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순의 말년

엄마의 말년이 이래선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by 모도 헤도헨


나는 엄마의 점이 싫었다. 왼쪽 광대 한가운데 엄지손톱만 하게 나서 못생긴 얼굴을 더 못나 보이게 하는 그 점이 싫었다. 사람들이, 심지어 아빠조차 엄마를 ‘점순’이라고 부르는 것이 싫었고, 나중에는 엄마 스스로도 자신을 ‘정순’이가 아니라 ‘점순’이라고 여기는 것도 싫었다. 그 점에 난 수염 같은 털 세 개도 싫었다.
어릴 때 엄마가 나를 어르고 달랠 때나 웃을 때 나는 그 점을 빤히 바라봤다. 저 점이 없으면 엄마는 어떻게 생겼을까, 예뻤을까 하고 궁금해했다. 사춘기 때 나를 혼내면서 엄마 얼굴이 붉어지고 터져 버릴 것 같을 때에 점도 부풀었다. 나는 그 점을 뚫어져라 보면서 저 점을 떼어버리고 말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그 계획은 번번이 실패했다. 처음 점을 빼러 가자고 했을 때 엄마는 살면서 점을 뺄 생각 같은 건 한 번도 하지 못했는지 입을 딱 벌리고 한동안 말이 없다가, “그럼 더 이뻐질까?” 했다. 그래놓고 어디서 점을 보고 와서는 “여지껏 그 점 때문에 살았구먼” 하는 사기꾼일지도 모르는 점쟁이의 말에 절대 점을 빼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점 때문에 사람들이 자기를 잘 기억해서 좋은 점도 있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후로 나에게 고마워할 때마다(몇 년 동안 서류를 넣어 드디어 임대아파트에 당첨되었을 때라든가), 엄마가 기분 좋을 때마다(입주한 아파트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서 에어컨 지원비가 여름마다 나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라든가) 나는 점을 빼러 가자고 했지만, 엄마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한 번은 오른발에 생긴 티눈 때문에 엄마가 고생하는 것을 알고 외과에 모시고 갔다. 나는 따로 의사에게 티눈을 뺀 다음, 광대에 난 점도 빼달라고 했다. 시술대에 눕히고 티눈을 빼고 의사가 점을 슬쩍 만져보는 순간, 엄마는 화들짝 놀라 벌떡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뚝거리며 병원을 나가버렸다. 이후로 엄마는 나와 어떤 병원에도 가려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를 안 보고 살려고 했다. 엄마의 점만 보면 지난 일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유치원 때 나를 데리러 온 엄마를 보고 어떤 머저리 같은 놈이 엄마를 점순이라고 불렀다. 나는 그 아이 광대에 우리 엄마 점만 한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록 얼굴을 할퀴었다. 그 아이는 다시는 내 앞에서 우리 엄마를 점순이라고 부르지 않았지만, 이후로 다른 아이들 모두 우리 엄마를 점순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초등학교 때 비가 오는 날에도 운동회 날에도 절대 엄마가 학교에 오지 못하게 했다. 점순이라는 말이 사라졌나 싶었다.
중학교 때 물리 선생이 나를 때렸다. 조용히 하라는 말에 내가 피식 웃었다고. 나는 짝꿍의 말에 웃어주었을 뿐이었다. 나를 앞으로 불러다가 머리부터 시작해서 마구잡이로 주먹질, 발길질을 했다. 나는 선생에게 맞은 일 따위 엄마에게 말하는 사람이 아닌데, 꼴통 같은 물리 선생은 가슴이나 허벅지뿐 아니라 얼굴에도 멍이 들게 했고 코피만 터뜨린 게 아니라 코뼈까지 부러뜨렸다. 친구랑 싸웠다고 했지만, 내가 다른 애들을 팬 적은 있어도 맞은 적은 없어서 엄마는 믿지 않았다. 엄마가 같은 반인 주인집 아들에게 운을 떼자마자 내가 물리 선생에게 맞았다는 사실은 금방 탄로났다. 그다음 날 엄마는 해가 뜨는 것을 교문 앞에서 보았고, 교문이 열리자마자 학교 교무실로 갔다. 성적도 그저 그렇고, 문제아는 아니어도 그다지 별 볼일 없는 나 같은 학생 때문에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로 교장이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을 만나줄 리가 없었다. 엄마는 교무실 한가운데 있는 회의 탁자 끝 교장자리에 하루 종일 앉아 있었다. 