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안 본 사람은 행운, 이제 이걸 볼 수 있으니까.”
할 일은 많다. 여가시간은 없다. 그래도 재미있는 것을 찾아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린다.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다. 보는 동안 어찌어찌 즐거웠는데, 끄는 순간 왠지 속은 느낌 따위 마주하고 싶지 않다. 그럴 때 내가 히든카드처럼 꺼낸 것이 <브레이킹 배드>(이하 <브배>)였다.
처음, 호락호락하진 않습니다만
이 작품은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서 한 영화평론가가 명절연휴 동안 볼 만한 시리즈 명작을 추천할 때 처음 들었다. 김어준은 (웬만한 영화는 다 섭렵한 그는 영화평론가의 의견에 늘 동의하지 않는데) 바로 호응하며, “그거 정말 볼 만하죠, 샌님 같은 고등학교 화학선생님이 폐암 진단을 받고 돈이 필요해서 제자였던 문제아랑 마약을 만들다가 마약왕이 되어가는 이야긴데, 보다 보면 설득 돼요.”라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이기를 “이 드라마를 아직 안 본 사람은 행운이에요. 이제 이걸 볼 수 있으니까.”라고 했다.
나는 <브배>에 대해 몰랐다. 그러니까 2008년에 시즌1이 시작해서 영화와 스핀오프 시리즈까지 거의 해마다 지금까지 나오는 이 드라마를, 시즌마다 상을 쓸어담고 시즌이 더해갈수록 높은 평가를 받은 이 드라마를, 시청자 만족도로 기네스북에 오른 이 드라마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인생 미드라는 이 역대급 드라마를 그때 처음 들었지만(이 모든 사실은 시즌을 끝내고서야 알게 됐다), 어쨌든 안목을 신뢰하는 누군가가 보장하는 작품을 메모해두며 어마어마하게 기대했다.
아이들을 재우고 떨리는 마음으로 당분간의 현망진창을 감수하겠다는 비장함까지 장착한 뒤,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를 재생했다. 그런데 첫 장면부터 뭔가 기대에 어긋났다. 아무리 12년 전에 만들어졌다지만, 장면은 촌스러웠고 전개는 지지부진하게 느껴졌다. 또 음악과 편집이 대단하다고 했는데, 요즘의 숨 돌릴 틈 없고 딴생각할 겨를 없는 빠른 편집, 그래서 보다 보면 빠져들 수밖에 없는 편집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중엔 인정하게 되는데, 그것은 복선이 깔린 장면들, 특히 오프닝 전의 장면이 그 회차의 복선이기도 하고, 그 시즌의 복선이기도 하고 전체의 복선이기도 할 정도로 완전히 유기적인, 그런 대단한 편집이었다.) 음악은 잘 모르는 영역이라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봤다. (맨 마지막 엔딩곡 정말 인상적이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캐릭터에 매력이 없었다. 주인공인 고등학교 선생님 월터는, 중년의 아저씨인데 그냥 외모로도 제레미 아이언스나 숀 코네리나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암튼 내가 아는 멋진 백인 중년의 매력에 턱없이 닿지 않았고, 외모뿐 아니라 내면적으로도 드라마 자체에서 그 사람의 매력을 구축해주지도 어필하지도 않았다. 예를 들면 첫 신에서부터 황야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는데, 팬티 바람의 그는 멋지기는커녕 뭔가 어설프고 추하고 찌질해 뵌다. 파트너인 제시는 이 드라마 통틀어 최고 미남인데 그 역시 그것을 살려주기는커녕 어울리지 않는 힙합패션에 어울리지 않는 말투(‘Yo~’, ‘Bitch!’ 남발), 무슨 말이든 소리소리 지르고 생떼 부리는 듯한 반항을 하는 통에, 사사건건 급한 성미로 일을 틀어지게 만드는 통에 속 터지게 한다.
가장 중요한 이 두 사람 말고도 초반 등장인물 대부분이 다 별로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건 신기한 일인데, 예를 들어 <프렌즈>는 오가는 대사나 이야기 전개 때문에 현웃이 빵빵 터질 정도로 웃기기도 하지만, 모든 캐릭터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사실은 그들 한 명 한 명을 주시하는 재미로 시즌을 통째로 보는 거라고 해도 무방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브배>는 ‘발암캐’라고 하는 사람이 주인공이거나 주연급 조연이다. 월터의 아내 스카일러와 제시가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 같은데, 그들 말고 다른 등장인물도 그들 뒤로 쭉 서 있다.
