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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ㅎ Jun 16. 2023

러닝 : 낯선 곳에서는 일단 달려야 한다

여행지에서 달리면 기분이 조크등요

    이십 대 중반에 상하이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어느 아침, 브런치를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공원도 아닌 그냥 '길'을 친구와 걷는데 멀리서 길쭉한 사람들이 이쪽으로 달려오는 게 보였다. 딱 봐도 운동선수는 아니었다. 바로 '서양인'이라 생각했다. 키가 큰 백인 남녀가 비슷한 빠르기로 뛰고 있었다. 그날따라 미세먼지 탓인지 매연 때문인지 앞이 뿌옜다. 좋지도 않은 공기를 가르고 뛰어오는 사람들을 보며 친구와 했던 대화가 기억난다. 외국 사람들은 조깅을 어디서든 한다더니 진짠가보다, 신기하다.

    그리고 몇 년 뒤의 나는 러닝을 습관으로 만들고서야 알게 되었다. 낯선 장소에 간다면 무조건 뛰어야 한다. 매일 같은 장소를 달리는 것도 물론 즐겁고 재밌지만 여행을 간다면 더욱더 뛰는 게 좋다. 달리기도 여행도 즐거워지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그 점을 알게 된 나의 여행 짐에는 당연하고 자연스레 러닝화와 운동복이 추가되었다.




    내가 러닝을 시작하는 동시에 코로나 19의 유행 역시도 시작되어 나는 한동안 국내 여행지에서만 달리기를 해볼 수 있었다. 처음은 부산 해운대였다. 바다 앞 호텔에 묵어 러닝 장소를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해운대 백사장이 압도적으로 길긴 긴데, 또 왕복으로 뛰어보면 삼 킬로미터 남짓이라 아침에 가볍게 뛰기 적당하다. 살짝 뛰고 먹는 맥모닝의 맛! 최고였다. 함께 여행 한 친구가 러닝을 해 누군가와 함께 뛸 수 있어 더 재밌었다. 풍경이 대단한 동네여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백사장을 뛰는 외국인들이 있었다.

가볍게 뛰어왔던 해운대 백사장
함께 뛰고 찍은 기념사진


    해변가 러닝은 러너들의 로망 아닐까. 실제로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그래선지 나는 강릉에서도 달리기를 하게 됐다. 여긴 해운대처럼 바닥이 딱딱한, 뛰기 좋은 길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솔밭을 따라 무한정 뛸 수 있었다. 아마 내가 트레일러닝을 했다면 이 길이 더 즐겁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강릉의 해변은 여러 해수욕장이 연결되어 있어 해운대보다 더 길게 뛸 수 있었다. 한참을 뛰어 바다를 홀로 보고 돌아왔더니 동행한 친구가 잠에서 깬 채 나를 맞아주었다.

길게 이어지는 소나무길
아침바다


    세 번째로 해본 여행지에서의 러닝 역시 바닷가다. 한라산을 등반하러 간 제주에서 러닝이라는 두 마리 토끼까지 잡아보기로 했다. 조용한 어촌마을에 있던 숙소 덕에 해변이 코앞이었다. 마침 제주는 자전거길을 잘 만들어둬서(환상자전거길) 그 길을 따라 뛰면 되긴 한다. 하지만 차도 바로 옆이라 주의를 기울이는 게 좋겠다. 저녁형 인간이지만 이 날 만큼은 함께 운동을 하기로 결심했던 동행한 친구는 이 길을 걸어 나를 따라왔다. 나는 친구보다는 조금 더 멀리 뛰어봤다. 한적한 바닷가를 천천히 달리는 동안 해가 떠올랐다.

친구 덕에 뛰어가는 내 뒷모습이 남게 됐다.


    드디어 하늘길이 다시 열린 올해, 나는 방콕에 가서 또 한 번의 러닝 계획을 세웠다. 방콕은 더운 도시이고 바다가 가깝지 않으며 길이 복잡해서인지 러너들이 모이는 장소가 정해져 있었다. 자고 있는 친구를 두고 나는 이른 아침에 BTS(Bangkok Mass Transit System)를 타고 방콕의 러닝 성지라는 룸피니공원으로 갔다. 근처에 가자 이미 러닝을 마친 사람들이 공원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설레는 마음으로 공원에 들어섰더니, 한눈에 봐도 국적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같은 방향으로 공원을 뛰고 있었다. 

수십 명의 러너가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진풍경
공원 초입에 물 보관 장소까지 있다!

    이렇게 많은 러너와 함께 달리다니! 대회가 아니고서는 힘들었다. 여행자들의 성지인 도시답게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섞여 있었다. 각자의 운동복을 입고 각자의 속도로 뛰는 사람들 사이를 나도 내달렸다. 새로운 풍경에 더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즐거운 마음에 페이스가 점점 빨라졌다. 그래도 힘들지는 않았다. 조식 시간에 맞추느라 삼 킬로미터 남짓을 뛰고 나서야 나는 상하이에서 봤던 러너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지에 왔으면 마땅히 뛰어야 한다. 다른 나라라면 더욱더. 러너만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늘 더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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