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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민 Jun 11. 2017

#63 저를 여기서 빼내 주세요.

2017.3.14. 아이들의 싸움을 말리며

며칠 전의 일이다. 우리 반에는 외부 자극에 쉽게 흥분하고 자신의 분노를 제어하기 힘든 친구가 있다. 조금은 까칠하고 낱말도 억세지만 평소에는 학급일도 열심히 하고 논리도 바른 학생이다. 문제는 다른 반과 같이 함께 있는 시간에 발생했다. 앞의 장면을 봐야 하는데 앞 친구가 자꾸 일어서서 시야를 가린 것이다. 우리 반 친구는 정중하게 몇 번을 앉아 달라고 요구했지만 묵살당했다. 

그리고 터졌다. 
"야 똑바로 앉으라고!" 아이들이 웅성거리고 싸움을 말리던 학생 몇 몇이 나를 찾아왔다. 현장에 가보니 '아뿔싸!' 폭탄과 불이 만났다. 우리 반 학생도 상대방도 눈에 흰자만 보일 정도로 째려보고 있었다. 수사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둘 다 흰자만 보였다. 일단, 앞을 가로막고 심호흡하자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먹히겠나? "비켜요!" 순간 나도 뭔가 올라왔지만 그 순간 아이의 눈에서 다른 문장을 읽었다. 

'저를 여기서 빼내 주세요.'
일단 화를 내긴 했는데, 끝을 맺기 어려운 상황. 살다 보면 있다.

"선생님이랑 잠깐 걷자, 그래 줄수 있지?" 그 자리를 벗어나 한 곳에 기대에 둘이 섰다. 

"화가 많이 났니? 지금 감정이 어떤지 이야기해줄 수 있니?"
"제가 왜 그래야 하는데요?"
"그러네,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 그렇지만 선생님이 볼 때 거기에 계속 있는 건 둘에게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여기로 데리고 온 거야."
"......."
"선생님은 여기 서 있을 테니까 기분이 나아지거나 다시 친구들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이야기해주렴"
"......."

더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와 왠지 앞선 대화에서 무시당한 것 같은 기분도 접어두고 그저 기다렸다. 

15분 가까이 지났을까

"선생님, 다리 아파요. 계속 서 있었더니..."
"그래? 그럼 앉아도 돼"
"아니요, 들어가서 앉을래요."
"그래? 같이 가자."

가는 길에 다음부터는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걸 모를까, 이미 어른들에게 얼마나 많은 훈계를 들었을까?

그렇게 들여보내고, 한참을 서서 그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새 아이들과 웃으며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가장 좋은 훈육은 '기다림과 인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를 과거를 뒤돌아 보았다. 어릴 적 나의 부모님과 선생님들에게 가장 원했던 것.

아직 꿈이 없어도, 할 줄 아는 게 없어도, 성적이 밑바닥이어도
그래서 지금은 그냥 놀고 있어도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될까?" 

기다림 받지는 못했던 내가, 원했던 만큼 아이들을 기다릴 수 있는 교사가 될 수 있을까?

걱정과 격려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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