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 엄마가 오빠 수능 세 번 봤던 거 알아?"
어느 날 동생이 다급하게 카톡을 보내왔다. 무슨 일인고 들어보니 동생이 엄마와 대화하던 중 내가 삼수했던 이야기를 했는데, 엄마는 "오빠가 공무원 시험 준비를 오래 했지, 수능은 한 번 봤어."라고 했다는 거다.
"엄마 당연히 알지. 세 번째 공부할 때 학원비 때문에 엄마 반지도 팔았는데 왜 몰라. 반지 판 거 얘기하면 기억난다고 할 거야."
"알았어, 그거 얘기해 볼게."
잠시 뒤 다시 동생의 카톡이 왔다.
"반지 팔았던 얘기 하니까 기억난대. 근데 엄마 2주 간 냄비 3개 태웠어."
나는 그제야 동생이 어떤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알아챘다.
"엄마, 혹시 치매가 아닐까?"
동생이 말했다.
3년 전인 2021년 2월,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아흔이 넘으셨음에도 정정하셨지만, 요양병원에 계실 수밖에 없었다. 치매 때문이었다. 으레 그러하듯 처음에는 경미한 정도였지만, 갈수록 심해져 큰 외숙모에게 "네가 가져간 내 돈 내놔라."라며 핍박하는 일이 잦았다. 결국 큰외삼촌은 외할머니를 입원시켰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3년 전쯤인가 엄마, 동생과 함께 병원으로 찾아가 본 적이 있다. 치매라는 악마가 정신을 잠식해 버린 백발의 노모는 모르는 사람 셋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했다. 엄마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하듯 외할머니에게 자신의 이름을 반복해서 말해주었지만, 외할머니는 계속해서 거리감이 느껴지는 2인칭으로 엄마를 불렀다. 외할머니는 끝내 당신의 4남 2녀 중 막내딸을 알아보지 못했고,
엄마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가 퇴사한다고 하니까 엄마가 말리길래 내 인생이라고 했어. 그러니까 엄마가 힘없는 목소리로 그래, 알았다-라고 하면서 자식들이 자기를 방치하고 있어서 섭섭하대."
마지막에 동생은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엄마를 방치했을까? 확실히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보다 엄마에게 전화를 덜 하긴 하지.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꼬박꼬박 전화하고 달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최소 1번, 많게는 3번씩도 엄마 집에 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내 입장에서 내 좋을 대로 생각한 거였나 보다. 결국 엄마가 나와 동생에게(동생은 엄마와 같이 살고 있다) 내린 평가 결과는 '방치'였다.
내가 결혼할 때 엄마는 전화도 자주 할 필요 없고, 자주 찾아올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난 엄마를 잘 알기에 그 말을 전혀 믿지 않았었다. 그럼에도 이런 결과는 예상 밖이었고 날 몹시 당혹스럽게 했다. 엄마에게 갱년기가 온 것일까, 역시나 남편의 빈자리가 큰 것일까. 따지고 보면 내가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은 얼마나 될까. 친한 친구는 시시콜콜한 연애사까지 줄줄이 꿰고 있지만 엄마에 대해서는 아는 게 많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마는 내겐 타인보단 가깝고 친구보다는 먼 존재였다.
-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