이것은 엄청나게 리얼한 것이고 입체적인 캐릭터를 만들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 보통은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러니까 선한 사람/악한 사람 이렇게 캐릭터를 평면적으로 나누는 대신, 다면적이고 입체적으로 캐릭터를 구축하더라도 시청자(독자)로 하여금 매력을 느끼게 하고 감정이입을 하게 하는데, 이 드라마는 너무 지긋지긋하게 리얼해서 한 발 떨어지고 싶은 가족들 같달까? 매력에 빠지기는커녕 감정이입도 안 된다. 그러니까 확확 전개되지도 않는 마당에, 그 캐릭터들의 리얼한 찌질함을 보는 게 괴로울 지경에 이르러서, 드라마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상태가 아니라, 드라마에서 빠져나와서 ‘언제 재밌어지는 거지?’, ‘내가 이걸 왜 보고 있어야 하지?’ 그런 현타 오는 질문이 점점 더 자주 튀어나오는 것이다.
어쨌든 시즌 1은 참고 봤다. 가끔 재미있는 부분도 있긴 했다. 그리고 마약의 세계는 내가 전혀 모르는, 그리고 앞으로도 전혀 모를 가능성이 거의 백 퍼센트인 영역이기에 호기심으로 보기도 했다. 그런데 시즌 2도 비슷했고, 점점 의심이 들었다. 취향이 다른 게 아닐까? 평균 회차 13회, 시즌 5개의 드라마를 다 보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지 계산해보고는, 그렇게 시간을 들일 만한 드라마인지 따져보려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찾아봤다. 그런데 뭐에 홀렸는지, (위에 언급한) 이 드라마의 엄청난 스펙은커녕 관련 글들도 몇 개 못 찾았다. (드라마를 끝내고 그 누를 길 없는 여운에 다시 찾았을 때는 며칠을 봐도 다 볼 수 없을 정도로 글이 많았다…) 나는 몇 회를 좀 더 지켜보다가, 결국 발등에 떨어진 현실의 일들을 해결하기로 하고 <브배>를 접었다.
마침내, 우와가 육성으로 터집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보았다. ‘김어준이 추천해서 <브레이킹 배드>를 보는데 너무 재미없다, 지금 시즌 2 중인데 이거 언제 재밌어지냐, 재밌는 드라마 맞느냐.’ 나는 그 글이 반가웠고, 주르륵 달린 댓글이 궁금했다. 90퍼센트 이상이 ‘좀만 참아라, 시즌 3부터 재밌어지다가 4부터 우와~! 하고 3일 만에 다 보게 될 것이다’, ‘인생 미드다, 이 드라마 만한 것을 본 적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몇 번째 보고 있다는 사람까지… 나머지 10퍼센트는 ‘나도 재미없어서 그때쯤 포기했다’는 내용. 나는 다시 믿음을 갖기로 했다. 지금까지 본 게 아깝기도 하고, 그 ‘우와’가 궁금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말은 맞았다. 시즌 4 어디서부턴가는, 말 그대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았다. 지금 몇 회차인가는 신경도 안 쓰고 다음으로 다음으로 재생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진짜 시즌 4 마지막에서는 ‘우와!’가 육성으로 터졌다. 우와. 거기서 끝나도 하나도 이상할 것 같지 않았는데 시즌 5가 있었고, 시즌 5를 끝내고서는 마음 깊은 곳에서 여운이 일어서 멈추지 않고 파도를 만들어냈다.
긴 시간을 들여 보았기 때문에, 어렵게 끝까지 왔기 때문에 감동이 더한 걸까? 그러니까 어떤 일을 힘겹게 완수해냈을 때 그 일 자체에서 오는 것 외의 감동 같은 것 말이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재미있는 영화라도 두 시간짜리 단편과 수십 시간짜리 시리즈는 감동의 깊이가 다르다. 휙휙 장면 전환이 되고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이해하려고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느라 지루함을 느낄 수 없는 드라마라 하여도 마찬가지다. 사실 인생은 그런 게 아니기 때문에(드라마는 인생에 관한 이야기니까) 그렇게 지루할 틈 없는 이야기라는 것은 그만큼 덜 현실적이다.
