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글쓰기
전에 언젠가 제게 물어보셨지요. 어째서 제가 아버지한테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느냐고요.
카프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카프카는 글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풀어나가면서 어린 시절 겪었던 마음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자 했다. 하지만 아버지와 대화를 시도하고 어떤 식으로든 오고 가는 소통을 시도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늘 한결같았다. 카프카는 자신이 하고픈 말을 답장 없는 편지로 남겼다. 이 편지들은 답장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수신인인 그의 아버지에게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 카프카는 아버지와의 관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마음의 상처와 극복하지 못하는 한계는 여러 작품 속에 나타납니다. 카프카는 아버지에게 수많은 편지를 썼습니다. 이 편지들은 수신인에게 전달되지 못했지만 세상에는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의 제목으로 세상에 나왔다. 이 글들은 카프카가 죽기 오 년 전에 쓴 글들이다. 30대 중반의 카프카는 여전히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카프카는 책의 앞부분에 편지를 쓰게 된 이유를 스스로 밝혔다. 카프카의 아버지는 아들이 왜 자신을 두려워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알리고 싶었다. 최대한 감정을 빼고 설명과 관찰만을 표현했지만, 그 문장 속에 그의 깊은 설움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 편지들은 분명 전달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는 화해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현실의 아버지가 아닌, 자신이 생각한 아버지,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는 허상의 실체와 화해를 하며 삶의 다음 단계로 나가고 싶어 했다.
"저의 모든 글은 아버지를 상대로 해서 써졌습니다."
“가족들에게 음식을 흘리지 않도록 주의를 주셨지만 결국 가장 지저분한 곳은 아버지의 의자 밑이었지요. 아버지가 내리신 계율을 스스로 지키시지 않을 때 그것은 저를 짓누르는 힘으로 작용했어요.
“아버지가 바로 아버지일 때에만 아버지는 저한테 너무 강한 분이셨습니다.”
“아무튼 아버지와 저는 그렇게 달랐고, 다르다는 점에서 서로에게 위험했습니다.”
그는 장남으로서 유일한 아들 자녀로 커다란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동시에 여동생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그가 마치 커다란 장막이 되어 여동생을 지킬 거라 생각했지만. 그의 여동생이 오히려 끝까지 그 옆을 지켜주었다. 그는 엘리에게도 수많은 편지를 남겼다. 그리고 아버지에게도 엘리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엘리는 아버지의 울타리를 뚫고서 벗어나는 데 거의 완벽한 성공을 거둔 유일한 경우입니다. 어렸을 때라면 그 아이가 그럴 수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 앤 둔하고, 졸리고, 겁 많고, 시큰둥하고, 꽁하고, 비굴하고, 심통스럽고, 게으르고, 군것질 밣히고, 인색하기 짝이 없는 아이였으니까요. 저는 그 애를 거의 쳐다볼 수가 없었고, 그 애한테 말을 거는 일은 더욱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애는 너무도 제 자신을 떠올리게 했거든요. 또한 너무도 비슷하게 아버지의 같은 영향권 안에 사로잡혀 전혀 기를 펴지 못했지요. 특히 그 애의 인색한 면이 저는 혐오스러웠습니다. 어쩌면 저는 더욱더 인색한 편이었으니까요. 인색하다는 건 깊은 불행 속에 처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불행의 징표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모든 사물에 대해 자신이 없었고 그래서 제가 실제로 소유하고 있는 것은 내 손에 쥐고 있거나 입에 물고 있는 것, 아니면 적어도 손에 쥐려고 하거나 입 속에 집어넣고 있는 것뿐이었지요. 그런데 저한테서 그것을 가장 잘 빼앗아가곤 했던 아이가 바로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던 그 애였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 애가 자라서 집을 떠나-그것이 가장 중요한 점이지요-결혼하고 애를 낳고 하면서 변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이제 엘리는 쾌활하고, 시원시원하고, 통이 크고, 남에게 잘 베풀고, 사심 없고, 낙천적인 사람이 되었지요.
헤르만 카프카의 모습은 카프카의 여러 소설 속에서 이름과 모습을 바꾸어 가며 등장한다. 주로 주인공의 갈길을 막고, 그 길에 바위를 밀어 넣고, 발을 걸고, 뒤에서 잡아당기며 영원히 앞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드는 그런 존재로!
'어느 날 밤 거인의 모습을 한 아버지가 느닷없이 최후의 심판관이 되어 나타나서는 나를 침대에서 들어내 파블라취로 끌고 나갈 수도 있다, 그만큼 나란 존재는 아버지한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이다'
카프카가 아버지에게서 받은 마음의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이 문장 하나만으로도 알 수 있다.