담임 선생이 나를 불러 내려갔을 때, 그 자리에 앉아 닭장 속의 닭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쪽 저쪽을 바라보는 모습을 나는 닭장 속의 닭을 구경하듯 보았다. 어디선가 ‘점순이’라고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담임 선생과 엄마 앞에서 물리 선생이 미안했다며 내미는 손을 시큰둥하게 맞잡았다. 교실로 돌아왔을 때 정말로 어디선가 ‘점순이’라는 말이 들렸다. 칠판 한쪽에 아주 못생긴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그 얼굴 오른쪽 광대에 엄지손톱보다 커다란 점이 있었다. 나는 칠판으로 가서 점을 지우고 왼쪽 광대에 다시 그려 넣었다. 털 세 개도 있지 않았다.
대학 때 처음 사귄 남자친구가 어버이날이라고 우리 엄마에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나는 별 생각 없이 그러자고 했다. 대게를 앞에 두고 남자친구는 엄마 점만 보았다. 콧구멍을 벌름거리고 입술을 움찔거리면서. 엄마는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자친구 앞접시에 열심히 게살을 발라서 올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자네, 내 얼굴을 왜 그렇게 빤히 보나. 뭐 점이라도 묻었나?” 남자친구는 그만 “푸핫!” 하고 입에 있는 것을 엄마의 얼굴에 터뜨렸다. 놀란 남자친구는 죄송하다며 엄마 옆으로 쏜살같이 건너가 얼굴에 붙은 것을 떼어주었는데, 점 위에 붙은 대게살 앞에서 손을 부르르 떨다가 화장실로 튀어갔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게살을 계속 발라 먹었다. 남자친구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남자친구 앞접시에 있는 것까지 나는 싹싹 다 먹었다.
나는 어릴 때 친구들을 우리 집에 데려오지 않은 것처럼 남자친구 역시 우리 집에 초대하지 않았다. 연애를 했고 관계가 심각해지는 것 같으면 헤어졌다. 정말로 괜찮은 것 같은 남자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대게를 잊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내가 취직한 곳은 바이럴 마케팅을 하는 곳이었다. 면접을 보러 갔을 때 대표이사는 나에게 비서로서의 자질을 묻기보다 자기 이야기를 했다. 대기업에서 일하다가 대기업의 톱니바퀴 같은 존재로 살면서는 자기 꿈을 펼칠 수 없다며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는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선도적으로 ‘바이럴 마케팅’을 시작했다는 이야기, 겉보기에는 작은 회사 같아도 얼마나 내실 있고 성장 가능성이 큰 회사인지 나는 모를 거라는 이야기(아, 네네), 그리고 자기 일을 도와주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 그리고는 대머리가 될 것 같은 대표이사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애인 있느냐고. 나는 기실 사귀고 있는 남자가 있었지만 없다고 했다. 그리고 취직을 하면 독립하려고 하는데, 회사 근처에 집을 구하겠다고 덧붙였다. 두꺼운 안경을 쓴 대표이사는 아마도 자기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다면서 턱을 부풀리며 미소 지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어 보조개를 만들었다. “그럼, 저 합격인가요? 너무 긴장했더니 배가 다 고프네요.”라고 말했고, 그는 저녁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는 꽤 괜찮은 와인바로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한없이 눈을 깜빡였다. 나는 커다란 두꺼비 같은 그가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 화장실에 다녀오는 길에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는 거의 오줌을 쌀 것 같은 얼굴로 와인을 계속 들이키다가 심하게 취해 버렸다. 나는 그의 운전기사에게 전화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엄마에게 첫 월급을 타면 점을 빼러 가자고 말했다.

