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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엄마에 대한 통화를 했던 날로부터 며칠 지난 토요일, 서울에서 지인의 결혼식이 있었다. 서울에서 결혼식이나 모임이 있을 때면 나는 엄마 집 찬스를 사용하곤 한다. 내가 결혼하기 전에 쓰던 방은 침대와 전기장판 모두 그대로 있으니까 그저 몸만 가서 자면 된다. 내가 언제 가겠다고 미리 말해두면 엄마는 이불을 빨아 놓는다.
결혼식이 있던 날은 눈도 아니고 비도 아닌 그 무언가가 내렸다. 그걸 진눈깨비라고 하던가.
"여기, 중식이 맛있기로 엄청 유명해."
실로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말했다. 정말 솔깃한 말이었지만 내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방치라는 낙제점을 만회하는 것. 나는 엄마와 저녁을 먹어야만 했다. 왜 밥을 먹지 않고 가느냐는 지인들의 질문에는 지방에서 이모가 올라와 계셔서 같이 식사를 하러 가야 한다고 둘러댔다. 엄마에게 전화해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엄마는 알겠다고 하면서도 내가 왜 결혼식장에서 밥을 먹지 않고 오는지, 조금은 의아해하는 눈치였다.
집에 도착하자 엄마가 고등어조림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냉장고에서 몇 가지 반찬을 꺼내고 수저와 젓가락 두 쌍을 식탁에 올려놓았다. 식탁에 앉은 엄마는 저녁을 집에 와서 먹는 내 저의가 짐짓 궁금한 듯 물었다.
"그 식장 중식이 맛있는데 왜 안 먹고 왔어?"
"엄마가 만든 고등어조림이 훨씬 맛있어."
나는 일부러 오버해서 말했다.
"어이구~그래? 하긴, 중식은 기름지기만 하고 좋지도 않지."
라고 말하는 엄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주접이 통한 것 같다. 고등어 살을 요리조리 발라가며, 대화는 계속됐다.
"엄마, 냄비 세 개 태워먹었어?"
"예은이가 그러디?"
"응. 그리고 내가 수능 세 번 봤던 것도 엄마가 기억 못 한다면서 걱정을 많이 하던데. 혹시 치매가 아닐까."
엄마는 대수롭지 않은 일로 호들갑을 떤다며 웃었다.
"엄마 괜찮아. 귀 한쪽이 잘 안 들려서 그래. 수능 그것도 예은이가 얘기하니까 생각나더라. 치매면 이야길 들어도 생각이 안 나야지."
듣자 하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엄마는 그렇게 날 안심시키고는 올해 건강검진에서 치매 검사를 꼭 받겠다고 약속했다. 서로가 원하는 걸 얻은 대화였다.
고등어들이 앙상한 뼈만 남았을 때쯤 바깥도 어둑해졌다. 엄마는 차를 팔고 싶다고 했다. 산 지 13년 된 귀여운 경차인데 일주일에 딱 하루, 엄마가 교회를 왕복할 때만 운행한다. 엄마는 매주 다녀서 익숙한 교회를 오가는 코스는 운전할 수 있지만 그 외에 다른 길은 무섭다며 운전하지 못한다. 여러 해 동안 엄마에게 "30km 떨어진 교회를 왕복할 수 있으면 다른 곳들도 갈 수 있어!"라며 용기를 불어넣었지만 엄마는 끝내 교회를 갔다 올 수 있는 것으로 만족했다.
엄마는 교회를 지하철 타고 힘들게 다니는 한이 있더라도 차를 팔아 골칫거리를 없애고 싶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가 에어컨도 고쳐야 되고, 동생이 운전연습한다고 나갔다가 시원하게 긁어먹고 생긴 상처도 있는 차를 팔아 딱히 남는 것이 없을 것 같다고 하자 엄마는 깔깔 웃으며 듣고 보니 맞는 소리라며 동의했다. 결국 여름이 오기 전에 에어컨을 고치기로 결론이 났다.
엄마는 나와 수다를 떤 것만으로도 조금 즐거워진 듯한 눈치였다. 덕분에 나도 마음 편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네가 아주 어렸을 때 외할머니 건강이 엄청 안 좋아져서, 우리 집에서 지내시면서 큰 병원에 다니신 적이 있었어. 그때는 큰외삼촌이 그러라고 하니까 별생각 없이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 억울한 거 있지. 서울에서 은행 다니면서 잘 나가는 느그 막내외삼촌도 있고, 언니도 있는데, 왜 내가 했어야 하냐고. 이번에 외할머니 기일에 다 같이 모이면 한번 따지려고. 그때 왜 그랬었냐고."
저녁을 먹다가 엄마가 말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 꼭 따져. 아주 그냥 뒤집어엎어 버려."
잠시 뒤, 엄마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말했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엄마를 많이 예뻐하고 챙겨주긴 했어. 생각해 보니까 그랬네. 그냥 안 따질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