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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무브>
: 오직 이야기만이

올리버 색스에게, 존경과 사랑을 담아

by 모도 헤도헨

2015년 올리버 색스가 사망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화성의 인류학자>, (영화 <사랑의 기적>의 원작인) <깨어남> 등 그의 대표작이 거론되었고, ‘의학계의 계관시인’이라는 찬사 같은 별명도 언급되었다. 그리고 그가 마지막 책 <고맙습니다>에 썼다는, “나는 사랑했고, 사랑을 받았다. 또한 많은 것을 받았고, 돌려주었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으로서 이처럼 아름다운 행성에서 살 기회가 주어진 것으로도 엄청난 축복과 모험이었다”는 말도 인용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그래, 그는 정말 감사한 인생을 살았겠네.


준수한 외모의 영국 출신 백인 남자, 의사 부모를 둔 의사,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사랑받는 유명한 저자, 무엇보다 그의 대표작들을 읽고 나 같은 변방의 평범한 사람도 감동하고 지지를 보내는 인간애 가득한 사람. 이 세상엔 그렇게 살다 가는 사람도 있구나. 부러운 한편, 뭔가 부조리했다. 다 가진 삶이 있을 수도 있는 거야? 인간이 그렇게 축복받은 평탄한 삶을 살 수도 있는 거야?
그래서 그가 게이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 그 이야기가 자전적 에세이 <온 더 무브>에 나온다고 했을 때, 나는 완전범죄로 끝날 뻔한 미제 사건을 풀 단서를 찾은 것처럼 눈이 번쩍 뜨였다.

500쪽 가까운 책을 들고 뒹굴었던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실로 오랜만에 눈을 뜨자마자 책을 찾고, 틈날 때마다 책을 펼치고, 좀 더 읽고 싶어서 소등 시간을 미루고, 자면서도 생각날 만큼 책 읽는 재미를 맛보았다. 전에도 느꼈던 것처럼, 그가 술술술 풀어내는 이야기에 홀라당 빠져버려서 입을 헤벌리고 그가 말하는 세계에 나는 가 있게 되었고, 사실은 너무나 어려운 전문적인 이야기가 나올 때에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듯 사뿐히 읽어 넘어가고는, 그가 말하고자 한다고 믿는 역시나 심오한 그러나 단순한 주제를, 전혀 어렵지 않게 마음 깊이 깨닫고 공감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우리 모두 다르다는 것, 그러니까 우리가 돌연변이라고 따로 떼어놓고 잊어버리려고 하는 자폐증, 정신분열증, 기억상실증, 뚜렛증후군 등의 질환을 가진 사람들까지 포함하여 ‘예외 없이’ 다를 뿐이라는 것, 선천적으로든 후천적으로든 여러 가지 질환을 갖게 된 사람들이 어떤 증상을 겪든지 간에 일반인과 같이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래서 자신만의 서사를 갖는다는 것, 그리고 그것은 의미 있고 아름답다는 것.
그 어떤 예리하고 정확한 의학적 설명보다 현실적으로 병을 받아들이게 하고(당사자든 주변인이든 당장은 무관한 사람이든), 그 어떤 친절하고 따스한 위로보다 힘과 용기를 준다. 나는 정말 (다른 책들 포함해서) 그의 이야기 덕분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생각만 해도 꺼림칙한 증상과 병들, 그걸 가진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다. 그러니까 그냥 ‘다른’ 사람들로.
어쨌든 <온 더 무브>는 올리버 색스 자신의 삶 전체를 가족과 친구들과 환자들, 쓴 책들, 일화들을 중심으로 쓴 이야기라, 이전의 다른 책들처럼 의사로서 그의 면모를, 환자를 보는 태도와 견해를 알 수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고 좋았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잘근잘근 씹고 물고 빨고 안을 만큼 재미있게 본 이유는, 올리버 색스가 사망했을 때 내가 했던 생각(그러니까 한 인간과 그의 삶을 너무도 쉽게 평면적인 단상으로 박제해버린)을 완전히 깨부수는 이야기들이 자꾸만 튀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일단 처음 알고 본 대로 그는 게이였고, (색스는 의사 집안일 뿐 아니라 신앙심 깊은 유대인 가정에서 자랐는데,) 어머니는 그가 열여덟 살 때 그 사실을 알고 그에게 “가증스럽구나. 너는 태어나지 말았어야 해.”라고 말했다고. 그는 인생 말년에는 (이 책을 통해) 커밍아웃도 하고 파트너를 만나 행복했다고 하지만, 1933년생으로서 게이라는 성정체성을 가진 그의 삶이 심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결코 평탄했을 리 없다. 부모와의 관계도 소원해졌고(관계는 나중에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어머니의 말은 평생 마음에 남아 성정체성에 영향을 주었다고 했다), 공동체를 떠났고, 성경험을 위해 필름이 끊기도록 술을 먹고 길에 쓰러지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고, 연애관계에서 상처도 받았고, 금욕생활이 길기도(말년의 반려자 빌 헤이스를 만나기 전 35년간 섹스를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책 제목이 본문 첫 부분의 제목이기도 한데, 시작부터 모터사이클(오토바이 아닌가!)에 홀랑 빠진 이야기를 한다. 브레이크가 망가져서 결국 기름이 떨어져 퍼져버릴 때까지 사람들의 환호를 들으며 공원을 열두 바퀴를 돈 이야기, 너무 빨리 달리다 마주 오던 차들과 정면으로 부딪칠 뻔한 이야기, 기절하고 미끄러지고... 혈기 왕성한 청년 때뿐 아니라 의사가 되고서도 중년이 되기까지 오랫동안 주말마다 속도제한 없는 곳을 찾아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린 이야기, 혼자 모터사이클을 타고 대륙여행을 한 이야기... 그중 제일 재미있었던 것은 고속도로에서 모터사이클을 타는 자신을 겁주었던 차량에 복수한 이야기였다.