그것이 게임이든 레크리에이션이든 스포츠든 프로젝트든 뭐든 깊고 입체적인 감동과 재미를 위해서는, 즉각적인 흥분과 쾌락만 있는 것보다는 지루한 기반의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루하기만 하다든가 이유도 목적도 없이 별 재미도 없는 일이 무작위로 생겨난다든가 하면 다른 얘기가 되겠지만, 거대한 구조에는 여러 층위가 필요하고 그 작업은 흥미진진하기만 하진 않다.
<브배>의 특별한 점이 여기 있다. 한 회짜리, 한 시즌짜리 재미를 추구한다면 복선이든 얼개든 딱 그만한 깊이를 가질 텐데,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초반 중반에 승부를 보지 못할 수도 있는데도(나 같은 사람들이 나가떨어질 수 있는데도) 복잡하고 완벽하고 아름다운 구조를 위해 차곡차곡 얼개를 짜고 복선을 심어놓는다. 그리고 때에 맞춰 하나하나 밑밥을 거두며 드러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한다. 제대로 된 순서와 잘 짜인 틀 안에서 그것들이 착착 이루어질 때 그 복잡함, 완벽함, 아름다움의 폭발력은 대단하다.
그야말로 ‘우와’의 순간이다. 나중에는 보는 내내 대체 이거 누가 쓴 거야,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드는 거야… 탄복했고(<엑스파일>을 쓴 빈스 길리건이 각본, 연출, 기획을 맡았다), 의심이고 분석이고 집어치우고 이야기의 흐름을 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심지어 화면에서 벗어나서도.
처음엔 세간의 주목과 높은 평가를 받았다가 시즌이 더해갈수록 흥미가 떨어지는 작품이 얼마나 많은가. <브배>가 뒤로 갈수록 더 재미있어지고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단순히 앞은 재미없고 뒤는 재미있는 드라마가 아니라, 그 과정의 의미를 발견하면서 전체의 재미가 더해지는 것이기에 특별하다.
인생이랑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인생 전체가, 한순간도 빼놓지 않고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인생이 있을까? 만약 있다 해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 인생은 평면적이고, 그만큼 재미는 얕다.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수많은 순간들과, 정말로 재미없는 순간들, 가끔 반짝이는 순간들, 이게 행복인가, 재미인가 싶은 순간들을 다 견디고 거치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 길들이 서로 연결되고 이해되고… 물론 그렇게 완전하게 연결되고 이해되고 이야기가 되는 인생 역시 없겠지만, 그럼에도 무언가 발견했을 때 재미도 없고 무의미한 줄 알았던 모든 순간까지 합쳐서 인생이 소중하고 감동적인 하나의 이야기로 느껴지는 순간이, 재발견되는 순간이 살면서 한 번쯤은 있다고 믿는다. 바로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내가 보았던 어떤 드라마보다 <브배>가 주는 감동이 대단했다. (대하소설을 읽을 때처럼) 실재하는 세계에 다녀온 듯했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경험했으며, 거대한 이야기가 들려주는 진정성을 맛보았다.
작가의 의도를 알아맞히지 못해도 (스포 있음)
드라마에서 한 발 물러서 있을 때나 완전히 몰입해 있을 때나 한 가지가 계속 궁금했다. 이 드라마를 만든 사람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그러니까 이 모든 이야기들을 보여주면서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일까? 마약? 돈? 가족? 사회 메커니즘? 인간 본성?
마약의 세계를 다룬다. 섣불리 그 세계를 미화하거나 혹은 경직된 교훈을 남기려는 게 아닐까 경계했다. 하지만 마약의 세계, 시작부터 끝까지 겉부터 저 깊은 곳까지 구체적이고 자세하게 사실적으로 보여주면서도 어떤 의도도 없다고 느낄 만큼 무심하게 보여준다. 그냥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결국 저런 일이 펼쳐지겠구나. 저런 면도 있겠구나. 이런 마음이겠구나. 시작은 이렇겠구나. 끝은 아마도 저렇겠구나. ‘마약은 역시 나쁜 것’이라거나, ‘나는 절대 마약을 하지 않겠어’라거나, 혹은 그 반대의 결론으로 치닫지 않는다. 그냥 어떤 신비함, 호기심이 사라진 상태가 된다. 나는 이 자체가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작가가 그걸 의도했는지 모르겠다.
