로 오면 모두가 손을 맞잡고 인사한 것이다. 혼자만 자리에 앉아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호승 사장만 없다면, 이 시간만큼은 이곳도 정상세계 같았다. 어쨌든 서로 눈을 맞추고 웃으며 인사하니까. 날마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인데도, 이때 말고는 그러는 법이 없었다.


“오늘은 누가 발표지?”


정은이 인쇄물을 들고 일어서 앞으로 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지난달 출간된 <시민운동의 폭력성을 넘어서>에 대해 발표하겠습니다. 이 책은…”


떨리는 목소리가 안타까울 정도였다. 도울 방법도 없어 그냥 묵묵히 들었다. 벌써부터 눈을 감고 듣는 척하며 조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정은을 바라보며 눈에 힘을 주었다. ‘열심히 듣고 있어. 쫄지 마. 잘하고 있어.’라는 마음이 어떤 기운을 통해서든 정은에게 닿기를 바랐다.


“가서 앉아.”


발표를 반도 하지 않았는데, ‘땡!’ 소리를 들은 정은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눈을 깜빡이며 사장을 쳐다보았다.


“자리에 앉으라고. 그걸 발표라고 하는 거야? 도대체 요즘 대학에선 뭘 가르치는 거야? 자기소개서에는 다 허풍만 쳐놓았는지…”


벌게진 얼굴로 자리에 앉는 정은을 보고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고 고개를 천천히, 세차게 흔들었다. 눈을 떴을 때 마주 앉은 혜연이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지난달에, 흐음, 정부 쪽 사람을 만났는데, 흐음, 방통위에 사람 하나를 추천해달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흐음, 나한테 만날 찾아와서 ‘형님, 형님,’ 하는 그이를 추천했는데, 어제 그놈이 찾아와서 나한테 고맙다고…”


첫인사 이후 30분 동안 정은과 사장 말고는 입을 뗀 사람이 없었다. 여기에 왜 ‘회의’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이름이라도 정직해야지.”


회의실을 나서며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지나가던 혜연이 내 팔을 잡고 한쪽으로 끌었다.


“자기, 왜 그래? 오늘 나간다고 간이 부었구나?”


“제가 뭘…”


“아까 그러니까, 응? 사장 말하는데 고개를, 아휴, 그거 사장이 봤으면, 어쩔 뻔했어?”


하지만 혜연은 걱정한다기보다는 재밌어하는 쪽 같았다.


“그런데, 내가 다 후련하더라.”


혜연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앞서갔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자리에 앉아 메신저를 켰다.




ㅡ정은 씨, 아까 일 마음 쓰지 말아요. 발표하다가 당하지 않은 사람 아무도 없거든.


ㅡ아..


ㅡ정말이야. 나는 입사 백 일 만인가, 그때 당하고 울었는데.. 안 운 게 어디야~ 입사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ㅡ네.. 감사합니다.ㅠㅠ




메신저를 닫는데, 청소 아주머니가 내 쓰레기통을 비우려 하고 있었다.


“이모님… 안녕하세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돌려 눈가에 주름을 만들었다. 고개를 힘차게 끄덕끄덕하고는 건너편으로 갔다. 아주머니가 사무실의 모든 쓰레기통을 비우고 문을 나서는 것을 눈으로 따라가다가, 나는 벌떡 일어났다. 사무실 문을 열고 나가, 화장실 쪽으로 가고 있는 아주머니의 등 뒤로 가서 꽈악 안았다.


“이모님…”


“응, 그래그래.”


“그동안 감사했어요.”


눈물이 아주머니가 입은 벽돌색 윗도리에 까만 그림을 만들었다.


“아이고, 희진 씨는 다른 데 가서 잘 지낼 거야.”


아주머니는 자신의 배 위에 포개진 내 손등을 토닥였다.


아주머니를 처음 본 것은 입사 첫날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회사 식당은 직원들 수보다 두어 자리 많을까 싶게 아담한 곳이었다. 식판에 음식을 담고 창가 끝쪽에 앉으려는데 혜연이 불렀다.


“희진 씨, 이쪽에 앉아요.”


같이 앉자는 말인 줄로만 알고 자리를 옮겼는데, 혜연이 속삭였다.


“거긴 청소 아줌마 자리예요.”


