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시간

그러니까 엄마가 좀 도와줘, 결국 그 말이 나올 테니까.

by 모도 헤도헨




정미네 가는 버스 안이었어. 장바구니에 든 미역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는데, 말라서 타각거리는 미역이 안쓰러워 보이더라. 바다로 가서 가만히 넣어두고 오고 싶었어. 자기가 있던 곳에서, 있을 곳에서 한들한들 흐름대로 살도록 말이야. 결국은 말려져서 사람 목구멍 속으로 들어가는 게 자연스러운 건가? 그렇다면 정미 미역국 끓여 먹이고, 나도 옆에서 조금 먹고서 내가 죽은 다음에라도 바다에 돌아가도록 해주나, 뭐 그런 생각을 했어.


… 아무래도 바다도 미역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겠지?




젊은 여자가 어린 아들을 아기띠에 안고 버스를 타기에 일어섰어. 거절하지도 못하고 미안해하면서 앉는데, 나도 금방 내린다고 거짓말도 못하고 괜찮은 척했어. 아기는 칭얼칭얼 대지, 짐들은 주렁주렁 매달았지, 여자는 송글송글 땀이 맺힌 채 어쩔 줄 모르는데, 버스는 왜 그리 거칠게 가는지 출렁거릴 때마다 마음이 덜컹거려 혼났네. 아기띠란 것도 생기고, 일회용 젖병이며 종이기저귀며 갈수록 애 키우기 편하게 하는 것들이 나왔다지만, 애 데리고 다니는 거 힘든 건 마찬가지인가 봐.


남 얘기가 아니지….




버스에서 내려 정미네 집까지 걸어가는데, 원, 아무리 여름이라도 너무하지. 보름째 비 한번 내리지 않고 구름 한번 끼지를 않네. 그래도 오늘은 열에 하나 부는 바람은 산산하다 느꼈으니 이 여름도 이제 기가 꺾이나 봐. 휴. 이 길을 얼마나 더 오가야 할까. 이 날씨에 애 낳고 산후조리하는 정미도 고생이지. 에어컨 바람 직접 쏘이지 않고도 적당한 온도 맞춰주고 삼시세끼 다른 미역국에 갖가지 반찬 나오고 애도 봐주는 산후조리원에 갔으면 좀 좋았을까. 요즘에는 다들 그런다는데.


그래도 나라도 있어서, 고생하는 거 거들 수 있으니 다행인 건지.




계단을 올라가면서 굳은 얼굴을 풀어보려고 했어. 눈도 크게 떠보고 눈알도 굴려보고 입을 벌려 턱도 움직여봤어. 가뭄에 바싹 마른 땅 같이 굳어버린 얼굴은 파슥 볼품없는 가루로 부서져버리네. 촉촉한 웃음 같은 거 어디 안 생기나? 기뻐하고 예뻐하고 설레고… 그래야 마땅한데 말야. 세상에, 기적 같은 생명을 맞이하고 이렇게 생각을 고르고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니 이게 얼마나 웃기는 노릇이야.


우리 딸 정미, 그리고 정미 딸을 앞에 두고.




열쇠로 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가는데, 정미가 화장실에서 나오고 있었어. 부스스한 머리를 아무렇게나 하나로 묶고 윤기라곤 없는 얼굴에 목덜미가 다 헤진 옷을 입고 있는 정미를 보니까 애써 올렸던 입꼬리가 금방 내려갔어. 엄마, 오셨어요? 그래, 아침은 먹었어? 응, 뭐 대충. 그럼 가서 좀 자. 서은이 잘 때는 다른 거 말고 무조건 자. 고마워요, 엄마. 안방으로 들어간 정미는 서은이 깰까 봐 이불도 제대로 들추지 못하고 애 옆에 쭈그려 누웠어.


에휴. 그냥 편하게 눕지, 애 좀 깨면 어때.




