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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듯한 제이 May 16. 2019

나도 나를 잘 모르겠어서

검사지 작성과 그 결과 02

성향 검사를 할 때 나에게 가장 가까운 항목을 체크하는 것이 생각 외로 너무 어려웠었고,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도 상당히 시간이 지체됐던 터라 그 이유가 궁금해 선생님께 질문을 했다.


저는 항목을 고르는데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던데 혹시 그것도 이유가 있나요?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보통은 스스로 하고 싶은 데로 마음껏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표현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이에요.


아...


그리고 그때의 기분이나 상황에 따라 변동이 많은 검사이기도 하지만 너무 모든 성향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점수가 없는 게 마음에 걸리네요. 너무 약해요. 모든 점수가 적다는 건 그만큼 검사의 신뢰도도 떨어진다는 의미라서..


다행히 몇 주 전 복지기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가져와서 검사해준 설문지여서 그때와 비교를 할 수 있게 되었는데 참 신기하게도 친구들과 검사를 할 때 나의 상태가 호전되어있을 때라 그런지 성향 점수가 보다 명확하게 나왔던 기억이 떠올랐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으로 불완전하고 예민한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생각했다.

그리고 이 곳을 찾아왔을 때의 나는 많이 혼란스러웠구나라는 생각도.


그리고 문장 완성 설문지에 내가 뭐라 적어놓았는지는 자세히 기억이 안 나지만 스스로를 부정하지 않는 연습을 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보통 가정환경이 불안한 아이들은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씀해주셨다.


어떤 문항 때문인지 혹시 봐도 되냐고 여쭤보니 흔쾌히 보라고 허락해주셔서 들여다봤더니, 여태 지은 행동 중에 가장 후회되는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불과 몇 주 전의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라 적어놓았었다.


하긴 나도 부모님을 위해 살았던 때가 있었다. 부모의 이혼이 마치 나의 탓만 같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엄마의 힘듦을 덜어주고자 꼭 성공하고 싶다고 생각하던 패기 어린 대학시절이 있었고.

버티려 버텨내 보려 혼자서 그 허허벌판 어디 한 곳 기댈 곳 없는 앙상한 마음의 언덕에서 바보처럼 스스로를 내놓은 채 내버려 두던 20대의 어느 언저리가 있었다.


살기 바빠 방치하다 결국 스스로가 너무 힘들어 한참 후에서야 아빠와 나의 삶을 분리하고 엄마와 나의 삶을 분리하는 연습을 끊임없이 하고 또 했다. 여전히 완전히 분리시키는 것은 해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거리감을 두는 일에는 성공했는지 예전보다는 그때의 심리상태를 떠올리게 되는 상황이 만들어져도 불안이 심하게 오지는 않는 듯하다.


아무리 분리를 하고 타인이라고 세뇌를 해도 아직까지 나를 원망하는 것을 보면 난 분명 여태 아빠와 엄마를 원망하고 나와 동일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질문지를 보니 어떤 생각이 나냐고 묻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제가 너무 안쓰럽네요.’


라고 대답했다. 불쌍하고 안쓰러운 나. 스스로에 대한 연민이 좀 더 객관적으로 느껴지는 듯했다. 바보 같기도 하고 미련해 보이기도 하는 그런 제삼자로 느껴졌다. 설문지가 기억이 나지 않아서 그런가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설문지는 성격 검사였는데 기가 막히게 나와 비슷하게 나와서 흥미로웠다.

스스로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 때 행동을 알고 이럴 때 내가 스트레스 지수가 높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격에 따른 행동이나 심리를 풀어주는 검사였다.


한 시간 동안 검사 결과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가기 전 선생님께서 물어보셨다.

요즘은 다른 특이사항이 없으신가요?


그러고 보니 선생님, 상담을 한 당일부터 며칠간 견디기 힘들 정도로 이유모를 헛헛함이나 허전함 때문에 조금 감당하기가 벅차요. 처음에는 검사 후에 오는 후폭풍이라고 생각을 못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아주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우울함이라는 감정이 잠시 없어진 자리에 원래 있던 외로움들이 차고 올라와서 자꾸만 저를 건드는데 계속 집에 안 들어가고 싶고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만나서 이야기하고 떠들고 싶은 에너지나 공허함이 너무 커요.


맞아요. 우울함이 걷히고 나면 그 안에 묵혀둔 감정들이 올라와서 힘든 겁니다. 그 시기를 못 견뎌내는 분들도 더러 계시지만 이겨내야 비로소 치료가 되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어요.


솔직히 지금은 견디기 힘들지만... 지금 제가 느끼는 이 감정들은 어떻게 보면 제가 10년 전쯤 고등학생-대학생 시절에 겪었던 감정들이거든요.. 어찌 됐건 저는 이게 긍정적인 반응 일거라고 생각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여기 오기 한 달 전 까지만 해도 누구를 만나기는커녕 연락하는 것도 힘들어했었으니까요.


내 말을 들은 상담사 선생님의 얼굴이 한층 밝아지셨다.


그것 참 좋은 소식이네요. 아마 조금씩 더 괜찮아질 거예요. 너무 조바심 내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우리 끝까지 한 번 노력해봅시다.


훈훈한 마무리의 네 번째 상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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