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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 마약을 책으로 배워보자

읽는 동안 '마약 한 것 같은 기분' 보장

by 모도 헤도헨

'마약'과 '마약 중독'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마약을 중독과 딱 붙여 생각한다.


우리는 술을 즐기는 자가 모두 알코올 중독자가 아닌 것을 알고, 흡연했다고 니코틴 중독자로 몰아가지 않으며, 아침마다 커피 한 잔 해야 하는 사람을 카페인 중독으로 연결해 심각하게 바라보지 않는다. 마약은 의존성과 해악성에서 다르다고? 꼭 그렇진 않다고 친절하게 엑스를 그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글은 '마약'이나 '중독'에 관심도 없고 평생 무관하게 살 줄 알았던 내가, 어쩌다 다른 관점을 갖게 되었는지, 그것이 책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통해 어떻게 정리되었는지에 관한 글이다.

(후자만 보려면 4번으로)


그러니까, 나는 원래, 술이든 담배든 과식이든 몸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빠져드는 사람을, 길게 생각할 필요 없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마약'은 나쁜 의미에서 특별한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것으로 아예 관심이 없었다. 뉴스에 나오는 마약하다 붙잡힌 사람들을 ‘망한 인생'의 전형쯤으로 생각했고, ‘대마초 합법'을 부르짖는 연예인들은 평소 이상했던 언행과 결부해 ‘엉뚱한 주장을 하는 마이너 중의 마이너’로 여겼다.


‘마약 청정국'(?)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충 이전의 나와 비슷하리라 추측한다.

하지만 ‘마약과의 전쟁’이 국정 비전에 오르내리니, 우리도 뭔가 달라져야 하지 않겠는가?






1. '중독'은 아무나 하나?


내가 처음 ‘중독'을 진지하게 생각한 건, 3년 전 우울증으로 정신과에 가기 직전이다.

2019년 초 셋째 젖을 뗀 후 나는 잠을 줄이기 시작했다. 잠이 오지 않은 게 아니라 잠을 자지 않으려 했고, 실제로 거의 자지 않았다. 하루에 두세 시간, 그것도 반은 낮잠이었다.


왜? 나는 내 시간이 필요했다. 임신-출산-육아 사이클을 세 번 도는 동안, 8년째 한 순간도 내 몸 안이나 내 몸 곁에 아이 없이 ‘개체'로 존재하지 못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처절하게 원했는데, 모두가 자는 한밤, 그때뿐이었던 것이다. (물론, 언제고 아이들이 깨서 울면 재우러 들어가야 했지만)


그래서 무엇을 했냐고? 먹고 놀았다. 식탁 위에 몇 권의 책과 핸드폰(거치대에 가로로), 주전부리들을 올려놓고, 멍 때리다 책을 보다 미드를 보다 했다. 아이들 앞에서 먹지 못했던 해롭고도 맛있는 음식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그때 보았던 것들은 그다지 재미있지 않았지만, 그때 먹었던 것들이 그다지 맛있지 않았지만, 그 시간들은 내 몸이 기억하는 거의 최고의 쾌락이었다.


당연히 낮 동안 피곤했다. 그럼에도 내게 맡겨진 일(가사와 돌봄)을 해내기 위해, 끊임 없는 아이들의 필요와 요구에 응답하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정신적인 여유가 남아있지 않은 나는 점점 웃지 않았고(아무것도 웃기지 않았다), 사소한 일에 감정적으로 폭발했다(거의 매일 그랬다). 그다음엔 (예견된 수순을 따라) 내 잘못을 뉘우치며 참담해하다가… 마카롱을 먹으며 미드를 봤다.