미역을 불려놓고 빨랫감을 세탁기에 넣었어. 배냇저고리, 가재수건, 정미 수유복에서 나는 젖비린내가 왈칵 코로 들어왔어. 정규네서 지내던 때가 어제 일처럼 눈앞에 선명하네. 날마다 세탁기 앞에 서서 내 운명이 정신없이 몰아치는 소용돌이에 이리저리 두드려 맞는 것 같았어.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애가 이뻐서 견딜 수 있을 줄 알았지. 내 새끼 키울 때처럼 힘들어도 행복할 줄 알았지. 하지만 아이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도, 내 앞에는 어제 세탁기를 돌린 것처럼 오늘도 돌려야 하는 빨래만 남을 뿐이란 걸 깨달았어.


나는 세탁기 앞에 서면 목이 콱 비틀리는 것 같아, 아직도.




세탁기를 돌려놓고 청소를 시작하려고 작은방 문을 열었어. 코끝에 아직도 남아있는 젖비린내까지 잡아먹을 듯이 담배연기가 쏟아져 나왔어. 들어가 문을 닫고 불을 켜고 누런 벽 한쪽에 있는 창문을 열었어. 컴퓨터 앞에 국물이 그대로 남은 컵라면과 젓가락, 소주병, 담뱃대가 잔뜩 있는 재떨이가 있는 걸 보니 어젠 들어왔나 봐. 여기 보름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얼굴을 한 번도 못 봤어. 얼마나 바쁜 건지. 애가 자라는 건 보고 지내는지.


어쨌든 둘이 지지고 볶고 살아야 할 거 아냐. 둘이서 말야.




방을 치우려니까 별 생각이 다 드는 거야. 우리 정미는 어릴 때부터 정리를 잘했잖아. 고것이 조그만 손으로 책도 가지런히 꽂아놓고 블록도 통에 담고 조그만 빗자루와 쓰레받기로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뿌듯했는지 몰라. 그때야말로 내가 애를 잘 키운 거 같았거든. 하긴, 내가 가르친 건 아니지. 정미는 원래 그런 아이였으니까. 나한테 혼이 나면 조용히 방에 가서 책상정리하고 이불을 개키던 아이였으니까….


그런 딸의 집을 청소하는 거야. 내가 누구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건지.




계속 환기하려고 창문은 열어두고 방문은 닫고 나왔어. 서은이가 깨서 칭얼대는 소리가 들리기에 안방으로 얼른 건너갔지. 정미가 벌써 일어나 젖을 물리려 하고 있었어. 잘 안 물려졌는지, 서은이가 신경질적으로 울기 시작했어. 정미의 가슴에서는 젖이 뚝뚝 흐르고 정미 콧잔등엔 땀이 송글송글 맺혔어. 급하게 서은이 입에 젖꼭지를 밀어 넣었다가 서은이가 사래가 걸리는 바람에 켁켁거리며 기침을 하고는 자지러지듯 울음을 터뜨렸어. 정미 눈에까지 눈물이 맺혔어. 이 모든 일이 당신이 상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벌어진 거야. 나는 얼른 서은이를 안아 등을 쓸어주며 쉬잇, 소리를 냈어. 울음이 잦아들자 낮은 목소리로 말했어. 기다려라, 얘야, 엄마가 쭈쭈 주려고 준비하는 중이거든. 착하지. 그 사이에 정미는 뭉친 가슴을 손으로 풀고 젖꼭지를 눌러 젖을 좀 빼냈어. 그리고는 서은이를 받아들고 찬찬히 서은이의 입에 젖을 물렸어.


한 순간, 평화가 찾아왔어. 엄마 젖 같은 해결책이 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




먹다가 잠든 서은이를 안고 트림을 시킨 다음 다시 눕혔어. 깊고 충만한 잠을 자고 있었어. 어제보다 더 여물어졌네. 널찍한 이마 하나 정미를 닮았고, 숱 많고 짙은 머리카락이랑 진한 눈썹, 커다란 눈이 이 서방을 닮았어. 정미를 더 닮았으면 좋았을 걸… 서은이 볼 때마다 이 서방이 떠오르는 게 싫어 그런 생각을 했어. 에이, 노인네가 그렇지 뭐. 천사 같지? 정미가 묻기에, 그래, 천사가 따로 없구나, 대답했어. 정미를 보며 우리가 날마다 했던 생각을 정미도 서은이를 보며 하는 거야. 이렇게 천사 같은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하고, 감탄하기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정미도 곧 알게 되겠지. 아니, 알고 있을 거야. 이미.




