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게 이래요

by 단기소년원송치


머리를 자르려고 미용실에 갔는데 옆자리에 60대 정도로 보이는 여인이 파마를 하고 있었다. 여인은 미용사와 계속해서 대화를 나누고 있어 사교적인 성격인 듯 보였다. 그러던 중에 여인의 딸에게서 전화가 왔고, 여인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스피커폰으로 받았다. 의도치 않았으나 옆에 있다가 엿듣게 된 통화는


딸 : 엄마, 머리 하는 중이지? 내가 차 빼줘야 되니까 그쪽으로 갈게.

여인 : 나 차 알아서 잘 빼. 뭐 하러 와.

딸 : 아니야, 안 돼. 내가 지금 갈게.


요약하면 대략 이런 내용이었는데, 여인은 딸에게 역정을 내고 전화를 끊더니 미용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늙는다는 게 이래요."

여인은 딸이 나이를 이유로 자신의 운전 실력을 신뢰하지 않는다며 미용사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나는 여인에게 동정심이 들어 딸이 너무하다고 생각했다. 여인의 딸은 5분도 되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었다.


딸 : 머리 하는 데 얼마나 걸려?

여인 : 안 와도 된다니까. 차 알아서 뺄 수 있어.

딸 : 엄마 저번에도 혼자 빼려다가 사고 났던 거잖아.


딸이 사고를 언급하자 여인은 더 이상 뭐라 하지 못하고 수긍했다. 그제야 여인의 딸이 기어코 차를 빼주러 오겠다고 우기는 이유를 알았다.

여인의 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지 금세 도착했고, 엄마 곁에 서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나는 시술 시간이 여인보다 먼저 끝나 자리를 떴다. 아마도 딸이 여인의 차를 잘 빼주었으리라 생각한다.




나는 결혼하기 전에 가족들과 살던 동네에 있는 작은 치과를 8년째 지금도 다니고 있다. 원장님은 내가 처음 방문했을 때는 60대 초중반 정도로 보였고, 치위생사분은 50대 정도인 것 같았다. 원장님은 주기적으로 젊은이들과 섞여 조기축구를 뛰셨고, 신경치료를 할 때 벅벅 긁어내는 힘이 엄청나셨다.


그런데 이번에 치과 갈 일이 있어 예약을 잡으려고 하니 수요일이 고정 휴무, 토요일은 격주 휴무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유는 원장님이 이제 체력이 떨어지셔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치과에 방문해서 마주친 치위생사분의 얼굴을 살펴보았는데, 8년 전과는 많이 달랐다. 주름이 늘었고 얼굴에 탄력이 떨어져 쳐진, 노인으로 변해가는 모습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어도 정기 검진을 위해 1년에 1~2번씩은 갔었는데, 눈치채지 못한 사이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린 것이다.


8년 사이 나는 수험생에서 공무원이 되고, 미혼자에서 기혼자가 되었고, 조만간 아버지가 될 예정이다.

8년 사이 치과 원장님은 일주일에 하루는 고정으로 쉬어야만 하는 연세가 되셨고, 치위생사님은 얼굴에 주름이 늘었다.

언젠가 내가 다니는 치과는 문을 닫겠지. 그러면 다른 치과를 가야 할 거고,

나는 다시 늙어가는 원장님을 보게 될 것이다.

차를 빼다 사고를 낸 여인도, 원장님도, 치위생사도, 모든 것은 다 늙어가기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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