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와 글쓰기
카프카의 글에는 유독 급작스런 변화가 많다. 매우 평범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체포되거나 심지어 벌레로 변하기도 한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대한 설명도 이유도 없다. 급작스레 변화된 결과만을 보여준다. 빌드업이나 전사나 배경설명이 없이 주인공을 갑작스러운 상황에 밀어 넣는다. 이러한 설정 속에서 인물이 어떤 모습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하며 그 선택의 결과가 어떠하다고 말할 뿐이다. 인간은 궁지에 몰렸을 때, 그 인간이 가진 본연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좋을 때는 다 좋다. 하지만 인간이 갈등하고 경쟁하고 몰리고 싸워나갈 때, 비로소 성격이 드러난다. 특히나 문제 해결 방식은 그 사람의 인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리고 극강의 상황에 내몰리면, 인간은 존재에 대해, 실존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한다.
많은 학자들이 카프카를 실존주의 문학의 시초라고 바라본다. 그 뒤를 이어 프랑스의 알베르트 까뮈와 장 폴 사르트르 등이 본격적으로 실존주의 문학을 알리고 대표하기 시작했다. 실존주의가 나오게 된 배경 중 하나는 유럽 사회의 급작스런 변화 때문이다. 역사를 굵직하게 볼 때, 유럽은 신 중심의 중세를 넘어 인간 중심의 르네상스 사회로 전환한다. 이후 산업 혁명과 과학의 발달 그리고 자본주의와 식민제국주의 그 결과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까지 격동의 변화를 겪는다. 유럽을 붙도록 있던 기독교라는 절대적인 가치는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그들이 믿고 지켜 왔던 절대 윤리와 도덕체계가 사라지자 수많은 존재론적인 문제가 제기된다. 지금까지 믿어 자신들의 존재의 불안을 달래주었던 가치에 대한 의심은 물론 인간 존재를 신과 연결 짖지 않고 오직 인간의 관점으로만 철저하게 분석하려는 성향이 짙어진다. 신이라는 절대적인 가치로부터 인간의 삶을 해명하려던 시도는 무의미해졌고 신은 인간이 불안을 견디기 위해 만들어 놓은 허상이라는 허무주의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은 죽었다'라고 까지 선언한 철학자 니체의 등장은 유럽세계정신문화에 한 획을 그었다. 신은 애초부터 없었다가 아니라 있다가 죽었버렸으니, 인간은 세상에 고아처럼 내버려진 것이다. 이렇게 인간은 세상에 내 던져진 존재라는 사조가 실존주의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을 사로잡은 실존주의는 어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생과 사를 뚜렷하게 인정하고 바라보면서, 이러한 생사는 신과 종교와 무관하며 인간이 절대 피할 수 없는 한계적 상황이기에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현존에 만족하라고 설명했다. 이전까지는 인간이 태어나서 신이 주신 소명을 찾아 그것을 해내는 것이 삶의 목적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이제 삶의 판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어떤 것도 정해진 것도 없고 삶의 목적도 없으며 인간은 세상에 던져져서 언젠가는 죽기에 그 생과 사의 시간은 오직 자신의 자유 의지와 주체적인 선택으로 메꾸어 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카프카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왕좌왕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며, 주변 상황에 이끌려 가기도 하고 낙심하고 절망하면서 수많은 심리 고백을 늘어놓는다.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목표, 욕망이 있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해야 하지 모르는 주인공들의 우울하고 애매모호한 상황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를 이러한 시대적 배경으로 봤다. 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카프카의 등장인물들이 비현실적인 반전 드라마와 같은 상황에 빠지게 만들었던 또 다른 이유는 카프카가 자신의 꿈을 소설의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일상을 보면 특이점이 하나 있다. 그의 수면 시간이다. 밤잠은 길어 봤자 4-5시간이다. 낮잠을 잔다 해도 숙면을 취한 것 같지는 않다. 카프카의 섬세하고 예민함은 밤에 더욱 도드라져 평생 편히 깊게 잠들지 못했다고 한다. 내가 수면전문 의사도 아니고 뇌과학자도 아니지만, 개인적인 경험으로 스트레스가 많을 때 악몽에 자주 시달린다. 카프카도 그런 황당 무계한 꿈의 세계에 자주 빠지고 꿈을 소설의 모티브로 가져왔다고 한다.
당시에 꿈이라는 해석되지 못할 것 같았던 무의식의 세계를 의식의 세계로 끌어올린 사람이 있다. 바로 카프카와 동시대에 같은 나라에 살았던 프로이트다. 그는 오스트리아 지역에 카프카는 헝가리지역에 살았다. 서로 알고 지내지는 않았지만, 서로가 알고 있지는 않았을까? 왜냐하면 당시는 인간의 이성으로 모든 것이 해석 가능하다고 믿는 시대로 많은 학문이 서로 연계하여 해석하고 분석하는 학술적 시도가 활발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히스테리 환자들을 돌보며 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들을 최면요법을 통해 환자들의 무의식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유 연상법이라 불린 이 치료법이 학술적으로 정신분석이라는 명칭을 얻으며 프로이트는 현대 정신 분석의 아버지가 된다. 그의 정신 분석은 정신 분석은 문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교육학, 신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에서 새로운 해법과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오늘날 그의 치료법에 대해 여러 지적과 모순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그 영향력은 대단했다. 잠재된 인간의 여러 욕망이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인간을 바라보는 새로운 인식의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나라에도 전통적으로 꿈을 해몽한다. 복권 당첨이나 큰 시험을 앞두고 좋은 꿈을 꾸라고 인사를 나누듯 일종의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프로이트의 『꿈의 분석』은 이와는 조금 다르게 꿈을 통해 평소에 마음속에 무엇이 억압되어 있는지를 찾아낸다. 평소에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들 , 사회적 금기, 심리적 압박 등이 꿈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나타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꿈에 등장하는 인물, 사건과 사물이 무엇을 상징하며 현실에서 어떤 의미로 해석되는지를 찾아내면, 다시 말해 꿈속의 사건과 현실의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것이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출발점이라 여겼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의식으로 끌어올리며 현대 정신 철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문학이 현실을 바탕으로 한 거짓과 허구라면 꿈도 마차가지입니다. 꿈속에서는 못할 것이 하나 없고 소설 속에서도 못할 거 하나 없다. 단지 읽는 사람의 공감을 불러내기 위해 지나치게 현실성 없는 상상을 묘사하거나 꿈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지는 않는다. 자기 경험과 인간에 대한 성찰을 꿈과 재배합 하여 소설이라는 틀에 풀어놔야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간밤의 꿈을 되새기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카프카는 잠 못 이루는 수많은 밤들 꿈속에서 자신의 아버지에게서 해방되는 순간을 즐겼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