엄마, 오늘은 자고 가면 안 돼? 그이 오늘 밤샘작업 한대. 정미는 나를, 무슨 동아줄처럼, 놓으면 나락으로 떨어질 것처럼 붙들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뭘 붙들어야 할까. 내가 쉽게 답을 못하니까, 정미가 곧 울어버릴 것처럼 말했어. 자꾸 서은이를 떨어뜨릴 것 같단 말야. 응가해서 엉덩이 닦아줄 때마다, 목욕시킬 때마다, 안고 재울 때마다 서은이 떨어뜨리는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라. 혼자 있을 때 그럼 갑자기 숨도 가빠지고, 심장이 마구 뛰고 식은땀 나고, 서은이를 떨어뜨려 죽게 하고 나도 죽을 것만 같… 그래, 알았어. 오늘은 자고 갈게.


내가 뭐라고 더 말할 수 있었겠어?




고마워요, 엄마. 이 서방 있을 땐 그이가 많이 도와줘서 괜찮은데, 없으니까 걱정이 돼서. 정미가 말했어. 밤새 컴퓨터 앞에만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부터 혼자 낑낑대니, 앞으로 어떻게 할래? 턱 밑까지 올라온 말을 꾹 참았어. 정미 속을 긁어서 뭐하겠어. 내가 아니어도 지금 마음이 시끄러울 텐데. 그리고… 그러니까 엄마가 좀 도와줘, 결국 그 말이 나올 테니까. 이렇게 얼렁뚱땅 말이 나왔다가는 내 쪽에서 제대로 말도 못할 게 뻔해.


그렇게, 정미도 나도 눈치만 보고 있어. 보름째.




오늘은 황태를 넣고 미역국을 끓였어. 최대한 이것저것 해주려고 하는데, 한계가 있네. 소고기 아니면 황태 아니면 들깨 정도야. 다행히 정미는 먹는 것에 대해 투정 같은 건 없어. 예나 지금이나 순한 아이야. 그게 나를 편하게 해주니까 좋은 건 줄만 알았는데, 좀 더 까다로운 아이로 키울 걸 그랬어. 그렇게 키운다고 그리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싫은 건 싫다고 똑 부러지게 말하고, 거절도 확실히 하는 아이로 말야. 그럼 사회에서 더 성공하고 결혼도 더 나은 사람이랑 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들이 부질없는 줄 알면서도 떠나질 않네.




하기야 지가 공부 잘해서 번듯한 데 취직한다 해도, 남편이 어떤 사람이래도 애 키울 때 부모한테 손 벌려야 하는 처지는 똑같았겠지. 서진 애미 봐. 좋은 대학 나오고 월급 많이 주는 회사 다녀도, 애 낳아 키우려니까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한시도 빼놓지 않고 곁에 누가 있어야 하는 게 애 키우는 일인데, 내가 아니었으면 진즉에 회사 그만뒀겠지. 저가 번 돈 고스란히 애 키우는 사람한테 줬든가.


그래서 시애미 노릇한다고 내 몸뚱이가 어떻게 되는지는 신경 안 썼지.




정미랑 점심을 먹었어. 이런저런 얘기 도란도란 나누면 좋으련만, 말주변이 없어서 밥만 보고 먹었어. 정미도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지 말없이 밥을 먹었고. 다 큰 딸인데도, 그 입으로 밥이 들어가는 모습에는 아직도 배가 부르네. 젖도 내줘야 하는데 더 많이 먹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는데, 서은이가 깬 거야. 우는 소리가 들리자마자, 정미는 벌떡 일어나더니, 남은 밥을 미역국에 말아서 그릇째 들고 후루룩 삼켰어. 얼굴까지 발개져서는 달려가는 뒤통수에 대고, 얘, 애 좀 울어도 된다, 천천히 먹고 가지, 말했어. 정미는 어느 새 서은이 젖을 물린 채로 안고 와서는, 엄마, 그러면 안 돼요. 아이가 세상에 대해 불안감을 가진다고. 엄마, 그렇게 애 울리시면 안 돼요, 알았죠? 그러는데, 내가 말문이 막혀버렸어.


