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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예능> : 기승전, 송은이

'예능'이 주는 쾌락과 에너지를 기대했다가

by 모도 헤도헨

마지막 장을 읽고 살짝 가슴이 떨렸다.

역시, 책이란, 정말 좋다,고 생각했다.





책을 살 때, 고를 때, 꺼낼 때, 마침내 책을 펼 때, 때마다 다른 마음이 동한다. 그중 <아무튼 시리즈>를 선택할 때는, 다른 책들과는 다른 설렘과 기대감이 있다. 마치, 소지품만 가지고 상대를 고르는 소개팅 같은. 시작만 주어진 문장완성검사를 읽는 것 같은. 제목으로 소재만 알 수 있고, 주제도 주제의식도 가늠할 수 없다. 저자는 보통 모르는 사람이고, 유명인이라 해도 글쎄, 연결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읽어보았는데, 대체로 무작정 이야기를 시작한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는 일반적인 교양서와도 다르고, 에세이와도 다른 식으로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가 뒤엉켜 있다. 도중에 덮어버린 책도 있고, 그냥저냥 괜찮은 책도 있고, 어머, 여기 보물이 있었네, 하는 책도 있다.


이 책은 당연히 세 번째.





나는 티비를 그다지 좋아한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도 어릴 때 티비가 늘 틀어져 있어서, 90년대까지는 티비 프로그램이나 거기에 나오는 인물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 (그땐 채널과 프로그램 수가 적기도 했고.) 재미있게 본 코미디 프로도 있고, 기다리던 드라마도 있고, 빠지지 않고 챙겨보던 음악 프로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재미도 없고 배울 것도 없다고 여겼고, 원치 않게 계속 들리는 소음이라 싫었다.


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내 삶의 영역과 경험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게 되면서, 티비는 당연히 제외시켰다. 손해 보는 것도, 아쉬울 것도 없었다. 사회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의 프로와 인물은 신문기사나 포털뉴스나 대화로 따라갈 수 있었고, 필요하다면 찾아볼 수 있는 세상이었다.


둘째 낮잠을 재울 때 어쩔 수 없이 첫째에게 뽀로로와 딩동댕유치원을 틀어줬다. 그때 내 마음은 그냥 원통할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셋째가 생긴 후 '드라마'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내 삶에 '이야기'가 부족해서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토록 우습게 여겼던, 티비의 순기능이라는 '대리만족'과 '현실도피'가 절실했던 때.


나중에 여유로워지면 보겠다고 메모해뒀던 목록을 하나씩 지워가며 밤을 지새웠다. 내가 주인공으로 살 수 없는 여러 이야기들에 울고 웃고 설레고 절망했다.


그러다 최근 2년은 드라마 작가 공부까지 하며, 드라마를 와장창 봤다. 너무 많이 봤나 싶다. 당분간 좀 멀리하고 싶다.




그러니까 '드라마'는 육아로 내가 부서지던 때 내 삶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부서지고 사라졌던 내가 서서히 재구성되고 온전해진 모양새를 갖출수록 다시 흥미가 떨어졌다.


그 무렵 '예능'을 봤다. 유튜브 쇼츠나 클립으로 어쩌다 보던 걸,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걸 보고 깔깔 웃는 시간이, 헤벌쭉하고 헤헤거리는 내가 좋았다. 나는 내가 툭하면 비장해지고 진지해지고 경직되는 걸 안다. 그게 늘 나쁘지는 않지만, 가끔 독처럼 쌓이는 무언가가 있는데, 예능이 해독제같이 작용한다고 스스로 판단해버렸다.


그래도 역시 나는, 나를 즐겁게 하는 것들 중 제일 마지막에 티비를 넣고, 내게 주어진 시간 중 제일 자투리로 티비 보는 데 쓰는 사람이긴 하다.


그래서 그냥... 또 한번 생각 없이 웃어나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든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은 그런 나의 기대에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부응했다.


글쎄, 내가 어떤 구체적인 상을 가졌던 걸까? 그냥 이 책을 읽고 나면, '예능'처럼 쉽고 가볍고 편하고 톡톡 튀고 빠르고 발랄하게, 내가 모르거나 보지 못한 예능들까지 다 본 것처럼, 예능이 주는 쾌락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세 장쯤 넘겼을 때, 그렇지는 않겠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저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놓는 화법 때문에 쭉쭉 읽게 됐다. 어마하게 내밀한데, 자기연민은 1도 없고, 자신이든 타인이든 비꼬고 희화화하는데 애틋함이 가려지지 않았다. 보통은 긍정적인 내용에 길고 부풀린 표현을 하는데, 저자는 부정적인 내용에 그렇게 했다. 그러니까 의심과 염세가 똬리를 틀고 있는 나로서는, 저자의 말이 팍팍 들어오는 것이었다.


말 잘하는 친한 언니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집중해서 낄낄대며 읽기는 했지만, 맥락이 어떻게 이어지는 건지 모르겠기도 하고, 갑자기? 싶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이 이야기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갈피가 잡힌 것은 중반이 지나서였다.


