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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듯한 제이 Apr 08. 2019

2019 / 4/ 8

타투를 들켰다 02


통증에 민감한 사람들은 아마 타투의 통증에 대해 말을 하면 굉장히 놀랄지도 모르겠다. 굳이 그런 아픔을 견디면서까지 해야 하냐고, 무서워서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반 이상이었으니까.


내가 피부로 직접 느낀 통증을 굳이 표현하자면 아주 무딘 칼로 피부를 베어내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면 적당할 것 같다. 물론 모든 부위가 동일한 통증이 아니라서, 뼈에 가까운 부위가 아니면 통증이 거의 안 느껴지기도 한다.


치앙마이에서 아주 성공적으로 타투를 마치고 나와 마지막 식사를 한 후, 짐을 맡겨놓았던 언니 집으로 가서 짐을 챙기다가 다행히 언니가 배웅을 해주어 택시를 타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고 자가용으로 터미널까지 갈 수 있었다. 의사소통 문제로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방콕행 버스를 탑승하고 하노이로 경유하여 12시간의 긴 기다림을 거쳐 가까스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타투를 관리하기 가장 좋은 날씨가 한국의 선선한 가을, 겨울 날씨여서 시기도 아주 잘 들어맞은 것 같다.


그렇게 작은 물망초 한 뿌리를 나의 발목에 심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주일 정도는 계속해서 바셀린을 잘 발라주어야 하는데, 관리에 따라 상처가 아물고 난 후 발색이 차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집에서는 당분간 수면양말을 착용하여 열심히 관리해주고 숨겨놓았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났다. 치앙마이 한 달 살기 후 거실의 구조가 바뀌어 있었는데, 가장 큰 것은 소파가 아예 없어졌다는 것, 그리고 바닥에는 큰 전기장판이 깔리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고장 났던 티브이가 새로 바뀌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따끈따끈한 장판에 새로운 티브이라. 게다가 벼르고 벼르던 넷플렉스를 신청하고 나자 평소에 거실에 나와보지도 않던 내가 수시로 거실에 있게 되었고, 결국 타투를 했다는 사실을 잊고 발목을 드러낸 채 티브이 앞에 나와 버리는 일이 생기게 된 것이다. 그것도 아주 타투가 잘 보이는 엎드려 두 다리를 들고 있는 자세로. 그 절묘한 타이밍에 옆에 아빠가 계셨다.


“니 다리에 그게 뭐꼬?’


와..... 얼마나 간담이 서늘하던지. 솔직히 난 아직도 아버지를 잘 모르겠다. 아주 보수적인 것처럼 굴다가도 어쩔 땐 젊은이들처럼 그 나이 때 사람들이 수용하지 못하는 것들을 수용하기도 하셨던 분이라 솔직히 그래서 더 숨겼던 것 같기도 하다. 왠지 다른 건 몰라도 문신은 아무래도 어른들에게 인식이 좋지 않으니까.


포커페이스를 유지했다. 정말 심장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요동치고 약간의 동요로 눈동자가 흔들렸지만 꿋꿋하게,

“보면 몰라? 문신이잖아~”


“문신??????!”

나의 흔들림 없는 말투에도 불구하고 순간 아빠의 눈빛이 사나워짐을 느꼈다.

하지만 난 꿋꿋하게 대답했다.


“웅. 예쁘지?”

하필 왜 저런 말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뭐 어쩔 수 없다. 예쁜 건 사실이니까.


“그런 건 뭐하러 하노. 참나.”

“치앙마이에서 했다. 여행기념이야.”


다행이었다. 분명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이시긴 하지만 말투가 누그러지더니 별 잔소리조차 하지 않으셨으니까. 이 정도면 무난한 통과의례라는 생각으로 마음으로 만세를 외쳤다. 솔직히 나조차 믿기 힘든 반응이었지만, 집에서 숨기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니 나에겐 너무 좋은 일이었다.

그리고 다음 아빠의 반응은 더 놀라웠다.


“아.. 그래?”


여행기념이라는 구차한 이유에 수긍을 하다니...

내가 생각해도 웃겨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푸하하. 아, 그래라니.. 아빠, 왜 뭐라고 안 해?”

“뭐라 할게 뭐 있노.”

“이거 진짜 문신인데? 이제 안 지워지는데?”

“그런 건 말라하노.”

“치앙마이에 잘하는 타투이스트가 있어서 간 김에 했지 뭐.”

“그래, 그런 걸 말라하는지 모르겠다.”


하고 일어나던 아빠.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딸내미가 자기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에 대해 그렇게 터치하지 않나 보다 했다. 그 이유 말고는 아빠의 반응이 내가 납득할만한 이유가 없으니까.

정말 보수적이면서, 여성들의 흡연이나 몇 박씩 되는 여행에는 별말 안 하시고. 나도 아빠를 알다가도 모르겠다. 원래 어린 시절부터 권위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그 점이 가장 좋았지만, 어느 정도 자라고 나서 나에게 유독 무뚝뚝한 아빠가 미운 적도 있었는데. 새로운 아빠의 면모를 보았다.


그리고 또 스멀스멀 올라오는 생각은, 좀 더 큰 문신을 해도 될 것 같은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것.

또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몸의 작은 두 가지 타투가 그랬던 것처럼 즐거운 기다림으로 세 번째 타투가 새겨질 그때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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