대표이사가 구해준 작은 오피스텔에 살았다. 일은 대표이사의 말대로 수월했다. 나는 언제나 회사에 정해진 시간보다 일찍 갔고, 느지막이 나오던 대표이사 역시 갈수록 출근시간이 앞당겨졌다. 출근하면서 내 앞으로 다가와, 두꺼운 안경 너머로 눈을 깜빡이면서 나를 헤벌쭉 바라보고 갔다. 그럼 나는 보조개가 생기도록 예쁘게 웃어주었다.
어느 날 대표이사가 내 앞을 지나갈 때, 나는 그의 깜빡이는 눈앞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는 눈을 뜨고 턱을 살짝 치켜든 다음 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내 볼에 코를 대고 뽀뽀했다. 그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말했다. “너의 점, 너의 점 때문에...” 나는 살짝 키득거렸다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그의 혀는 뜨겁고 급했다. 그가 내 블라우스 속으로 손을 넣었다. 나는 그의 허리띠를 풀었다. 나를 안아 그의 사무실로 들어가 소파에 내려놓았다. 그의 성기는 단단하고 급했다. 그리고 사정없이 사정했다.
그의 대머리 같은 머리에서 땀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눈물도 흐르고 있었다. 그가 나를 보더니 다시 내 볼에 코를 대고 깊게 뽀뽀했다. 그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내가 이렇게 할 수 있을지 몰랐어.” 나는 그의 땀과 눈물과 침과 정액으로 온몸이 진득거려서 그를 밀어내고 일어나 옷매무새를 고쳤다. “씻고 와야겠어요. 그리고 다음엔 제대로.” 나는 화장실에 가서 세수했다. 그리고 거울을 보았다. 왼쪽 광대에 보일 듯 말 듯한 점이 있었다.