내 삶의 유일한 쾌락일 뿐 아니라 겨우 살아낼 힘을 주는 그 시간이, 나와 내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던 게 아니라, 멈추지 않았다.(적어도 내 생각엔 그랬다)


시간이 더 지나자, 나는 반쯤은 가수면 상태로 지냈다.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판단력이 흐려졌다. (나는 원래 생각의 속도가 빠르고 명료한 사람이었다) 아무것도 재미있지 않았고, 어떤 일을 할 의욕이 없었고, 할 힘도 없어서 무기력해졌다. (나는 원래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로 에너제틱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생존이 위협받는 내 아이들을 위해 영혼의 힘까지 끌어모아 음식을 만들고 빨래를 개고 목욕을 시켰다. 나는 쭉정이만 남아 겨우 숨을 쉬다가… 파인트 아이스크림 퍼먹으며 유튜브를 봤다.


그때 내 마음을 아주 잘 표현한 말이 있다. ‘될 대로 되라'. 어차피 내가 좋은 의도를 갖고, 멋진 계획을 세우고, 최선을 다해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인생! ‘세계 평화’나 ‘자아 실현’을 바란 것도 아니었건만. 9시 13분에 아파트 정문에 오는 유치원 셔틀버스에 늦지 않기, 저녁식사를 준비하면서 세 아이 목욕을 평화롭게 마치기, ‘이야기 보따리’나 ‘자장가 주크박스’가 동나기 전에 아이들을 재우기… 이조차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면, 내가 선한 의도로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안 된다면… 어디 한번 될 대로 되어보라지.


흐릿한 판단력으로 이런 생각이 흘렀다. 아, 중독자의 마음이 이런 걸까?




2. ‘올바른 가르침’이 멈추는 곳


그무렵, 예배당에 앉아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있노라면,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ㅡ정말 그 옳은 말들이,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속으로), 덧붙이곤 했다.(속으로!)


ㅡ누가 그게 옳은 걸 모르나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 것도, 당신을 믿을 수 없는 것도 아니라니까요. 그럼 왜 그렇게 안 사느냐고요?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 따먹으면 죽는다는 걸 알면서, 심지어 하나님이 그렇게 말했는데, 왜 따먹었을까요?


나는 모든 옳기만 한 말들의 무력함을 비웃었다. 그때까지 꽤 탄탄했던 나의 가치관에도 전부 물음표가 붙었다. 확실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했다. '아직 한계까지 못 가봤구나.' 한 번도 무너져보지 않은 사람들의 반듯한 이야기는 모래 위에 지은 집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세상의 ‘옳은 가르침’이 내 안에서 와르르 무너지는 동안, 아이들은 차곡차곡 '바르기 그지없는 교육’을 받고 있었다.

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보면, 표정 관리도 성량 조절도 안 한 채 이렇게 외쳤다.


“히익!(놀라는 소리) 엄마, 저 아저씨 담배 피워!!!”


타인이 무엇을 하든 면전에서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라는 의미를 담아 각종 제스처로 입막음 하며 지나가려 해도 기필코 덧붙였다. “나쁜 건데.”


그리고 수업시간에 마약 중독에 관한 동영상을 보고 집에 와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틀어달라 하고는, 근엄하고도 해맑은 얼굴로 물었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마약을 하는 거야?”


그 메커니즘에 관한 의문이 아니라, 이해불가의 표현이다.

나는 답했다.


“그게 나쁘다는 걸 알아도 사람들은 그걸 하기도 해.”


“왜?” (역시 이해불가의 표현이다)


나는 되물었다.


“너도 엄마가 이에 나쁘다고 알려줘도 젤리 먹잖아.”


멈칫하면 덧붙였다.


“그리고 바로 이 닦으라고, 안 그러면 충치로 고생한다고 말해도, 미루고 미루다가 대충 양치하잖아. 게임 많이 하면 머리 나빠진다고 해도 계속 하고 싶어하잖아.”


그제야 조금 이해를 하는 눈치였다가, 이내 근엄한 얼굴로 돌아와 말했다.


“그래도 중독은 안 될 거야!”