살면서 내가 먼저 싸움을 걸거나 먼저 공격받기 전에 누군가를 공격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로 목숨을 위협하는 공격 행위를 당하니 분노가 끓어올랐다. 보복하기로 작정했다. 나는 시야에서 살짝 벗어나게 약 100미터 간격을 유지하며 뒤따라갔다. 신호등에서 멈추면 앞으로 치고 나갈 계획이었다. 웨스트우드 대로에 들어서자 기다리던 순간이 왔다. 소리 없이(내 바이크는 사실상 무음이었다) 슬그머니 운전석 옆쪽으로 다가갔다. 운전석과 일렬이 되면 창문을 박살내거나 차체에다 금을 새겨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운전석 창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는 대신 주먹을 들이밀어 코를 붙잡고는 있는 힘껏 비틀어버렸다. 비명이 터져 나왔고 손을 놓았을 때는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자는 너무 놀라 아무 반응도 못했다. 생명을 위협한 행위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라고 생각하며 가던 길을 내처 달렸다.

아니, 하얀 수염 가득한, 인자하고 인간미 넘치는 올리버 색스 의사선생님이... ㅋㅋㅋ (흥미진진한 복수 사건은 하나 더 소개된다.)
모터사이클만큼 의외였던 이야기는, 캘리포니아주 신기록을 세울 만큼 역도와 스쿼트에 매진했었다는 이야기다. 근육질 몸의 사진뿐 아니라 그의 이야기를 통해 상상해본 그의 남성미는 멋진데, 거기에 대해 색스는 다음과 같이 쓴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역도에 왜 그토록 집요하게 매달렸을까. 썩 남다른 동기는 아니었지 싶다. 몸은 보디빌딩 광고지에 전후 비교로 등장하는 45킬로그램짜리 약골이 아니었으나, 마음은 소심하고 불안 많고 내성적이고 수동적이었다. 괴물 같은 중량을 들어올리면서 힘이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세졌지만 그것이 원래의 내성적인 성격을 바꿔주지는 못하는 듯 나는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만사 과유불급이라고 역도에도 대가가 따랐다. 스쿼트를 몸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밀어붙인 결과 네갈래근에 무리가 왔다. (중략) 우리는 서로를, 역도로 반쯤 망가진 서로의 몸을 바라보았다. “우리 어찌 그리 어리석었을까.” 데이브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졸업논문으로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 대학에 가고, 옥스퍼드 대학에서 아주 명성 높은 상을 받아 <타임스>에 실릴 만큼 에세이를 잘 썼지만, 옥스퍼드 대학교 예비시험에서 세 번이나 낙방하고 겨우 마지막 기회를 잡아 입학허가를 받을 만큼, <타임스>에 결과가 실린 바로 그 과목 시험에서 뒤에서 1등을 할 만큼 예/아니오를 묻는 시험엔 젬병이었던 것도 재미있었다. 상금으로 50파운드를 받았는데, 44파운드를 주고 12권짜리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사서 학부 시절 내내 통독하고, 인생 말년까지도 이따금씩 책꽂이에서 한 권을 뽑아들고 잠자리로 가곤 한다는 이야기, 원소와 주기율표를 너무나 사랑해서 사무실에 원소의 샘플들을 가져다놓고 80살 생일엔 원소 80번을 묵상하듯 한다는 이야기도 한 특이한 천재의 면모를 보는 것 같아 재미있었다. 이런 일화도.