대표이사는 내 오피스텔에 살다시피 했다. 그의 섹스는 날마다 나아졌다. 항상 불을 켰고, 안경을 쓴 채로 나를 보면서 했고, 내 볼에 코를 댄 뽀뽀로 시작해서 볼에 키스마크를 낼 것처럼 점을 빨아댔다. 그는 늘 터져버릴 것처럼 흥분했다.
대표이사와 하는 섹스 때문인지 점은 갈수록 커졌다. 화장을 하지 않다가 화장을 시작했고, 갈수록 두껍게 해야 했다. 점을 빼려고 했지만 대표이사가 너무나 간곡하게 말렸다. 나는 돈을 차곡차곡 모았고, 엄마에게 거의 다 보냈다. 때때로 찾아가서 점을 빼자고 했지만 실패했고, 점점 엄마가 보기 싫어 돈만 보냈다.
나는 회사에 나가는 대신 여행을 다녔고, 여행도 끈질기게 청혼하던 대표이사도 지겨워지자 대표이사와 함께 만났던 기혼인 재벌 3세와 사귀었다. 대학원에 가서 패션을 공부했고, 재벌 3세가 지겨워지자 뉴욕으로 유학을 갔다. 거기서 잘 나가는 스타트업 대표와 사귀었다.
그가 지겨워질 때쯤 한국으로 돌아와 내 이름으로 패션 브랜드를 런칭했다. 재벌 3세의 백화점에 입점했고, 대표이사에게 바이럴 마케팅을 맡겼다. 가끔 심심해지면 연예인을 만났다. 점은 갈수록 부풀었고 털이 나기 시작했다. 이제는 엄마도, 엄마의 점도 잘 기억나지 않았으므로 신경 쓰지 않았다. 돈은 잊지 않고 보냈는데, 돈을 쓸 데가 없기도 했다.