아니, 왜 벌써부터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를 하냔 말이야. 누가 키워준댔나.




엄마, 다음 달부터 미용실 나가려고 해. 내친 김에 말을 꺼내기로 했는지 정미가 서은이를 안은 채로 식탁 앞에 앉았어. 나는 식탁을 치우면서 건성으로 대답했지. 그래, 나가서 돈 벌어야지. 엄마, 그래서요, 서은이 좀 봐주시면… 못 본다. 딱 잘라 말하고 싱크대로 가서 물을 세게 틀었어. 입을 굳게 다문 채 설거지를 시작했어. 괴괴한 채 그릇들이 탕, 탕 부딪치는 소리만 났지.


왜 다들 나한테 이러는지 모르겠어. 나도 내 삶이 있는데.




엄마, 부탁이에요. 이렇게 갓난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가 없어. 그럼 사람을 불러. 아무래도 모르는 사람한테 맡길 수가 없을 것 같아, 말도 못하는데…. 좋은 사람도 많아. 찾아봐. 나는 매몰차다 싶게 말했어. 엄마, 그럴 형편이 안 돼요. 하루 종일 맡기려면 적어도…. 엄마, 엄마한테 공짜로 봐달라고 하진 않을게. 조금만 커서 어린이집 갈 때까지만 도와줘요. 어린이집 가면? 아침엔 네가 해도, 너는 밤에 오는데 데려오고 놀아주고 저녁 먹이고 씻기고 해야 해. 너는 주말에도 나가는데 고스란히 내가 봐야 하잖아. 이 서방이야 밤낮이고, 주말이고 없는 사람이고… 엄마, 오빠는 도와줬으면서. 내가 그러다 병났잖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어. 정미한테 할 게 아닌데, 엉뚱하게….




손목, 어깨, 허리 안 아픈 데가 없어. 그리고 한참… 우울증 약도 먹었다. 하루하루가 고역이었어. 살던 곳도 아닌 곳에서 친구들도 못 만나고 모임에도 못 나가고 5년을 집하고 놀이터에만 있었다. 놀이터 나가도 애만 쫓아다니고… 다 늙어서 감옥이 따로 없었어. 애야 이쁘지. 나도 애들 이뻐만 하고 싶다. 보면 안아주고 우쭈쭈 해주고 싶어.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면서 먹이고 씻기고 하루 종일 같이 있다 보면 그 조그만 애한테 소리 지르면서 혼도 내고 화도 내게 된다고. 그럼 할미 싫다고 지 엄마 찾으면서 울지. 서진 애미도 말로는 고맙다고 하면서, 서진이 서현이가 엄마만 오면 찰싹 붙어 떨어지려 하지 않는 게 내가 뭐 어떻게 한 건가 싶어서… 엄마, 난 그런 의심은 하지 않아요. 그런 의심? 아이구, 고맙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여보.




하루 종일 옆에 끼고 키워 봐야지, 알지. 그래야 자식 키우는 게 어떤 건지 알지. 고생도 알고 이쁜 것도 알고. 엄마, 나도 그럴 수 있으면 그러겠어. 그런데 상황이 안 되잖아. 나는 시부모도 없고 손 벌릴 데라곤 엄마밖에 없는데… 정미가 훌쩍이기 시작했어. 한숨이 나왔어. 젖 주는 애가 우는 거 아니다. 나는 사과를 꺼내 깎았어. 아무리 해도 답이 안 나온다고. 이 서방은 일찍 들어오는 날이 손에 꼽지, 어쩌다 들어오는 날엔 자느라 바쁘지, 이 서방이 주는 돈으로는 이 집 월세 갚고 나면 생활비도 안 되고…


그러게 왜, 그런 사람 만나 애는 낳았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데 내가 너무한 거야?




내가 나가서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서은이 키우지. 사과 먹어라. 정미는 뚝, 뚝 눈물방울을 떨어뜨리더니 사과를 집었어. 나는 서은이를 안고 트림을 시킨다고 등을 쓸어내렸어. 아기에게서 나는 젖비린내는 익숙한 듯 그리워. 서은이가 하품을 하느라 입을 벌렸을 때 나도 모르게 입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어. 그 모습을 정미가 빤히 바라봤어. 옆에서 가끔 봐주는 거랑 아예 키우는 거는 다르다. 가끔은 도와줄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어.


