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일, 판다 '푸바오'가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푸바오는 2020년 7월 20일 한국에서 태어난 판다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엄청난 관심과 사랑을 받았지만 중국의 판다 소유 정책에 따라 예외 없이 작별의 순간을 맞이해야만 했다.
나는 푸바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몰랐지만 4월 3일 유튜브에서 우연히 푸바오 송별현장 라이브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푸바오가 떠나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줄 알았는데 그 사람들을 조롱하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단순히 조롱하는 정도가 아니라 입에 담기 어려운 폭언들이 가득했고 그것은 사이버불링의 현장 그 자체였다.
인간이 절대로 내가 될 리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혐오한다. 황인종을 혐오하는 한국인을 본 적 있는가?
푸바오가 떠난다고 슬퍼하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그 심리의 기저에는 뿌리 깊은 우월감이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절대로 "고작 판다 따위"에 마음을 깊이 주지 않는 사람이라는 그 우월감 말이다.
이것은 내 마음을 매우 불편하게 만든다. 왜냐하면 이것은 다수의 횡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도덕 판단의 기준은 오직 다수냐 아니냐인 것처럼 보인다. 만약 푸바오가 언론 등을 통해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 존재를 알고 있었다면 떠나는 날 현장의 모습이 유튜브 라이브로 방송되지 않았을 테고, 사람들이 그걸 비난하는 일도 당연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가수의 콘서트 현장에서 감동하여 눈물을 흘리고 심지어 오열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 현장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왜 이런 일로 울기까지 하는 겁니까? 한심하네요."라고 외친다고 생각해 보자. 그는 콘서트를 연 가수를 사랑하는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짓밟힐 것이다. 푸바오의 송환을 슬퍼하던 사람들은 재수 없게도 '다수의 대중들'에게 노출되고 말았다. 그들이 잘못한 건 그것뿐이다.
30년 넘게 살아보니 사람들은 "그러려니"를 정말 못 하는 것 같다. 막말로 판다가 떠난다고 울든, 목도리도마뱀이 떠난다고 울든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들이 운다고 해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거나 물의가 되는 것이 아닌데 말이다.
그들에게 조롱을 던진 사람들도 다른 무언가에는 열광할 것이다. 때때로 감동하거나 슬퍼서 울기도 할 것이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조롱당하는 것을 원할 리는 없다. 내가 당하기 싫은 것은 타인에게 하지 않는 것이 인간 대 인간 간 기본 예의이다.
우리 사회에는 '관대한 무관심'이 매우 필요하다. '그러려니'를 조금 정제된 표현으로 한 것이라 생각해도 좋다. 판다가 떠난다고 울 수도 있다. 공연이나 드라마를 보고 울 수도 있다. 음악을 듣다가 울 수도 있다. 책을 읽다가 울 수도 있고 심지어는 게임 대회를 보다가 울 수도 있다. 그런다고 나와 이 사회에 피해를 끼치는 게 뭐란 말인가. 그냥 "그러려니"하면 된다. 저 사람들은 푸바오가 떠나는 게 많이 슬픈가 보구나-생각하고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인간이 너무 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