그간 한 번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병원에 좀 같이 가줘야겠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점 뺄 거야?” 정적. 나는 깔깔대고 웃었다. “갈게요. 어디 살아요?” 엄마는 여전히 내가 당첨시켜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했다.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다. 집도 그대로고, 가구도, 전자제품도, 화장실에 걸린 수건마저도 그대로였다. 입에 신물이 고였다. “뭘 하고 산 거야? 내가 준 돈은?” 엄마는 잘 먹고 살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살찐 적 없던 엄마의 얼굴과 몸이 동그란 것도 같았다. 염색을 했는지 머리카락은 새까맸는데, 왼쪽 광대의 점에 붙은 털 세 가닥은 하얗게 새어 있었다. 내가 엄마의 점을 보자 엄마도 내 얼굴에 난 점을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점 빼라.”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병원에 왜 가는 거냐고 물었다. 엄마는 자궁암에 걸렸고, 수술해야 하는데, 입원하려면 보호자가 필요하더라고 했다. 나는 티눈 빼러 갈 때보다 담담한 엄마의 얼굴을 건너다보았다. “자궁 빼면 낫는대?” 이번에는 엄마가 어깨를 으쓱했다.
다음날 오전에 갈 채비를 해놓고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우리는 대게를 먹었다. 엄마는 여전히 열심히 살을 발라주었고, 나는 내가 하려던 것을 그만두고 엄마가 주는 것만 따박따박 받아먹었다. “그놈은 꽝이었어.” 나는 배꼽이 빠지라고 웃었다. 대게살이 어디로 튄지도 몰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 패밀리사이즈로 샀다. 조그만 상에 아이스크림을 놓고 ‘아빠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배가 터지라고 먹었다. 엄마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짓거리가 문제야. 아버지는 밤마다 엄마를 괴롭혔어. 나는 엄마한테 찰싹 붙어 잤는데 자다 보면 누가 자꾸 날 떼어내고 엄마를 데려갔는데 나는 엄마를 놓치지 않으려고 울었어. 잠들만 하면 그러고 잠들만 하면 또 그러고... 나는 엄마랑 아버지가 붙어서 싸우는 줄 알고 다시 자지도 못하고 울기만 했지. 그러면 아버지는 나한테 베개를 던지면서 제발 자라고 했어. 아버지도 너무해. 그짓거리가 그렇게 좋으면 애들을 따로 재우든지 해야지 애들 주루룩 자는데 그 옆에서... 나는 다 봤단 말이야.
어느 날은 내가 자다 깼는데 엄마가 넷째 동생을 업고 집을 나가는 중이었어. 나도 데려가라고 엄마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절대 안 놔줬지. 엄마는 나를 밀쳐내고 소리 지르고 때리는 시늉까지 했다가 결국 못 떼어내고 도로 집으로 들어왔어. 이후로 나는 자다가 자꾸 깼지. 엄마가 없어지면 고래고래 소리 지르면서 울었는데 그때마다 어디 구석에서 엄마는 아버지 아래 깔려 있었어. 아버지가 엄마를 죽이는 줄 알고 나는 울면서 그걸 다 봤다고. 그러면 아버지는 나한테 또 베개를 던지면서 나가서 밥을 하라고 했어. 한밤중에 무슨 밥을 하라고.
아버지는 어디 다른 데서 재울 수만 있다면 나를 밖에 재웠어. 온 동네 집구석에서 다 자봤네. 서방이 자살해서 무서워 혼자 못 자겠다는 언니네 집에서 참 많이도 잤지.
그러더니 나를 다른 집에 아예 보내기 시작했어. 작은고모네도 가서 몇 달 살다 오고 큰아버지네 가서도 살다 오고. 가서 일해주고 밥 얻어먹는 건데, 밤새도록 새끼줄 꼬아서 멍석을 백 개를 만들었어. 아이고야, 그 고생을 하며 살았다.
중학교를 갔어야 하는 건데. 등본 떼서 할머니가 준 만 원 들고 학교 찾아가는데 아버지가 “점순아! 점순아!” 몇 리를 쫓아와서 죽어도 못 가게 하는 거야. 애기 나오는데 어딜 가냐고. 동지섣달 한겨울에 엄마가 막내동생을 낳았지... 밥 하려고 물 길어 걸어오면 물 튄 종아리가 꽁꽁 다 얼었어. 아이고... 쌀도 없어서 내가 바가지 들고 동네 돌아다니며 동냥해서 죽 해먹이고.
엄마 산후조리 다 해주고 나니까 이번엔 사촌오빠네 가라 그랬어. 공부 시켜준다 그래서 따라갔는데... 새언니 임신해서 집안일 도우라는 거였어. 입은 옷 한 벌만 입고 간 건데, 팬티 한 장 양말 한 켤레를 안 사줬지. 가슴은 자꾸 나오고... 모두 잘 때 나와서 옷 빨아가지고 수건에 대고 짜고 짜고... 솥뚜껑에 올려 말려 입고... 밥 하고 있으면 다 끝날 때쯤 언니가 들어와서 맛보는 척하면서 주머니에서 미원을 꺼내 넣었지. 내가 끓이면 아무리 뭘 해도 맛이 안 났는데, 그것도 모르고 사촌오빠는 언니가 끓여야 맛있다고 그러고... 밥 다 해서 오빠 일하는 데로 머리에 이고 가면 언니가 따라오다가, 저기 사람 보이면 그제야 나한테 받아서 머리에 이었어. 그럼 나는 그냥 뒤에서 졸졸 쫓아가는 거야. 오빠는 배부른 언니한테 이거 들게 했다고 타박하고. 언니가 아기 낳으니까 또 그 산후조리를 내가 다 했어. 다행히 한겨울은 아니었는데 똥기저귀 빨면 그거 제대로 안 지워졌다고 다시 빨라고 그러고... 또 빨라고 그러고... 햇볕에 널어 말리면 날아가는 건데. 기저귀는 방망이질도 못하게 했다고. 그렇게 고생을 시켰어. 너 키우면서 한 고생은 고생도 아니야.
우리 집 뒷집 사는 내 친구가 그 새언니네랑 사돈이 됐어. 만났을 때 내가 종아리까지 올라오는 양말을 사보내라고 그랬어. 그런데 시장에 갔는데 그런 양말은 없다고 우리 엄마가 아무것도 안 보낸 거야. 끝까지. 아이고... 나 참.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 다녔지. 월급날 되기 전날이면 엄마가 올라왔어. 돈을 주면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갔지. 결혼할 때까지 그러더니 너 낳고 산후조리 해주러 올라와서도 돈을 달라는 거야. 딸 산후조리 해주고 빈손으로 왔다고 동네 사람들이 쑤군댄다나. 돈 주니까 그 길로 내려가 버렸어. 내가 하루만 더 있어달라고 사정을 했는데도. 너 돌 때도 빈손으로 올라와서 잔치한 거 다 싸갔지. 내가 시댁 식구들 보기 미안하니까 내 돈으로 반지 해놓고 주면서 엄마가 해온 것처럼 주라고 했어. 아이고... 나한테 진짜 못했어.
그런데 네가 웬 일로 내 얘기를 다 들어주냐?

