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를 들켰다 01
말 그대로 타투를 들켰다.
나이 서른 먹고 부모님께 하나하나 허락받아야 된다는 고리타분한 가치관을 가지진 않았지만, 왠지 모를 죄의식과 압박감에 스스로 숨기며 잘 지내왔다.
그래 봤자, 미니타투 정도의 작은 크기의 꽃일 뿐인데 들킬까 봐 어찌나 조마조마하던지.
집에 있을 때 아주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돌아다니는 본인으로써는 발목을 숨기는 일이 굉장히 신경이 곤두서는 일이었다. 거의 맨발에 원피스 차림이기 때문에 양말을 신거나 하지 않는 이상은 너무 잘 보이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타투를 그렇게 갑작스럽게 할 생각은 없었다. 처음 타투를 하려고 했을 때는 잊지 않고 싶은 어떤 혼자만의 가치가 절실했고, 잊지 않기 위해선 기록하고 새겨야 한다고 그렇게 혼자 다짐하고 몇 달을 미루다 겨우 예약하고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작년엔 스스로 많이 힘들어서 혼자만의 안식의 날을 정하고, 1년 후 훌쩍 떠나는 계획을 하기도 했었다.
아는 언니가 남편과 살고 있던 치앙마이. 그곳에 가기 반년 전 왼쪽 중지에 체코어로 레터링을 했다. ‘nedele’ [녜델레]라고 읽고, 뜻은 ‘일요일’이라는 별 시답잖은 뜻이었지만 속 뜻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라는 뜻으로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지향하던 작년의-그리고 아마도 지금의-나와 일맥상통하는 단어였다.
사실 영화 <먹고, 사랑하고, 기도하라>에 나오는 ‘빈둥거림의 달콤함’을 뜻하는 단어 ‘dolce far niente’를 언제나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나이기에 더 결정하기 쉬웠던 것 같다. 그 어떤 존재도 ‘쉼’이 필요하지 않은 이는 없을 테니. 난 단지 그들보다 그 시간이 아주 조금 더 절실했던 것뿐이었으니 말이다. 그 가치는 너무도 소중해 가슴에 새겨 간직하고 싶은 것이어서 결국 1년 동안 준비하여 치앙마이로 한 달 살기를 떠나게 되었던 것이 올해 1월이었다.
어쩌면 레터링이 아닌 첫 그림 타투를 비교적 쉽게 결정하게 된 것도 정해진 운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참 재밌다. 치앙마이로 떠난 후 그곳에서 레슨을 하게 되었는데 아주 귀여운 레슨생이 보이는 부위에 여러 가지 타투를 하고 눈 앞에 뿅 나타났었다.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 그분도 나의 레슨 공고를 보고 치앙마이로 여행지를 최종 결정을 했다고 하는데, 이런 게 운명이지 무엇을 운명으로 명명할까 싶다.
그분 덕분에 타투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지만 망설임이 있던 그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고, 그분이 치앙마이에서 타투받으러 가던 날 별 스케줄이 없어 생각 없이 따라갔던 타투샵에서 두 번째 타투를 결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샵에 들어가자마자 벽에 붙여놓은 시안들 사이로 파란색 꽃이 시선을 빼앗았고, 타투이스트에게 홀린 듯 꽃의 이름을 물었다. 아쉽게도 타투이스트는 꽃의 이름을 잘 모르고 있었다. 그냥 보기에 아주 작은 풀꽃처럼 보여서 원래 이름이 없는 꽃인가 했는데, 이름 모를 어떤 꽃을 몸에 새긴다는 게 약간 꺼림칙해서 혹시 꽃의 이름이 떠오르게 되면 연락을 달라고 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였다. 그리고 2주 후 검색하다 우연히 알게 된 그 꽃은 ‘물망초’로 꽃말은 나를 잊지 말아요.
영문명은 더 매력 있었는데, ‘forget-me-not’ 이름이 곧 꽃말인 셈이었다. 물론 물망초도 한자어로 풀어쓰면 잊지 못할 풀이라는 뜻으로 영문명과 동일한 뜻이었다.
오밀조밀 작은 꽃잎이 어찌 함께 자라 그런 어여쁜 모습의 꽃이 되었나, 게다가 이름은 또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순식간에 예약을 잡고 한국에 돌아오는 날 가게에 가서 물망초를 오른쪽 발목에 새기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