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의 모티브

유대인 연극배우 이착 뢰비

by VIVA

카프카가 살았던 당시 서유럽과 동유럽에 사는 유대인들의 모습은 서로 달랐다. 서유럽 유대인은 서유럽에 동화하기 위해 기독교로 개종하기도 했고 서유럽의 많은 기독교 문화와 생활양식을 받아들였다. 경제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유대인 차별 반대법이 세워지면서 스스로를 유럽 시민이라고 생각하며 많이 동화했다.

합리와 이성의 계몽주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유럽 유대인과는 달리 동유럽 유대인은 영성적인 면이 강조된 신비적인 유대교 믿음과 종교 생활을 했다. 유대인 전통을 고수하고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이디시어를 하면서 현실과는 조금 동떨어진 순수 종교 생활을 했다. 카프카는 동유럽 유대인의 종교 생활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의 영혼의 뿌리와 안식처를 찾았다고 생각했다. 카프카는 자본가와 노동가 사이에서 조정을 하며 중재 역할을 하면서도 심적으로 노동자 편을 많이 들었다. 그 시기에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관심을 많이 보였지만 완전히 빠지지는 않았다. 그는 중심을 잡기 위해 늘 긴장했다. 균형과 조화를 이끌어내야 하는 직업적 긴장과 성장기에 받지 못했던 인정과 사랑에 대한 결핍, 그리고 사회 계층에서 오는 여러 편견과 갈등의 안식처를 찾은 것이다.

재미나게도 카프카는 10대와 20대 초반에는 유대교에 오히려 등을 돌리며 과학과 진화론에 모든 관심을 쏟았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그는 유대교의 뿌리를 찾으려 했다. 때마침 동유럽의 유랑극단이 프라하에 머물며 공연을 펼쳤다. 이들은 이디시어로 공연을 했다. 카프카는 이 공연을 하나도 빠짐없이 관람했다고 한다. 그때 알게 된 사람이 바로 이착 뢰비다. 이착 뢰비는 연극을 향한 열정으로 가족을 떠나 극단에 들어갔다. 카프카는 이착 뢰비의 이러한 순수한 예술혼에 많은 감명을 받았다. 카프카는 극단의 리더인 이착뢰비를 보고 이렇게 일기에 썼습니다.


“이착 뢰비, 당신은 저에게 가장 유익한 사람이었습니다. 제 영혼에 말을 걸어준 유일한 사람입니다”


이착 뢰비를 알게 된 것은 막스 브로트 덕분이었다. 카프카는 막스 브로트와 프라하의 레스토랑에서 연극 공연을 보러 갔으며 그곳에서 이착 뢰비의 공연을 처음 관람했다. 이후 카프카는 이착 뢰비의 여러 공연을 보면서 유대인 배우들과 친분을 만들었다. 이를 계기로 카프카는 동유럽 유대교 문화를 이해하고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독립적인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사회적인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서유럽 유대인들은 동유럽 유대인들의 유대 종교생활을 비난했다. 영성이라고는 했지만 샤머니즘과 같은 미신을 믿으며 교양 없는 지저분한 행동이라고 몰아세웠다. 진화론이 나오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뭐든 할 수 있다는 신념이 팽배했던 사회 분위기였지만 카프카는 개인주의적인 서유럽 유대문화보다는 연대의식과 공동체의식이 바탕이 된 동유럽 유대문화에 마음이 끌렸다.

카프카를 이러한 영적 활동으로 이끈 인물이 이착 뢰비다. 카프카는 종교관습에 상관없이 유대인으로서의 분명한 정체성을 지닌 동부 유대인들을 부러워했다. 카프카는 이디쉬 어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모든 연극을 모두 다 관람하고 감명을 받으며 집으로 이착 뢰비를 초대했다. 하지만 카프카의 아버지는 이착 뢰비를 매우 싫어했다. 카프카는 그 만남을 이렇게 기록했다.


아버지는 이착 뢰비를 마치 ‘벌레’ 보듯이 했다.


카프카 『변신』의 모티브인 벌레 이야기는 카프카의 아버지인 헤르만 카프카가 이착 뢰비를 보고 벌레 보듯 했다는 말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개와 함께 자면 벼룩과도 함께 자는 것이다'라는 라고 카프카의 영혼의 친구였던 이착 뢰비를 매우 무시했다. 헤르만 카프카는 자유분방하고 자신의 열정과 삶에 대한 방향이 확실했던 이착 뢰비가 카프카의 사회적인 신분 상승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하여 집에 초대하는 것도 금지시켰다. 이착 뢰비는 이들의 우정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카프카에게 유대인으로의 정체성을 깨닫도록 이끌어준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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