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하자 변심했다
카프카의 여동생이 변신을 읽고 "오빠 이야기잖아!"라고 했을 만큼 주인공 그레고어는 자신의 분신처럼 심리묘사를 했다. 카프카의 실제 삶에서도 우유부단했습니다. 자기 인생의 어느 한 부분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지 못했다. 이러한 카프카의 이러한 머뭇거림은 작품 『변신』에서도 매우 잘 나타나 있다.
변신은 현대 소설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그런 위대한 소설은 카프카는 단 2일 만에 써 내렸다. 변신의 도입부는 매우 충격적이다. 이전의 소설은 등장인물이 어떠한 배경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하나의 사건을 만들어가는 서사의 구성이었다. 하지만 변신에서는 첫 문장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고 벌써 끝이 났다. 주인공이 이미 벌레로 변해 있고 왜 변했는지도 모른다. 왜 변했는지 그 이유를 찾는 서사라면 미스터리 판타지겠지만 벌레로 변한 주인공은 자신이 벌레로 변한 이유에는 관심이 없다. 자신이 맡은 일과 책임만을 생각하며 안절부절못할 뿐이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주인공이 겪는 의식의 변화가 이야기의 핵심이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 실존의 의미가 드러난다. 영화 <아가씨>, <설국열차>, <박쥐>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김남희 문화 평론가와 박찬욱 영화감독 함께 와 나눈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화가 인간에 대한 탐구라고 보았을 때, 딜레마 상황이야 말로 인간이라는 종족이 어떤 존재인지 보여주기 좋은 효과적인 장치다. 완전히 벽에 박힌 것 같고 좁은 곳에 갇힌 것 같은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관찰하면서 그 존재가 누구인지 보여주기 위해 현미경을 들여다보듯 관찰을 하는 거다. 그럴 때 효과가 좋다. 내가 극단적인 상황, 복수, 금기, 딜레마 같은 상황을 늘 설정하는 이유는 그때 나타나는 행동의 양식이야 말로 인간을 잘 규정할 수 있는 답을 주기 때문이다.”
변신에서 카프카는 아무 이유도 없이 주인공을 첫 문장에서 바로 벌레로 변신시킨다. 주인공과 독자를 동시에 극단의 상황으로 몰아세운다. 뇌는 도파민으로 몸은 아드레날린으로 무장된다. 벌레로 변한 인간이라니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읽어나가게 된다. 카프카의 작품은 여흥용이 결코 아니다. 심난하기까지 하다. 처음부터 긴장하게 만들어 그것을 서서히 해서 시켜 통쾌함을 주지도 않는다. 삶은 고구마에 목에서 병목 현상을 일으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주인공의 심정을 서서히 조심스럽게 과장되지 않게 묘사한다. <변신>의 해석과 감동이 다양한 이쥬중 하나가, 작품은 전지적 시점으로 주인공을 묘사하지만, 독자에게 주인공의 심정을 강요하거나 설득하려 들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가 독자에게 감정적 여백 와 여지를 남겨 작품을 읽는 독자의 숫자만큼 변신에 변신을 거듭해 매번 새로운 해석이 나오는 작품이다.
<변신>은 전통적인 소설 기법을 따르지 않았다. 기승전결의 4단계 또는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의 5단계도 아니다. 3막의 아리스토 텔레스 문법 같지만 숫자만 같을 뿐 그렇지도 않다. 이 세 가지의 소설 구성법은 대부분 주인공이 왜 변신을 하고 어떻게 변신이 되어 어떤 난관과 갈등과 고낙을 극복하여 정상으로 돌아오느냐 마느냐에 초점을 맞출 것이다. <변신>은 벌레로 변해 버린 그레 고리가 잠자의 심리 묘사가 거의 전부다. 소설의 분량에 비해 서사는 거의 없다. 그리고 장소도 주인공의 방, 가족의 공간, 다시 주인공의 방일뿐이다. 이 배경을 바탕으로 3부의 내용이다. 주인공이 자신의 방에서 나가거나 나가려고 했던 시도와도 일치하는데, 이는 주인공이 자신이 벌레로 변했다는 것을 인정하다가 거부하다가 결국 수용하는 3단계이기도 하다. 카프카의 변신이 높이 평가받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지만 그중의 하나는 이런 보편적인 소설의 문법을 따르지 않은 구성도 들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