직원들이 식사를 거의 마칠 때쯤 아주머니가 들어왔다. 단호박샐러드는 다 떨어졌고, 닭볶음탕에는 감자와 당근만 남았다. 닭볶음탕에 남은 감자와 당근, 그리고 밥, 김치, 미역국을 식판에 담은 아주머니가 창가 끝쪽 의자에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앞치마를 한 채 꼬불꼬불 파마머리를 하고 고개 숙여 미역국을 후루룩 떠먹는 아주머니는 그야말로 섬처럼 떨어져 있었다. 나는 식사 내내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에 놀라, 이 숨 막히는 침묵을 어떻게 깰 수 있을까, 침묵을 깨도 괜찮은 걸까, 도대체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다가, 멍하니 식판만 쳐다보며 입을 열어 숟가락을 넣은 후 오물오물 씹기를 반복하는 아주머니를 보자 누구와도 말하고 싶지 않아졌다. 명치끝이 뭉쳐왔다.


다음 날, 그다음 날 나는 자리에 앉을 때마다 머뭇거렸다. 하지만 끝내 아주머니와 한자리에 앉아 식사할 수는 없었다. 그건 불문율을 보란 듯이 위반하는 것 같았다. 나는 아주머니가 쓰레기통을 비워줄 때마다 꼬박꼬박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으로 자책감을 지웠다. 처음엔 회사에서 누군가 인사를 하는 것이 처음이라 화들짝 놀랐던 아주머니도, 차츰 내 자리에 올 땐 미소를 띠곤 했다.


내가 아주머니와 좀 더 특별해진 것은 지난 초여름쯤이었다.


한동안 경직되어 있다가 명절에 사장 별장에 다녀온 뒤 나는 좀 편안해졌다. 명절 당일에 전사원이 고향에 가는 대신 사장 별장으로 세배하러 간다는 것이 기가 막혔지만, 거기서 요리를 하고 밭일을 한다는 것은 더 기가 막혔지만, 이왕 온 김에 즐기자는 생각으로 명절음식도 배 터지게 먹고 술도 주는 대로 마시고 고스톱도 신나게 쳤다. 2만5천 원쯤 따고 돌아오는 길엔 허망한 웃음이 나왔다. 조금만 버티자고 어차피 마음을 먹었으니, 웃으면서 다니자고 나를 달랬다.


그 무렵 신문광고에서 ‘편집인학교’ 광고를 보았다. 입사 전 기대했던 것과 달리 거대한 기계의 톱니바퀴가 된 듯 소모성 부품 같은 일만 하다가, 다른 길이 열리고 새롭게 꿈을 꿀 수 있을 것만 같아, 입사 후 처음으로 가슴이 설렜다. 그때 퇴근 무렵이면 가끔 사무실을 돌며 근태 확인을 하던 사장이 나타났다.


“우리 꼬맹이들, 일은 잘하고 있나~”


기분 좋은 목소리였다. 이때다, 싶어서 스크랩해둔 신문 쪼가리를 꺼내, 사장이 내 옆을 지나갈 때 말을 붙였다.


“사장님, 저 이거 하고 싶어요.”


“뭐?”


나는 한 달간의 교육일정을 설명하고, 회사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고 싶은 생각까지는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콧소리가 나왔다.


“사장니임~ 일 더 열심히 할게요~ 네?”


그때 사장은 그냥 ‘허허’ 웃으며 지나갔다. 일이 어떻게 되려나 기다리고 있는데, 이틀 동안 아무 기별이 없었다. 사흘째 되던 날 봉 부장이 나를 회의실로 불렀다.


“희진 씨, 그런 이야기는 나한테 먼저 해야지. 안 그래?”


“네?”


“사장님이 얼마나 기가 막혀하시는지… 나 원 참.”


나는 봉 부장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몰랐다가, 이어지는 넋두리를 듣고는 ‘편집인학교’는 물 건너갔다는 걸 알았다. 실망스러웠지만, 다음 기회도 있을 거라 생각하고 훌훌 털어버리려는데 봉 부장이 말했다.


“사장실로 올라가봐. 부르셔.”


나는 사장실 문 앞에 서서 잠시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나 생각하다, 마른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노크했다.


“들어와.”


사장실에는 두 번째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처음 들어온 것은 입사 첫날이었다. 운 좋게도 졸업하기 전 입사한 첫 직장, 설레는 마음으로 ‘연봉협상’이라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일까, 얼마를 부르는 것이 적당할까, 밤새 뒤척이며 고민했던 것이 무색하게, 연봉협상은커녕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앞으로 일을 잘하라는 일장 연설만 듣고 사장실을 나왔었다.