나는 그냥 웃었다. 이 말을 하기에 아이들은 너무 해맑았다. “너의 삶에서 그 대상이 무엇이든 너무 의지하여 중독되어버릴 상황이 없기를 바라. 하지만 엄마는 그게... 가능한 일인가 싶어. 만약 그렇다면 그건 복, 아니 운일 거야.”

기도를 덧붙였다. 그런 운이 없어도 오늘의 다짐을 기억할 수 있기를, 그 다짐이 도움이 되기를.




3. 쉬운 길로 로마로 가면 안 돼?


영화 소개 영상에서 <레퀴엠>의 한 부분을 보았다. 마약을 한 후, 자기가 가장 바라는 상태에 들어간 주인공의 모습이었는데, 아슬아슬하면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세상이 내 맘 같지 않아서, 이불 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면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함께하고 싶은 사람, 내가 성취하고 싶은 일, 바라는 상태… 그걸 실제로 이뤄내지 못한다면, 불가능에 가깝게 어렵거나 그렇게 느껴진다면, 차라리 그 상태에서 느낄 것들을 마약을 이용해 얻는 게 왜 잘못이지?


아니, 그보다 그 둘이 다른 걸까?


실제가 아니라서? 지금 나비가 내가 된 꿈을 꾸는 건지 내가 나비 꿈을 꾸는 건지도 모르는 마당에, 매트릭스 안에서 뇌로만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처지에, 꼭, 반드시, 이 ‘실제’ 세계에서 ‘아프니까 청춘'인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노오력’을 하며 살아야 하나? 내 마음대로 지지리도 안 되는 이 세계에서, 굳이, 어렵게?

현실로 돌아오면 더 비참하고 괴로워서? 하지만 나는 내가 원하는 상태에 갔다 왔는데? 약 조금이면 또 경험할 수도 있는데? 짧고 굵게 행복하고 짧고 굵게 비참한 삶이, 조마조마해하며 아등바등 애쓰며 살지만 결국 전체적으로는 괴로움으로 수렴하는 삶보다 낫다고 느껴진다면? 그렇다면 대체 뭐가 문제지?


안다. 반박의 말들. 반론의 논지에 나 역시, 동감하는 바다.


하지만, 밥을 먹는 대신 (‘밥을 먹는다'에 숨겨진 일련의 노동과 시간과 거추장스러움을 포함한다) 알약 하나를 먹어도 되는 세상이 온다면 (물론 영양상으론 똑같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자, 당신 앞에 '파란 알약'(영양 만점!)과 '하얀 밥'(일련의 노동과 시간과 거추장스러움 포함!)을 두겠다.
무얼 선택하겠는가?


밥은 영양분과 등치되지 않는다. 요리에도, 함께 식사하는 것에도, 심지어 설거지에도 숭고함이 있다. 간단하게 영양만 택했다가는, 어마한 노동과 잡스런 의식들과 작별하고 에너지와 시간을 얻겠지만, 우리는 문화와 철학과 온정과… 말로 표현하지 못할, 예상하지 못할 많은 것들을 잃을 것이다.


그럼에도, 알면서도, 가끔은… 알약을 택하고 싶지 않은지?


어떤 상황에선 그게 많은 걸 잃는 길인 줄 알면서도(아니, 그건 당장 관심 없고) 가고 싶을 때가, 가야만 할 것 같은 때가 있다.

(마약으로 다시 돌아와서) 아무리 반론의 논지에 동감해도, ‘마약'이 왜 안 된다는 건지, 본질적으로 궁금했다. 해볼 수도 없고…


그때 마침,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동진의 '마약의 역사'를 내놓았다. 흥미롭게 보았다. 그리고 그가 추천한 책 중 제일 쉽고 재미있을 것 같은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도서관에서 빌렸다.



4. 마약을 책으로 배워보자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읽는 동안 다른 책에 기웃거리지 않고 쭉 읽었고, 다 읽기 전에 소장가치를 인정하고 샀다. 저자 ‘오후'의 냉소 섞인 재치와 유머 덕에 꽤 많이 낄낄댔다.