돈에 대해서도 정말 끝까지 간다. 보통 사람들은 언제나 돈이 더 필요하다. 늘 돈이 부족하고 더 갖고 싶다. 원 없이 써보고 싶고 많이 많이 있으면 무조건 좋을 것 같다. 그런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돈에 관한 우화는 많지만 실제로 돈이 많으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드라마 안에서 돈을 좇는 사람들, 돈을 좇는 상황들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돈이 너무 없는 사람들, 돈이 필요해서 별짓 다하는 사람들, 큰돈을 버는 사람들, 쉽게 버는 사람들, 돈이 확실히 필요한데 그것을 벌 능력이 없을 때의 고민과 선택, 돈이 무지무지 많을 때 벌어지는 일들. (예를 들어, 제시는 삶의 목표는 없어지고 손에 쥔 돈은 많을 때 온갖 부랑자들을 집으로 불러 날마다 마약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계속해서 파티를 벌인다. 그들은 처음엔 좋아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오히려 그들이 부스스 눈을 비비며 “머리가 너무 아파. 좀 씻어야겠어”라고 말하고 집으로 간다. 제시는 나중엔 그냥 돈을 길거리에 뿌린다. 돈을 벌기 위해 살인까지 했었는데, 돈이 쓸모없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월터도 가족 모르게 부당하게 번 돈으로는 그것을 제대로 쓸 수 없다. 말 그대로 무용지물이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친구의 돈을 거절하고 마약을 만든 것인데, 결국 그렇게 번 돈을 정당하게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거꾸로 전세계 사람들로부터 구걸하듯 모금을 받는 것처럼 꾸미는 데 그 돈을 쓴다. 정말 아이러니. 또 마지막에 월터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 때, 천문학적인 돈은 아무 쓸모가 없다. 가족을 위해 필요했던 돈인데 가족들은 그 돈을 받고 싶어하지 않고, 문명의 어떤 혜택도 누리지 못한 채 자신의 생필품을 사는 데만 돈을 쓸 수 있을 뿐이다. 사회에서 격리되자 돈은 아무 쓸모도 없고 힘도 없고, 오직 사회적 관계를 갈망하게 되어 자신에게 아무 호의도 없고 인간적인 교감을 하는 것도 아닌, 단지 사람이라는 이유로 유일하게 만나는 사람에게 매달리듯 한 시간만 더 함께 있자고 카드게임 한 시간에 1만 달러를 제시하게 되는 처지까지 이른다.) 인간에게 돈의 의미는 무엇인가? 돈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돈은 얼마나 필요한가? 어떻게 벌어야 하고 어떻게 써야 하는가? 이 드라마를 보면서 수많은 질문을 스스로 하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답하게 된다. 작가가 그걸 의도했을까?
가족은 어떤가? 처음부터 끝까지 질리도록, 눈살이 찌푸려지도록 가족주의가 드러난다. 그에 대해 대놓고 비틀지도, 미화하지도 않는다. 다만 가족이 너무 소중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가족을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사람, 가족을 위해 자신의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사람, 가족이란 허울을 지키기 위해 무언가를 혹은 타인을 희생시키는 사람,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가족이 힘을 합쳐 이겨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 실제로 그렇게 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벌어지는 상황, 그랬기 때문에 가족에게 받는 상처와 그랬기 때문에 신념이 깨질 때 분노하고 가족을 더 망가뜨리는 아이러니. 이 모든 단면들을 작가가 의도한 걸까? 이런 이야기를 하려 한 걸까?