청각을 주제로 받았을 때는 너무 신이 나서 독서와 생각에 몰두하는 바람에 정작 에세이를 쓸 시간이 없었다. 결국 발표 당일 빈 종이 한 뭉치를 들고 와 넘기면서 보고 읽는 척하며 청각에 관해 ‘썰’을 풀어나갔다. 어느 순간 카터(퀸스칼리지의 내 지도교수)가 발표를 중단시켰다.
“방금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 다시 읽어주겠나?” 조금 긴장했지만 방금 말한 두 문장을 반복했다. 카터는 아리송한 표정이었다. “좀 볼 수 있나?” 나는 카터에게 빈 종이 뭉치를 건넸다. “놀랍군, 색스군.” 카터가 말했다. “대단히 놀라워. 하지만 앞으로 에세이는 글로 작성해주면 좋겠네.”

그렇게 에세이를 잘 쓰고, 줄줄줄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람이, 수많은 일반 독자와 전문가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는 작가가, 책을 낼 때마다 글쓰기 초보자처럼 사람들 반응에 전전긍긍해하고, 호평에 마음을 놓고 기뻐하고, 어떤 책은 9년 가까이 끝맺지 못해 괴로워하는 모습도 새로웠다. 그 역시 작금의 인정을 받기까지는, (물론 그를 잘 알고 아끼는 사람에게는 깊은 신뢰와 지지를 받았지만) 아니, 인정을 받고 나서도 그다음 번 책을 낼 때는 역시,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영역인 의학계에서도, 그렇게 인정받고 승승장구한 의사도 아니었다. 연구자로서는 낙제 같은 평가를 받아 퇴출되기도 했고,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저작을 썼지만 의학계에서는 철저한 외면과 무시를 받았으며, (지금은 보통 사람에게 지지받는) 환자를 인간적으로 대하는 방식 때문에 직장에서 해고당할 뻔하기도 하고 실제로 해고당하기도 해서, 한동안 소속 없는 의사로 지내기도 했다. 그를 대중에게 알린 첫 번째 저작인 <편두통> 출간 때는, 자신을 밀어주던 소속병원 원장에게 극심한 반대와 함께 미국 신경의학회에서 매장할 거라는 협박까지 받아야 했다.

왜 나는 그가 언제나 현재와 같은 안정적인 지위에 있었다고 생각했을까? 그야말로 누구나 겪는 불합리한 권위의 압박, 직업적으로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지위, 불투명한 미래... (그것을 극복한 것이 완전히 그만의 노력 때문은 아닐지라도) 어쨌든 그 역시 그것을 모두 지나왔던 것이다. 그 한가운데 있는 그를 상상하다 보니, 역시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불안하고 약자인 내 안 어디선가, 어떤 그럴듯한 결과가 보장되어 있지 않음에도, 부글부글 용기와 도전정신이 생겨나는 것이었다.
또 이런 장면도 있다.

에덜먼은 성큼성큼 걸어들어와 가볍게 인사하더니 20분에서 30분을 쉬지 않고 말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설파했다. 로젠필드나 나나 감히 끼어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에덜먼은 자기 얘기가 끝나자 벌떡 일어나 나갔다. 창밖을 내다보니 에덜먼이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요크 애버뉴를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저게 천재의 걸음이구나. 외골수의 걸음...” 나는 혼잣말했다. “뭔가에 씐 사람 같아.” 외경의 감정이 드는 동시에 선망을 느꼈다. 내게도 저렇게 맹렬한 집중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하지만 그런 뇌로 살아간다는 것이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략) 나한테는 어쩌면 내게 주어진 이 조촐한 자질로 살아가는 편이 나을 듯했다.

정말 재밌지 않나. 우리 일반인(아니, 그냥 ‘나’라고 할까)이 그를 보고 하는 생각을 그 역시 다른 누군가를 보고 했다는 점이 말이다. 책 전반에 걸쳐, 여러 시인, 과학자에 대해 진심으로 존경을 담아 서술하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때때로 그들이 자신을 중요하게 대해 주었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도 있는데, 묘하게 미소가 흘러나왔다.


