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역할 한번 해봐요

by 단기소년원송치




어느 날 출장을 다니고 있는데 보호관찰 대상자이자 사회봉사 대상자인 C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왔다.

C로 말할 것 같으면 20대 초반의 남자인데, 전산에 검색해 보면 소년 시절부터 받은 보호관찰 기록들이 줄줄이 나오는 법무부 단골 고객님 되시겠다. 몸의 2/3는 이레즈미 문신으로 뒤덮여 있다. 근데 또 눈은 순박하게 생겨서 거기서 오는 괴리감이 상당하다. C는 친한 후배로부터 지인에게 돈을 빌려주고 못 받고 있다는 말을 듣고 친히 비슷한 문신을 그린 친구들을 이끌고 출동해 돈을 빌렸다는 사람을 하룻밤 동안 모텔에 감금하고 협박해 결국 빌린 액수의 두 배에 달하는 돈을 받아내 공동감금, 공갈 등으로 집행유예와 보호관찰, 사회봉사 처분을 받았다. 후배의 돈을 받아주기 위해 형사처분까지 감내하다니 참으로 눈물 나는 의리가 아닐 수 없다. 나는 내 친구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다. 각자의 채권이나 채무 문제는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자.


아무튼 하던 이야기로 돌아와서, 사회봉사 현장에 있어야 할 C군이 전화를 했길래 받아보니 상당히 다급한 듯한 눈치였다. 무슨 이야기인지 차분이 말해보도록 지시하고 들어보니...


똥 얘기였다.


그러니까 비유적인 표현으로서의 <똥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똥 이야기>였다. C는 농촌에서 사회봉사를 하던 중 똥이 마려웠.... 아니지, 우리는 나라에서 의무로 규정한 기초교육을 받은 교양인들이 아닌가? "변의를 느꼈다."라고 하자. 그렇다. 사회봉사를 하다가 변의를 느꼈던 것이다. 사회봉사 현장을 감독하는 사람(우리 직원은 아니다. 아마도 밭주인이 아닐지?)에게 화장실을 쓰고 싶다고 말했고, 그 사람은 C에게 구석진 곳이나 산속에 싸라고 했다. C는 화장실이 어딘지 알려달라고 했고, 그 사람은 역정을 내며 "여기서 농사짓는 사람들 다 아무 데나 싸는데 왜 화장실을 보내달라고 하는 것이냐."라고 말했다. 소년 시절부터 온갖 범죄를 저지르며 아무렇게나 막 살아온 C였지만 변기가 아닌 곳에 쪼그리고 앉아 변을 보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된다고 생각했나 보다. 결국 C는 그 사람과 언쟁을 벌였고, 기분이 상해 보호관찰 담당자인 내게 전화한 것이다. 사회봉사 담당자 놔두고 도대체 왜 나한테


C는 사회봉사 잔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태였다. 이틀 정도만 더 하면 다 끝날 것이다. 나는 C가 무사히 사회봉사를 마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달랬다. 일단 아무 데나 일을 보라는 그 사람을 함께 비난하며 천하의 몰상식한 인간으로 매도하고, 그런 이상한 사람과 말다툼해 분란을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사회봉사를 마치라고 지도했다. C는 내가 그 사람을 함께 욕해주자 분이 누그러졌는지 순응적으로 대답했다. "쌤, 근데 저 진짜 쌀 거 같아요."라고 하자 그건 알아서 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왜 같잖은 혈기를 부려서 싸움을 일으키려고 하는 걸까. 그냥 성격이 이상한 사람이구나-생각하고 넘어가면 되는 것 아닌가.




C와의 통화를 마치고 차에 기름을 넣기 위해 주유소에 갔다. 기름을 넣고 세차를 하려는데 내 차 뒤로 세차를 하려는 차들과 주유를 하려는 차들이 뒤엉켜 있었다. 후진으로 세차장 들어가는 각을 만드는 게 불가능한 상황. 어떻게 할지 잠시 고민하는데 최소 50대 남성으로 보이는 주유소 직원이 내게 손가락을 빙글 돌려 보이며 "돌아서, 돌아서."라고 외쳤다. 내가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하고 "네?"라고 묻자 그 사람은 몹시 짜증스러운 투로 차를 돌릴 수 있는 공간을 가리키고 큰 소리로 역정을 냈다. 뭐라고 했는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기분이 확 나빠진 나는 순간 싸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근데 왜 그렇게 말을 싸가지없게 하세요? 따위의 말을 하면 다툼은 시작될 것이다. 저쪽도 짜증을 내놓고 물러서진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가늘고 무탈하고 길게 정년까지 가고 싶은 대한민국 공무원으로서 나는 그냥 "예~" 하고 차를 돌려 세차를 했다. 하지만 더러워진 기분은 한동안 남아 감정의 호수에 물결을 일으켰다.

문득 이 상황이 C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C와 나는 모두 상대가 무례하게 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한 상태로 당황스러운 짜증을 맞이했다. 변의가 느껴지니 화장실을 알려달라는 것과 차를 어떻게 돌려야 하는지 묻는 게 그렇게까지 화를 낼 일은 아니지 않은가?

C가 내게 한탄했을 때, 나는 가볍게 생각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나한테 전화를 할 정도로 화가 난 C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C를 아주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거 봐요, 쌤. 화 많이 나죠?"

C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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