사회 메커니즘? 월터는 마약왕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상업으로 치자면 보따리 장사, 노점에서부터, 중소기업, 대기업, 재벌, 세계적 독과점 거대기업 등 모든 시스템을 거치고, 갖가지 시스템과 부딪친다. 별의별 짓을 다하고 별의별 사람들을 다 만난다. 마약의 세계는 일반 사회와 다르고, 그 안의 시스템들도 저마다 서로 다르지만, 인간들의 사회는 어딘가 비슷하다. 강한 자가 있고 약한 자가 있고, 프로가 있고 아마추어가 있으며, 생각이 앞서는 사람, 말이 앞서는 사람,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 있고 그들이 부딪칠 때 여러 가지 일이 일어난다. 거기서 통하는 규칙과 미덕이 크게 다르지 않으며(예를 들면 성실함, 신용 등), 그런 규칙들이 기틀이고 중요하지만 그것만 통하는 게 아닌 부조리와 불합리가 있고, 그것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하나의 기틀로 여기는 약자들 혹은 잔머리들도 있지만, 틈을 뚫는 배짱을 부리는 사람도 있고, 그게 가까스로 통하기도 한다. 시스템들의 위계와 구역이 있고, 그것들은 흥망성쇠를 겪고, 마냥 착한 것만도, 마냥 악한 것만도, 마냥 힘이 센 것만도, 어떤 것도 영원히 늘 통하지 않는다. 빌붙는 사람도 있고 배신자도 있고, 그들은 합당한 결과를 보기도 하고, 당장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반대로 우직하게 조직을 위하는 사람이 화를 당하기도 한다. 마약조직의 세계라고,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브배>는 그것을 보여주기 위한 이야기였을까?
인간 본성? <브배>는 한 마디로 한 사람이 변하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변하는 이야기이고, 그로 인해 그 주위 사람들도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어떤 식으로든 또 변한다. 그 과정을 보면서 생각하게 된다. 같은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도 같은 선택을 할까? ‘착하기만’ 한 월터가 불법자가 되고 살인자가 되고 살인교사자가 되는 등 악한 사람이 되는데, 사실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일까? 누구나 어떤 상황이 되면 어떤 한계에 부닥치면 악하게 될까? ‘부자라서 착하다’고 말하듯이 어떤 사람이 착하다면 그 사람은 자신이 나쁘게 될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은 것뿐이 아닐까? 개인적으로 나는, 사실 인간이 모두 똑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나 자신을 보았을 때 내가 얼마나 악하고 미련하고 게으르고 오만하고 허영에 가득 차 있는지 알기 때문에, 내 밑바닥을 보았기 때문에, 나는 히틀러든 조두순이든 연쇄살인범이든 아기를 낳자마자 죽인 사람이든 (그 행동 자체가 아니라) 그 사람들을 마치 나와 다른 종류의 사람인 것처럼 비난하지 못했고, 그렇게 비난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나와 다르게 느껴졌다. 그리고 조용히 정죄했다. ‘너도 다르지 않은 인간이야. 너도 그런 삶을 살았다면, 그런 대우를 받았다면, 그런 한계에 부닥쳤다면, 더 악한 일을 저질렀을지도 몰라. 너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네가 얼마나 순진하고 오만한지 드러낼 뿐이야.’ 그렇게. 그런데 이 리얼한 이야기 속에서, 리얼한 캐릭터들을 보면서, 다양한 사람들이 해내는 끊임없는 선택들을 보면서, 나는 사람이 변하는 것은 본성이 변하는 게 아니라 본성이 드러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본성은… 다 같지 않은 것 같았다. 픽션이지만, 지어낸 이야기지만,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게 더 합당한 결론이었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나 혼자 이렇게 수많은 생각들을 했는데,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따로 있다면, 정말 놀라 자빠질 것 같았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함의가 담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지? 과연 어떤 게 핵심이고 어떤 게 부수적인 건지, 어떤 게 숨겨둔 진심이고 어떤 게 미끼인지 가릴 수 없을 정도의 완결성으로.
어쨌든 작가는 ‘인과응보'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했단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내 질문들이 쓸모없어졌다고 실망하지 않았다. 가만 생각하면 <브배>는 확실히 인과응보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원인은 결과를 낳았고 행위에 대한 합당한 보응이 있었다.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과하다고 느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로 어떤 일도 함부로 끝나지 않았고, 그렇다고 도식적이고 기계적이고 작위적이지도 않았다. 교훈적이기보다 사실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니까 어느 것 하나 대충 만든 것 없이, 맛없는 것 없이 차려진 한상차림 음식이었는데, 메인이라고 할 만한 음식들도 족히 대여섯 개는 되었는데, 사실 나는 아귀찜을 차리려고 했던 거야, 라는 호스트의 말을 듣는다고 실망하지 않는 것처럼. 그렇다고 연근튀김이나 새싹샐러드에 대한 감탄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아니, 호스트는 사실 하나의 메뉴가 아니라 자연식을 주고 싶었어,라고 그 모든 메뉴를 아우르는 어떤 테마를 말한 걸지도 모르겠다.
