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글쓰기
카프카의 작품은 그의 말대로 우리의 얼어붙은 내면을 내려 찍는 도끼처럼 충격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안갯속에 묻힌 회색빛 도시 같다. 작품을 읽어 갈수록 점점 짙어지는 안개에 파묻혀 길을 잃고 헤매거나 안개가 서서히 걷어지면서 마침내 드러나는 차가운 도시의 모습을 보고 온몸의 감각이 일시적으로 마비되어 버릴 정도다.
카프카는 자신이 곧 문학이라고 선언하면서 일상의 삶과 문학을 철저하게 구별했다. 일상은 자신의 문학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다고 선을 그으면서 행여나 일상의 삶이 문학의 발목을 잡아 구속될 것을 두려워했다. 문학이 삶에 기반을 두고 작가적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인데 카프카는 이 이론을 반박이라도 하듯 문학 아니면 일상의 삶이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고수했다.
카프카는 멋지고 유명한 작가가 되고 싶어 했다. 사회적인 인정으로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유명해지면 아버지에게도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거라 기대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다 걸고 작품에 몰입했지만, 그의 작품은 생전에 혹평을 받았다. 출판관계자와 서평가 들은 카프카의 작품은 타인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고, 편집증적인 감정에 빠져 지나치게 비극적으로 표현했다고 비난하거나, 하찮은 감정을 부풀려 묘사했다는 비난도 받았다. 이 세상은 그럼에도 극단적으로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는다. 그중에 카프카의 작품이 간결하고 담백하다는 평도 있었다. 카프카의 작품을 읽어 본 독자는 눈치챘겠지만, 그의 문장은 매우 간결하다. 여러 상징과 함축적인 표현과 비유를 사용하면서도 간결하게 쓰기란 쉽지 않다. 독일어로 쓰였지만, 제3의 독일어처럼 지금까지 독일어 문학에서 찾아볼 수 ㅇ벗었던 색다른 작품으로 그 안에 감정의 강약이 동시에 담겨 있다는 평도 있다. 매우 사실적이고 간결한 묘사로 미사여구도 거의 없다. 아이러니하게 그의 작품 속에 일어나는 사건은 일상을 뒤집는 충격적인 사건이다. 그런 사건을 감정 없이 담담하게 서술한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 펑펑 울고 큰소리를 내며 온 동네방네 자신의 슬픔을 알리는 게 아니라, 짧고 굵게 혼자서 가슴 미여지게 소리 없이 우는 상황으로 묘사한다. 감정의 과장됨도, 감정의 강요도 없다.
카프카는 작품을 쓰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작품을 구상하고 스토리를 엮어가고 문장을 써나가며 짧게는 이틀 만에 완성하기도 했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몰입하도록 했을까? 카프카는 문학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했다. 카프카가 바라보는 자신의 정체성과 세상을 자신을 바라보는 정체성과의 접점을 문학을 통해 찾고자 했다.
정체성이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 중의 하나다. 학기 초나 새로운 모임의 첫자리에서 자주 하는 자기소개 시간을 생각해 본다. 무엇부터 소개할까? 이름, 나이, 사는 곳, 직업 등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사회적으로 나를 가늠하는 지표이기는 하지만 이것이 진정 ‘나’ 일까? 이렇게 나를 구성하고 있는 온갖 요소들을 쪼개고 쪼개면 나라는 사람이 파악될까? 그렇다면 이러한 구성요소들은 내가 만든 것일까? 아니면 가정과 학교와 사회생활을 통해 사회화로 다듬어진 내가 나일까?
나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바라보는 시선과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 모두 필요하다. 내가 바라보는 ‘나’만이 나의 정체성을 이룬다면 그건 망상이다. 누구나 자기 보존 본능과 더불어 자신을 좋게 보는 마음의 눈이 있기에 자신을 '어떤 일이 있어도', '그래도'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다 합쳐서 나온 결과물이다. 과거가 비록 마이너스의 엉망이라도 미래는 좋을 거라는 플러스의 희망으로 현재를 제로로 다시 시작하기 마련이다. 과거의 못나고 힘들고 어려운 일에만 집착하면 미래 역시 마이너스로 보면서 우울감에 시달리고, 반대로 과거의 못남은 자기 합리화와 타인 탓으로 돌리고 지나친 플러스의 미래만을 기대하면 나르시시즘의 끝판왕인 '우주가 나를 돕는' 망상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자기 객관화는 매우 조심스럽고 어려운 작업이며 또한 성숙의 증거이기도 하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과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이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오고 가며 나의 정체성이 중립에 있을 때 마음과 영혼이 건강해진다. 지나치게 타인의 시선과 인정 욕구에 시달리면 결과만을 추구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괴물이 될 수도 있고, 지나치게 자신의 시선과 자기 신념만을 고집하면 '자연인'의 삶을 추천받을 수도 있다. 이러한 시선과 시간의 균형추는 자기 객관화에 매우 중요하며 그렇게 자신을 알아갈 때 정체성이 요동치지 않는 안정을 찾게 된다.
카프카는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장인에서 임원까지 승진한 인물이다. 하지만 내면의 결핍, 남이 보기에는 멀쩡하고 성공한 사회인이었지만, 자기 자신이 바라보는 내면의 결핍으로 그의 정체성은 끊임없이 요동쳤다. 그리고 그 요동치는 마음을 가라앉게 하기 위해 그는 글쓰기만이 구원이라고 선언하고 스스로 타인과 세상에 고립시키며 '밀실'에서 책과 펜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려 노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