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민 Jun 11. 2017

#67 실패하는 기획하기

2017.3.30.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하늘을 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비행기를 만들게 했지만, 언제든 떨어질 수 있는 비관론이 낙하산을 만들게 한다." 나는 이 이야기에서 비관론자에 해당한다. 

긍정적인 기획자는 실패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일단 아이디어를 떠올려 추진하기 시작하면 '잘될 거야'라는 생각으로 일을 추진한다. 이런 사람은 늘 남들보다 앞서 나간다. 새로운 시도와 발전적인 미래상이 따른다. 에너지가 넘치고 일직선이며 멈추지를 않는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 "그거? 잘 안될 거야"라고 팔짱 끼는 비관론적인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이 만일 아이디어를 내고 기획을 한다? 그럼 우선 자기 자신이라는 까다로운 검열부터 통과해야 한다. 그리고 지난한 과거의 실패 사례들을 들춰볼 것이다. 

이 사람의 목표는 성공이 아니라, 실패하지 않는 것이다. 느리고, 구불구불하며, 계속해서 멈추고 뒤돌아 본다.
내가 전형적인 비관론적 기획자이다.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도 아니고, 하도 남의 성공을 까는 것에만 에너지를 쏟던 사람이라 직접 기획자가 되어 일을 시작하면 그 관점을 자신에게도 적용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뭔가 아이디어를 떠올리며 성공보다 실패를 예고하는 사고 과정을 시작한다. 

다 까내리고 나면, 정말 초라해서 이건 '시작하면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작은 덩어리만 남는다. 즉, '지금 할 수 있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군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장기적인 비전이나 목표 등등을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30년 후에 어떻게 살 거야? 살고 있을 거야?를 고민하기보다. 그냥 오늘 뭘 할까? 오늘 어떻게 지내야 하지에 더 비중을 두는 기획을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이런 모습을 한 번도 싫어한 적이 없다. 이런 사람이 그룹에 많이 있어야 건강한 조직이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자기 주변에 이런 사람 때문에 피곤하다면, 더욱 그를 가까이하길 바란다. 가끔은 너무 긍정적이라 대기권을 뚫고 나갈지 모를 때 유일하게 당신 발목을 잡아줄 사람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66 선생님, 나가서 놀아도 돼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