나는 소화도 시킬 겸 배 두드리며 엄마 이야기를 듣다가 너무 재미있어서 홀랑 빠져 있었다. 그냥 나는 씽긋 웃었다.

내가 그짓을 좋아했으면 늬 아빠가 그렇게 밖으로 돌지 않았을 거야. 만날 여자가 감칠맛이 없네, 그랬지. 그래도 싫은 걸 어떡해.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짓거리가 싫어졌어. 늬 아빠가 아예 나가버리고 혼자 너 키우느라 그 고생을 했어도 차라리 신간 편했지. 이놈의 자궁도 너 낳고 아예 떼어버렸으면 좋았을 걸 그랬어.
그런데 졸리냐?

어느 새 자정이 넘었다. 엄마와 나는 씻고 이불을 폈다. 그리고 눕지 않고 앉았다.

내가 그짓을 좋아했으면 돈 버는 것도 좀 쉬웠을 테지. 내가 노가다 다닐 때도 바람 안 난 사람은 나밖에 없었어. 일하고 돈 받으면 밥 먹고 술 먹고 나서 다 그짓거리 했지. 나는 술도 못 먹고, 맨정신엔 죽어도 못하겠는 거야. 뭐 어떻게 해 보려고 나한테 잘해주다가 내가 마지막엔 언제나 쌩 돌아가니까 나중에는 반장이랑 바람나서 저런다고 소문이 났어. 내가 그짓거리로는 안 되니까 일을 죽으라고 열심히 했거든. 그러니까 반장이 날 좋아해서 계속 데리고 일했거든. 셋이 짝지어 일하는데 반장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은 늘 할애비 같은 나이 든 사람 데리고 했지. 나는 술 안 마시니까 나중엔 같이 밥도 못 먹고 왔어. 배가 얼마나 고팠게. 그니까 나중엔 그냥 함바집에서 일했지.
그래도 노가다 해서 돈을 좀 벌어서 그 화장실도 없는 지하실에서 반지하로 이사 갔지 않았냐. 그 고생할 때도 나는 시골에 내려가서 중풍 걸린 시어머니 수발 다 해주고 올라왔는데, 돌아가셨을 때 늬 큰아버지가 수고했다고 백만 원 주는 거 늬 고모가 길길이 뛰었지. 그걸 왜 날 주냐고, 언젠가 빌려간 거 갚으라고도 하고. 내가 백만 원 땅바닥에 뿌리고 왔어.

나는 엄마 참 자알, 하셨다고 했다. 그까짓 돈이, 그까짓 돈이 아닐 때가 있는데, 그때도 그까짓 돈이라고 여겨버릴 줄 아는 배짱은 아무나 가진 것이 아닌 것을 나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엄마가 꽤 멋진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나저나 얼마 전에 고모가 꿈에 나왔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죽었을지도 모르지. 한 2년 전인가 전화가 와서 받으니까 늬 고모가 다 죽은 목소리로 전화했더라. 자기가 많이 아파서 간병인이 필요한데 와서 돌봐줄 수 없냐고, 돈은 심심치 않게 주겠다고. 나는 잠깐 놀면 뭐하나, 가서 일하고 돈이나 벌까 했어. 그런데 나한테 그렇게 모질게 한 것들이 생각나서... 의료보험 없어서 너 아플 때 그 딸 이름만 빌려달라고 그래도 안 된다 그러고, 돈 없어서 빌리러 가면 돈 맡겨놨냐고 그러고, 판자촌에 판자 깔고 잠깐 살면 나중에 아파트 생기면 들어갈 수 있게 해주는 게 있었는데, 그 2만 원을 못 빌려주고 제발 어디 멀리 가서 살라 그러고... 나처럼 이사 많이 한 사람 없을 거야. 등본 떼서 보면 아주 줄줄이야. 내가 서울 한 바퀴를 다 돌았어. 주인집 아들 공부하는데 네가 운다고 한여름에 쫓겨난 적도 있고... 내가 늬 고모한테 그랬어. 싫다고. 이제 돈 필요 없다고. 그러니까 그러대. “알겠네. 그래도 어디 아프냐고는 안 물어보나?” 하나도 안 궁금하다고 소리치고 끊어버렸어.

나는 깔깔 웃었다. 사람이 아프고 사람이 죽는데 마음 씀씀이가 이래선 안 된다는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에게 잘하셨다고 엄마 편에 마음껏 서주고 싶었다. 엄마의 마음 씀은 그다음에 엄마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나는 자꾸 눈이 풀려서 베개에 머리를 대고 누웠다. 엄마 역시 아프고 죽을 날을 받아두었다는 생각에 잠이나 자고 싶어졌다. 엄마의 말년이 이래선 안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괘씸하고 못마땅했다. 엄마는 도대체 무슨 재미로 살았냐고 물었다.

나? 음... 모를 심으면 제일 먼저 다 심고 일어서는 게 나였어.

나는 엄마 말이 너무나 엉뚱해서 다시 일어나 앉았다.

이렇게 못 배우고 못나도 어딜 가나 대장노릇 했어.

나는 그게 사는 재미가 될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나 같으면... 진즉에... 하지만 그렇게 물어볼 수는 없었다. 엄마는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고쳐 물었다.

너를 낳고 키우면서 행복했지. 낳자마자는 딸이라고 울었지만.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어?