세상 맘먹기가 가장 어렵다는 말이 있지만 동시에 내 맘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는 말도 있다. 이 말은 결국 정신일도하불성으로 주먹 불끈 쥐고 일체유심조로 마음을 먹으라는 의미도 있지만, 유일하게 자신이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오직 마음뿐이라는 뜻도 있다. 내 마음 말고는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은 단연코 없다. 지구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 중력으로 쪼그라드는 내 몸조차도 내 뜻대로 안 된다. 내 마음 말고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 나의 생김새, 국적, 부모, 형제, 자매 이 중에 내가 의지로 선택한 것은 하나도 없다. 하늘이 또는 신이 또는 우주가 마치 장난으로 편 가르기를 한 듯 이리저리 휘젓다가 한패로 만들어 준 게 가족이다. 어렸을 때는 가족이 전부인 것처럼 보였지만 크고 나서 다시 바라보면 부모님의 인간적인 모습도 보이고 나의 착각과 색안경으로 또는 나의 결핍으로 바라본 부모님의 실체가 드러나기도 하고, 형제자매 중에 죽고 못살게 친하게 지내는 존재도 있지만, 가족이 아니라면 알고 지내지도 않을 만큼 거리가 먼 존재도 있다. 왜 한 묶음이 되었는지 전혀 모르는 이 존재들에게 양육과 사랑과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만 동시에 상처를 받으며 결핍이 드러나기도 한다.
자녀들의 상처는 대부분 부모들이 잘 기억하지 못한다. 이렇게 기억해 주지 못한 상처들은 자녀에게 커다란 멍울로 남기도 한다. 이를 극복하려면 어른이 되어서도 기회가 되면 담담하게 대화를 하는 것이 좋다. 만약에 부모가 대화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이런 주제로 대화하기를 거부한다 해도 본인 스스로 그 마음을 풀고 해결해야 한다. 의무는 아니지만, 그렇게 해야 다음 단계, 새로운 파트너를 만나고 결혼과 동거를 하면서 새로운 자녀의 영혼을 품을 수 있다. 부모와의 애착관계에 대한 적절한 해소가 일어나지 않으면 그 상처가 대물림되기 일쑤다. 표면적으로는 회사 상사와의 문제난 친구들 간의 갈등이지만 그 속을 파고 들어가 보면 가장 최초의 애착관계에서 문제가 곪고 곪은 경우가 매우 많다. 마음속의 응어리는 성장과 발전을 방해하고 세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고 마주하기 힘든 일들이라 해도, 하나씩 풀어내는 것이 좋다. 타인이 던진 돌멩이를 우리의 인생길에 계속해서 간직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하나둘씩 걷어내면서 자신의 본모습을 찾는 것이 삶이 우리에게 준 기회이자 선물이자 숙제이다.
거꾸로 생각해 보면 부모는 나를 선택했을까? 나의 성격, 성별, 외모, 건강 상태, 기질, 성적 이 모든 것을 선택했을까? 생긴 대로 있는 그대로 태어났으니까 키운 거지. 생명의 탄생은 지극히 동물적이면서 동시에 몹시도 오묘하고 신비하다. 무엇이라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각자의 의미만 있을 뿐이다. 여러 개인들이 비슷하게 생각하는 의미가 모이고 거기에 사회가 동의를 하면서 '전생의 인연' '천륜'과 같은 신화적인 이야기도 나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전부 다 파악하기 어렵기에 운명과 인연이라 불리며 가족 간의 연결고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이러한 운명, 완벽하게 내 통제 밖의 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색은 완전히 달라진다.
카프카는 그러면 자신의 운명을 극복했을까?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쓰면서 아버지의 그림자에서 벗어났을까? 헤르만 카프카는 아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을까? 안타깝게도 그러지 못했다. 카프카가 폐렴으로 영양실조에 걸렸을 때도 프라하로 돌아가기를 오랫동안 거부했고, 헤르만 카프카도 돈을 송금해 주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우리 문화로 봤을 때, 이 둘은 그럼 전생의 악연이었을까? 선연이었을까? 어떤 인연이길래 이토록 모질었을까?
카프카와 비교하여 프랑스 시인 보들레르가 자주 언급된다. 『파리의 우울』과 『악의 꽃』으로 잘 알려진 보들레르와 카프카는 타고난 환경에 아주 많은 영향을 받은 작가다. 평생 자신의 출신에 대해 비관하여 온갖 중독에 시달리다 젊은 나이에 세상과 이별했다. 카프카는 자신의 운명적인 환경과 화해하지 못한 채 모든 고민과 삶의 의문을 작품에 토해놓았다. 그들의 비참한 삶을 대가로 우리는 그들의 문학에 감동받고 삶을 배운다. 이 둘은 위대한 예술가이며 작가지만, 마음속에는 인간적인 물음표가 떠오른다. 끊임없는 중독으로 방탕하게 삶을 낭비한 보들레르나 자신의 정체성과 문학에 대한 탐구가 지나쳐 강박으로 기울어진 삶을 살았던 카프카, 많이 웃었을까? 행복만 있는 것도 아니고 불행만 있는 것도 아닌 이 삶에서 많이 웃는 게 삶의 운명을 극복하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