몇 달 만에 들어온 사장실은 기억보다 크고 평화로웠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창은 거의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거기서 들어온 햇볕이 방 오른쪽에 놓인 넓은 책상과 그 위에 널브러진 책들에 사뿐히 앉아 있었다. 창문 앞에 미니어처처럼 만든 바위산과 폭포에선 쪼롱쪼롱 소리가 났고, 한가운데 자리한 암갈색의 거대한 가죽소파는 코팅이 된 듯 맨들거리고 반짝였는데 앉기보다 눕고 싶었다. 책상의자가 놓인 반대편 벽에 걸린 커다란 액자에는 빨갛고 노랗고 파란 색들이 번갈아 옅었다가 진해지는 어떤 형체가 그려져 있었다.


사장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높은 사람이 아니면 팔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는지 사장의 육체 뒤로 목받이와 팔걸이가 유난히 크게 보였다. 널따란 책상의 다른 편에 작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의자가 놓여 있었고, 나는 그게 내가 앉을 자리인 것을 깨달았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사장은 의자에 앉아 한 손에 담배를 들고 읽던 책에만 열중했다. 나는 한동안 문 앞에 가만 서 있다가, 다시 한번 침을 꼴깍 삼키고 내 의자로 갔다.


“앉아.”


의자에 앉고서야 사장은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봤다. 순간, ‘노려본다는 것이 이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짧은 몇 초 동안이 몇 분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내 고개를 떨구었다. 기다렸다는 듯 사장이 입을 열었다. 호랑이가 포효하는 것 같았다. 으르렁거렸고 우렁찼다.


해석할 수 없는 말들이 쏟아졌다. 귀가 울리고 머리가 띵했다. 입모양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다가 나는 나를 향해 화살처럼 날아오는 공기의 흐름을 맞고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저, 저, 잠깐, 물, 물 좀 마시고, 오겠습니다.”


그 흐름이 겨우 멎었다. 형형하기만 했던 사장의 눈에 비웃음 같은 것이 스몄다. 대답을 듣기 전에 일어나야 할 것 같아 나는 벌떡 일어났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나는 이를 악물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꼿꼿이 걸어갔다. 그림 옆 탁자 위에는 비싸 보이는 커피잔과 유리컵 몇 개가 주전자와 함께 놓여 있었다. 내가 쓰면 안 될 것 같았지만 종이컵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제일 만만해 보이는 유리컵에 물을 따랐다. 손이 떨렸다.


‘꿀꺽. 정신 똑바로 차리자.’


컵을 내려놓고 손으로 두 눈을 꽈악 눌러, 눈물을 억지로 멎게 했다. 다시 눈물이 나오면 마셔야지, 컵을 들고 자리로 가 앉았다.


앉자마자 맥없이 눈물이 나왔다. 컵을 들어 물을 마셨다. 눈물이 줄줄 흘렀다. “꺼이” 하고 목이 메는 소리가 났다.


사장이 뭔가 말하려는데, 사람이 아닌 듯 조용히 문을 열고 누군가 들어왔다. 사람이 아닌 듯 사장은 신경 쓰지 않았고, 나는 얼굴을 돌려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 틈을 타 물을 마셔서 “꺼이, 꺼이” 소리를 겨우 삼켰다.


인기척은 뒤쪽으로 사라졌고, 사장에게서 다시 호통의 기운이 폭발하려는 순간,


쨍그랑!


곧이어 호들갑스러운 소리가 났다.


“에그머니나! 이를 어째. 이를 어쩌나.”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다. 깜짝 놀라 순간 눈물이 멈췄다.


“쯧쯧쯧.”


사장은 아주머니에게 호통조차 아까운지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사장과 나를 둘러쌌던 공기에 균열이 생겼다.


“가서 일해.”


사장의 말소리가 드디어 말처럼 들렸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든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문으로 갔다. 가만히 탁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주머니가 깨진 유리컵 조각을 손에 들고 안타까운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시 눈물이 났다.