나는 궁금해서 그렇다고 말하고 돌아누웠다. 나는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얼마나 고생을 하며 살았는지 절대 모를 것 같았다. 그런데 어떤 마음으로 당신 삶을 버티고 이겨내고 살았는지, 그나마 언제 웃었는지 몰라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것은 내 기쁨의 근원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고됨과 슬픔이 내 것인 줄 알고 살았던 것처럼.
엄마는 불을 껐다. “아이고, 시간이 이렇게 되어 버렸네. 네가 어쩌자고 나랑 이렇게 이야기를... 아이고...” 나는 엄마의 코 고는 소리를 듣고 잠이 들었다.

입원을 했고, 금식을 했고, 몇 가지 검사를 받았다. 병원은 사람을 할 일 없이 바쁘게 만드는 곳이었으므로 나는 책을 읽지도 못했고, 무슨 생각을 이어가지도 못했다. 틈틈이 티비를 보았고, 이따금 찾아오는 간호사의 지시에 따랐다.
그리고 엄마는 수술실에 들어갔다. 새벽같이 시작된 수술은 다시 바깥이 어스름해졌을 때에야 끝이 났다. 예정된 것보다 훌쩍 지나 끝났으니 어떤 이야기든 의사에게 들어야 할 것 같았지만, 의사의 얼굴도 보지 못했다. 나는 병든 닭처럼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느리게 흔들어대면서 “아파... 너무 아파...”를 비명처럼 속삭이는 엄마를 구경해야 했다. 손은 차갑고 굳어 있었다. 눈가엔 눈물이 말라붙어 있었다. 진통제와 수면제를 맞고 잠이 든 엄마 곁에서 나는 하릴없이 병실 보호자 의자에 앉아 간호사가 주고 간 수술 관련 안내문을 읽었다. 그러다 잠이 들었다.

“물, 물 좀...”
“아이고, 아이고, 깨어났네!”
“목이 너무 말라... 물 좀...”
“응, 언니, 기다려봐. 아이고. 이대로 가는 줄 알았네.”
빨대가 입으로 들어왔다. 나는 물을 빨아 삼키려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아유, 아유. 일단 손수건에 물 좀 적셔줘야 쓰겄네.”
입에 차가운 것이 닿는 게 느껴졌고, 조금 시원했다. 머리가 아팠다. 아니, 배가, 아니, 온몸이 쥐어짜는 것같이 아팠다.
“엄마... 엄마, 어디 갔어요?”
“아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언니, 나 간호사 선생님헌티 갔다 와야 쓰겄네.”
온몸이 타는 것 같았다.
“물...”
눈을 뜨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누군가 잰 걸음으로 들어왔다.
“김정순 님?”
“아니, 방금 말을 혔는디, 분명히 혔는디!”
“김정순 님?”
“언니, 다시 자는가? 말 좀 혀보소. 며칠 만에 깨나가지고...”
“엄마... 엄마는 어디 갔어요?”
“아니, 이 언니가 자꾸 헛소리를 허네. 엄마를 자꾸 찾고 그려. 헛것이 보이는가...”
나는 눈을 떴다. 간호사와 머리가 뽀글뽀글한 할머니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신음이 나왔다. 너무 아파 얼굴을 찡그렸다. 간호사가 링거를 만지작대니 뜨겁고 건조한 늪으로 빠져드는 익숙한 느낌이 밀려왔다.
“아이고야... 또 언제 깨나라고...”
한없이 적막해졌고, 나는 기운이 없었다.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 얼굴엔 점이 없었다.
“엄마, 엄마 다 나았어?”
“응, 엄마는 괜찮아. 내가 아플 것을 그랬다, 내가.”
“근데 점은 어쨌어? 뺐어?”
“네 점을 빼줄 것을 그랬다. 빼줄 것을... 그렇게 빼달라고 했는데...”
“목이 너무 말라. 물 좀...”
뽀글머리 할머니가 내 입에 빨대를 넣었다. 겨우 한모금 빨았다. 나는 다시 늪으로 내려갔다.
“이제 이 언니 보낼 때가 되었는갑네... 아이고... 혈육도 없이...”
나는 내 왼쪽 광대에 난 점을 만졌다. 세 가닥 털이 지문같이 편안했다. 나는 이곳에 남기로 했다. 여기가 제일 재미있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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