그리고 무엇보다, 책의 제목처럼, 읽는 내내 ‘그래, 나는 마약을 몰랐구나. 전혀 몰랐어. 우리는 마약을 몰라. 모른다고! 이러쿵저러쿵 하기 전에 일단 알아야 했어. 안 그럼, 모르니까 무섭고, 그래서 피하고, 그러다 무조건 나쁜 것이 되잖아.’ 중얼거렸다.


마약이 궁금하지도 않고, 할 생각도 없는데… 굳이 알아야 할까?


그렇다,고 답하겠다. 좋든 싫든 세상에 마약이 엄연히 존재하고, 마약 제조와 유통이 한 나라를, 나라와 나라를 움직이는 산업이며, 마약카르텔이 정치를 움직이고 정부보다 힘이 세기도 하니까. 우리나라는 아직… 이라고?

이를테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며 그쪽엔 친지도 없고 그쪽으로 여행 안 가니까 괜찮다고 할 수 있을까? 삶은 그렇게 개인적이지 않다.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를 통해 알게 된 내용을 거칠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마약은 처음부터 있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마약이 ‘불법'이고 ‘나쁜 것'은 아니었다.

축제 때 쓰고, 일할 때 쓰고, 아플 때 쓰고, 심심해서 쓰고… 필요해서 쓰고, 당연히 쓰고, 쓰라고 해서 쓰고. 숨어서, 몰래, 인생 버린 사람들이 하는 게 아니라, 권력자들이, 예술가들이, 보통 사람들이 했다. 당연히, 마약을 했다고 인생을 망치지 않았다.

정치적인 이유로 역사적인 과정을 거쳐, 지금과 같이 ‘숨어서, 몰래, 인생 버린 사람들이 하는 마약'이 되었고, 마약을 했다간 인생을 망치게 됐다.


마약은 종류가 다양하다. 효과와 중독성과 해악이 천차만별이다.

불법이 아닌 것들(술, 담배, 카페인 등)보다 효과와 중독성과 해악 면에서 확실히 약한 마약도 있다.(이를테면 대마초. 그래서 대마초 합법화를 당당하게 주장한 사람들이 있는 거고, 실제로 세계적으로 그렇게 되어가는 추세라고 한다)

약한 마약을 하다 보면 결국 심한 마약을 하게 되는 디딤돌 효과도 없다. (즉 바늘도둑이 꼭 소도둑 되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

마약을 하는 모든 사람이 중독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마약을 호기심에 한두 번, 혹은 때때로 기분과 상황에 맞춰 하는 것과 중독이 되는 것은 다르다. 알코올 중독자의 주사(酒邪), 폐암 환자가 된 골초의 폐 사진,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이 받은 심각한 피해들을 내밀며 술 한 잔, 담배 한 모금을 아예 금지할 수 없는 것처럼, 어떤 마약들은 어떤 사람들에겐 국가가 강제해서 막고 처벌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그래서 하나로 묶어 똑같이 정책을 세우고 처벌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

처벌의 위험이 커질수록 마약은 비싸지고, 마약시장은 커지고, 제조자/판매자/구매자 각각의 효율 때문에 효과와 해악이 더 큰 마약이 더 많이 만들어지고 팔린다.

또한 마약 자체가 아니라 ‘마약을 처벌하는 상황'이 마약을 더 위험하게 만든다. 공공영역에서 검열하거나 통제하지 않기 때문에, ‘나쁜 마약’을 신고할 수도 없기 때문에, 위생이나 품질이 현저히 엉망인 마약이 유통되고, 숨어서 몰래 하는 환경 자체가 생명과 건강을 위협한다.(주사바늘을 여러 번 사용한다든가, 몸에 이상이 생겨도 병원에 갈 수 없다든가)

그렇다면 더 완전하게 통제하고 강력하게 처벌해서, 아주 싹을 없애버리는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실제 역사와 현 상황을 보면, 그렇게 할수록 역효과가 더 커지고 악순환의 지옥이 열린다.(미국이 대표적 예) 또 미국이 금주법을 시행했던 역사를 살펴보면, 사회적 합의가 있었음에도 ‘술'과 ‘음주자'를 완전히 없애는 건 불가능했고, 결국 득보다 실이 훨씬 많았다.

