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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럴듯한 제이 Apr 22. 2019

애증에 대하여

나 사실은... 안 괜찮아. 02

늦은 시간 주차할 곳이 없을까 봐 밖으로 나와서 나에게 전화하려는 엄마를 현관문 앞에서 만났다.


올해 초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에 봤으니 거의 4개월 만에 만나는 엄마는 다행히 얼굴이 약간 좋아져 있었다. 몇 개월 전엔 아파서 얼굴이 말이 아니더니 이제 좀 괜찮아졌나 보다.


아이고~ 영아야


뭐 그리 예쁜 딸내미라고 볼 때마다 그리 반갑게 맞아주시는지 엄마의 웃는 모습이 난 서글프다. 어쩌면 어떤 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상인 이 만남이 우리 모녀에겐 이미 일상이 아니라는 의미처럼 와 닿았으니까. 어쩌면 당연하지 못한 삶을 사는 나의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그 새벽에 그렇게 갑자기 방문해놓고 난 쉴 새 없이 떠들었던 것 같다.   엄마도 오랜만에 나를 만나자 할 말이 많았고 우리는 서로 쌓아놨던 일상들을 쏟아내기 바빴다.


그리고 몇 시간 동안 엄마와 이야기하며 생각에 잠겼다. 상담을 받는 이야기를 해야 할까. 굳이 하지 말까. 엄마가 걱정하겠지? 아니, 걱정해주시려나.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려나. 등등 별의 별생각이 다 들었다. 차라리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더 마음 편하게 생각이 될 정도로 나의 가족에게 이야기한다는 것은 뭐랄까, 좀 더 신중해지고 좀 더 까다로워지는 절차처럼 느껴졌다. 혹시 모를 죄책감이나 자책 따위의 감정을 가지게 되어 마음의 짐을 지우게 되는 것이 싫었던 것 같다. 별의별 이야기들을 다하면서, 나도 그렇게 아프고 힘들었으면서 그냥 엄마는 되도록 몰라서 맘 편 하기를 바랐나 싶기도 하고. 뭐 그렇다고 해서 내가 착한 딸로 인정받고 싶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더 미묘하고 깊은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왠지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운을 띄웠다.


엄마 나 사실... 상담 치료받으러 다녀.


아, 그래?


엥? 뭐가 그리 담담해? 상담 치료 혹시 뭔지 알고 그러는 거야?


그래, 알지. 너는 언젠가 받아야 할 것 같았는데 잘 갔다.




정말 뭘 알고 그렇게 말하는 건지, 아님 정말 아무렇지 않으신 건지 뭐가 뭔지 헷갈렸다. 엄마가 나의 그 아픔들을 다 헤아린다고? 내가 말하지도 않았던 그런 신체화 증상이나 고단했던 불면이나 공황 초기 증상처럼 불쑥불쑥 나를 괴롭히던 그 지긋지긋한 것들을 다 이해한다고? 이해를 받았는데 고갤 빼꼼 내미는 이질적인 감정에 스스로 놀라 움찔했다.




엄마도 요즘 계속 아파서 병원 다니는데, 너도 네가 힘들면 꼬박꼬박 병원 가고 이제 좀 꾸준히 다녀봐.


아.. 그래 엄마. 병원에서도 너무 내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에 신경 써서 정작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거 같다고 하더라. 좀 많이 늦었지만 이제 내 몸은 내가 챙기려고. 나 자신이 제일 소중한 거니까, 내 행복부터 우선순위에 두는 연습을 많이 할 거다.


그래,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이지. 니도 이제 네 가정을 꾸려서 좀 안정적으로 지내야 될낀데. 빨리 시집이나 가라.


그놈의 시집 타령은 좀 그만하면 안 되나.




순간 욱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왜 나의 행복을 다른 이가 책임을 저야 하는 걸까. 왜 당연스럽게 이야기가 그쪽으로 흘러가는지. 어린 시절 어쩌면 본인으로부터의 과실도 어느 정도 있는 부분의 상처를 생판 모르는 남자에게 떠 안겨 주려 하는지 이해가 안 되어 울컥했다. 자기 자신도 헤아려줄 자신 없는 그 감정들의 산물인 나를 말이다.