* 핵심처럼 보이는, 혹은 밑바탕에 단단히 깔린 '여성주의' 시각에는 조금 다른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여성주의'를 전면에 혹은 중심적으로 내세우는 주장에 조금 결이 다름을 느끼는데, 비슷했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사회의 최전선에서 남성들과 부딪치고 있지 않아서, 현재 내 삶에 영향을 끼치는 남자들은 대체로 좋은(?) 사람이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내 생각엔, 방향이나 지향, 혹은 목표지점에 대한 이견이 아니라, '적당함'이나 '선(線)'에 대한 차이 같다. 이건 아니지! 하는 그 정도가.


여성주의에 빠졌던 20대 때보다 세상이 살기 좋아졌다거나, 남자들이 나아졌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반대인데, 살면 살수록.. 나를 비롯해서 인간이란 악하고 약하다는 사실에 너무 압도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또 <슬기로운 좌파생활>을 쓴 우석훈처럼 내 정체성은 여성주의자보다는 그것을 포함한 좌파에 가깝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저자는, 나처럼 티비 예능의 영역에서 '잃어버린 20'년을 가진 사람도 알 만한 프로그램과 예능인에 대해서 썼다. 자기만의 관점과 언어로, 자기만의 생각과 느낌을, 자기만의 경험과 엮어서.


나는, 아 그렇구나, 아 그랬구나, 하면서 읽다가, 유명 프로그램 비평에서 유명 예능인 비평으로 이야기가 가다듬어지는 걸 깨닫고는, 점점 재미있어졌다. 나는 '실명비판'을 이 나라 학계에 끌고 온 강준만을 좋아했고,

인물에 대한 호오를 거침없이, 그러나 일관된 기준과 설득력 있는 근거와 함께 드러내는 김어준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김어준 같은 멘탈을 지니지 않고서야, 일반인이 공적으로 그러긴 쉽지 않다. 불가능에 가깝다. 이 책의 저자 '복길'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아낼 수 있는 게 전혀 없었는데, 나는 당연하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공공연하게 실명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익명을 빌려 앞뒤 없이 연예인이나 정치인에게 비난을 쏟아내는 것과는 다른 책이라고 느꼈다. 오히려 그런 장치 안에서나 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나보다 열 살쯤 적은 듯한 저자를 나는 정말로 만나고 싶어졌는데, 그리고 진짜로 친구 하고 싶었는데, 그런 관계에서나 들을 수 있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유명 프로그램에 대한 비판은 남성중심적인 것에 대한 비판이 기본이었고, 유재석, 강호동, 이경규 등 남성 예능인의 한계에 대해 말하다, 드디어 박미선, 이영자, 김신영 등 여성 예능인의 이야기로 흘러갔다.


나는 이쯤 되자, 흥미진진하다 못해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설마, 설마, 송은이가 빠지진 않겠지? 싶어서였다.


나는 비밀보장과 씨네마운틴을 들었고, 송은이가 나온 토크쇼를 보았다. 그 정도가 다지만, 예능과 예능인을 섭렵한 상태에서 비교하는 건 아니지만, 난 송은이가 진심 좋고, 볼 때마다 감탄한다. 타인의 특별함을 알아봐주고 그를 존중하며 대하는 태도, 개그맨다운 리액션과 탁월한 대화 스킬로 상대를 빛나게 하는 재능, 판을 짜는 기획력과 그것을 세심하고도 과감하게 실현하는 능력. 송은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고, 송은이 같은 사람 옆에 있고 싶다.


그런데 저자가 송은이를 빼놓는다면? 아니면 김숙, 장도연, 박나래 정도로 소제목도 안 주고 적당히 언급한다면? 나는, 티비 예능에 관해서라면, 저자 복길의 가르침을 3년 과정 프로그램으로 들어야 할 입장이란 걸 알고, 여기까지 (물론 살짝 결이 다른 부분도 있었지만) 좋아하는 친한 언니의 이야기를 듣듯이, 푹 빠져서 맞장구치며 낄낄대기도 했는데, 막판에 마무리에서, 이런 결론에서 송은이가 빠진다면, 나는 반박도 못하고 찜찜해서 적어도 오늘 밤은 잠을 못 잘 것 같았다.


미리 뒷장을 넘겨 볼까? 대충 훑었던 목차를 다시 볼까? 스포를 극혐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유혹에 내적 곤란을 겪을 정도로, 집중력과 조바심은 절정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제일 마지막 장은, 송은이였다. 소제목도 <당신의 세상에서, 송은이>였고, 마지막 문단은 "나는 송은이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였다.


가슴이 짜르르 했다. 내가 송은이를 그렇게까지 사랑했었느냐, 하면 잘 모르겠지만... 하나의 이야기가 이렇게 끝난 것에 대해서 너무나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이다.


거의 <해리 포터>급이었다고 하면 과장이겠지... 만, <해리 포터> 마지막 장을 덮고서 이 장대한 이야기는 결국 '사랑의 힘'에 대해서 말하려고 한 거였어...(내 생각이다) 하며 받았던 감동과 비슷하게, 이 모든 이야기를 결국 '송은이'라는 사람과 그가 한 일의 의미로 마무리했어, 하며 경건해지는 것이었다.





송은이와 김숙과 이영자가 나온 프로를 몇 개 찾아 봐야겠다.

그리고 조금은 헤벌쭉 해져서, 아무튼 무엇이든 글을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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