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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듯한 제이 Apr 24. 2019

2019 / 4 / 23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너는 행복한 거라고요?

초등학생 1, 2학년 수업을 나간 지 거의 한 달 째다. 목이 찢어질 것 같은 나날이다.
저녁 수업까지 하니 성대가 아리다. 낼이랑 모래는 목을 쉴 수 있어 다행이다. 마이크를 꼭 갖고 가야겠다.(어떤 이들은 성악을 전공한 애가 왜 목이 쉬냐고 복식으로 말하면 목이 안 쉰다던데-다들 자기가 제일 잘나셨다-그나마 그래서 몇 년간 목이 버티는 중이라고 반문하고 싶다)

가끔 듣는다. 아니, 자주 듣는 거 같기도 하다. 예전엔 이유가 뭔지 모르겠지만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니까, 당연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무조건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어떤 이유로 인해서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는 힘이 생겼다.
많은 말들에서 상처 받지 않기 위해서는 어쩌면 맞서는 힘보다 그저 수용하는 것이 편할 때가 훨씬 많다. 그냥 넘기고 끄덕이면 스스로 소화시킬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 몸과 머리에 쌓여가는 거더라.

그래도 너는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잖아. 혹은 부모님이 대학을 보내주고 지원해주니까 그리 살고 있는 거잖아.라고들 말하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누구든 그 사람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고서는 모든 맥락을 이해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굳이 이해받고자 하지 않았다. 이해해주길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말라고 제발. 적어도 내 인생을 살아보지도 않고서 어찌 그 여정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한다고 그저 쉽고 즐겁기만 할 거라 단정 짓는 걸까.
누구든 살고 싶은 삶을 산다. 거기다 살고 싶지 않은 삶도 산다. 살고 싶은 삶만 사는 사람은 없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살고 싶은 삶’만’ 사는 인간은 정상이 아니다. 누구든 자신의 고난과 역경을 짊어지고 나름의 고됨을 함께하며 그 속에서 기쁨을 찾는 과정 속에 있는 거다. 그 기쁨이 자신의 눈에 커 보인다고 거기다 대고 넌 행복하잖아 그러니까 넌 불행한 게 아니야 라고하며 무조건적인 행복을 강요하지 말라.
적어도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위한 숭고한 희생들을 치른 그 사람이 당신을 미워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솔직히 본인은 숭고함의 레벨까지는 아니지만)

그리 긴 인생을 산건 아니지만 최선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차선 혹은 차악이 있을 뿐. 그것도 차악의 비중이 많은 것이 여태 내가 살아온 삶의 모습이었다. 어쩌라고 싶을 정도로 항상 선택지가 구려서 차악 아니면 최악 밖에 없었다.
만약 저 두 가지 말고도 다른 선택지는 가진이들이 있다면 그건 그 사람의 운이고, 운도 타고난 것이니 뭐 축하해주고 싶다. 사실 좀 부럽기도 하고.
특히 사랑하는 어떤 행위를 자신의 업으로 삼는 것은 최악이라고 말하더라도 할 말이 없을 정도의 과정임을 걸어온 사람들은 모두 안다고 자신할 수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일은 취미로 남겨주는 게 좋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 돈을 버는 행위는 소모적인 일이기 때문에 결코 순수 무결할 수 없다. 결국 찌들 대로 찌들고, 더러운 세상의 원리로 인해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많은 이들이 그 과정에서 상처 받는다. 그래도 좋아하니까 너무 하고 싶으니까 참고 참고 참아내다 거의 넝마 수준으로 폭탄을 맞고 나면 그제야 아.... 이게 아닌가? 하고 자신의 신념을 의심하고 낙담하다. 그게 아닌데. 자신이 틀린 게 아닌 게 틀렸다고 생각하게 되는 게 사랑하는 행위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 대부분의 말로다. 버텨내는 수밖에 없다는 게 더 서글플 정도로.

하고 싶은 일이라는 건 그런 거다. 어쩌면 애증에 가깝지만 애정 하는 모순적인 감정, 이중성, 어쩌면 위선과 닮아있을지도 모를 그런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끊을 수 없는 어떤 것.
지금은 나도 잘 모르겠다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도,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사람이 어떤 숭고한 가치를 위해 살 필요는 없으니까. 모든 이들이 삶의 뚜렷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니까. 그저 그러기 위해 노력 중인 과정의 위 일뿐.
그냥 아무렇지 않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는 게 내 맘대로 사는 것같이 보이는 거면 뭐 그것도 나쁘진 않다만, 그래서 당신의 삶이 더 고단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라면 난 그건 오만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서. 괜히 억울해서.

살아보지 않았는데 그걸 어떻게 알겠냐고? 가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주는 사람들이 있더라. 결국 그건 마음의 문제라는 거다. 자신의 공감능력 부족을 엄한 곳에 넘겨 탓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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