계단으로 내려와 사무실 앞에 섰다. 도저히 그냥 들어갈 수가 없어,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얼굴은 따귀라도 맞은 듯 벌겠고, 눈두덩은 부풀어 있었다. 충혈된 눈은 아직도 겁먹은 눈빛이었다. 잠깐 사이에 달라진 얼굴이 낯설었다.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심호흡을 했다. 후우욱, 후우후, 후우욱, 후우후... 조금 진정이 되자, 사무실에 얼른 들어가야겠다 싶었다. 방금 일어난 일도 그렇지만, 이 일이 동료들에게 알려지면….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속이 울렁거렸다. 눈물자국을 닦고 두 손으로 얼굴을 탁탁 두드렸다. 꿀 먹은 벙어리같이 닫혀버린 목을 틔우려고 “아, 아” 소리도 내어보았다. 갈라진 목소리를 듣고 오늘은 그냥 입을 다물고 있기로 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내 자리에 앉을 때까지, 어느 누구도 알은 체를 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만 났다. 그 순간 나는 방금 일어난 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음을, 없을 것임을 알았다.


이 일로 나는 두 사람을 얻었다. 아주머니가 하나였고 나머지 하나는, 운형이었다. 컴퓨터 앞에 망연히 앉았다가, 뭐라도 하는 척하며 자판을 두드렸다가, 결국 엎드려 있던 나의 등을 누군가 깊이 쓸어내렸다.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운형이 서 있었다. 짙은 눈썹 아래 약간 처진 눈이 안쓰럽다는 듯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방금 내 등을 그렇게 만진 것이 위로의 의미였나, 불쾌했던 건 내가 촌스러워 그런가, 순간 골똘해졌다. 그런 나를 보고 운형이 살풋 웃더니, 몸을 숙여 내 귓가에 속삭였다. 습한 입김에 나는 목을 움츠렸다.


“나가지. 오늘 점심 사줄게.”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 5분 전이었다. 더 생각할 것 없이 운형을 따라나섰다. 그동안 동기들과 두어 번 밖에서 점심을 사먹은 적은 있어도, 신입이라고 선배가 밥을 사준다거나 한 것은 처음이었다. 도저히 회사식당에서 먹을 수 없어 굶으려 했는데, 어쨌든 운형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걸어서 5분 거리의 상업단지에서 설렁탕을 먹었다. 운형은 사장의 험담을 하며 나름의 위로를 했다. 별 효과는 없었지만, 고마운 마음에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주었다. 식당을 나와 걷기 시작했다. 걷기 좋은 날씨였다.


그동안 점심시간마다 식사가 끝나면 탈출하듯 산책을 나가곤 했다. 점심시간의 산책이 회사에서 유일하게 살아있는 시간이었다. 분명 여럿이 앉아 있는데, 출근하면서 중얼거리듯 하는 인사 말고는 말 한마디 없는 삭막한 공간에서 숨이 막혔다. 혼자서 걷는 시간이 오히려 외롭지 않았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나무와 풀, 햇볕과 바람을 느낄 수 있어 좋았다.


“이 동네에, 텔레토비동산 있는 거 알아?”


“네?”


“있어. 가볼래?”


나는 시계를 봤다. 20분쯤 남았다. 1분이라도 늦으면 봉 부장에게 한 소리 들을 게 뻔한데….


“괜찮을 거야.”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운형이 말했다. 늦지 않겠다는 건지, 봉 부장에게 혼나지 않을 거란 건지 몰랐지만, 어느 쪽이어도 상관없었다.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이었다.


운형을 따라 5분쯤 걸었다. 그동안 산책하며 이곳저곳 돌아다녔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길이 있었나 싶게 낯선 길이었다. 그리고 정말, 텔레토비동산이 나왔다. 초록빛의 낮은 둔덕이 여러 개 있는 아담한 동산. 고요하고 평온했다. 무성한 나뭇잎들이 만든 그늘이 많았다. 시원했다.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다.


“내가 앉는 곳은, 여기.”


운형이 한쪽에 길처럼 난 곳을 타고 중간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 둔덕에 앉았다. 따라 올라가 옆자리에 앉았다.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요. 정말 신기하다….”


운형은 말이 없었다. 나는 그런 운형을 두고 일어나 이곳저곳 살펴보았다. 군데군데 피어있는 들꽃들이 예뻤다. 토끼풀을 따서 반지와 화관을 만드는 동안 오늘 일어난 일도, 누구와 어디에 있는지도 까맣게 잊었다. 화관은 차마 쓰지 못하고 반지를 끼고 돌아온 나를 보고 운형이 웃었다. 그러더니 나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다시 습한 입김이 느껴졌다.


“이제 그만 갈까요?”


