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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듯한 제이 Apr 14. 2019

애증에 대하여

나 사실은... 안 괜찮아. 01


어제 세 번째 상담치료를 했다.

너무 얕봤나 보다. 상담치료가 아니라 내 상처의 깊이를 얕봤다. 긴가민가했지만 두 번째 상담까지 차도가 생각보다 좋아서 이제 상태가 나아질 일만 남았다고 오만하게 군 벌인가 했다.

선생님께서 좋아지는 듯하다가 또다시 미끄러지는 일이 생길 수 있는데 너무 낙심하지 말라고 미리 말씀하셨는데도, 난 너무 나약하게 무용히 쌓였다 무너지는 모래성처럼 여력 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최근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의지하고 버티게 해 주던 속내를 털어놓는 이들이 다들 짝을 만나 더 이상 그 손을 잡기가 미안해졌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뭐라 하는 이는 없었지만 으레 친구라면 그게 도리니까. 그들이 괜찮다고 해도 내가 괜찮지 않아서이니 내가 말하지 못한 것은 전혀 그들의 탓은 아니었다.


생판 모르는 남이었던 사람과 오로지 내담자와 상담자의 역할로 만난 인연으로 어찌 됐든 구구절절 내 이야기를 하고 공감받는 일이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소리 내어 마음껏 울어본지가 언젠지 까마득할 정도로 우는 것조차 자유가 허락되지 않았던 터라 마음껏 위로받으며, 울어도 된다며 달래주는 이 앞에서 잠깐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곤 했다. 그런 모습을 받아 줄 이가 필요했나 보다.


세 번째 상담을 가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점점 스토리가 아니라 나의 속내가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상담사 선생님께서는 이야기 끝에,


너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려고만 하지 마세요. 물론 어머니의 입장이 있으셨겠지만 사실만 놓고 보면 어찌 됐든 16살의 나이에 혼자 남겨진 기분을 느낀 건 내담자님이니 어머니를 원망해도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 없어요. 다른 사람을 이해하려고만 하지 말고 본인의 감정에 더 집중하실 필요도 있습니다.


라고 하셨다.

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면서도 난 계속해서 엄마를 변호하고 아빠를 변호했다.


어떤 준비를 할 겨를도 없이 마치 꿈처럼 사라진 엄마가 실감이 나지 않았다고 말하자, 선생님께서는 나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봐 주셨다.

마치 ‘꿈처럼’이라는 말이 이렇게 가슴 아프게 들릴 수 있는지 몰랐다며 나를 보는 그 시선이 잠시나마 나를 위로해 주었다.


상담이 끝나고 나와서도 가슴속 물기가 채 가시지 않아 다음 목적지로 가는 내내 눈물이 그치지 않고 숨이 차올라서 몇 번이고 심호흡했다. 혼자 있는 차 안에서 나도 모르게 계속 울음을 삼키는 내가 너무 불쌍해서 또 그렇게 울다가, 왠지 모를 서러움이 또 북받쳐 울고 그렇게 내내 줄 곧 울음을 토했다.



가까스로 눈물을 그치며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어렸을 때 품었던 부모님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이 변질되는 것을 난 여태 받아들이지 못하는구나. 그나마 남아있던 신뢰가 증발되어 버리는 것이 나는 여전히 두렵구나. 였다.


언젠가부터 그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으려 무던히 애썼다. 기대하지 않는다는 감정은 상처 받지 않기 위함이고, 상처 받지 않으려는 방어는 상처를 받아 본 이들만이 취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결국 상처 받지 않기 위한 최선의 방어는 어떤 존재에게 갖는 기대치라는 항목을 완전히 삭제하는 것이었다.

기대치를 완전히 제로에 가깝게 낮추기까지 난 얼마나 상처 받고 아팠던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에 대한 애증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해 여전히 발버둥 치고 이제야 남루한 모습의 나를 바라보려 시도하는 내가 너무 가증스러웠다.

이제 스스로에게 조차 애증을 품게 되는 건가 싶었다.


대화 상대가 필요했다. 그 누구라도 좋으니 제발 나와 이야기 좀 해주었으면 했다. 어떤 이야기라도 좋았다. 거의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 딱히 전화 걸 사람이 없었다. 그 순간 스스로가 얼마나 초라하게 느껴지는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죽어도 집에는 들어가기 싫어 그대로 핸들을 돌려 무작정 왔던 길을 되돌아 나갔다. 정처 없이 가다 보니 자연스레 향한 곳은 엄마의 집이었다.

분명 주무실 텐데 싶었지만, 몇 달을 딸 보고 싶다고 오라고 성화를 하던 엄마에게 무심하게 한 번을 찾아오지 않던 딸이었으면서 결국 전화를 걸어 엄마를 찾았다.


여보세요?


상기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엄마 생각나서 보러 왔어. 잠시 봐도 돼?


당연하지. 내려갈까? 올라올래?


아니 내가 올라갈게. 너무 늦은 시간 연락해서 미안.


괜찮다. 어서 올라 온나.


참. 나는 어쩌면 위선의 위선의 위선을 얼굴에 겹겹이 덮은, 정말 별로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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