캐릭터에 매료되는 대신 이야기에 몰입합니다 (스포 있음)
잘생기고 카리스마 있는 사람보다 착하고 지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시즌1에서 월터를 좋아할 뻔하기도 했다. 그는 가족들을 사랑하고,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책임을 다하고, 성실하다. 그러나 항상 주도권을 상대에게 놓칠 정도로 어리숙하고, 표현도 서툴고,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고, 그 때문인지 사회적으로 자신이 가진 재능을 펼쳐 성공하지 못했고, 뭔가 불쌍하고 억울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지성적으로 아주 뛰어나고, 폐암을 알게 되는 결정적 사건 후로 자신이 갖고 있던 다른 모습을 점점 보여주는데, 결단력 있고 배짱도 있다. 미남은 아니어도 추남도 아니고 얼마든지 매력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자신을 드러낼수록 그의 지성으로 저지르는 일들의 사악함 역시 뚜렷해지고, 뿌리 깊게 박힌 오만함과 열등감에서 비롯된 자존심은 잊을 만하면 아둔한 일을 벌이는 통에, 섬찟해지고 정이 떨어진다.
작가는 전혀 월터를 매력적인 캐릭터로 내놓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사실 모든 사람은, 알면 알수록 정떨어지는 게 진실 아닐까? 잘해야 연민 정도가 생길 것이다. 알면 알수록 매료되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덜 안 게 아닐까? 적당한 거리를 두었을 때가 아닐까? 부부를 보아라. 긴 시간을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인 나와 상관없는 사이가 아니라 운명공동체로, 안 볼 수도 없이 살을 부대끼고 살다 보면 원수가 되는 순간이 한 번은 온다. 지긋지긋하다. 그럼에도 그것을 뛰어넘는 사랑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지만 그 안에 이런(정 떨어짐, 연민, 지긋지긋함) 감정까지 없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아무튼 속속들이 안다면 매료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거의 대부분의 이야기에서(소설이든 드라마든 영화든) 보통은 주인공을, 그리고 그 외 몇몇 등장인물을 매력적으로 내미는데 <브배>는 내 주위에 살아있는 사람을 보는 것같이 사실적인 캐릭터를 설정한다. 그래서 매료되지도 않고, 동일시와 감정이입으로 인한 몰입은 확실히 덜했지만 이야기 자체, 이야기 속의 세계에 대한 몰입은 굉장했다.
(매력적이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만한 등장인물은 나로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사람, 제시의 애인인 제인뿐이다. 잠깐만 나온다.)
월터뿐 아니라 제시도, 특히 초반 그의 빛나는 외모 때문에 그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을 경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끊임없이 되도 않는 반항을 한다. 깊은 신념이나 가치관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반항을 위한 반항처럼 반항하고(난 누구 말도 안 들을 거야. 내 마음대로 할 거야,가 모토인 것처럼), 멍청이 같은 일을 저지르고, 허세를 부린다. 그래서 중요한 고비마다 한숨이 새어나오고 속이 터진다.
스카일러는 현모양처다. 경우도 바르고, 다재다능하다. 일도 잘하고 좋은 아내고 아이도 잘 키우고 언니로서도 훌륭하고 아마도 좋은 이웃이고 좋은 시민일 것이다. 옳은 일과 선한 일이 무엇인지, 그 절차는 어떠해야 하는지 늘 빤히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또 직감은 그야말로 귀신 같은 스카일러는 숨이 막히고 질린다. 심지어 그런 그녀가 부정을 저지르고 합리화하며 옳은 것과 선한 일에서 멀어지는 과정은, 그러면서도 가족 혹은 자녀를 절대선으로 여기고 붙드는 모습은 처연하다. 역시 매력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악당임이 확실한 거스와 마이크에게는 끌리는 점이 있다. 거스는 매우 신사적이고 믿을 만하고 깔끔하다. 마이크는 실수가 없고 쓸데없는 말도 안 하고 꼼수에 넘어가지도 않으며 의리도 있고 손녀딸에게는 온화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눈도 깜짝 안 하고 사람들을 죽인다. 아무래도 동일시하기도, 응원하기도 어려운 캐릭터다.