서둘러 돌아서려는 내 어깨를 운형이 붙잡았다. 운형은 키스하려 했고, 나는 그를 밀쳐내려 했지만 빳빳하게 굳은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 싫어요. 싫어…”


운형은 한참 내 입술과 혀를 탐했다. 나는 덜덜 떨었다.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여기 좋지? 가끔 오자.”


발밑에 떨어진 반지와 화관을 밟아 짓이겼다. 운형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걷기 시작했다. 되돌아가는 길 내내 아무 말이 없었다. 회사가 보일 만큼 왔을 때 운형이 갑자기 멈추더니, 내 머리와 옷매무새를 고쳐주었다. 나는 내가 운형과 함께 들어오며 넋이 나간 얼굴에, 운 기색이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란 걸 깨달았다. 다시 눈물이 맺혔다.


운형에게 도망치듯 자리에 앉았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했다. 가방에 손을 가져갔다. 가죽 덮개가 달린 남색 가방, 내 형편에는 가질 수 없는 유행하는 가방이었다. 취직 선물로 엄마가 사준 것이었다. 졸업 전에 떡하니 취직했다고, 그것도 사무실에 앉아 머리 쓰며 돈을 번다고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셨던가…. 내가 버는 돈이 당신이 지하철 화장실 한켠에서 끼니를 챙기며 청소하고 버는 돈에 비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은 엄마는 몰랐다. 내가 최소한의 용돈만 남기고 드리는 돈에 엄마는 고마워했지만 돌아가신 아빠가 병원비로 써버린 돈을 다 갚으려면 턱없이 멀었다는 것을 내가 모를 리 없었다. 이 고이고 썩은 삭막한 곳에서 조금만 더 버티자고 날마다 주문처럼 외웠는데 오늘만큼은 그 주문이 통하지 않았다. 여기서 벗어난다고 다를까? 아니, 다른 곳에 내 자리가 있을까? 엄마… 지하철 먼지와 화장실 악취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를 악물었다.


이후로 점심시간에 운형을 만나는 일이 잦아졌다. 피하려고 해도 이상하게 마주쳤고, 핑계를 대려고 해도 더듬다가 말이 꼬였다. 산책을 포기하고 사무실에 며칠 갇혀 있었더니 죽을 것 같아서 나오는 날엔 영락없이 운형을 만났고 자연스럽게 텔레토비동산에 갔다. 운형은 그것으로 내가 동의했다고 여겼는지, 갈수록 정복하듯 나를 만지는 부위를 넓혀갔다. 어떤 날은 소름 끼치도록 싫었고 어떤 날은 견딜 만했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익숙해졌고, 나 역시 원했던 것인지 헷갈렸다.


그렇다 해도 출퇴근 시간은 작정하고 피했다. 아무리 대부분 자고 있고 남에게 줄 관심 따위 없는 사람들이고 신문과 운형의 가방으로 가리고 벌어지는 일이라 해도, 수십 명이 탄 셔틀버스 안에서 운형이 나를 만지는 것은 훨씬 참기 어려웠다. 날마다 지각했고, 날마다 야근했다. 운형은 결코 지각 같은 건 하지 않았고, 무슨 사정인지 야근도 하지 않았기에 어찌어찌 피해 다닐 수 있었다.


나를 보는 동료들의 눈빛은 복잡했다. 안쓰러워하는 것도 같고 경계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날이 갈수록 공공연한 커플로 여겨지면서 동료들과도 멀어졌다. 그러는 동안 나는 점점 빛을 잃어갔고 악에 받친 사람이 되었다.


컴퓨터 파일들을 설렁설렁 정리하니 오전 근무시간이 끝났다. 봉 부장을 따라나섰다.


“성 대리, 오늘은 희진 씨 내가 데려가~ 둘은 따로 만나든지 해.”


봉 부장과 함께 나서는 발걸음이 이렇게 가볍다니. 마음 역시 홀가분했다. 중식당에서 봉 부장을 따라 별수 없이 짜장면을 시켰어도, 자기 자랑과 자기 연민이 가득한 끝이 없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모두 참을 만했다.


오후에는 인수인계 마무리를 했다. 대부분 정은에게 일이 돌아갔다. 알아듣는 데에도, 수행하는 데에도 더딘 듯한 정은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빠릿빠릿한 줄 알았던 내가 이곳에서 지낼 만했던 것도 아니니까….


퇴근시간이 다가오자, 봉 부장이 다가와 사장실에 올라가 인사하라고 했다. 세 번째로 사장실에 올라갔다.


똑똑.


“들어오세요.”