매정한 엄마가 된 것 같아 마음이 쓰려.




정미가 훌쩍거리면서 사과를 먹네.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해. 서현이 맡길 때 서진 애미도 울면서 통사정을 했지. 서진이야, 결혼하면서 내가 보태주지 못한 거 몸으로 갚는다 생각하고, 또 힘들다 힘들다 해도 다들 손주들 키우고 사니까 덜컥 봐준다 했어. 큰 회사 다닌다고 둘 다 바빠서 평일에도 거의 데리고 살다시피 하고, 주말에도 둘 쉬게 해준다고 봐주고…. 그래도 같이 살자고는 안 해서 평일엔 새벽같이 나가서 오밤중에 들어오고, 주말엔 집에서 애들 데리고 있으면서 교회도 못 가고…. 어떻게 그렇게 살았는지 몰라. 어린이집 가면서 오후에만 보면서 좀 나아지는가 했더니, 서현이가 들어선 거야. 아이를 마냥 기뻐하지 못했어. 서현이 키울 때는 여기저기 아프고 마음도 힘들어서 많이 이뻐해 주지도 못한 거 같고.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잘못한 거만 남은 거 같아.


지금 한 번 껄끄러워도, 이게 정미나 서은이나 나에게 좋은 거야.




마른 빨래를 개키고, 아까 돌린 빨래를 널고, 안방을 치우고, 저녁 반찬을 만들고 그렇게 오후가 갔어. 그 사이 택배는 속속 도착하고, 정미는 그때마다 펼쳐서 기저귀, 물티슈를 정리하고, 초점책 보여준다고 서은이 앞에 들이대고 모빌을 달고, 또 뭔가를 주문하고…. 좁은 집에 뭘 그렇게 사서 쟁이는지. 낮잠이나 좀 자두지. 밤에 서은이 때문에 제대로 자지도 못할 텐데. 정미랑 나는 서먹하게 가끔 필요한 말만 했어.


서은이가 순해서 생각보다 손이 안 가네. 정미를 닮았어.




저녁을 먹고 서은이 목욕을 시켰어. 정미는 서은이 목욕시키는 게 제일 어렵다며 옆에서 보기만 하는데도 종종거리는데, 서은이는 목욕을 좋아했어. 놀라기는커녕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속을 즐기는 게 느껴졌어. 혼자서 할 만하겠는데, 뭘. 그런 말이 절로 나왔지. 엄마가 해줄 땐 울지도 않고 잘 있네. 정미는 입술이 나왔고. 배냇저고리를 갈아입히고 젖을 먹이고 속싸개로 감싸서 재웠어. 정미도 씻고 나도 씻고, 작은방에 이불을 폈어. 내 잠자리가 아니어서 한참 뒤척이다 잠들었어. 간간이 서은이가 깨서 울 때도 같이 깼고…. 그러다 동이 텄는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어. 이 아침에… 누구지? 정미가 나가서 문을 열어주었는데 이 서방 목소리가 들렸어. 정미는 속삭이는 소리로 서은이 방금 잠들었다고, 그리고 엄마도 와계신다고 말하는데, 이 서방은 술에 취했는지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서은이 잔다고? 아빠가 왔는데 얼굴은 봐야지~ 하면서 턱, 턱 걸어서 방으로 가는 거야. 이제 나도 일어나야지 싶어서 이불을 개키고 옷을 갈아입는데, 안방에서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들렸어. 나가지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었지.


이 서방도 일하느라 힘들었겠지만, 애 보느라 혼자 고생했는데 토닥여주지는 못하고….




그러다 소리가 났어. 쨕! 내 귀를 의심했어. 이 소리는, 이 소리는… 눈앞에 손바닥으로 뺨을 때리는 모습이 그려졌어. 갑자기 심장이 벌렁벌렁 했어. 내가 제대로 들은 걸까? 갑자기 서은이 울음소리가 났어. 이 서방이 어르는 소리, 그럴수록 커지는 울음소리, 정미가 속닥이며 말리는 소리…. 나는 더 이상 눈앞에 펼쳐지는 그림을 억누르지 못하고 문을 열고 나갔지. 정미 왼쪽 뺨이 불에 그을린 듯 붉었어.


