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앱은 왜 안 지우게 되는 걸까?’
늘 의문이었다. 용량 부족 문제로 지웠다가도 세네 번을 다시 깔았던 화장품 리뷰 앱, ‘화해’의 인터뷰는 이 물음으로부터 시작했다.
스타트업을 넘어 모든 사업에 있어 리텐션율(retention rate, 사용자 잔존율)은 중요한 사안이다. 떡볶이집 하나를 차려도, ‘첫 방문 이후 계속해서 찾아오는 손님이 몇이나 되는가?’ 하는 문제는 수지타산을 넘어 생존과 직결된다.
미국의 시장조사업체 이마케터의 작년 10월 조사에 따르면 다운로드 후 일주일이 지난 시점에 약 70%의 앱이 삭제된다. 10개 중 3개만 살아남는다는 의미다. 한 달이 지나면, 모바일 앱의 평균 리텐션 율은 3%대로 떨어진다. 즉 100명 중 3명의 사용자만 앱을 지속해서 사용한다.
일반적인 뷰티앱과 별다를 바 없는 것처럼 보이는 ‘화해’의 한 달 기준 리텐션 율은 무려 60%다. 무엇이 다를까. 버드뷰를 창업한 88년생 이웅 대표를 만나봤다.
지원금 좀비 3인방, 노트북 스펙에서 아이디어를 얻다
2012년 초 휴학을 하고 2명의 대학 친구와 시작한 창업은 이웅 대표의 표현을 빌리자면 ‘삽질의 연속’이었다. 1년 반 동안을 창업경진대회 헌터로 살았다. 여러 번의 실패 끝에 절치부심의 자세로 2달간 합숙해 찾아낸 아이템이 바로 화장품 리뷰 서비스다.
과외로 돈을 벌어 매달 30만 원 어치의 화장품을 사는 ‘아는 형’의 권유로 들여다 본 남성 화장품 시장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지금 이 아는 형은 사업 개발 팀장으로 버드뷰에서 함께 일하고 있다.
이웅 대표에 따르면 한국 남성 화장품 시장은 세계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해외 유명 화장품 브랜드도 한국 시장을 시험대 삼고 있다. 네이버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화장품 리뷰는 하나의 문화를 이루고 있었다. 플랫폼화 해보면 의미가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시장은 확인했고 ‘어떻게?’가 고민되었던 시점, 로션도 바르지 않았던 버드뷰 3인방은 화장품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다. 오히려 그랬기에 다음과 같은 엉뚱한 접근이 가능했을 것이다.
“남자들은 뭘 살 때 분석적으로 따져보는 경향이 있다. 노트북 살 때 스펙을 일일이 따져보지 않나. 노트북 사양을 잘라서 보듯, 화장품을 따져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화장품에서 가장 분명하게 스펙을 쪼개볼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성분이다.”
현재 ‘화장품 성분 스펙 앱’ 화해는 96%의 사용자가 여성이다. 문과를 졸업한 세 남자가, 화장품 사는 남자를 타깃으로 고안해 낸 앱이 결과적으로 여성의 취향을 저격했다는 점이 재밌다.
“1년 반 동안 실패하며 제대로 된 창업을 위해서는 3가지 요소를 만족시키는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는 걸 배웠다. 첫째, 시장이 있는가. 둘째, 우리가 풀고 싶은 문제인가. 셋째, 우리가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시장인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2013년 7월 화해를 출시했다.”
‘우리의 가정은 모두 틀렸다’는 가정, 리텐션율 60%의 비결
여담을 덧붙이자면, 화해 앱을 가장 자주 키는 장소는 드럭스토어의 입구다. 미국의 한 화장품 전문가는 <나 없이 화장품 사러 가지 마라>는 제목의 책까지 냈는데, 사용자로서 이 문구가 화해의 마케팅 슬로건으로 적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앞서 말했듯 화해 앱의 한 달 후 리텐션율은 60%다. 무려 평균치의 20배 수준. 이웅 대표는 ‘모든 서비스에 대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조심스러워 하면서도, 2년 간 체득한 리텐션 전략을 세가지로 나누어 설명했다.
우리의 가정은 모두 틀렸다, 기획 없는 기획
“우리는 화장품을 잘 모르는 남자 셋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무조건 ‘우리의 의견은 틀렸다’고 가정하고 사용자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했다. 기획하지 말자, 무조건 6개월 동안은 다른 짓 하지 말고 사용자 피드백만 계속 반영하자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었다.”
“애초에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다운로드 수가 아닌 재사용률이었기 때문에 KPI도 재사용률을 기준으로 정했다. 앱 전면에 가장 크게 ‘문의하기’ 버튼을 넣었는데, 놀랍게도 다운로드 받은 사람의 20%가 의견을 남겨주더라. 그렇게 6개월 동안 총 27번의 업데이트를 했다.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카테고리를 뛰어넘은 다양한 리뷰 서비스의 장점 도입
“경쟁사와 별 차이 안 나는 시점에 앱을 출시했다. 네이버의 화장품 블로그들도 우리의 경쟁 상대였다. ‘화해’ 리뷰를 꼭 써야하는 이유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 해외의 여행리뷰앱인 ‘트립어드바이저’와 직장리뷰앱 ‘글래스도어’다. 뷰티앱을 넘어서 유명 리뷰앱이라면 모두 다 분석해봤다.”
