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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듯한 제이 Apr 19. 2020

어차피 미완성일 거라면 선명해보자

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삶

대게 사람들은 의식하지 않아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자연스레 몰두하고 집중하기 마련이다. 어린 시절의 난 감사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집중할 수 있는 충분한 환경이었고, 부모님도 그 시절 부모님들에 비하면 허용적인 부모님이셨다. 그랬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었고, 자연스레 진학을 그 방향으로 하게 되었겠지.

하지만 예체능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와 부딪히고, 한 번에 허락을 받게 되는 일이 잘 없다.

그도 그러할 것이 예체능을 공부하는데 드는 비용과 이후 진로에 대한 걱정으로-우리 부모님 세대 때는 예술하는 사람들은 다 밥 굶는다고 생각하던 시절이라-밤잠 설치며, 딸내미가 하고 싶다 하니 겨우 시켜주시기는 하지만, 그 후에도 계속적으로 설득을 하고 걱정을 하셔서 진이 빠지게 만드시는 부모이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야 백 번 이해할 수 있지만 그 당시엔 참 성가시고 원망도 많이 했었다.


그 시절에 참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넌 일찍 너의 진로를 찾아서 참 부럽다.라는 하고 싶은 일에 대한 확신이 있고, 진로를 명확히, 일찍 잡은 이들에 대한 부러움이 깔린 말들이었는데 아마 예체능 전공자들은 다들 한 번씩은 들어봄직한 말일 거다. 시작이 언제라는 것은 참 의미 없는 일인데도 당시 어린 맘에 조금 우쭐하기도 했다.

남들과 경쟁하는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임에도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을 보면 마음 한구석으로 뒤쳐지면 안 된다는 무의식적 압박감이 자라 있었나보다.


사실 80년대 후반에 태어났음에도 요즘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플랫폼과 그로 인해 수익까지 발생시킬 수 있는 파이들이 지천에 널려있고, 고퀄리티의 정보들을 어떤 환경에서든 인터넷으로 배울 수 있는 젊은 세대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시작이 언제든 중요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절대 시간의 총량으로 볼 때 더 기회가 많고, 가장 예쁘고 톡톡 튈 때의 나를 남겨놓는 이들이 더 유리할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니까.

심지어 저가항공도 많이 생기고, 나라 간 교류도 예전보다 훨씬 자유로워진 지금의 젊은이들을 보면 많은 문화를 체험할 기회들이 더 많아졌구나 참 좋은 세상이다 하는 생각이 수시로 든다.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나면 언제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로 끝이 나면서,  나의 현재에 더 집중하려고 무던히 노력하는 나를 생각의 끄트머리로 끌고가 귀결시킨다. 지금이나 집중하자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막 30세를 넘긴 나이는 이미 지났고, 곧 30대 중반이 되려는 어찌 보면 아직까지는 기회가 많이 남은 나이이기도 한 지금 시점에서 보니 완벽한 완성과 끝은 없다. 시작과 끝은 동떨어진 객체가 아니라 맞물려있는 퍼즐 같아서 다른 모양이지만 서로 들어맞으며 다시 반복되는 굴레 같은 것이구나 하고 말이다. 그 생각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기필코 완성하리, 반드시 쟁취하리 같은 필승정신으로 스스로를 무장시켜서 괴롭히는 일을 즐겨했다. 그것이 진정한 노력이고 최선이라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그 방법밖에 모르기도 했고 말이다. 누군가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습득되는 일이라 부모님을 보면서, 다른 어른들을 보면서, 그리고 그 어른들에 길러진 동년배들을 보며 당연하게 형성된 가치관이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각들이기도 하고, 그런 어른들로부터 길러진 우리들은 또 그런 어른이 되어 우리 아이들에게 필승정신을 새겨 넣기도 한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물론 개중에서도 훌륭한 인물로 자라나 지구에 길이남을 한 획을 긋는 이들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훌륭한 인물들의 업적조차도 본인에게 집중해서 얻은 결과물이 아닌가.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싶은 취미를, 하고 싶은 행위를 하다 보니 집중하게 되고 쟁취하는 한 과정에서 얻는 것들 중의 하나일 뿐인 것이다. 물론 한 획이란 것을 반드시 그을 필요도 없다. 다만 그 모든 과정들이 스스로에게서 나온 자연스러운 현상에 기반을 두어야 튼튼한 자아의 뿌리에서 건강한 사람으로 자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몇 년 전 스타강사 김미경 님이 7:3법칙을 자신의 강의에서 말한 적이 있다. 난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마다 그 강의가 뇌리에 남아 몇 번이고 되새긴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일은 3, 싫어하는 일은 7의 비율로 해야 한다는 것. 좋아하는 일 3을 위해 나의 7을 희생하고 깎아 내는 일은 당연한 일이라는 말. 난 아직까지 하기 싫은 일 7이 죽도록 싫고 그래서 미루는 사람이라 그 10이라는 결과에 언제 도달할지는 잘 모르겠다. 과연 살아가는 날 끝에는 도달할 수 있을지 확신도 없다.

다만 어차피 어떤 정답도 끝도 없는 삶이라면, 어차피 죽기 직전까지 아쉽고 미완성일 삶이라면 적어도 내가 흐릿한 색인 것보다는 선명한 색인 게 더 낫지 않은가. 결국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니까 말이다.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만끽하고, 본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숨이 멎는 그 날까지 해야 한다면 그리 급할 필요도 없거니와 내가 좋아하는 일 하나 정도는 놓지 않고 쥐고 있는 것을 사치라 생각할 필요도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나가 아니라 그 이상이면 더 풍부한 경험들을 할 수 있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양이 중요한 것은 아니니 본인의 마음 깊이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다면 족하다.


꼭 하나에만 진득할 필요도 없고, 몰두할 필요도 없지만 여러 가지 시도를 하다 보면 분명 내게 꼭 맞는 멋진 신발 하나쯤은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 하나쯤은 가슴에 품고 살았으면 좋겠다.


난 나중에 죽게 되면 내 시신을 화장하고 싶다고 늘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그때 즈음되면 세월이 묻은 신발 한 켤레를 가슴에 폭 껴안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로 이 정도면 멋진 삶이었다 미소 지으며 떠날 수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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