여보, 이런 모습까지 내가 봐야 하다니….




어이, 장모님, 오셨어요? 자네, 지금… 뭐한 건가? 정미를 때렸나? 아니요, 무슨 말씀이세요. 서은이를 이 서방에게서 뺏다시피 받아든 정미 눈에 눈물이 맺혔어. 분명히 들었네. 어떻게 산후조리 하는 아내를… 때리나? 나는 이까지 딱딱 소리를 내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어. 장모님,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아니라니까요? 저 왔으니까 이제 그만 가세요. 아니, 못 가겠네. 자네는 서은이를 키우는 건가, 아닌가? 하는 게 뭐가 있나? 장모님, 참견이 심하시네요. 내 딸을 이렇게 함부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네.


내가 힘없는 노인네여서… 이런 일까지 당하는 걸까?




나가게. 이 집도 정미 혼자 살던 집에 자네가 들어온 거 아닌가. 월세나 생활비도 듣자 하니… 에잇! 돈, 돈, 돈! 그놈의 돈, 없으면 사람도 아닌가? 에미나 딸이나 돈타령이야! 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어.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식탁을 붙잡고 겨우 버텼어. 당장 나가. 안 그러면… 나가요, 나간다구! 이 서방, 아니 그 놈팡이는 문을 쾅, 닫고 나갔어. 식탁을 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렸어.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지. 서은이는 계속 울어댔고, 서은이를 달래는 정미도 눈물을 줄줄 흘렸어.


여보, 당신은 어째서 이런 때 옆에 없는 거야?




서은이의 울음이 잦아들고 곧 잠이 들었어. 그런데도 정미는 서은이를 내려놓지 못하고 꼭 안고 있었어. 마치 놓칠 것처럼. 잃어버릴 것처럼…. 누여라. 누이고 밥 먹자. 밥 먹어야 또 서은이 젖 주지. 나는 비틀비틀 일어나 쌀을 씻어 안쳤어. 어제 만들어놓은 황태미역국을 데우고 감자볶음을 만들고 계란프라이를 했어. 서은이를 내려놓은 정미는 식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 울든지 변명을 하든지 하지…. 어릴 때나 똑같아. 혼날 것 같으면 그냥 가만히 있어, 정미는. 자기 잘못이 아닌 일에도.


속이 시끄러워서, 그런 정미에게 괜찮다고, 마음 편히 있으라고 말하지 못했어. 그렇게 벌을 주었네.




밥이 거의 다 되었을 즈음에 뱃속이 요란하게 꾸물럭거려서 화장실로 달려갔지. 옴팡 긴장했던 탓인지, 설사를 했어. 완전히 비우고 나니까, 오히려 속도 마음도 편해졌지 뭐야. 화장실에서 나와서야, 정미에게 말을 걸었어. 왜 그러고 앉았어? 잘못한 사람처럼. 얼른 세수하고 와. 밥 먹자. 부스럭, 일어난 정미가 화장실로 가더니, 들어가지 않고 멈춰서 말했어. 그래도… 엄마한테 미안해. 잘 사는 모습 보여주고 싶었는데…. 뭐라고 말도 못하고 있는데, 정미가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닫았어.


지가 왜 미안해? 왜 내 속 아픈 것까지 지가 미안해하냐고.




정미가 빨개진 눈으로 식탁 앞에 앉아서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는 것을, 모르는 척 나는 열심히 밥을 먹었어. 밥풀만 세다가 숟가락을 내려놓기에 물을 건넸어. 미용실 언제부터 나간다고? 정미가 고개를 들어 나를 봤어. 살아야지, 일해야지. 일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이냐? 딴생각 하지 말고… 서은이 잘 키워야지. 눈물이 맺혀서는 고개를 끄덕, 하는데 나는 이를 악물었어. 일단, 여기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와. 나는 일어서서 상을 치우기 시작했어. 방에 가서 누워라. 좀 자.


여보, 머리가 아팠어. 머리가….