마리와 행크는 초반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캐릭터다. 마리는 거짓말과 도둑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속물적이기도 하고 자기 마음에 있는 말들을 그냥 내뱉는 등 유아적인 어른이다. 행크는 마초의 전형처럼 음담패설이나 거친 말들이 일상언어고 진심이나 진지함이라곤 눈곱만치도 찾아볼 수 없이 허세 가득한 말만 지껄인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허점과 약점이 명확한 이들이 가진 강점과 보물 같은 점이 드러나는데, 마리는 언니네 가족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진심으로 돕고 행크가 영원히 불구가 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진심으로 간호한다. '초인적이게, 헌신적으로'가 아니라, 다시 도벽에 빠지고 재활훈련사에게 의지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하면서도 행크를 인간적으로 모멸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옳고 선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기에, 위선도 없는 게 아닐까. 행크가 죽을 뻔한 고비를 넘기며 정신적으로 무너졌을 때에도 마리는 겉으로 드러나는 유아적인 모습과 다르게 뚝심 있는 강단을 보여줬다. 늘 확실하게 말하고 강할 것 같은 스카일러가 월터 때문에 나락에 빠지는 것과 대비된다. 악에 대면해서도 넘어가는 게 아니라 선을 지켰고, 마지막까지도 자신들의 적이 된 그들에게 인간적인 배려를 보이기도 한다.
행크가 어찌 보면 비장의 캐릭터인데, 처음에 그렇게 비호감으로 그려진 그가 막판으로 갈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최애 캐릭터가 된다. 말만 거칠게 하고, 힘만 센 마초가 아니라, 경찰로서 다른 사람들이 다 놓치는 점을 잡아내는, 그래서 결국 완전범죄로 끝날 뻔한 하이젠버그의 정체를 알아낼 만큼 지적이고 감이 있으며, 마리의 유아적인 면이나 허점을 그 나름의 방법으로 감싸주고, 아내의 조카인 월터 주니어에게 아빠인 월터보다 더 따르고 싶은 어른이 되어준다. 작은 일에 연연하지 않고 용감하고 불굴의 의지를 보이고 호쾌하고 가까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다. 마초가 아니라 진짜 남자답고 멋지다. 끝까지 그를 응원하게 되고 죽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마리나 행크를 처음부터 그렇게 그린 게 아니라, 즉 ‘보면 볼수록 좋은’이라기보다 알고 보니 좋은 쪽이라 극 초반 캐릭터 매력에 빠지게 하는 역할은 아니다.
(사울도 주요인물이고 얘기할 게 많지만, 스핀오프 시리즈 <베터 콜 사울>을 아직 마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언급하지 않겠다.)
월터와 행크가 대비되기도 하고 스카일러와 마리가 대비되기도 하지만, 월터와 제시의 대비에 나는 생각에 잠겼다. 둘 다 돈 때문에 마약을 만들고, 그 과정에서 살인도 하고, 점점 더 깊숙이 얽매이면서 결코 되돌릴 수 없는 선택들을 한다. 하지만 월터가 알면 알수록 사악한 반면 제시는 여린 사람이었다. 그것은 아마 자신이 제일 중요했던 사람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그 자신보다 더 중요했던 사람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월터는 주위 모든 사람을 끊임없이 속이고, 그들을 수단으로 사용하면서도, 언제나 자신을 합리화한다. (자식인 월터 주니어와 홀리 정도만 끝까지 목적인 것처럼 대했지만, 그 역시도 막판엔 흔들린다.) 그렇기 때문에 척을 지는 순간 상대는 적이 되고 월터에게 당한다. 제시는 가만 보면 그 누구도 인격적으로 모독하지 않는다. 약에 빠지고 고집도 세고 영민하지 못하기도 하지만, 사람 볼 줄 아는 거스가 그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하는 것이 ‘충성심'이었듯(원문은 ‘loyalty’이고 ‘충성심'으로 번역했지만, ‘신의'가 더 알맞은 것 같다), 그는 한번 신의를 지키기로 한 관계에서 절대 그걸 버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그럴 만한 상대가 나타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끼고 사랑한다. 그래서 그런 관계를 갖는다. 월터는 함께 일하며 잘 지냈던 동료도 자신의 안위에 방해가 되자 죽이지만, 제시는 자신 때문에 죽은 가까운 사람들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괴로워하고, 마지막엔 그 일이 또 일어나지 않도록 노예의 삶을 선택한다.