책상 위가 정리된 것 외에는 기억대로였다. 사장 앞의 초라한 내 의자도 여전했다. 사장이 나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대학원에 간다고?”


“네”


거짓말이었다. 아예 다른 업종으로 이직하기로 하고 지난여름 악착같이 취직준비를 했다. 아직 최종면접이 남았지만 형식적인 절차라고 들었다. 공부를 더 하고 싶어서 대학원에 간다고 하면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줄 알았다. 하지만 동료들이 어느 대학원이냐, 전공은 뭐냐 묻는 통에 지어내는 일이 고역이었다. 사장은 더 묻지 않았다.


“그래.”


다행이었다. 할 이야기가 없어서. 일장 연설이 아니어서.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사장이 따라 일어서더니 차렷 자세로 갑자기 꾸벅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공부 열심히 하시고, 성공하십시오!”


이건 또, 웬 뚱딴지같은 짓거리인지, 나는 영문도 모른 채 덩달아 인사했다.


“네에… 감사합니다.”


사무실에 들어오니 빈자리가 많았다. 마지막 인사조차 할 정도 없나, 쓸데없이 서운했다. 어디선가 오기 같은 게 솟아, 나는 남은 사람에게 일일이 인사했다. 고개가 빳빳해졌다.


“오늘은 야근, 안 할 거지?”


운형의 말에 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냥 가면 아쉽잖아. 최후의 만찬, 어때?”


뭐라고 핑계를 댈까, 잠시 생각하다 콧잔등에 주름을 만들며 말했다.


“네. 좋죠. 맛있는 거 사주세요.”


마지막으로 책상을 둘러보고 텀블러와 메모꽂이와 양치세트를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는 거의 그대로 남은 내 명함이 든 상자를 집어 운형의 가방을 가리키며 건넸다.


“잠깐 맡겨요.”


나는 상업단지에 있는 고깃집으로 앞장서 들어갔다. 점심 때 아쉬움을 달래기라도 하듯 한우생고기를 계속 추가 주문해 먹었다. 이거 다 먹을 수 있겠냐고 운형이 물을 때마다 그에게 소주를 권했다. 영문도 모르고 점점 기분이 좋아진 운형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우리 말야, 진짜 사귈까? 응?”


지금까지 그도 나를 가짜로 여기고 있었다니, 나는 또 쓸데없이 불쾌했다.


“일어나요. 마지막으로 텔레토비동산에 가야죠.”


“오! 그거 좋~지!”


운형은 가는 길에 자꾸 비틀거리다 넘어지려 했다. 나는 그를 붙드느라 힘들었지만 어디선가 힘이 솟았고, 생각이 점점 또렷해졌다. 텔레토비동산에 도착하자, 운형은 다짜고짜 나에게 달려들었다.


“잠깐! 잠깐만요! 할 일이 있어요.”


나는 운형의 가방에서 명함상자를 꺼내고 운형에게 라이터를 달라고 했다.


“이거 더 이상 필요 없으니까, 태워버리려고요.”


명함을 쏟아 한군데 놓고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명함에 불이 붙었고, 천천히 근처의 풀들에도 불이 번졌다.


“운치 있네~ 어, 그런데 이거 불나는 거 아니야?”


“에이, 대리님~ 가을밤 선선한데 모닥불이라 생각해요, 우리.”


그리고 내가 먼저 키스하기 시작했다. 운형은 내가 적극적으로 나오자 좋아서 히죽대느라 불 생각은 금방 잊은 것 같았다. 가을바람을 타고 불은 점점 번졌다.


나는 커져가는 불을 보면서 운형의 옷을 벗기기 시작했다.


“지금?”


“네, 지금.”


벗긴 옷마다 불 쪽으로 던졌다. 운형은 술에 취한 데다 흥분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속옷까지 타는 것을 보고 나는 멈췄다. 그리고 일어나서 입술을 닦고 손을 털었다. 벌거벗은 상태로 내 몸뚱이를 찾느라 허우적대는 운형을 내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자 그가 눈을 떴다. 나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나 옷매무새를 고친 후 또박또박 말했다.


“사귀지 않을래요. 진짜로.”


사방을 둘러싼 불꽃을 피해 나는 유유히 텔레토비동산을 떠났다. 셔틀버스를 타고 자리에 앉았다. 창밖으로 막차를 놓칠세라 급하게 뛰어오는 사람이 보였다. 휴대폰을 열어 1, 1, 9를 눌렀다.


“화재신고 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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