“현재 화해의 리뷰어는 화장품의 ‘장점’과 ‘단점’을 동시에 기재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글래스도어에서 따온 것이다. 균형있는 리뷰가 많아야, 신뢰도도 높아지고 기업이 광고성 글을 올리는 것도 줄일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리뷰를 작성해야만 타 사용자의 리뷰를 볼 수 있는 기브앤겟(give and get) 제도도 참고했다. 도입 3개월 이후 리테션율이 두 배 넘게 뛰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핵심 이사진 4명이 모두 참여하는 피드백 반영 회의
“피드백 반영 회의는 버드뷰 내에서 아주 중요하다. 별도의 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이사진 4명이 직접 참여하고, 프로젝트 매니저를 대표인 내가 직접 맡는다. 다양한 리뷰와 CS 사안들을 쭉 늘어놓고, 데이터·개발·디자인 팀장이 각자의 관점에서 서로를 설득해 나간다. 그럼 크게 논의의 덩어리가 만들어지고 방향성이 잡힌다. 그렇게 주요 개선 내용들을 구체화하고 있다.”
“광고성 리뷰를 걸러내는 일도 굉장히 번거로운 과정을 거친다. 사전·사후 작업이 있는데, 일단 기기 하나당, 한 제품에 대한 리뷰를 한 번만 작성할 수 있게 설계했다. 사후 작업으로는 CS팀과 컨텐츠 팀이 인위적인 게시물들을 걸러낸다. 이 검수 작업도 1,2차에 거쳐서 꼼꼼히 하고 있다.”
하기 싫은 일 하는 직원이 단 한 명도 없는 회사
작년 11월 말 버드뷰는 NICE그룹에 인수되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기쁜 일이긴 하지만, 인수합병이라는 큰 변화 이후 버드뷰가 짊어져야 할 조직적, 사업적 부담은 훨씬 더 늘어나게 될 것이다.
가장 큰 취약점은 ‘화해’의 뚜렷한 수익모델을 찾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웅 대표에 따르면 지난 해 화해의 순수익은 600만 원이다. 사용자 수는 많지만, 수익화에 실패해 몇 년이 지나도 슈퍼 루키 수준에 머무는 스타트업이 적지 않다.
이웅 대표는 올해를 ‘수익화’, ‘조직 강화’의 원년으로 삼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까지는 일절 자제했던 광고 모델도 네이티브 방식으로 올해부터 시작한다. 사용자가 찾은 모델과 유사한 성분의 화장품을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본격적인 상거래 모델도 도입할 예정이다. ‘바로 구매 기능’이 상반기에 추가된다. 광고와 상거래를 현재의 화해 플랫폼에 얼마나 자연스럽게 접합하는가가 관건이다.
내년에는 일본의 ‘엣코스메’를 롤모델로 삼은 오프라인 매장 개점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존 드럭스토어와 같은 ‘화해 스토어’를 만들어 온·오프라인이 연결되는 상거래 모델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뷰티 분야와 큰 연관이 없는 것 같은 NICE그룹과 인수합병을 한 것도 바로 이 오프라인 사업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NICE그룹은 현재 오프라인 밴사의 70~80%를 점유하고 있는 기업으로, 매장에 들어선 고객의 구매율을 측정할 수 있는 수준의 상권 분석 데이터와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서 조직에 대한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버드뷰 사무실 전면에는 “우리는 여기서 스스로 성장한다”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누군가가 정교하게 짜놓은 틀 안에서가 아니라 내가 시도해 볼 여지가 많은 자유로운 환경에서 나는 빠르게 성장해왔다. 버드뷰는 ‘조직과 공유’가 중요한 집단이다. 각 팀에 회사 차원의 큰 아젠다를 알려주면, 주간 회의 때 스스로 목표를 설정해 온다. ‘마음대로 하세요, 대신 공유합시다’가 핵심 기조다. 지금 버드뷰에는 원하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처음부터 그런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화해는 올해 400만 다운로드와 월간 실사용자수 100만 명, 그리고 가장 중요한 수익화를 목표로 나아간다. 아직 버드뷰를 대단한 성공을 이뤄낸 회사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화해가 국내 화장품 소비 문화의 일부분을 바꿔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솔’, ‘시드물’, ‘마녀공장’과 같은 국산 화장품 브랜드는 화해 리뷰어들을 통해 성분 좋은 제품이라는 소문이 나면서 유명해졌다. 반대로 해외 유명 브랜드의 화장품의 전성분을 살펴보니, 유해 성분이 너무 많아 구매를 중단했다는 소비자들도 늘고 있다.
“‘실제 화장품 구매 패턴이 바뀌었다’, ‘자신에게 맞는 화장품을 찾았다’는 사용자 피드백을 받았을 때 가장 뿌듯하다. 이게 우리 서비스의 존재 이유다. 사용자분들의 솔직하고 직설적인 피드백들이 많은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 앞으로도 가감 없는 잔소리와 관심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