물론 딸이 행복하기를,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나도 백 번 이해하지만 짜증이 났다. 난 여전히 엄마가 나에게 미안해하기를 은연중에 바라고 있었던 걸까. 난 엄마가 걱정하는 게 싫으면서도 여전히 그러기를 바라는 이중적인 감정 속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움츠려 있었나.




이제 니도 나이가 찼는데, 좀 사근사근하게 하고. 다 니 빽빽 거리는 성격 때문에 도망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내가 뭐 어때서, 얼마나 잘해주는데.


잘해주기는. 니는 좀 쎄다.


푸하하하하하하. 인정. 그런데 엄마, 이 성격을 내가 어디서 빼닮았을 것 같은데?


잉? 엄마야, 내가 쎄다고?


그걸 여태 몰랐나. 엄마랑, 이모랑 보면. 이 집안 여자들은 다 쎄다.




엄마는 폭소했다. 그 속엔 약간의 인정과 혼란이 함께 공존하는 듯했다. 웃으며 옆에 있는 아저씨(엄마의 남편)에게 자기가 쎄냐고 연신 물으시는데, 아저씨는 웃기게도 아무 대답 없이 웃으셨다. 무언의 긍정이었는데 나도 얼마나 웃었는지 모르겠다.


당시에는 웃으며 꼭 결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내가 남자 운이 없어서 이상한 사람들만 얻어걸리는걸 내 힘으로 어쩔 도리가 없다며 나의 사람 볼 줄 모르는 눈과 불운을 탓하며 넘어갔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계속해서 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 거였다. 굉장히 거슬리는 그 나의 센 성격 때문에 괜찮은 놈들이 도망간다는 말이 어쩌면 농담조로 한 가벼운 말일 수 있지만, 왜 엄마는 나의 그 날카로운 면들의 원인에 대해서는 헤아리려 않고, 나의 탓만 하는 것인지 한켠으로는 계속해서 엄마를 원망하는 어린 내가 있었다.

이런 감정은 약간 생소하기도 해서 더 마음이 기분 나쁘게 상기되어 있었다.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엄마에 대한 원망이나, 어쩔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생각하지 못했던 떠남에 대한 결과들-그로 인한 나의 상처, 방치-을 이제 와서 이렇게 대면한다는 것이. 너무 아팠다.


그 대상이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난 분명 이해하고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감정들이 서서히 깊은 물속에서 꺼내어지자 굴절각에 의해 왜곡되었던 진실들이 본래 모습으로 꺼내어지는 것 같은 그런 생생한 일련의 과정들을 몸소 겪어내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 적당할까.


내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 그 오래되어 약간 부식되고 모습이 또렷하지는 않지만 그 형태가 구분되는 그런 감정들, 얼기설기 얽혀있는 멍든 어렸던 나의 기억들. 내 손으로 분리하는 과정을 지나야 비로소 나는 지긋지긋한 이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했다.


내가 사랑하는 엄마. 내가 미워하는 엄마. 그 두 감정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그게 뭐라고 이다지도 힘든지. 그 누구보다도 고단했던 엄마의 인생에서 아픔에 대한 지분을 어느정도 나눠 갖고 있는 나로써, 나에 대한 걱정 정도는 내가 대신 짊어지고 가고 싶은 그런 마음이 컸던 이유도 있다. 나에게 가장 큰 연민의 대상은 나의 엄마였으니까. 게다가 누군가를 원망하는 감정 또한 소모성이 강해서 난 웬만하면 그렇구나, 괜찮아, 하고 넘어가는 게 익숙하니까. 그렇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넘어가면 시간이 해결해주니까 하고 과거에 외면했던 그 날 것의 감정들이 점점 나의 정면으로 다가오는 듯한, 그런 과정을 겪어내고 있는 중이다.


세 번째 상담 때부터는 상담 후유증이 더 심해져서, 우울들이 걷히고 난 뒤의 그 빈 공간을 미칠듯한 외로움들이 고름이 차듯 채워지고 있어서 고군분투하는 중이다. 얼마나 걸릴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겠지만, 아마 상담을 겪어본 사람들을 모두 알 것만 같은 그 헛헛한 감정이 목구멍을 비롯해 머리 끝까지 차오를 때면 조금씩 괜찮아진다며 해맑게 그 과정이 쉬울 거라 착각했던 과거의 오만한 나를 원망하게 된다. 아직 채 4번을 채우지 못한 상담에 대한 나의 감상은 대략 이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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