어떻게 사는지, 누구 만나고 사는지 들여다봤어야 했는데. 정규네 애들 봐주면서 집을 비워둘 때 정미가 미용실 가까운 데서 산다기에 이 집 보증금만 해주고 나는 나 몰라라 했어. 서른 다 되도록 죽어라 미용실 시다로 일한다고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도, 지가 재미있다니 잘 지내나 보다 했지. 나도 서진이 서현이 돌보느라, 내 몸도 신경 못 쓸 때였고…. 결혼식도 안 올리고 애 생겼다고 그 놈팡이랑 왔을 때 그제서야 마음이 덜컥했지. 그 놈이 허풍을 쳐대는 게 빤히 보여도 어쨌든 지네끼리 지지고 볶고 살겠지 했어.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어.


세상에 쉬운 일 하나 없는 건데…. 내 마음대로 돼주는 게 아닌데….




배가 불러오는데도 정미는 일을 쉬지 않았어. 좀 쉬었으면 했지. 지금 생각하니 돈 때문이었을 거야. 이제 디자이너 돼서 별로 안 힘들다고, 잠깐 쉬면 손도 굳고 손님 떨어진다고 안 된다고 하기에 그런가 보다 했어. 만날 때마다 혼자여도, 이 서방 영화 들어가서 바빠 그렇다 하면 그런가 보다 했어. 잘해준다기에 그런가 보다… 어쩌다 그늘이 비쳐도 사는 게 맘 같지는 않겠지, 하고 넘겼지. 꼬치꼬치 캐묻는다고 종알댈 애도 아니고…. 착한 애니까 잘 살겠지….


여보, 다 내 탓 같아.




애 낳았다고 연락 와서 병원에 가보니 혼자 있는 거야. 그 힘든 일을 혼자 해낸 거야. 부은 얼굴로 땀에 절어서 가만 누워 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어. 도대체 어디 있느냐고, 뭐하는 거냐고 물어도 정미가 대답을 해야지. 내 앞에서 민망해하면서 나를 불편해하기에 그렇게 묻는 것도 관뒀어. 나까지 걔 속을 끓일 건 없잖아. 만신창이를 해가지고 있는 애한테… 그래도 어제까지 같이 있었다고 뻔한 거짓말을 하는데 속아주지도 못하고 끄응, 했지.


왜 그렇게 답답이일까, 걔는….




결국 정미는 그 놈팡이랑 이혼했어. 짐 싸서 내놓았다고 가져가라고 연락하니까 내가 옆에 있는 줄 알면서도 욕에, 욕을 하는데…. 내가 전화 빼앗아서… 여보, 내가 그런 말을 할 줄 아는지 나도 몰랐어. 상황이 그러니까 평생 해본 적 없는 욕이 나오대. 그동안 정미가 어떤 대우 받고 살았는지 뻔해서, 하루 빨리 헤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 주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 양육비 받기로 하고 이혼한다기에 잘한다 했어. 지도 양심이 있으면 양육비도 없이 나타나진 않겠지. 아니, 안 줄 생각이었으니까 그 놈도 털어버리듯 이혼한 거겠지.


어찌 됐든, 이제 그놈은 정미 인생에 없을 거야. 없게 해야지.




정미는 미용실에 가느라 아침에만 잠깐 서은이를 봤어. 젖도 처음엔 유축한다고 법석을 떨다가…. 거기서 그럴 형편이 안 됐겠지. 젖 줄어서 나중엔 분유 타서 먹였어. 서은이는 순해서 분유 준다고 뭐라 하지도 않고 쑥쑥 잘 컸어. 정미랑 마주해도 서로 말을 잘 안 했어. 나는 말하다 보면 잔소리 되고, 정미 속상한 얘기로 흘러갈 게 뻔하니까 괜히 말을 아꼈고… 정미는 미안해 그랬는지, 어쨌는지 별 말이 없더라고.


젊은 애가 그리 생각이 많아서 어쩌려고…. 그냥, 너 참 속도 좋다, 그러고 싶은데.




