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타임머신(2)

by 단기소년원송치

1편 : https://brunch.co.kr/@plausiblewaw/20



11. DAVICHI - 미워도 사랑하니까, 슬픈 다짐 / 태연 - 만약에

나는 고3을 거쳐 대학생으로 레벨 업했다. 내가 대학교라는 새로운 세계에 첫 발을 내디뎠을 때와 비슷한 시기에 '다비치'라는 2인조 그룹이 '미워도 사랑하니까'를 타이틀곡으로 한 1집을 발매하며 데뷔했다. 다비치는 신인치고는 준수한 성적을 내며 성공적으로 세상에 자신들을 알렸고, 후속곡인 '슬픈 다짐'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다.

나는 이 두 곡뿐만 아니라 다비치 1집의 다른 수록곡들까지 달달 외우면서 다비치라는 그룹에게 푹 빠져들었다. 다비치 1집에는 총 10곡이 수록되었는데, 한 곡도 버릴 것이 없이 다 좋으니 관심이 있다면 들어보길 바란다. 아참 립스틱 짙게 바르고는 빼고

그 해는 소녀시대의 리더 태연이 '쾌도 홍길동'이라는 드라마의 OST '만약에'를 부른 해이기도 하다. 태연은 이 노래에서 멀어진 사이가 될까 봐 다가가지 못하는 감정을 절절히 표현했는데,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만 18세였다(한국식 나이로는 나랑 동갑이다).

이 노래를 들으면 그 해 어느 날, 학기 초에 친해진 동기가 지내던 기숙사 방에 갔을 때 그가 컴퓨터로 쾌도 홍길동을 보고 있었던 것이 생각난다. 그리고 18세가 노래에 이런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는다. 개인적으로는 한국 짝사랑 노래들 중 원탑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러브홀릭의 '인형의 꿈'과 투탑이라고 정정하겠다.




12. 8eight - 심장이 없어

반수에 실패한 뒤 2학년으로 레벨업을 했고, 수능에 대한 미련을 버리려 노력하며 학교 활동에 열심히 참여했던 시기였다. 그 해 3월에 발매된 이 노래를 왜인지 나는 너무 좋아해서 하루 중 4시간 동안 이 노래만 한곡반복을 했던 적도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진짜 그만큼 듣고 싶어서 들었다기보다, 계속해서 듣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언제까지 이것만 들을 수 있을까 하는 승부욕이 생겨서 그랬던 것 같다.

원더걸스의 소희가 뱀파이어 컨셉으로 나온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었다.


13. 윤하 - 오늘 헤어졌어요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군대.... 아니 구청에 가기 위해 휴학을 했는데, 훈련소에 가기까지 몇 개월이 붕 떠버려 뭘 할까 하다가 알바를 찾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뒤지다가 광화문역과 서울시청 사이에 있는 서울파이낸스 빌딩 지하에 '하코야'라는 라멘집에서 알바를 찾는다는 걸 알았고, 시급이 무려 5,000원(!!)이라는 점에 이끌려 홀린 듯 지원하게 된다. 그때는 알바 시급이 보통 4,500원이었고, 5,000원이면 꽤 많이 주는 편이었다.

가게는 그리 크지 않았다. 14년이나 된 기억이라 조금 더듬어봐야 하지만, 맞다면 테이블이 한 12개 정도 됐었던 것 같다. 직원은 총 5명이었다. 홀에 2명, 주방에 3명. 나는 주방 3명 중에 보조 역할을 맡게 되었다. 주방 보조는 여러 가지 잡다한 주방일을 했지만 그중 가장 중요한 업무는 설거지였다.

서울파이낸스 센터의 위치상 주변에 회사원들이 많았고, 11시 40분쯤이 되면 그들의 러시가 시작되었다. 그렇다. 그건 정말로 러시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약 1시간 반 정도가 제일 바쁜 때였고, 주방 보조는 메뉴가 제때제때 나가게끔 빠르게 그릇을 회전시켜야 했다.

처음에는 설거지 속도가 느려서 그릇이 준비되지 않아 메뉴가 나가지 못하기도 했다. 점심 손님들이 쫙 빠져나간 뒤 산더미처럼 남아있는 설거지를 다른 직 원들이 합세해서 함께 해주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능숙해져 설거지에 속도가 붙었고, 나중에는 직원들로부터 '설거지의 신'이라는 칭호를 수여받고 그만두게 된다.

2시쯤 되면 손님들이 점점 빠져나가고 2시 반이 되면 한적해져 직원들이 점심을 먹었다. 밥을 먹은 뒤에는 김치를 썰어야 했다. 나는 김치 써는 것이 그렇게도 싫었다. 이유는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데 김치국물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장에서 김치를 매우 잘게 썰기 원했기 때문에 대충 할 수 없었고 아주 심혈을 기울여야 했다. 썰어둔 김치가 넉넉히 남아서 김치를 썰지 않아도 되는 날이 종종 있었는데, 그런 날은 기분이 날아갈 듯 좋았다. 김치를 썰 때 나는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는데, 윤하의 '오늘 헤어졌어요'를 참 많이 들었다. 새하얀 머플러에 얼굴을 묻고, 울어 붉어진 눈을 깜빡이며 오늘 헤어질 남자친구를 기다리는 여자가 되는 상상을 하면서.

이 노래를 들으면 갑자기 라멘집 주방에서 김치를 썰던 때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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