영국 출신이긴 하지만 (한반도에 북한조차 막혀 진짜 섬이 되어버린 남한과는 다르게) 유럽 대륙을, 막 개발되기 시작한, 자연 그대로가 아직 생생한 미국 대륙을 향유하는 그의 삶의 방식은 (죽을 고비도 있을 만큼 다친 일도 많았지만) 마냥 부럽기만 했다. 인생 내내 거의 날마다 몇 시간씩 수영하고, 스노클링을 즐기고, 등반을 하고, 대륙 횡단을 하고... 자연에 대해 탐험하고 모험을 떠나고 수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내가 여성이어서, 아시아인이어서, 한국인이어서, 이 시대에 살아서, 아니면 내가 겁이 많아서 등등 사회적이든 개인적이든 그 어떤 이유에서든, 나는 그처럼 살지 못했고, 못할 것이다. 그렇게 역동적인 삶이 부럽다. 그런데 그는 또 (77살에 빌 헤이스를 만난 후)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의 품에 안겨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같이 음악을 듣는다거나 같이 말없이 가만히 있는 것이 내게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우리는 요리를 배우고 건강한 식사를 함께 먹었다. 이날 이때까지 나는 시리얼이나 정어리 통조림으로 연명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것도 자리에 앉지도 않고 깡통째로 30초 만에 뚝딱 해치우는 식이었다. (중략) 대부분의 시간은 다른 연인들이 그러듯이 지금 읽는 책에 대해 논하거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옛날 영화를 보거나 함께 노을을 바라보거나 점심 샌드위치를 나눠 먹는, 그런 나날이다. 빌리와 나는 많은 차원에서 일상을 함께하며 평온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일평생 거리를 두고 살아온 이 일상의 행복은 노년의 내게 뜻밖에 찾아온 근사한 선물이다.

나에게는 (늘 그렇지는 않고) 때로 하잘것없고 지긋지긋하며 도망치고 싶은 일상이 그에게는 인생 말년이 되어서야 누린 ‘행복’이자 예상치 못한 멋진 ‘선물’이었다.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을 그가 누린 것처럼, 그가 누리지 못한 것을 나도 누리긴 했다는 작은 안도도 든다.
게이였다는 것 말고도, 그는 정신분열증을 가진 형이 있었고(그래서 예상할 수 있듯이, 힘들고 도망치고 싶은 어린 시절이 있었고, 평생 더 잘해주지 못하고 함께하지 못한 데 대해 가슴 아린 후회를 품어야 했고,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형이 삶을 마감할 때까지 그의 노후에 대한 걱정을 해야 했다), 젊은 시절 꽤 오랫동안 마약에 중독됐었으며, 정신과적 치료를 받아야 했다. (마약을 끊으면서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일주일에 두 차례 정신과의사와 상담을 했다고.)
이쯤 되니, 와, 그의 부고를 들었을 때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다는 듯이 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대해 기가 막혀 부끄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드러난 것으로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하는 것은 얼마나 부정확하고 왜곡될 수 있는지. 오직 이야기만이 이해에 닿게 하는 것 같다.

그는 마지막으로 말한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좋든 나쁘든, 그렇다. 이야기를 좋아하는 경향, 서사를 좋아하는 경향은 언어 능력, 자의식, 자전기억과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 특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글쓰기는 잘될 때는 만족감과 희열을 가져다준다. 그 어떤 것에서도 얻지 못할 기쁨이다. 글쓰기는 주제가 무엇이든 상관없이 나를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잡념이나 근심 걱정 다 잊고, 아니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오로지 글쓰기 행위에 몰입하는 곳으로. 좀처럼 얻기 힘든 그 황홀한 경지에 들어서면 그야말로 쉼 없이 써내려간다. (중략) 글쓰기는 해도 해도 새롭기만 하며 변함없이 재미나다. 처음 글쓰기를 시작하던 거의 70년 전의 그날 느꼈던 그 마음처럼.

나와 많이 다른 개체인 그에게서 아주 비슷한 마음을 마지막에 찾았다. 색스의 이야기 덕분에, 글쓰기도, 인간의 다름도, 나의 결손도 더 사랑하게 된 것 같다.
그가 떠난 지 5년이나 되었지만, 존경과 사랑을 담아 추모한다. 저도 고맙습니다. 편히 잠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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