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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듯한 제이 Apr 12. 2019

2019 / 4 / 11

썩지 않고 아주 오래



흘러가는 모든 것들은 나름의 성장을 거친다.

생이란 모름지기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어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유동적인 것 이어서 변하지 않는 생을 기대한다는 것은 오만이며 이루어지지 않는 허상을 바라는 것과 같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기엔 난 너무 어렸고 겁이 많았다.


타고난 성향 자체가 안정지향이었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운 또한 따라주었다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지만, 새로운 것을 도전함에 있어서 스스로의 만족도 또한 그리 높지 않았던 나는 항상 가는 가게, 항상 먹는 메뉴, 항상 해오던 취미, 좁은 독서 스펙트럼으로 점철된 사람으로 성장하였다.


성인이 되고 난 후 가장 좋았던 점은 천편일률적이었던 학생의 삶에서 벗어나 더 이상 나를 컨트롤하는 어떤 체제나 존재에 구속되지 않는다는 것.

어쩌면 한 인간의 진짜 생은 성인이 되는 20세의 나이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느낄 정도로,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시점부터 스스로에게 색을 입히는 과정을 겪어오는 것이었다.

나름 버티려 갖은 애를 썼다. 스스로에게 실망감을 느끼는 건 정말이지 겪고 싶지 않은 감정이어서 더더욱 그랬던 것 같다.

마치 허허벌판에 단신으로 서있는 기분. 갖 성인이 되었을 뿐인 허울만 성인인 풋어른인 그때 엄마의 부재는 고등학교 시절 느꼈던 것보다 엄청난 것이어서 이따금 다른 친구들과 나에게서 왠지 모를 이질감이 느껴질 때면 스스로 떨쳐보려 애썼다. 당시 연인에게도 많이 의지했었고, 친구들에게도 어느 정도 의지했던 것은 사실이었으나 생각하지 않으려 생각하면 할수록 더욱 커지는 그 누구도 채워줄 수 없는 그 자리의 허전함은 나도 모르는 사이 나를 집어삼켰다.


고착되고 싶지 않았다. 그 어떤 감정에서든 자유롭고 싶었다. 스스로 멈춰 썩고 싶지 않았다. 존재의 이유를 찾고 싶어 부단히 애썼다. 평범하고 싶었고, 그저 보통이고 싶었던 삶이었다. 그 어느 곳 하나 모난 곳 없이 구김살 없이. 탄탄대로는 아닐지라도 무난하고 아프지 않은 길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벗어나면 벗어나려 할수록 그 반동은 더 크게 나를 밀어냈고 내동댕이쳤다.

짚고 일어날 벽조차 존재하지 않는 그 느낌은 아마 겪지 않은 이들은 모를 것이라고 감히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자 순차적으로 밀려와 나를 덮치던 건강상의 문제들도.

몸부림칠수록 내가 원하는 것들에서 멀어지는, 마치 인력으로 거스를 수 없는 중력에 밀려 나락 끝까지 떨어져 버리는 그 기분은 더 이상 어떤 희망도 품을 수 없게 만들었다.


이루어내고 싶던 꿈, 해내고 싶던 음악 그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았던 그 시간들. 그 누구의 도움도 소용없던 시기. 나 스스로의 가치를 무가치로 정의 내리고 그 어떤 생산적인 활동도 하지 않았던 어쩌면 인생의 암흑기. 그때의 나는 발효가 아니라 부패하고 있었다. 차라리 그렇게 영영 썩어버려 내가 사라져 버린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때에도 결국 흘러가고자 마음먹었던 것은 스스로였다.


누구나 살아가는 그 삶이라는 것은 왜 나에게만 이렇게 고단하고 인색한지. 남들 다하는 보통의 삶은 왜이다지도 나에게만 단호한지. 원망도 많이 했지만 결국 내가 고여있는 시간만큼, 딱 그만큼을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결국 노력한 만큼만 나아갈 수 있다는, 아픈 이들이 손해일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느끼고 나서는 나를 돌 볼 겨를도 없이 앞으로 살아갈 날을 위해 또다시 뛰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고단하고 치열한 진짜 어른의 삶이었다.


용케도 버텨 야생의 인간사회에서 나름대로의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지금의 입장에서 과거의 나에게 조금의 언질이라도 해줄 수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지금도 그다지 녹록지 않은 프리랜서의 삶이지만 그래도 넌 결국 버텨낼 거라고, 지금은 이렇게 한 사람의 몫을 해내며 너의 삶을 공고히 하여 살아가고 있노라고 조금만 힘을 내라고 토닥거려주고 싶다.


고인 것은 썩는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던,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어 했던 과거의 내가 안쓰럽지만 굳은살 하나 없는 연한 맨손으로 물길을 내어 지금껏 흐를 수 있게 해 준 젊은 날의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고.

결국 우리의 삶은 마감되기 전까지 날 것의 시간을 견디며 어떻게든 흘러가는 삶일 수밖에 없기에, 이제는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인지하고 있기에 너무 애쓰지 않기로 한다. 긴 호흡으로 좀 더 성숙한 아가미로 잠시 고이더라도 당황하지 않기로 한다.

그 어떤 물고를 틔우고 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믿기로 한다. 그리고 이제 조금 덜 아프기를 바란다. 혹여 또 다른 통증이 생기더라도 그 또한 잘 회복할 것이라고 믿어주려 한다.

 썩지 않고 아주 오래 존재하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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