방법은? 감시와 처벌이 아니라, 적절한 통제와 사회복귀 시스템이다.

마약을 합법화 하자거나 모든 마약이 다 괜찮다는 게 아니다. 감시와 처벌 대신, 마약 각각에 따른 적절한 통제와 마약 사용자 혹은 중독자의 사회복귀를 돕는 데 정책 에너지를 쓰면, 개인이나 사회에 끼치는 마약의 해악을 훨씬 줄일 수 있다. 네덜란드와 콜롬비아가 실제 보여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과연 마약이 문제인가? 아니면 사회가 문제인가?

‘마약은 위험하다’는 생각, ‘그러므로 우리는 마약을 없애고 마약 사용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에 의문을 제기한다. 무엇을 문제로 보고, 인간과 사회를 위해 기울여야 할 노력은 무엇인지 다르게 생각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유명한 '쥐 공원 실험'을 소개하는데,
이 긴 글을, 이 실험으로 갈음할 수 있겠다.


‘마약의 중독성'을 보여주는 쥐 실험이 있다. 수컷 쥐를 좁은 공간에 가두고, ‘순수한 물'과 ‘마약을 섞은 물'을 둔다. 쥐는 물 대신 마약음료를 선택하고, 결국 중독이 됐다가 어느 순간 죽는다.


비슷한 실험이 반복됐고,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 연구를 골똘히 바라보던 브루스 알렉산더 박사는 실험을 다르게 설계한다. 이름하여 ‘쥐 공원 실험'. 쥐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A그룹은 앞 실험처럼 수컷 쥐들만 좁은 공간에 가두고 물과 마약음료를 주고, B그룹은 훨씬 넓은 공간과 쾌적한 환경(온도, 먹을 것, 놀이기구 등)에 암컷과 수컷을 함께 생활하게 했다.


결과는?

A그룹은 예상대로 물 대신 마약음료를 선택하고 죽었다. B그룹은 대부분 마약음료 대신 그냥 물만 마셨다. 마약음료에 ‘당(쥐가 환장하는 단맛)’을 섞어줘도 마찬가지였다. 가끔 마약음료를 마셨지만, 대부분 그냥 물을 마시며 행복하게 지냈다.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A그룹과 B그룹에 물을 빼고 마약음료만 주었다. 모든 쥐들이 (B그룹의 쥐도) 마약음료를 마실 수밖에 없었고, 57일 후 모두 마약에 중독됐다. 그리고 다시 물과 마약음료를 같이 주었다.


어떻게 됐을까?

A그룹은 역시 마약음료를 선택했다. 하지만 B그룹은 가끔 마약음료를 다시 찾기는 했지만, 대부분 물을 마셨다. 금단현상을 겪으면서도 마약음료를 찾지 않고 버텼고, 결국 마약음료를 덜 찾더니 거의 원상태가 되었다.


알렉산더 박사는 이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있게 이야기했다.


우리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중독성이 강한 마약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금단현상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지 않다. 부정적인 주변 환경이 우리가 금단현상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만들 뿐이다.



한 인간을 마약을 했느냐 안 했느냐로 판단하고, 마약 거래나 마약 사용자를 색출하여 처벌함으로써 사회를 나아지게 한다고 믿는 것은, 황운하 의원의 말을 빌려 ‘경찰청 마약과장 정도가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좀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 저자 '오후'의 발랄함을 담지 못한 책 소개라 아쉽다. 그래서 한 마디 덧붙인다. 마약을 책으로 배운 정도가 아니라, 저자의 바람대로 '글을 읽는 동안 마약 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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