정미랑 서은이랑 살면서 나는 다시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부지런히 집안일을 해야 했고, 서은이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기저귀 갈고 놀아주고 잠깐씩 바깥바람 쐬어주고…. 잠깐 쉬었던 애 보는 일을 다시 했어. 그래도 이 집 저 집 왔다 갔다 하지 않고 내 집에서 보니까 서진이 서현이 볼 때보다 좀 나았어. 다니던 교회도 계속 나갔고, 심심하면 교회 가서 권사님들이랑, 시장이나 공원에 가서 동네 할머니들이랑 수다도 떨 수 있었고. 정미도 집안일 틈나는 대로 하고 서은이 잠깐 본다고 집에 있을 때에라도 찰싹 붙어 있었어. 정미 쉬는 날엔 셋이서 마트에도 가고 외식도 했고.


내가 애비도 되었다가 애미도 되었다가 핼미도 되었다가… 그랬어.




서진이 서현이 때보다 늙었으니 몸이 더 힘들었지. 업어주는 것도 힘들고. 그래도 애미 애비 없이 혼자 애 보다가 애미 애비 오면 부리는 사람처럼 돌아가는 게 아니라, 정미랑 같이 서은이 보고 같이 서은이 얘기 하고 그러니까 마음은 조금 나았지. 그리고 서은이가 크면서 서은이 고것이 예쁜 짓 하는 것 때문에 정미랑 웃으면서 할 얘기가 생겼지.


힘들어도 그렇게 좋은 쪽으로 생각하려고 했어.




서은이가 세 살부터 어린이집 다니면서 오후부터만 봐주면 되었으니, 훨씬 편해졌지. 돌아보니까 제일 힘든 때를 그래도 넘긴 거 같아. 정미도 얼굴에 그늘이 많이 걷혔어. 미용실에 정미 손님도 많이 드는 모양이고. 가끔 머리하러 가면 집에서 보는 거랑 다르게 또 그렇게 멋있어 보이대. 하루종일 서서 일하고 다른 사람 비위 맞추는 일이라 몸도 힘들고 또 스트레스도 받고 그렇기야 하겠지만, 공부 잘해서 사무실 앉아 일하는 직장 얻었대도 그게 또 쉽기만 하겠어? 이쁜 거, 꾸미는 거 좋아하고 다른 사람 마음 편하게 잘해주는 정미한테는 미용 일이 딱이지. 손님들이 머리 이쁘게 해가지고 정미한테 원장님, 너무 맘에 들어요, 감사해요 하면 내가 다 우쭐해. 정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말 듣고 그런 표정 보겠지.


아무튼 그래서… 좋아.




그리고, 정미가 요즘 좀 바빠. 또 연애를 시작했어. 이번에는 처음부터 남자 생겼다고 나한테 말을 하더라고. 헤어지면 꼭 집으로 데려다주는 모양인데 아주 늦지 않으면 얼굴도 비치고 가. 정미 쉬는 날에도 집에 와 서은이랑 같이 놀다 가고. 잘생기진 않았어도 사람은 착한 거 같아. 잘생긴 건 뭐, 하나도 안 중요하지. 서은이가 이제 다섯 살이라, 말도 곧잘 하고 삼촌, 삼촌 하면서 잘 따르는데….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지. 서은이 팽개친다는 놈이라면 어떤 놈인지 빤한 거지.


그렇게 정미도 다시 얼굴이 꽃 같아졌어. 마음을 좀 놓아도 되겠지?




그런데 당신은 왜 이제야 나타나? 응? 힘들 땐 안 나타나고. 혼자서 애들 보느라 갑갑하고 외로울 땐 코빼기도 안 비추더니. 그 놈팡이 때문에 속 뒤집어졌을 때에도, 정미 보면서 마음 졸일 때도 꿈속에조차 안 나타나더니. 정미 얘기 들으니 당신도 좀 마음이 편해졌지? 서은이도 보면 알겠지만 어디서 이쁨 받을 애고. 서진이 서현이도 잘 큰대. 초등학교 중학교 가고는 걔네들 바빠서 잘 오지도 않아. 잘 지내면 됐어. 뭐 이제 와 덕 볼 생각 같은 거 안 해. 내가 해줄 몫 해줬으니 내가 편한 거지.


그래, 그런데 어쩐 일이야, 당신? 나 데리러 왔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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