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관찰 대상자와 신경전을 한 건에 관하여

by 단기소년원송치




비행소년 출신의 대상자 M은 건전한 길로 새지 않고 올곧게 성인 범죄자로 성장하여 내게 보호관찰을 받으러 왔다. 가정사가 복잡한 그는 보호관찰 신고접수를 할 때 외삼촌의 집에 살면서 외삼촌이 운영하는 중소기업의 수습사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M의 말이 진실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그 회사로 직접 가볼 필요가 있었고, 실제로 외삼촌의 회사 유니폼을 입은 M을 만날 수 있었다.


M은 내게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지내던 과거를 후회하며, 그들과 단절하기 위해 일부러 자신이 성장기를 보낸 Y시를 떠나 외삼촌의 집에 살면서 일만 열심히 할 생각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M의 표정은 결연했고 진정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퍽이나


라고 생각했다.


이 일을 하다 보면 대상자들의 말을 믿지 않게 된다. 모든 말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믿을 수 없으며 믿지 말아야 하는 말들이 몇 가지 있다. 술 끊었습니다, 운전 안 합니다, 이제 걔네랑 안 만나요, 사고 안 칠 거예요, 등등. 그들은 어제도 술을 마셨고, 운전면허는 취소됐지만 설마 무슨 일 있겠냐는 생각에 기회가 날 때마다 틈틈이 운전하고 있으며, 공범들과 이번 주말에 강원도로 놀러 갈 것이고 누가 시비를 건다면 공권력에 기대기보다 물리력으로 맞설 마음의 준비가 항상 되어 있다.




외삼촌의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며 지내겠다던 M의 다짐은 딱 한 달 갔다. 아니, M이 외삼촌의 회사에서 나갔다는 사실을 내가 인지한 것이 한 달 됐을 때였으니까 실제로 그만둔 시점은 그보다 더 이전이리라. 2주 만에 나왔을 수도 있고, 3주였을 수도 있다. 어쩌면 일주일 만에 때려치웠을 수도 있다.


외삼촌이 운영하는 회사 유니폼을 입은 M의 모습을 보고 한 달이 지났다. 보호관찰소에 출석을 지시하기 위해 M에게 전화했을 때 그는 자기가 Y시에 있는 엄마 집에서 지내면서 경호업체에 취직했다고 했다. 주거지 변동을 내게 보고한 적이 없었다. 보호관찰 준수사항 위반이다. 외삼촌의 회사는 왜 그만둔 건지 묻자 돌아온 것은 "힘들어서요."라는 답.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나는 M이 Y시의 불량교우들을 단절하고 외삼촌의 회사에서 성실히 일하겠다고 다짐한 것을 믿은 적이 없고, 후하게 쳐줘도 외삼촌 회사에서 2개월을 버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M의 퇴사가 놀랍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막무가내로 주거지를 옮기고 보고하지 않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아직도 인간에 대한 기대가 조금은 남아있는 모양.


나는 M에게 이번 달 중으로 보호관찰소에 출석하라고 했다. M은 토요일밖에 시간이 안 된다며 응수했다. 나는 공공기관은 주말에 열지 않고 내가 M 때문에 주말에 출근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대상자들은 보통 이쯤 되면 자신이 평일에 어떻게든 시간을 내보겠다고 하거나, 최소한 "죄송하지만 평일 저녁에는 안되시겠죠?" 정도의 태도는 보인다. 하지만 M은 아직 청소년기에 착실하게 기른 반사회성이 빠지지 않아 호기로운 청년! 주말밖에 시간을 못 낸다고 선언했는데 모양 빠지게 이를 번복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M은 재차 토요일밖에 안 된다며 짜증스러운 말투로 말한다.

이때 물러나거나 대상자가 원하는 대로 맞춰주면 그 대상자와 헤어질 때까지 주도권을 가져오지 못한다.


평일에 시간을 만들어서 오세요.

네?

만들라고요. 시간.

... 이번 달에 꼭 봐야 되는 거예요?

봐야 되니까 제가 이러고 있겠죠?

하....

지금 본인이 처한 상황이 잘 인지가 안 되는 것 같은데, M 씨는 지금 집행유예와 보호관찰 기간이고요, 제가 보자는데 거부하는 건 지도감독 불응이에요.

......

근데, 지금 오후 3시인데 오늘은 경호 일하러 안 나간 건가요?

... 좀 이따 나가요.

어디로 가는데요.

매일매일 달라요(짜증).

이렇게 출근이 늦으면 보호관찰소에 올 수 있겠는데 왜 평일에 시간을 못 내죠?

......

1월 XX일 오전 10시에 재직증명서 떼가지고 오세요.

그때는 못 떼갈 거 같은데요.

왜요? 재직증명서 한 장 떼는 데 무슨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려요?

대표님께 서류를 신청하고 받는 데 시간이 필요하니까요(역정).

그럼 그보다 일주일 뒤인 XX일에 오세요.

... 네.

보고 없이 주거지 옮긴 거에 대한 서면경고장(집행유예 취소신청하기 전 옐로카드 개념) 나갈 거예요.

... 네.

아 참, 그리고 말하는 태도 좀 개선하세요.

네?

태도 개선하라고요. (끊음)




M의 외삼촌에게 전화해서 확인해 본 결과, M은 습관적으로 새벽까지 술을 마시거나 휴대폰을 하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하고 지각과 결근을 반복하다가 외삼촌과 사이가 나빠져서 퇴사하고, 짐을 싸 나갔다고 한다.


그럼 그렇지.


그렇게 또 한 명의 대상자와 갈등관계(?)가 된 건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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