월터는 결국 그를 아끼던 사람들 모두에게 버림 받았다. 심지어 아들에게는 죽어버리라는 소릴 듣는다. 제시는 (그의 청소년 시절 비행으로 부모로부터 절연에 가까운 단절의 삶을 살지만) 그가 모든 걸 잃었을 때도 믿고 찾아갈 친구가 있었다. 뱃저와 스키니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하고 제시에게 가진 걸 주고(돈과 잠자리와 차) 진정으로 도와주려 한다. 심지어 제시는 그들에게 어떤 설명도, 부탁도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둘 다 끔찍이도 돈을 많이 가져봤고 끔찍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월터는 모든 가족이 등을 돌리고 혼자 남아 폐암 때문이 아니더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마지막이었고, 제시는 가까스로 새로운 삶의 기회를 얻고(역설적이게도 그것은 월터의 공이 컸지만) 끝나는데, 아마도 누구든지 함께할 사람을 만나 사랑이라든가 따스함, 신의 같은 인간적인 가치를 이루며 살아갈 것 같다.
잠깐 시간 때우기 말고, 제대로 한번 빠지고 싶다면
글을 마무리하며 위의 만찬에 대한 비유를 다시 가져와서, 세팅이 훌륭했고 재료도 신선했고 분위기도 좋았고 먹고 나서 속도 편했고 식사 후 음식에 관해 어떤 안목이 생길 정도의 만찬이었는데, 과연 맛있었느냐, 물어본다면, 대답은, ‘그렇다’이다. 그러니까, 완전히 새롭고 미지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가 주는 흥미요소가 있었고, 리얼리티가 있고,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깊이와 철학이 있고, 깨닫는 바도 느끼는 바도 많았는데, 기본, 그러니까 재미가 있느냐, 물어본다. 대답은, ‘재미있다’.
그 재미의 요소는, 이 드라마의 저력과 연결되어 있는데 엄청나게 잘 짜인 이야기 구조에 있다. 플롯이 뻔하지 않으면서 있을 법하다. 개연성도 핍진성도 있는데,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 그러니까 한번 이 이야기에 제대로 올라타면, ‘앞으로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궁금증과 ‘아니, 이럴 수가’ 하는 경악, 경탄, 감탄이 쉴 새 없이 이어지며(그러니까 전체적인 속도나 장면 전환은 빠르지 않은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픽션을 보다 보면 한 번은 일어나게 마련인 ‘에이, 어떻게 저렇게 돼’ 싶은 전개가, 그래서 ‘아, 이건 드라마지’ 하면서 급작스레 현실을 자각하는 순간이 좀처럼 오지 않는다. 너무나 잘 짜여 있고 복선의 중경이나 층위도 다양해서 뒤로 갈수록 완성의 그림이 그려지면서(퍼즐이 맞춰지면서) 재미는 오히려 가속도가 붙는다.
그러니까 잠깐 시간 때우기 말고, 제대로 한번 어떤 세계에 빠지고 싶을 때 이 카드를 써보시라. 처음엔 좀 견뎌야 할지도 모르지만, 결국 ‘우와!’ 터지고 ‘인정!’ 외치며 기립 박수 날리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라고 단언하기엔 인간은 다양하고 언제나 예외가 있는 법이다. 하지만 서두에 쓴 대로 전세계적 평가 역시 그렇다고 하니, 자신 있게 마무리.)
+) <브배>를 다 보면 <엘 카미노>로 바로 이어지고, 다음은 <베터 콜 사울>이다. <엘 카미노>는 영화고, <베터 콜 사울>은 내년에 마지막 시즌이 나온다는 시리즈다. <엘 카미노>는 <브배>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로 제시가 어떻게 무사히 새 삶을 살게 되는가의 이야기이고, <베터 콜 사울>은 <브배>의 프리퀄로 사울이 어쩌다 그런 캐릭터가 되었는지를 보여준다고 한다. 아직 <베터 콜 사울>을 마치지 못했는데, 더 재미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게 가능할까 싶긴 한데,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